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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115화 (115/215)

〈 115화 〉 2­79. 너흰 아직 준비가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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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 너흰 아직 준비가 안 됐다.

시온 자작령으로의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수인 소년들은 꽤 들떠있었다.

"이제 우리도 용병다운 일을 해보는 건가!"

"흉년이 든 지방에 자원봉사를 가는 거잖아. 그래도 재앙 토벌 정도는 되어야..."

"에이. 지금껏 해온 일들이 아카데미 거리 청소밖에 더 됐냐? 거기다 우리 첫 의뢰를 제외하면 왕도 밖에 나가본 적도 없잖아."

"그건 그렇긴 해."

그들은 왕실 가정교사인 이시하의 수하로 들어와서 일을 받게 되긴 했지만, 처음 수인국을 떠나오면서 상상했던 '용병다운 일'을 할 기회는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한 거라곤 아카데미 거리 청소나 슬럼가 근처의 헬레니아 성당 자원봉사. 그런 상황에서 평소와는 다른 임무를 맡게 되니, 새로운 기대감이 생긴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들뜬 사람만 있는 건 아니었다. 루이와 라나가 말했다.

"하필 시온 자작령이라니. 그게 좀 걸리긴 하는데..."

"우린 이제 공작님 밑에 들어와 있는 거잖아. 변경백이나 후작보다 공작이 더 높은 직책이라 했으니까. 별일 없지 않을까?"

"그래도 이전에 그 악취를 생각하면 영 꺼림칙하단 말이지."

"하하... 나한테도 좀 역하긴 했어."

묘인족 수인들보다는 견인족과 환인족의 후각이 약간 더 좋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루이로서는 그 당시의 냄새나 분위기를 떠올리며 찝찝한 느낌이 떠올리게 된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점이라면, 라나가 말한 듯이 테크니 변경백 가문의 작위가 피상적으로 보기에 시하보다는 낮다는 것. 그 사실을 떠올리며 안 좋은 예감을 지울 수밖에 없다.

그 대화에 클로에가 끼어들었다.

"이번엔 우리만 가는 것도 아니고. 다른 어른들도 많으시니까 괜찮겠지. 일단 지금 당장은 좋게 좋게 생각하자. 열심히 하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그게 맞는 말이긴 한데..."

"열심히...?"

클로에의 말에 동시에 그녀를 유심히 쳐다보기 시작한 루이와 라나. 그 시선에 클로에는 약간의 의아함을 품고 물었다.

"루이. 라나. 왜 그렇게 보는 거야?"

"이거. 진짜 모르는 거 같지?"

"그러게 말이야..."

"이거... 이거라니! 말이 심하잖아! 그리고 내가 뭘 모른다는 건데!"

""…….""

사실 시온 자작령에 대한 것은 불안에 가깝지만, 루이와 라나의 진정한 걱정거리가 따로 있었으니.

그건 바로 클로에였다.

수인국에서 막 나왔을 때부터 책임감을 가지는 건 좋은데, 하는 일마다 너무 열심히 해버렸기 때문이다. 특히 시하 공작의 밑에 들어간 뒤로는 그게 더 심각해져 버렸다.

루이가 말했다.

"클로에. 자세한 업무 내용은 현지에서 전달하겠다고 공작님께서 말씀하셨지?"

"그랬지."

"그전까지 나대면 안 된다?"

"응? 나 묘인족이라 엄청 조신한데."

"... 너 조신이라는 단어의 뜻은 알고 있지?"

"조심스럽고 신중하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는 클로에.

그 대답에 루이는 뒷 목을 잡았고, 그런 루이를 대신해 라나가 일침을 놓았다.

"알고도 그렇게 말한다니... 뻔뻔해."

"뻐... 뻔뻔하다니..."

"클로에. 너 요즘 왕도에 와서 무리한 일들을 차근차근 생각해보자. 청소랑 봉사 때 앓아누운 적이 있었지?"

시하가 시켰던 아카데미 청소. 그가 말했던 건 눈에 띄는 쓰레기를 주워다 버리거나 가게에 난장을 피우는 수인들을 진정시키는 정도였는데, 클로에는 첫날 새벽부터 빗자루를 들고 아카데미 거리를 쏘다니다 탈진해버렸다.

거기다 성당 봉사 활동. 원래대로라면 미샤 베이커리에서 기부용으로 만들어둔 빵을 가져다 배식하는 것까지가 수인 아이들의 역할이었는데, 클로에는 아이들과 전력으로 놀다가 꼬리를 심하게 잡아당겨져 온종일 뻗어버렸다.

시하가 그녀의 상담 기록지에 '인정 욕구가 강하다'라는 문구를 괜히 적어둔 게 아니었다.

클로에는 라나의 눈을 피하며 어물거렸다.

"그게..."

"있었어. 없었어."

"네... 있었습니다..."

"공작님께서 우리한테 널 좀 진정시키라고 했었단 말이야. 예전에도 말했지."

"그랬습니다..."

너굴걸 모드가 되어버린 라나가 손을 까딱까딱하면서 말하자, 클로에는 고개를 숙여버렸다.

라나는 말을 이어간다.

"이번엔 멀리 나가는 일이니까. 네가 무리해버리면 답도 없어. 정말 조심해야 해."

"알겠습니다..."

"아직 네가 우리보다 바깥세상에 대한 지식이 많은 건 사실이잖아. 몸 좀 생각하면서 하라고."

"예.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말이라도 못 했으면..."

"헤헤, 내가 말은 좀 잘해!"

"클로에!"

"히이익!"

그렇게 서로 티격태격하던 도중... 윤흠서의 수하 한 사람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거참. 녀석들 기운차구먼. 라나 네가 그렇게 소리 지르는 건 처음 봤다."

"아하하하..."

"그리고 클로에. 단장께서 부르신다."

"네. 그럼 다른 친구들까지 데리고 갈게요."

"아니. 너만 가면 된다."

"네?"

클로에로서는 조금 의외인 말이었다.

지금껏 시하는 클로에를 비롯한 수인 아이들은 함께 행동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갑자기 자신만 오라니. 윤흠서 아저씨가 출발 직전에 다른 아이들에게 전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클로에는 윤흠서가 기다리는 곳으로 향했다.

* * *

여행 경로를 짜는 일이 한창이었던 윤흠서 일행의 숙소 응접실. 클로에가 그곳에 들어서자, 윤흠서가 그녀를 반겨주었다.

"아, 자네 왔는가."

"안녕하세요. 어떤 일로 부르신 거에요?"

"그거 성격도 참 급하구먼. 일단 앉아 보거라."

"아, 네."

응접실 손님 자리에 앉는 클로에. 그런 그녀에게 윤흠서가 사람을 소개했다.

"자. 서로 인사들 하게나. 여기 이 묘인족 소녀는 방금 자네가 본 서류의 클로에. 클로에. 이쪽은 서인환이라고 한다. 우리 부대의 척후 조장이지."

"안녕하세요..."

"반갑다."

조심스레 머리를 숙인 클로에와 딱딱한 말투로 말하는 서인환.

이제 막 시온 자작령으로 출발해야 하는데 왜 갑자기 사람을 소개해주는 걸까. 클로에는 의문이 생겼다.

그런 의문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윤흠서가 그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실은 이번에 시하 공에게 따로 임무를 하나 받았다. 자네들에게 세상 물정을 알려주고 전투 훈련을 시켜달라는 이야기였지."

"훈련...이요?"

"그래. 그걸 위해 자네들은 각자 다른 사람들과 짝을 지어 행동하게 될 거네. 그리고 자네는 이번에 척후조에 속할 예정이야."

수인들이 다른 종족의 훈련을 받는다니. 클로에로서는 들어본 적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클로에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윤흠서는 낮은 음색으로 말했다.

"이해가 가질 않는 모양이군."

"... 솔직히 그래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수인들과 동방인들은 서로 싸우는 방식이 다르잖아요. 수인들은 타고난 체질에 따라 전투력이 결정되는데, 혜세국 분들은 그렇지 않으니까..."

"그렇지. 정말 지당한 말이야."

윤흠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 밖을 본다.

그곳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다.

"허나. 시하 공이 우리에게 가르치라 했던 것은 전투 방식따위가 아닐세."

"그럼..."

"내가 할 말은 아닌 것 같다만. 조금은 말해두지. 자네에게 재앙 토벌은 무엇인가."

"수인국에선 업무였죠."

"그래. 업무. 수인들은 전부 그렇게 말하지. 일전에 나와 함께 일했던 수인들도 몇몇은 그리 말했으니까."

나고 자란 곳이 수인국인 클로에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수왕부에서 준비한 토벌 업무는 직업 군인들에게 먼저 배분되고, 남은 하급 재앙들은 용병들이 맡게되니까.

자신이 다른 부서에서 근무했더라도, 그 이전에 충분히 겪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윤흠서가 내뱉는 다음 말은 그녀에게 충격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으로 장벽을 나온 이들은 전부 오래 버티지 못하더군."

"네?"

"수왕부는 그대들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임무를 주었을테고, 그에 필요한 모든 걸 지원하겠지."

"맞아요. 저희는 재앙을 토벌하고 나서 실적을 상부에 보고하기만 하면 되요."

"... 허나. 바깥세상은 그곳과 다르다는 걸 이미 자네도 알고 있지 않나.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 네."

"아직 준비가 안 됐다. 이번 일은 바깥세상을 조금 더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시게."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예전 일을 떠올리는 고양이 소녀. 그저 말로 표현하지 못했을 뿐, 클로에 역시 마음속으론 깨닫고 있었다.

수인국의 모든 제도와 체제는 그들에게 너무나 '친절'했다는 것을.

하지만 바깥 세상이 정확히 어떤 면에서 다른 건지는, 아직 감이 오지 않는다.

윤흠서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자. 내가 할 말은 여기까지. 나머지는 인환에게 직접 듣게. 나는 다른 이들을 모아야겠군."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응접실에는 서인환과 클로에, 두 사람만이 남았다.

인환이 말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우리 척후조는 클로에, 자네를 포함해 여덟 명이다."

"네."

"네 사람은 선행조. 나머지는 후행조. 후행조는 마차를 끌고 선행조를 뒤따르며 보급을 담당한다."

"그럼 저는 어느 조인가요?"

"자넨 나와 함께 선행조일세. 선행조의 주 역할은 일반적인 정찰. 그리 복잡한 일은 없으니 안심하게."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서인환은 잠시동안 고민하는 듯 하더니, 클로에에게 물었다.

"자네. 오랫동안 뛰는 것에는 자신있나. 우리는 이틀 간 120Km를 가야한다네."

"120Km..."

"가는 도중 자네는 충분히 호흡을 염려하며 달려야 한다네. 체력적으로 힘든 일이거든."

클로에는 속으로 '에이, 그 정도쯤이야.'라는 생각을 하며 안도했다.

체력을 중시하는 수인국에서 매년 열리는 행사 중 하나가 전 종족 장거리 달리기 대회... 즉, 마라톤이기 때문이다.

그 행사에서 여성부가 달리는 거리가 40Km이며, 클로에의 최단 기록은 단 두 시간. 그런 그녀에게 이틀 간 120Km라면 식은 수프를 마시듯 간단한 일로만 보였다.

클로에는 자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수인국에서는 오래 달리기 행사도 하거든요. 이틀에 그 정도라면 거뜬해요!"

"허허. 대답은 좋군. 그럼 바로 출발한다. 어서 가자고."

서인환을 따라 응접실을 나가는 클로에의 발걸음은 너무나 가벼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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