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화 〉 262. 연회의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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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 연회의 중심.
왕좌에서는 거리가 있는 한 테라스.
유나 일행은 새로이 자리잡은 장소에서 서로의 이름과 가문, 나이 등을 간단하게 소개했다.
유나에게 도움을 받았던 소년과 소녀의 이름은 각자 헬리오 파트라스와 아르멜 라리사.
동부 소피아 령 근방의 자작가 자제들이었다.
그들이 공주와 같은 해에 갓 12세가 된 사실을 알고, 유나 일행을 따라온 자들이 말했다.
"첫 날부터 마음고생이 심하셨겠어요."
"저런 성격이니 후작령에 갇혀 지냈겠지..."
"상심하지 마세요. 저런 이들만 있는 건 아니니까."
사실 대부분이 그 상황을 관망하던 이들이었다.
소년과 소녀를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이 자리에 있는 유력 귀족 유나, 기디언, 안젤라 와의 대화에 끼려고 하는 의도가 다분히 섞여있는 발언.
그런 사소한 계산을 모를 리가 없는 유나였다.
"두 분께서 어려운 일을 겪은 것은 맞습니다만, 에피스템 후작 영애님께 너무 그러진 마세요."
"네?"
"후작 영애께서도 귀족의 일원이고, 그분이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 저희는 자세히 모릅니다. 저희가 감히 타인을 평가할 자격은 없는 법입니다."
그저 실리만을 따져가며 친분을 맺은 사람들은 그 목적이 사라지게 되면 쉽게 떠나간다.
이는 혜세국의 공주 시절에 직접 체험한 것이며, 시하의 밑에서 생활하며 깨달은 것이었다.
이 자리에 없는 유니스 에피스템에게 향하는 힐난을 멈추도록 한 유나는 이어서 말했다.
"두 분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말씀해주셨으니, 여러분은 마음씨가 고운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미 겪은 어두운 일보다는 밝은 면을 이야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방금 전의 일로 인해 여러분들과 알고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에 저는 감사하고 있답니다."
누군가의 잘못을 꾸짖는 것은 새로운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법이지만, 유나는 이 상황에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당신들이 유니스 에피스템을 비난한 이유는 여기 있는 어린 귀족 두 사람을 위한 배려였다.'
그런 프레임을 씌워 그들의 죄책감을 덜어내는 동시에 그들의 가치를 높였고, 자신은 이 만남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는 표현을 한 것이다.
유나의 말을 경청하던 주위 귀족들은 말했다.
"명심하겠습니다. 영애."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이 자리에서 유나님을 알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충분한 존중과 경의.
실리가 아닌 진심으로 타인을 대하는 태도.
거기다 이 자리에 없는 유니스를 존중함으로서 타인을 업신여기지 않는다는 인상까지.
귀족 사회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인간상이지만, 다른 이의 신뢰를 이끌어내기엔 충분했다.
유나는 가볍게 끄덕이고 연회장의 입구를 보며 말했다.
"지금쯤이면 공주님께서 입장하실 시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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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회장의 바로 옆에 붙어있는 준비실.
"드레스도 완벽. 티아라도 완벽. 장식도 완벽."
"아샤. 이 정도면 충분한 듯 한데요..."
"안 됩니다. 12세의 생일은 인생에 한 번 뿐이니까요. 구두도 완벽. 헤어 스타일도 완벽..."
아셰리아와 아샤가 마지막 준비를 하고 있었다.
평소와는 다른 점이 있다면 그렇게나 귀찮음을 자주 표현하던 아샤가 열성적이라는 것일까.
똑똑
그 때, 준비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리아. 준비는 다 되어가는가?"
"아, 오라버니..."
"방금 유나의 입장이 끝났으니, 우리도 슬슬 입장해야 해."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아셰리아는 아샤에게 말했다.
"아샤, 이제 나가죠."
"조금만 더..."
보랏빛 자수정이 박힌 은빛 티아라.
신비한 느낌을 주는 연보라색의 드레스.
그 드레스 위로 뻗어져나가는 가느다란 은발.
지금껏 해온 복장들 중 가장 공들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샤는 이것으로도 성에 차지 않았다.
그녀는 평소 자신이 모시는 아셰리아 공주가 세간에 어떤 평가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업무적인 능력만 뛰어날 뿐, 타인을 대할 때는 그저 차갑게 대하는 '표정마저 얼어붙은 얼음공주.'
지난 건국절. 시하의 계략으로 대부분의 무능력자들이 파문되었다 해도, 그 평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샤로서는 이번 행사를 통해 아셰리아에게 붙은 오명을 씻어내리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컸다.
하지만 이제는 시간이 다 되어버렸으니.
"충분히 잘 꾸며주셨으니까요. 자, 어서요."
"... 눼에."
공주의 채근에 밖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준비실 밖으로 나오자, 정복을 차려입은 알렉산더가 아셰리아와 아샤를 맞이했다.
"오..."
동생의 외모만을 보고 꼬이는 개차반을 모두 쳐내거라.
필레몬 국왕으로부터 단단히 주의를 받은 왕자였다.
물론 국왕은 아들에게 이를 전했다가 루시아에게 등짝을 맞긴 했지만, 이는 별개의 문제였다.
"아바마마의 심정이 이해가 가는군."
알렉산더가 눈에도 동생은 충분히 빛나보였기 때문이다.
이 정도라면 아바마마의 걱정은 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오라버니의 말뜻을 모르는 아셰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음... 오라버니. 그럼 가실까요?"
"그래. 다들 기다리겠구나."
그렇게 남매가 나란히 회장의 입구로 걸어가자, 아샤 역시 그들의 뒤를 따랐다.
"혹시 긴장되지는 않느냐."
"큰 긴장은 되지 않습니다. 오라버니와 아샤도 제 옆에 함께 있고, 회장 안에서는 유나 언니와 기디언님께서도 기다리고 계시지 않습니까."
"음. 다행이구나."
대화를 나누며 회장의 입구에 도착한 세 사람.
알렉산더가 손바닥을 위로 보도록 하여 내밀자, 아셰리아는 오라버니의 손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자. 그래도 쉼호흡 한 번은 하고 들어가는 게 좋아. 나도 막상 입장의 순간에는 긴장해버렸으니까."
그 말에 얕게 숨을 가다듬는 아셰리아.
"준비되었습니다."
"그래. 그럼 들어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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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셰리아 공주가 오라버니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등장하자, 회장에는 박수 갈채가 쏟아져내렸다.
객들의 환영 속에서, 알렉산더와 아셰리아는 중앙에 깔린 양탄자를 따라 왕좌의 단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단에 도착한 두 사람은 말했다.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다름 아닌 내 동생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다. 모두가 이 시간을 즐겼으면 한다."
이후의 순서는 연회를 찾은 손님들과의 대면.
연회를 찾아온 손님들이 차례를 이루어 파티의 주선자를 찾아와 인사를 나누게 된다.
하지만 그 이전에 중요한 절차가 하나 있으니.
파티의 주선자는 다른 이들을 맞이할 자리를 정해야만 하는데... 그 자리는 이미 정해져있었다.
아셰리아는 단에서는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두 사람에게 향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디언님, 유나 언니."
"축하드립니다, 공주님."
"생일 축하해요. 아셰리아."
유나와 기디언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었다.
알렉산더 역시 그들에게 인사를 건냈다.
"잘 와주었네. 그쪽은 누스 백작 영애이실테고... 여기 계신 다른 두 분은 누구시지?"
"아... 자그마한 소란이 있었어서 말이야. 별 일은 아니지만 그 일로 알게 된 분들이야."
유나가 끄덕 하고 약간의 눈치를 주자...
소년과 소녀가 머뭇머뭇 자신들을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파트라스 자작령의 둘째이자 장남. 헬리오 파트라스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라리사 자작령의 셋째이자 차녀. 아르멜 라리사라고 합니다."
"파트라스와 라리사... 소피아 령에 이웃의 두 영지가 맞는가?"
"네... 그렇습니다."
알렉산더는 소년과 악수를 나누며 말했다.
"내 동생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먼 곳에서 와주었군. 정말이지 고맙네."
"그... 당연한 일입니다. 공주 전하의 생신이신데요오."
이 자리에서 왕족이 첫 번째로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 중 하나가 되다니! 평소 사교계에 관심이 많던 소년으로서는 예상치 못한 영광이었다.
인사를 나누는 두 사람에게 아셰리아가 덧붙였다.
"그러고 보면... 지난 건국절에 선생님과 처음으로 춤을 추셨던 분이 아네모네 라리사님이셨죠."
"네. 여기 아르멜의 언니되시는 분입니다."
"다른 이들이 선뜻 나서지 않을 때, 첫 댄스 신청을 해주셨다고 고마워하시던 게 기억나네요."
아셰리아는 약간의 미소를 지으며 아르멜에게 말했다.
"아르멜님. 대신 감사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에?"
"아네모네님께서 용기를 내어 댄스 신청을 해주셨기에 선생님께서는 귀족 사회에 녹아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전해만 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아르멜은 공주가 자신에게 따로 말을 걸어올 줄은 몰랐기에 당황을 숨기지 못했다.
거기다 다른 귀족들은 다른 점에서 크게 놀랐다.
소문 속의 그 얼음공주가 미소를 짓다니.
조금의 수줍음마저 느껴지는 그 미소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안젤라 누스가 앞으로 나서 알렉산더와 아셰리아에게 인사를 건냈다.
"지난 건국제 이후로 처음 뵙네요. 왕자님."
"반갑습니다, 누스 영애."
"그리고... 공주님은 이런 자리에서 처음 뵙네요."
"새로운 심상 마법을 익히셨다는 경사는 자주 접해왔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안젤라님."
미소를 유지하며 인사에 답하는 아셰리아.
안젤라 누스는 천진한 목소리로 화답했다.
"그에 반하면 공주님께서는..."
"……."
"이런 미소를 보여주시다니, 너무 사랑스러우신걸요."
"... 감사합니다."
자신이 심상 마법을 습득했다는 소문에 비해 안좋은 쪽으로 입소문이 많이 난 왕실의 얼음 공주.
그녀가 생략한 단어 중에 불경한 단어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아셰리아 공주는 웃음을 유지했다.
아직 만나야 할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렉산더는 그 사실이 매우 불쾌했다.
"다행히 리아가 농담으로 받아주었으니 참고 넘어가겠지만... 다음부터는 조심해야 할 것이오."
"아... 제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요? 죄송합니다... 분위기 파악을 못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요."
왕자의 불편한 기색에 곧장 사과하는 안젤라.
"어쩌다보니 첫 인사를 받게 되어 너무 들떠있었나 봅니다. 제가 실례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뒤에서 대화를 들으며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던 아샤도 약간은 기분이 풀리게 되었다.
아셰리아는 오라버니에게 말했다.
"오라버니. 오늘 만나야할 분이 많습니다. 이제 다른 분들을 차례로 만나보도록 하죠."
"그래야겠구나. 그나저나... 이곳에 있으면 혼잡해질 수도 있겠는데, 세 사람은 괜찮겠나?"
알렉산더는 안젤라와 헬리오, 아르멜에게 말했다.
알렉산더의 말뜻은 이 자리에서 파티에 초대된 인원들을 맞이하겠다는 것이었다.
유나와 기디언은 애초부터 오누이의 근처에 있을 예정이었기에 굳이 묻지 않았다.
그 물음에 세 사람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 자리를 준비해야겠구나."
그의 말에 아샤가 손짓하자, 대기하고 있던 시종들이 일곱 사람 몫의 의자와 테이블을 준비했다.
연회의 중심이 순식간에 바뀌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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