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 270. 해답은 마음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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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 해답은 마음 속에.
고블린 주방장을 데리고 베이커리 안으로 들어오니, 앉아 있었던 테이블에는 쉽게 형용하지 못할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필로네가 관찰하는 듯한 눈빛으로 날 흘겨보고 있으며, 공주님은 말없이 포크만을 가지고 빵을 쿡쿡 찍어먹고 있었고, 아르멜은 그런 둘을 앞에 두고 초긴장 상태.
이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나는 아르멜에게 고블린 주방장을 소개했다.
"이분이 바로 100년 전 표류자님의 제자이십니다."
"와아, 안녕하세요!"
어둠 속에서 빛을 발견한 듯 반응해주는 아르멜. 그에 노인은 하얀 천에 둘둘 싸여있는 채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에 반해 필로네는... 그대로. 아셰리아 공주 역시 평소라면 반갑게 맞이했을 주방장에게 고개만 까딱 숙이는 게 고작이었다.
싸늘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는 모르쇠로 일관하며 내 할일을 먼저 하는 게 답이다.
일이 커질 수도 있겠지만, 원인도 모르는 현상에 머리를 싸매는 것보다는 나을테니까.
"주방장님. 저번에 제공해주신 소스로 피자빵을 만들어보았습니다. 도우를 직접 만들기에는 시간이 없어서 일반 바게트 재료를 올린 점은 감안해주세요."
"오오... 기대되는군요."
쓰지도 않아 깨끗한 상태로 남아있는 내 포크로 빵 한 조각을 집어 건네자, 노인은 테이블에서 등을 돌린 후 음식을 맛보았다.
모든 동작은 하나하나가 단정했으며, 먹는 소리 역시 일절 나지 않았다.
이내 시식을 마친 그는 테이블에 남아있는 빵조각을 해체하며 말했다.
"확실히. 스승님의 방식과는 큰 차이가 있군요."
"그렇죠. 아마 그분은 북아메리카 출신이셨을거에요. 주방장님께서 배운 음식들도 하나같이 그쪽 음식들이었으니까요."
"... 아메리카. 분명 그리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에우데미아는 음식이 기름지긴 하지만, 적은 재료로 맛을 내는 것도 중시하니까요. 이곳 귀족들을 상대하기엔 이탈리아식이 훨씬 나을 것 같아서 만들어 봤습니다."
여러 번 카페테리아 드 고블링을 방문하며 느낀 것이었지만, 주방장의 요리는 미국 본토의 요리가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보니 여러 재료를 듬뿍 올려 부재료의 맛을 살리는 방식으로 피자를 내온 적이 있었는데... 입만 고급인 헤르만 녀석이 '맛있긴한데 재료가 너무 많아 아쉽습니다'라고 한 바람에 주방장이 망부석으로 변한 적이 있었다.
... 석화 저주에 당한 고블린. 해주를 위해 얼마나 많은 말을 했는지 모른다.
"제 입맛에는 주방장님께서 만드신 피자가 훨씬 맞습니다. 그래도 이 곳 귀족들의 입맛에는 이런 피자가 더 익숙할 것 같아요."
"확실히 그럴 것 같군요. 스승의 고향에는 인족밖에 없는데도 피부색에 따라 선호하는 음식이 달랐다고 하셨는데... 마치 그 편린을 본 기분입니다."
스승이 전수해준 요리가 통용되지 않는다니, 마음속으로는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는 차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지금은 스승의 말을 떠올리며 잘 받아들였으니... 정말 다행인 셈이다.
그리고. 무언가를 떠올린 노인이 말했다.
"이것 외에도... 공작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아. 제가 주방장님을 채용하고 싶어서요."
"예?"
내 제안에 고블린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는 이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안될 것 같습니다. 공작님께서는 제 요리를 알아주시는 분이지만, 한 분의 개인 요리사가 되고 싶지는 않군요."
일전에도 아셰리아 공주가 넌지시 왕궁 요리사직을 제안한 적이 있었다.
그 때도 비슷한 이유로 거절했었지.
노인은 최대한 많은 이들이 자신의 요리를 즐길 수 있으면 한다고 답했었다.
나는 그 꿈을 빼앗을 생각이 없다.
그의 꿈은 오히려 내게 도움이 될 수도 있기에, 겸사겸사 밀어주려는 것이다.
"오해가 있었네요. 제가 제안드리는 건 제 개인 요리사가 아닙니다. 어르신께서 어떤 목표를 지향하시는지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일입니까?"
"멀지 않은 미래에 한 단체를 만들겁니다. 그런데 여러모로 개판일 예정이라서요."
"개판...?"
개판.
즉, 무질서하고 난잡한 상태.
여기서는 견인족 차별발언일 수도 있으나, 이만큼 적절한 단어가 없다.
"사실 지금도 그 구성원을 모으는 중입니다. 그 안에는 에우데미아 평민도 있고, 혜세국 출신자도 있고, 수인도 있습니다. 나중가서는 더 많은 종족과 인종이 모일 수 있어요."
"분명 상대를 이해할 생각조차 없는 이도 많을 것이고, 서로에 대한 상식의 부재로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 조직의 중심을 잡아줄 수단, 그 중 하나가 요리라 생각해요."
"어르신께서 주방의 셰프직을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절대적인 맛 하나로 그 단체의 구성원 모두의 입맛을 사로잡을만한 분은... 주방장님 외에 따로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내 말에 고블린 주방장은...
"허어..."
낮게 침음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제안인듯 하다.
잠시간의 시간 동안... 말 없이.
노인은 고개를 들고 멍하니 천장을 볼 뿐이었다.
"개판이라. 수인들이 들으면 대노할 단어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그만한 단어도 없군요. 공작님께서 만드실 단체는 개판 그 자체입니다."
그는 서서히... 자신의 머리를 둘러싸고 있는 흰 천을 풀어냈다.
조금씩 조금씩.
그의 피부가 드러난다.
이 자리의 둘에게는 생소할 광경.
필로네는 허리를 쭉 편 채 눈이 켜졌으며, 아르멜은 '우와아' 낮은 탄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얼굴을 전부 드러낸 노인이 말했다.
"그 개판에 저같은 고블린이 껴도 되겠습니까?"
"상관없습니다."
"다른 이들이 납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셰프님의 요리 실력으로 납득시켜야죠. 납득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 뻣뻣한 헤르만 녀석도 결국에 인정하지 않았습니까."
내 말에 고블린 노인은 희미하게 웃었다.
이윽고 흰 면장갑을 벗은 그는 앙상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작은 팔을 내밀었다.
"점포 정리는 당장 해야할까요?"
"아직은 준비가 다 되지는 않았습니다. 때가 되면 아일라를 보내 돕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 *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필로네는 전날처럼 침대에 엎어져버렸다.
신체적으로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지만, 정신적인 피로감이 너무나 큰 탓이었다.
"아가씨. 오늘은 무슨 일이 있으셨길래 침대에 바로 엎어지는건가요?"
"... 별 일 없었어. 그냥 고민할 게 있어서."
"아가씨가 그렇게 말씀하시면 괜찮겠지만 말이죠. 또 공작에게 이상한 소리라도 들으시고 고민에 빠져 계신 건 아니죠?"
"끄응..."
그런 건 아니라 말하고 싶다. 오늘은 일정에 공주와 아르멜이 끼어들었기에, 오늘 하루동안 시하와는 이렇다 할 대화조차 못했던 필로네였다.
하지만 고민에 빠진 건 사실이다.
각자가 중시하는 행복.
그 행복을 추구할 기회.
평소의 그녀라면, 아셰리아 공주의 말 정도는 가볍게 흘려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공주라 해도, 아셰리아는 갓 12살이 된 소녀. 필로네는 그런 아이의 말에 흔들릴 정도로 호락호락한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침대에 누운 채 멍하니 천장을 보고있는 그녀는 나지막이 한 마디를 흘렸다.
"그렇지 않아도 심란했는데... 그 사제(??)가 쌍으로..."
참관 중 시하가 내뱉은 말들이 그녀의 마음 속을 휘젓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공주가 저런 말을 흘려버리니, 품고 있던 의문은 한 층 진화해버렸다.
거기다...
마음을 뒤흔든 요소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 고블린은 또 뭐야..."
왕실 가정교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동등한 시선에서 주고 받던 의문의 난쟁이.
무려 100년 전 표류자의 제자라고 했었지.
그 정체가 고블린이라니... 표류자란 족속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나간 게 틀림없다.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쉬는 필로네.
공작의 계획을 들으며, 필로네 역시 '개판'이라는 단어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드넓은 에코니아의 모든 이는 전부 다르니까.
에우데미아와 혜세국, 헬렌 교국의 주축은 같은 인간임에도 서로 반목하고 있지 않은가. 여러 종족이 모여사는 에퀼리아나 수인국은 더 '개판'일 것이 분명하다.
종족이나 연고를 상관하지 않는 단체라고?
앞서 말한 두 나라를 뛰어넘는 개판일 것이다.
"근데 그 표정. 분명 행복해보였지..."
하지만 그런 단체에 스카웃당하는 고블린 노인의 표정은 너무나 해맑았다.
필로네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
허나 그것이 고블린의 행복이고, 공작은 행복을 추구할 기회를 준 것이라면?
이것 말곤 당장에 납득할 방법이 없었다.
"행복."
"행복..."
"그게 뭐지."
자신이 감정이란 가치를 도외시했던 이유. 그것은 분명 행복하기 위함이다.
감정을 배제한 합리적인 선택이 모든 이에게 최대한의 행복을 가져다준다.
이 명제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기에, 행복이 무엇인가 고민한 적은 없었다.
그저... 손해보는 일은 곧 불행이 된다.
최대한의 이득은 곧 최대의 행복이다.
이 두가지 전제로 지금껏 행동해왔다.
하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행복감 역시 감정이다.
이 무슨 모순인가.
자신의 생각은 전제부터 틀려먹은 것이었다.
"아..."
자신의 모순을 깨달은 순간.
필로네의 머릿속에 시하의 말이 떠오른다.
'인간은 감정을 소중히해야 하며, 끊임없이 고찰해야 매몰되지 않는다.'
'감정을 피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그것과 마주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원래라면 오늘.
시하에게 그 뜻을 물어보려 했었다.
하지만 지금.
필로네가 행복감이란 감정을 마주한 순간... 그녀는 스스로 답을 찾았다.
해답은 마음 속에 있었다.
이성과 합리는 답을 찾는 도구 중 하나였다.
필로네는 오늘.
마주하지 못하던 감정들과 비로소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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