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 263.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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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유나가 있던 장소에 자리를 꾸리긴 했으나, 아셰리아는 그 테이블로부터 약간은 거리를 두고 축하 인사를 받기로 정했다.
회장에 있는 모든 귀족들이 축하 인사를 건네러 올 것은 분명했고, 그에 응대하는 것은 자신과 오라버니 둘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인파에 유나를 비롯한 다른 이들이 휘말린다면 손님에게 폐를 끼치는 것과 마찬가지. 아셰리아는 타인에게 짐을 지우고 싶지 않았다.
이후 꽤나 오랜 시간이 흐르고...
"조금은 지치네요."
"언제나 뒤에서 지켜만 보는 입장이었는데, 이렇게 직접 사람들을 대하는 건 꽤나 힘들단 말이지."
수많은 귀족들의 축하 인사를 전부 받아야만 했던 아셰리아와 알렉산더는 지쳐버렸다.
그 와중에 아셰리아는 문득 부모를 떠올렸다.
"... 새삼 아바마마와 어마마마가 존경스럽네요."
"그러게 말이다. 이보다 더 큰 행사를 매년 두 번이나 치르시니... 나는 내 주최의 파티를 꽤나 치러 보았는데도 아직 적응이 되지 않는구나."
건국제 연회에는 나라 안의 모든 귀족들을 초대해 다음 해를 기약하는 인사를 나누고, 해방제 화합 파티에는 각국의 대사들과 아카데미의 학생들을 왕궁에 초대해 우호를 다진다.
아직은 그런 연회에서 자리만 지키면 되는 아셰리아와 알렉산더이지만, 새삼 이런 자리에서 부모의 노고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지친 그들에게 음료 두 잔을 가져와 내밀어졌다.
"수고했어. 여기 마실 걸 좀 챙겨두었는데."
"오. 고마워, 유나."
"감사합니다."
받아든 음료를 한 모금씩 마시는 아셰리아.
그에 반해 알렉산더는 마침 목이 말랐다는 듯이 음료를 단숨에 들이킨 후 유나에게 물었다.
"다른 이들이 에피스템 가문의 영애와 작은 소란이 있었다고 하던데... 혹시나 별 탈은 없었어?"
"음. 큰 일은 아니었어. 작은 자리다툼이라 해야 하나. 애초에 나 때문에 벌어진 일도 아니었고."
사실 유나로서는 방금 유니스가 일으킨 소란이 자신에게 오히려 이득이 되었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자신과 시하가 정해둔 목표를 전부 이루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목표는 세간의 소문을 반전시키는 것.
시하는 유나에 대한 악소문을 바로잡지 않았다.
사람에 대한 기대감이 클수록 실망 역시 커지는 법, 시하는 그와 반대되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기대가 바닥을 치는 상황에서 세간의 평가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유나의 첫 목표였다.
두 번째 목표는 귀족의 지위 고하에 상관하지 않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호의를 얻는 것.
사교 모임은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여럿 있으며, 유나가 모든 모임을 찾아다닐 수는 없는 노롯이다.
하지만 최대한 많은 이들의 호의를 산다면 각자의 모임에서 좋은 이야기들이 더 오갈 것이다.
두 가지 목적을 이루기 위한 화젯거리를 찾고 있던 유나에게, 유니스의 행보는 큰 도움이 되었다.
자신을 무시하는 후작 영애의 떨거지들을 논파했으며, 유니스의 무리한 요구를 철회시켰지 않나.
그것만으로 정해둔 목표는 절로 이루어졌고, 그 사실에 충분한 만족감을 느끼고 있는 유나였다.
하지만 알렉산더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우... 그럼 다행이구만."
"음. 대면 도중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에피스템 영애가 약간 화를 내는 것 같아서 말이지. 내가 없는 동안 큰 일이라도 있었나 싶었어."
"그렇구나..."
알렉산더로서는 영문을 모를 일이었지만...
화를 감추지 못하는 얼굴로 찾아온 유니스 에피스템은 두 사람에게 여러 질문을 쏟아내었다.
'공주님, 정말로 유나 양과 절친한 사이신가요?'
'왕자님께서도 그러십니까.'
'왕자님과 유나님은 정확히 어떤 관계이신거죠?'
앞의 두 질문은 당연한 일이라 답했지만... 아직 좋아한다는 마음을 전하지는 못한 알렉산더였다.
현재 두 사람의 사이는 친구 이상의 관계임은 확실한데, 연인이라고 절대 말할 수는 없는 관계.
에피스템 영애가 그런 미묘한 부분을 화난 얼굴로 찔러오니, 자신도 모르게 얼어붙어 버렸었다.
마음이 싱숭생숭한 알렉산더에게 유나가 말했다.
"그나저나 두 사람도 이제 자리를 옮겨서 조금은 쉬어. 방금 전까지 꽤나 고생했잖아?"
"아... 그게 좋겠네."
"저도 조금은 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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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인사를 마친 왕자와 공주는 유나와 일행이 앉아있는 자리에 합석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유나와 기디언, 안젤라 누스, 헬리오 파트라스와 아르멜 라리사.
약간은 부담스럽긴 하지만 무려 왕자와 공주의 사담이 오가는 자리.
안젤라는 네 사람의 대화를 유심히 듣기 위해 이 자리에 남았고, 헬리오와 아르멜은 이 자리에 있는 것이 흔치 않은 기회임을 알기에 부담스러움을 각오하고 남게 되었다.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는 도중 안젤라 누스가 천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영지에 돌아가기 전에 왕도에서 들릴만한 곳이 있을까요오?"
"들릴만한 곳이라... 그것만으로는 감이 안 오네요. 예를 들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맛있는 음식점이나 희귀한 물건을 파는 상점같은 곳을 구경하는 걸 즐깁니다."
맛있는 음식점. 희귀한 물건.
아셰리아에게 짚이는 곳이 여러 군데 있지만... 가장 무난한 선택지를 떠올렸다.
"아카데미 거리의 미샤 베이커리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미샤 베이커리... 저는 모르는 곳이네요."
"저희 선생님께서 후원하고 계신 제과점입니다."
"의부님께서 고향의 요리법을 제공하여 아카데미 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하더군요."
"희귀하고 맛있는 요리를 파는 제과점...!"
아셰리아의 답을 듣고 약간은 덧붙이는 유나.
그에 라리사 가문의 차녀, 아르멜이 수줍게 말했다.
"공주님의 선생님이라고 하시면. 왕실 가정교사이신 이시하 공작님을 말씀하시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표류자인 그 분의 고향 요리라... 정말 기대되네요. 저도 꼭 들려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 상식을 깨는 음식을 많이 판매하고 있는데 꽤나 맛있습니다. 후회하지 않으실 거에요."
"백 년 전 표류자께서는 에퀼리아의 이름난 요리사라고 하셨죠. 저희 세계에서 셰프라는 단어도 그 분이 처음 정착시켰다고 하더군요. 음식의 수준도 그 분으로 인해 크게 개선되었다고."
"그것까지 아시다니, 정말 박식하시네요. 사실 선생님과 자주 가는 곳이 있는데, 백 년 전 표류자님의 제자께서 운영하시는 음식점이랍니다."
"그 분의 제자가 아직 살아계셨다니, 그건 처음 듣는 이야기네요! 사실 저택에서는 역사서를 찾아보는 게 유일한 낙이라..."
"그런가요. 아르멜님과는 대화가 통할 것 같습니다."
서로의 관심사가 제대로 맞아떨어졌는지, 그들만의 대화를 이어나가는 아셰리아와 아르멜.
그걸 구경하던 헬리오 파트라스는 왠지 자신도 그 대화에 끼고 싶어 자신이 가정교사에 대해 알고 있는 한 가지 사실을 말하기로 결심했다.
"왕실 가정교사님께서는 오늘 동방 변경백의 영애이신 필로네님과 맞선을 하신다고 했었죠."
"아... 네. 그렇습니다."
"표류자라는 존재와 현명하기로 소문난 필로네님의 맞선이라 소문이 쭉 퍼져있더라구요."
"그렇군요. 하긴 그렇습니다. 아마 필로네님이 아니었다면 아바마마와 어마마마께서도 다리를 놓아드리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해요."
필로네 소피아.
그 이름은 나라 안에서 꽤 유명하다. 소피아 령의 경제를 부흥시킨 재녀라 불리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먼저 맞선을 요청했으며, 모든 맞선을 거절하던 가정교사가 그 제안을 수락하다니.
여섯 달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에우데미아에 완벽히 적응하여 큰 공을 세운 표류자 임시 공작과 그녀의 맞선은 귀족 사회 내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그 대화를 듣던 알렉산더는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만약 두 분이 이어진다면, 그 경우에는 어느 분이 상대 가문에 들어가게 되는거지?"
귀족 사이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였다.
소속된 집안의 작위를 이어받게 되는 셈이니까.
그에 기디언이 의견을 덧붙였다.
"선생님께서 꽤나 능력있는 분임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적어도 임기 중에 해직을 당하실 일은 절대로 없겠죠."
"그렇지. 그래도 왕실 가정교사라는 자리는 명예직이다. 우리 교육을 맡고 계신 동안만 작위가 유지되는 자리다 보니 안정적이지는 않지."
"그렇다면 임시 공작님께서 소피아 후작가에 데릴사위로 들어가시게 되는 걸까요?"
"그럴 가능성이 높겠구나."
임기. 해직. 명예직. 기한이 있는 작위. 데릴 사위.
선생님께 반려가 생긴다면 이 세상에 마음을 붙이는 데 큰 보탬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앞서 들었기에 큰 걱정을 하지 않았던 아셰리아였다.
하지만 그와 떨어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소피아 령은 혜세국의 국경과 맞닿아 있는 변방. 그곳에 선생님이 데릴 사위로 들어가신다면?
왕도와 소피아 령 사이의 거리는 멀다.
그렇다면 자신과는 어떻게 되는걸까.
대화를 듣고 있는 아셰리아의 마음 속에, 안좋은 예감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만약 약혼이 성사되면 공작님의 임기가 끝나고 결혼하시게 되는 걸까요? 그렇다면 소피아 후작가는 영애의 혼인이 늦어지니 큰 손해일텐데..."
"교사직을 내려놓으실 수도 있지. 그렇게 되면 내가 자주 소피아 령을 찾아 선생님을 뵈어야 겠군."
"마땅히 그래야겠죠. 아직 선생님의 수완이라던가 세상을 보는 눈은 더 배우고 싶습니다."
아셰리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곳에 모인 남성진은 그들만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러던 중 유나가 문득 아셰리아를 돌아보고...
남성진의 대화를 끊어내듯 말했다.
"의부님께서는 자신의 한 번 맡은 책임은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지키시는 분입니다."
지난 세 달간. 공주와 지내며 깨달은 게 있는 유나였다.
아셰리아는 다른 감정만큼은 절대로 내비치지 않는 편이지만, 풀이 죽은 그 순간만큼은 티가 난다.
바로 지금처럼.
"그리고. 전부 다 잘 될 거라 하셨으니. 갑자기 교사직을 내려놓는다던가...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아셰리아의 불안함을 진정시키기 위해 한 말이지만...
유나의 말은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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