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 271. 맞선의 끝과 헬레니아식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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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 맞선의 끝과 헬레니아식 인사.
맞선의 마지막 날. 필로네는 동관 내부의 정원에서 마지막 만남을 함께하자고 제안해왔다.
마지막이라는 단어에 새삼 떠오르는 생각이지만... 사실 맞선이라 해도 지금껏 별다른 대화는 하지 못한 느낌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다른 귀족들은 영지를 휘휘 돌아다니며 마차 안에서 대화를 즐기는 게 일반적이지만, 내 일정은 그럴 수 없지 않았나.
거기다 중요한 부분은 이 만남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는 것. 서로에게 관심이나 호감이 전무한 상태에서 이뤄진 맞선이니, 적극적인 대화 시도 역시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맞선은 맞선. 맞선 자리에서는 상대에게만 온 신경을 써야하는 법인데, 나는 필로네 소피아라는 사람에게 제대로 해준 게 전혀 없다.
그렇다보니 마지막 날인 오늘은 대화에라도 집중하려 한다. 어제도 필로네는 머뭇머뭇거리며 질문을 참는 모양새였는데 결국 듣지 못했으니까.
* * *
그렇게 도착한 동관의 정원.
"안녕하신가요, 공작님."
"좋은 아침입니다, 영애."
필로네는 자신의 머리색과 어울리는 진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여느 때와는 다른 느낌이다.
"오늘은 표정이 밝으시군요."
"그런가요. 칭찬 감사합니다."
평소라면 자신의 생각을 숨기기 위한 표정이라면, 지금은 그럴 생각이 없는 듯한 웃음.
약간 씁쓸한 듯 한 쪽 입꼬리가 올라가 있으나, 첫 날의 어색한 웃음보다는 훨씬 낫다.
시종은 나에게 차를 내어온 뒤 사라졌고, 우리 사이엔 차를 마시는 소리만이 남아 있다.
잠시간의 시간이 흐르고...
딸그락.
한 순간 울린 찻잔을 내리는 소리.
이후 필로네는 내게...
"공작님. 먼저 무례를 사과드립니다."
의외의 말을 건넸다.
"맞선 첫 날. 서로를 알아가야 마땅할 때에 무리한 부탁을 드렸으니까요."
전혀 예상치못한 일이다.
그 필로네가 사과를 건넨다니.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
"사람은 전부 다르니까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제가 죄송하죠. 맞선 기간동안 맞선다운 대접은 해드리지 못했으니까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다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외에도 감사할 일이 있습니다."
필로네는 머뭇거리며 내게 물었다.
"... 제 보잘것 없는 과거를 들어주시겠나요?"
"오늘은 최대한 영애와의 대화를 우선할 생각입니다. 마지막 날이니까요."
"후후... 공작님다우신 대답이시네요."
지금까지 몇 마디 말을 했을까.
짧은 대화였음에도 필로네는 목이 타는 듯, 천천히 차 한 모금을 넘겼다.
그리고 그녀는 옛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저는 시녀장의 손에 키워졌습니다. 제 어미는 저와 아버지를 버리고 외간 남자와 야반 도주를 해버렸거든요. 이 사람을 너무나 사랑한다. 그런 쪽지 한 장을 남긴 채."
"어미의 상대는 그녀가 아버지와 결혼하기 전, 그녀의 집안이 다스리는 영지에 살던 평민이었죠. 이 어이없는 사건은 소피아 가문의 명예를 실추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게임에서 밝혀지지 않는 그녀의 과거.
나는 그녀의 소문을 이미 전해듣긴 했으나, 굳이 모르는 척을 했다.
이 편이 정답이기 때문이다.
"어린 저는 멍청하게도, 사랑을 찾아 떠난 어미가 행복하길 바랬습니다. 순진했던거죠."
... 그렇지.
필로네는 의외로 순진한 사람이었다.
게임 속 미래에서조차 크게 다르지 않다.
"허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죽은 채 발견되었습니다. 남자와 나란히 목을 매단 채."
"감정 따위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그때부터 였습니다."
"감정을 배제한 합리적인 선택만이 행복을 만든다... 그런 생각 하나로만 살아왔어요."
필로네와 '아셰리아 여왕'의 차이점.
그것은 천성과 노력이다.
필로네는 애써 감정을 무시하며 합리적인 행동을 하려 노력하는 일반인.
'아셰리아 여왕'은 세상 만사의 정답이 눈 앞에 보이는 듯 행동하는 현인.
그렇기에 두 사람은 동맹이 될 수 없다.
'아셰리아 여왕'이 내리는 결정을, 필로네가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무표정한 비서를 시작으로... 그 덩치 큰 사람, 에퀼리아의 옷을 입고 있는 수인들, 요리를 잘 한다는 고블린 노인까지. 공작님께선 상식과 거리가 먼 요구를 하는 것 같은데, 왜 저 사람을 저리도 따르는걸까.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렇게 보였나요?"
"네. 그래서 하루종일 고민했죠.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제 생각은 전제부터 틀려있었어요."
"어떤 부분에서 그런 생각을..."
"행복 역시 감정이니까요. 행복이란 감정을 위해 감정을 배제한다니. 모순이었던 거죠."
그 말을 하고서야...
필로네는 싱그러운 웃음을 지었다.
"공작님이 살아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드디어 마주할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 제가 주제넘은 말을 했던걸요. 그렇게 생각해주신다면 다행입니다."
"후후. 그렇게 생각하시면 세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죠."
세 가지 질문이라.
조금 많은 것 같지만, 지금의 그녀라면 무리한 것을 물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그녀의 물음에 귀를 기울였다.
"어머니는 분명 당신의 행복을 향했던 것이겠죠. 저는 그 선택마저 존중해야하나요?"
"흠... 왜 그런 질문을 하시는건가요?"
"감정을 소중히 해야한다고 하셨으니까요."
아...
참관 중 내가 했던 말인가.
하지만 이건 간단한 문제다.
"필로네님. 제가 말씀드린 내용은 바로 당신의 감정을 소중히 하란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존중할 필요는 없습니다. 필로네님께서 편해지는 방향으로 가시죠. 다만, 미워하는 마음의 경우엔 주변에 알리면 아니꼽게 볼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만 조심하세요."
"그건 그렇겠네요."
대답을 마친 나는 다음 질문을 기다렸다.
필로네 역시 내 침묵의 의미를 아는 듯,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공작님. 이번에야말로 여쭙니다."
그녀의 양 볼에 약간의 홍조가 깃든다.
무슨 질문인걸까...
"저와 진지하게 교ㅈ..."
휘이이잉
순간, 바람이 불었다.
봄의 날씨에는 어울리지 않는 강풍.
필로네의 진보라색 머릿결이 휘날리고.
그녀의 뒷편 저 멀리에 어디선가 본듯한 신비로운 은발도 하늘에 휘날...
어라?
"갑자기 바람이 불다니 이상하네요."
도중에 말이 끊긴 필로네는 자신의 긴 머리를 다시금 정돈하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신경이 가지 않았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 저 잔디 블럭 뒤로 '그 아이의 은발'이 보였었다.
머릿속엔 '저 아이가 도대체 왜 여기 있는거야...'라는, 단 한 가지 생각 뿐이다.
내 앞에서 필로네가 작게 중얼거렸다.
"이건 마지막으로 돌려야 하나..."
"네?"
"아, 아닙니다!"
정신이 다른 곳을 향해서인지, 필로네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지난 사흘간.
그 아이의 행동은 여러모로 이상했다.
수업이 끝나고 갑자기 소피아 령에 대한 내용을 말하더니 토라지는가 하면, 우연히 마주친 미샤 베이커리에서는 그 자립적인 아이가 내게 음식을 먹여달라 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오늘은 왜 여기에...
…….
아.
설마...
* * *
[필로네 시점]
'갑자기 바람이 불다니... 야속하네.'
이 정원에 미리 자리잡은 직후부터 지금까지, 한참을 고민하다 고백한건데...
무슨 강풍이 불어와 내 고백을 망치다니. 가슴 속이 정말이지 답답해져온다.
'지금 또 물어보지는 못하겠는데...'
방금 전에도 엄청나게 긴장한 나였다. 그 긴장을 또다시 한다면 죽어버릴 것 같다.
... 이렇게 된 이상 작전 변경.
세번째 질문을 먼저하고, 그에 따라 두번째 질문... 고백을 다시할지 정하자.
"저기... 공작님."
"네."
"다음 질문을 해도 될까요?"
"네, 하셔도 됩니다."
사실 방금의 고백은 약간 즉흥적인 면이 있었지만, 이 질문은 그런 게 아니다.
어찌보면 이 질문이야말로 진정한 본론. 나는 최대한 목을 가다듬은 뒤 물었다.
"공작님이 바라시는 행복은... 무엇인가요?"
"제 행복. 말씀이십니까."
"네."
이 사람은 타인의 감정을 마주하며 행동한다.
그렇다면. 내 눈 앞의 이 사람이 진정으로 바라고 있는 행복은 무엇일까.
도대체 무엇이 이 사람을 움직이는 걸까. 그 물음이 마음 속을 맴돌고 있다.
공작은 고민 끝에 의외의 답을 말했다.
"사실 제 자신의 행복이 무엇인지,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네?"
"에코니아에 오기 전부터... 아무리 고민해도 결론이 나지 않았어요."
에코니아에 오기 전.
눈 앞의 이 사람이 표류자임을 다시금 떠올리게 해주는 말이었다.
그는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평생을 공부했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도 보았고, 수많은 시도를 해보았죠."
"……."
"영애께는 죄송합니다만, 제가 형식적인 혼인은 싫다고 말씀드렸었죠?"
"... 네."
"혼인은 아니지만, 형식적인 연애를 해본 적이 있답니다. 상대방도 사랑이 뭔지 알고 싶다며 합의하에 시작된 관계였죠."
미친 짓이다.
이 사람도, 이 사람과 사귀었다는 그 여자도. 정말이지 미친 사람들이 아닐까.
'행복'이나 '사랑'을 알고 싶다는 이유로 사랑을 시작한다니. 이 무슨 모순인가.
나로서는 상상도 가지 않는 일이다.
…….
그런데.
내게 형식적인 혼인이 싫다고 한 것은...
"영애께서 짐작하시는대로, 그 시도마저 성대하게 실패했습니다."
"아..."
"사랑을 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자격요건이 있는데, 저에겐 그게 없었어요."
자신이 있던 곳을 떠올리는 듯... 먼 하늘을 보며 생각에 잠긴 이시하 공작.
사랑의 자격이라는 게 뭔지 정말 궁금하지만, 차마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의 분위기가 물음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긴 시간의 침묵 끝에, 그는 고했다.
"그렇게 온갖 짓을 해보아도... 저는 제 행복이 뭔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저는 제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분명 이 사람에게는 무언가 목적이 있다. 하지만 자신의 행복은 모른다니... 이건 모순이다.
아직도 내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기에, 나는 그에게 다시한번 물었다.
"제가 지금껏 봐온 공작님은... 무언가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도대체 그 목적이 뭐죠? 당신이 살아가는 이유가 궁금해요."
내 물음에 공작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잠시 후 희미하게 웃었다.
맞선 내내 보이던 것과는 다른 미소.
조금은 초탈한 느낌마저 든다.
"지금부터 하는 말은 극비 사항입니다."
그가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검...
정확히는 그 검집을 왼손으로 잡자, 미세한 마력의 파동이 공간을 채워간다.
가문의 심상 마법으로 마력의 분석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었다. 방금 그 마력의 파형은 방음 계열.
그나저나 이런 정밀한 마법을 야외에서 펼치다니, 공작의 마법은 알려진 것보다도 더 훌륭했다.
"우리 대화를 엿듣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네?"
정말이지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다름아닌 왕궁에서 공작과 후작 영애가 나누는 대화를 엿듣는 자가 있다니.
공작은 내 귀를 의심케할 말을 덧붙였다.
"그 아이가. 바로 제가 살아가는 목적입니다."
"... 에?"
아이라니.
거기다 갑자기 살아가는 목적이라고?
나는 얼빠진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처음 그 아이를 보았을 때는... 어릴 적 제 자신을 떠올리게 되더군요."
마치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듯 했다.
그리고 여전히 손은 검집 위에 올린 채, 정원 입구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한 임시 공작.
"하지만 그 아이는 엄연히 저와 다릅니다. 매우 큰 차이가 있죠."
"그 아이는 행복할 자격이 있습니다. 자신을 사랑해도 되는 아이에요."
그의 어조에는 어느새 힘이 깃들었다.
행복할 자격이 있다니... 그게 그 아이와 자신과의 차이라도 된다는걸까.
한 걸음.
두 걸음.
그의 발걸음은 조금씩 조금씩 정원의 경계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감정을 표현하고, 다른 이들에게 이제서야 진심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세상에 첫 발을 내딛은 셈이죠. 저는 이 아이를 지켜야만 합니다."
이윽고 도착한 정원의 경계.
한 잔디 블록의 바로 옆에 선 그는 검집에서 손을 떼며 고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아직은 제가 떠나지 않길 바라고 있나봅니다."
그 말과 함께...
시하 공작은 누군가를 번쩍 들어올렸다.
베이커리에서 마주친 아셰리아 공주였다.
지난번과 다른 점이 있다면...
홍당무처럼 새빨게진 얼굴 정도.
... 표정까지 얼어붙은 얼음공주.
그 얼음을 녹인 건 공작이었구나.
공작은 그녀를 든 채 천천히 돌기 시작했고, 공주의 은발이 하늘에 나부낀다.
빙글.
빙글.
정확히 두 바퀴하고도 반.
그제서야 공주는 지면에 내려올 수 있었다.
공주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푹 숙인 상황.
그녀가 조심스레 물었다.
"선생님. 언제부터 알고 계셨던 겁니까?"
"으음. 글쎄요?"
"선생님은... 짖궃으십니다."
"대화를 엿듣는 아이가 할 말은 아니죠. 아샤까지 동원해서 감청 마법까지 쓰다니요."
공작이 그렇게 말하자...
털썩 소리가 들려오더니, 방금 전의 잔디 블록 너머에서 녹초가 된 메이드 하나가 씩씩거리며 기어나왔다.
공주의 시종인 티오리아의 여식이었다.
아마 이시하 공작의 방음 마법을 뚫기 위해 고생을 꽤나 한 모양이었다.
저 모습을 보고있는 내 마음은...
다행이다 싶었다.
교제를 신청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직감이라 해야할까.
저 두 사람의 사이에 있었다면, 내 감정이 버텨내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저런 사람과 교제를 이어나간다면 분명 여러모로 고생할 게 분명하다.
내 마음은 읽히는데, 저 사람 마음은 읽을 수 없다니. 정말 불합리하지 않은가.
옆에 있으면 나만 고생할 게 뻔하다.
내 마음이 편하려면 포기해야한다.
... 하지만 동시에 약간 분한 마음도 든다.
저 사제가 던진 말들로 인해 맞선동안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던가.
나름대로 나 자신을 되돌아본 계기가 되긴 했지만, 공주의 경우에는 남의 맞선에 훼방을 놓는 수준이 심했다고 생각한다.
... 뭐. 아이니까 귀엽긴 하지만.
…….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자리에 일어나 공작과 공주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말했다.
"이번 맞선은 이렇게 끝나게 되어 정말이지 아쉽네요. 이시하 공작님."
'아이'는 따라하지 못할 방법으로.
공주의 마음 속에 불씨를 남긴다.
"이제 떠날 때가 다가와서 말이죠. 헬레니아식 인사로 마무리할까 합니다."
분명 그 때 베이커리에서... 자신이 공작을 더 잘 알고 있다는 양 들떠있었지.
공주가 이시하 공작을 과연 어찌 생각하고 있는지,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하지만 동시에, 공주 역시 스스로의 마음을 모를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으니까.
하지만 이 부분에서 내가 추월하면 어떨까.
옆으로 슥 하고 눈치를 보니, 아셰리아 공주는 안절부절 못하는 모양새였다.
내가 공작의 앞에 서자 그가 말했다.
"헬레니아식 인사... 그게 뭐죠?"
"공작님은. 가만 계시면 됩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은 애써 무시한다.
내가 이 사람에게 미련이 남은 건 아니다.
나는 깔끔한 사람이니까.
... 아무튼 아니다.
'그러고보니... 아버지 외의 다른 남자한테 이러는 건 처음인데.'
발 끝으로 서서 키를 높인 나는 양 손을 그의 어깨 위로 올렸다.
조금씩 조금씩.
내 얼굴을 그의 얼굴에 가까이한다.
그리고...
쪽.
이윽고 그의 한 쪽 뺨에 입술을 대자, 공작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흠칫 놀랐다.
"이게 바로. 헬레니아식 인사에요."
"아... 그렇군요."
겸연쩍은 듯 말하는 공작.
약간 아쉽긴 하지만, 평소 표정 하나 변하지 않던 인간이 이 정도면 만족이다.
옆쪽을 힐끗 바라보면...
애써 진정되었던 얼굴이 다시금 홍당무처럼 변한 공주가 있었다.
어른을 놀린 댓가야.
이 꼬맹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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