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97화 (97/215)

〈 97화 〉 2­61. 대비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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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 대비되는 모습.

새로운 심상 마법을 습득한 안젤라 누스.

영지 밖으로 처음 나온 유니스 에피스템.

그 둘에 이어 홀에 나타난 이는 온 세간의 주목을 받는 왕실 가정교사 이시하의 수양딸, 이유나였다.

이번 연회의 주인공인 공주를 제외하고,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세 사람이 모두 모이게 된 셈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신지 묻고 있습니다만."

유나는 다시금 유니스에게 고하자, 그에 답하듯 유니스의 뒷편에 서있던 영애들이 답했다.

"유니스님은 자리를 비켜달라고 하셨을 뿐입니다."

"그나저나... 왜 당신이 끼어드시는거죠?"

"평민 출신이셔서 모르시나본데, 임시 공작님의 양녀이신 당신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자리에요."

평민. 임시 공작. 양녀.

몇몇 단어에는 특별히 힘을 줘서 말하는 그들.

표류자인 왕실 가정교사가 도적단을 토벌하던 중 우연히 유나를 발견했으며, 예상 밖의 총명함을 보인 그녀를 입양했다는 것이 공식적인 발표.

허나 소문에는 살이 붙는 법이다.

표류자인 그가 고향을 그리워하다보니, 자신과 비슷한 외양을 가진 혜세국 출신의 평민을 양녀로 들였을 뿐이라는 소문이 귀족 사회 내에서 돌게 되었다.

그 결과 유나에 대한 인식은 벼락출세한 표류자의 평민 의붓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되었다.

"어서 비켜주시지요. 저희는 저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게 있어서 말입니다."

이미 자신들이 이긴 싸움이라는 듯. 유니스의 뒷편에 있는 영애들은 의기양양한 태도로 말했다.

그러자 유나는 그에 답하기 시작했다.

"저는 에우데미아의 모든 귀족 여러분을 존중합니다. 제 옆에 계신 기디언님처럼 공작가의 일원을 시작으로... 여러 궂은 일을 도맡아 처리해주시는 재상부와 왕궁부의 관리분들까지."

또박또박, 그리고 천천히.

이 상황을 바라보는 모든 이들이 들을 수 있도록.

"그러니 여러분들 역시 존중해드릴 예정입니다."

그리고 유나는...

손바닥을 쭉 편 채로 누군가를 가르키며 말했다.

"에피스템 후작가를 거스를 생각이신가봐요."

그리고 또 한 사람.

"어디 공작가의 자제분이라도 되시는 건가요?"

마지막 한 사람.

"그렇다기엔 본 적 없는 얼굴인데..."

유나에게 특정당한 영애들은 얼굴이 붉혀진 상황.

군중들은 이내 그것이 방금 전까지 유니스 영애를 편들고 있던 영애들의 언행이었음을 깨달았다.

"위계가 무너지는 것은 질서에 큰 균열을 만들 수 있는 법이죠. 그렇기에 저는 에피스템 후작 영애님의 권위를 지키려고 하셨던 당신들을 존중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임시 공작님의 영애로서 말씀드립니다. 저를 공작 영애로서 대해주셔야 방금 전까지 하셨던 귀한 말씀들이 바로 서지 않겠습니까?"

회장은 잠시동안 침묵에 빠졌다.

이 상황은 분명 이상했기 때문이다.

분명 공작 영애인 이유나는 마지막 순서로 입장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회장 안에서 오갔던 대화를 모두 알고 있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지 않은가?

거기에 유나는 멈추지 않았다.

"설마... 국왕 폐하께서 공인하신 의부님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으시겠다는 건 아니겠지요?"

아무리 임시직에 불과한 공작일지라도, 건국제 축일에 국왕에게 공식적인 지지를 받은 시하였다.

유니스 일행이 유나의 출신을 문제 삼았다면...

유나는 도리어 그들의 언행을 토대로 에우데미아의 질서를 지키라는 말로 반격한 셈이다.

그 때, 군중 속에서 누군가가 나섰다.

"소문의 공작 영애님이신가요? 반갑습니다."

"그쪽은 누스 영애님이시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순진무구한 분홍색의 소녀, 안젤라 누스였다.

그녀는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댄 채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나저나. 오늘 같이 기쁜 날에 믿겨지질 않네요. 아, 공작 영애님을 의심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에겐 확인할 방법이 다아­ 있으니까요."

이내 그녀가 우아한 동작으로 허공에 손을 뻗자, 어디선가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그 손 끝에 앉았다.

"음... 저분들이 정말로 그러셨다고?"

마치 나비와 소통할 수 있다는 듯이...

"뭐!? 그거 정말이니. 나비야?"

천진난만한 목소리는 홀에 널리 퍼졌다.

"이분들께 무릎을 꿇으라 하셨었다고오?"

마치 무대에 선 듯.

뒷편의 소년 소녀를 바라보는 동시에...

약간은 과장스러운 동작을 취하며 말하는 그녀.

관중들은 일순간 소란스러워졌다.

"뭐? 축하연에서 무릎을 꿇으라 했다고?"

"아무리 에피스템 후작가라 해도 말이지..."

그 중에는 유니스 일행을 힐난하는 이들도 있었고,

"방금 저게 누스 영애의 심상 마법인가?"

"나비가 홀로 와서 앉다니. 그림같았어."

"이 자리에서 보게 되다니..."

안젤라의 마법을 화제로 삼은 자들 역시 있었으며,

"공작 영애께서는 어떻게 아신거지?"

"다른 사람이 알려줬을 리는 없을 것 같은데."

"마법이라도 쓰신건가.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유나에게 의문을 품은 자들 역시 있었다.

약간은 얼굴이 붉어진 드릴 머리의 유니스가 말했다.

"그래요, 유나. 당신은 공작 영애가 맞으니 그에 맞는 대우는 해드려야죠. 하지만 한 가지가 남았어요. 왜 공작 영애께서는 이 일에 끼어드시는거죠?"

"저는 저들에게 자리를 비켜달라 요구를 했었고... 한 번에 듣질 않았으니 사과를 요구했을 뿐이에요. 그런데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참견하시는건가요?"

다른 귀족의 행사에 함부로 끼어들어서는 안된다.

이는 높은 지위의 귀족이더라도 지켜야만 하는 원칙.

유니스는 그 원칙에 따르라며 으름장을 놓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나의 대답은 간결했다.

"아셰리아가 따르는 언니로서, 당연히 나서야 할 일입니다."

"당신이 공주 전하의 언니...라고요?"

"네. 이런 기쁜 날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서는 안되니까요."

일개 평민 출신의 입양아가 왕족의 언니를 칭하다니.

떠들석해졌던 회장은 다시 한번 침묵에 휩싸였다.

그런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유나는 등을 돌려 자신의 뒤에 서있는 소년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분께서도 사과할 일이 있긴 합니다만... 무릎을 꿇릴 정도는 아니었죠. 그렇지 않은가요?"

"예?"

자리를 비켜달라는 어이없는 말에 반박을 했을 뿐이었다.

그런 자신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소년은 잠시간 당황하게 되었다.

그런 그의 표정을 보고, 유나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저 입술로 한 글자, 한 글자.

발음을 흉내낼 뿐이었다.

'박. 살.'

"...!"

소년의 머릿속에 방금 전까지의 대화가 스쳐지나갔다.

[유니스 영애의 성격이 여러모로 박살이라는 소문.]

[박...살...]

[머리 스타일처럼 주변을 박살낸다고 하더라...]

순식간에 창백해져버린 소년.

그의 옆에 있는 소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반응을 확인한 유나가 말했다.

"서로 좋게 끝내는 편이 옳다고 봅니다. 에피스템 후작 영애께서 사과를 바라시니, 두 분께서는 간소하게나마 사죄의 말을 건네시는 게 어떨까요?"

"그게..."

아무리 귀족이라 해도 갓 12살이 된 소년과 소녀였다.

대화를 나눌 수 있을지도 몰랐던 세 사람이 자신들의 앞에 서있으며, 주변의 이목이 전부 집중된 상황.

그 시선에 너무나 큰 부담을 느끼는 두 사람이었다.

거기에 자신들만의 대화였긴 했지만 연회장에서 다른 영애의 험담을 한 것은 사실이 아닌가.

소녀가 먼저 유니스의 앞에 나서며 말하자, 소년 역시 그 옆에 서 작게 고개를 숙였다.

""에피스템 영애님. 죄송합니다...""

"흥."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유니스 에피스템. 하지만 일을 더 크게 키울 수는 없었다.

그녀가 휙 하니 몸을 돌려 테라스 쪽으로 향했다.

유나는 그 상황을 정리하듯 그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사과를 전한다는 건 말로는 쉬운 일이지만, 실상은 어려운 일이죠. 두 분 덕분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아닙니다.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저 자신이 잘못을 했기에 건낸 당연한 사과일 뿐이었다.

하지만 내막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이 일이 다르게만 보였다.

"공작 영애께서 중재를 했는데도 결국 사과를 받아냈네..."

"에피스템 영애는 대꾸도 하지 않았잖아?"

"저 어린 것들이 불쌍하다."

에피스템 후작의 영애가 사교계에 갓 데뷔한 어린 귀족들에게 부당한 트집을 잡아 겁박하고 있었다.

그에 공작의 양녀가 중재를 하려 했으나, 후작 영애는 끝까지 사과를 받아내고 나서야 등을 돌렸다...

귀족들 사이에 그런 수근거림이 점점 퍼지게 되면서, 후작 영애의 평판은 자연스레 나락으로 향했다.

유나는 주변의 반응을 귀담아 들었다.

'높은 사람들과의 친분은 중요하지만, 그 친분을 이끌어내는 것은 결국 전체적인 분위기다...'

오늘 파티에 앞서 시하가 강조했던 내용이었다.

그는 유나에게 오늘의 파티를 귀족 사회 전체에 좋은 인식을 심어주는 자리로 삼으라고 조언했었다.

이 나라의 실세들은 결국 높은 자리에 앉은 자들이지만... 그들을 움직일 명분은 낮은 곳에서 나온다.

나라의 정점인 국왕조차 충분한 명분이 없으면 군림할 수 없는, 그런 나라가 바로 에우데미아다.

그렇기에 전체 귀족 사이에서의 평판이 좋아진다면, 다른 상급 귀족의 관심은 절로 따라올 것이다.

이어서 유나는 소년과 소녀에게 말했다.

"평소 수업을 같이 듣는 분들이 파티 준비로 바쁘셔서... 저와 기디언님 외에는 없는 상황입니다."

"두 분께서 저희 말벗이 되어주실 수 있으신가요?"

유나의 옆에서 기디언이 한 손을 척 들어 인사를 건냈다.

소년은 머뭇거리며 답했다.

"저희 따위가 두 분의 말벗이라니..."

"저희 따위라니. 그렇게 두 분을 낮추지 마세요."

"귀족으로서 백성들을 책임진다는 건 같습니다. 지위의 높고 낮음은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타이르는 유나와 그녀의 말을 돕는 기디언.

유니스 에피스템과는 대비되는 모습에... 귀족들의 마음 속에서 유나에 대한 평가는 크게 변했다.

평민 출신의 양자들은 기본적으로 예법에 미숙하며, 귀족 사회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유나는 공작 영애로서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이해하고 상대에게 당당히 의견을 피력했다.

그렇게 상황을 중재한 것에 이어, 억울하게 사과를 하게 된 둘을 포용하는 면모까지 보이지 않았나.

거기에... 품성이 올바르기에 사대 가문의 일원인 기디언 프라시스도 그녀를 에스코트하지 않았을까.

귀족 자제들은 그런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우와... 네 분이서 이야기를 하시면 저도 껴도 될까요?"

유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안젤라 누스.

그녀의 손가락 끝에는 아직도 나비가 앉아 있다.

"당연하죠. 자리부터 옮길까요? 두 분도 따라오세요."

""네에...""

그렇게 다섯 사람은 인파를 헤치며 나아갔고,

그 뒤로는 몇몇 귀족들이 따라붙게 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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