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 281. 수상할 정도로 근면한 고양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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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 수상할 정도로 근면한 고양이 (2)
척후조가 왕도를 출발한 지 어언 8시간.
"클로에. 마차까지의 거리 확인을 부탁한다."
"1.5km 안팎입니다!"
"그래. 고맙다. 그나저나 여유 거리가 꽤 되는군. 지금 정찰해두는 게 좋겠는데..."
인환이 말끝을 흐리자, 클로에가 번쩍 손을 들며 소리쳤다.
"제가 가겠습니다!"
"이번에도 자네가?"
"네!"
"... 그러게나."
"금방 다녀올게요오오!"
클로에는 말을 끝마치지도 않고 달려 나가니, 남은 인환 일행에게는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처럼 들려온다.
척후조원 선재가 말했다.
"조장. 이거 괜찮은 거 맞소?"
"무엇 때문에 그러는가."
"저 아이.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고. 오늘 온종일 저렇게까지 열심히 해대니 우리가 오히려 불편할 지경이야."
"그렇지."
개별 정찰은 물론이고, 표식을 남기는 일에, 휴식 중 경계 임무까지. 오늘 하루 클로에는 척후조의 부가적인 임무를 전부 혼자서 처리하려 했다.
그러다 보니 나이가 40대를 향해가는 선재의 입장에서는 딸뻘의 클로에가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장인 인환의 시큰둥한 반응에, 약간은 화가 난 선재다.
"이 인간 이거 또 뻔히 알면서... 또 뭔 짓을 하려는 거야!"
"... 그저 옛 생각이 나서 말이야."
"어휴. 저러다 안 쓰러지면 다행이지. 아무리 수인이더라도 좀 말려야 하는 거 아니오."
"아니. 저런 아이는 오히려 한 번쯤 쓰러져 봐야 정신을 차린다."
"뭐어? 이 인간이 뭘 잘못 처먹었나?"
인환의 말에 벙쪄버린 선재.
옆에서 그 둘의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던 서준이 선재에게 말했다.
"뭐. 조장이 알아서 하겠지."
"아니. 왜 너까지..."
"조장한테도 생각이 다 있겠지. 저 아이가 만약 쓰러진다 해도, 뒤에 마차에 태워 가면 되잖아?"
"하아... 난 모르겠다."
그렇게 선재가 땅이 꺼질듯이 깊은 한숨을 내쉬는 사이, 클로에가 돌아왔다.
"조장님! 정찰 완료했습니다!"
"그래. 이상은?"
"저희 진행 방향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수고했다. 이제 마지막 한 시간만 더 가면 대휴식을 취할 장소가 나온다. 모두 힘내도록."
"네!"
척후조의 네 사람이 마지막 행군을 위해 재정비를 하는 그때였다. 그르릉 하는 낮은 소리와 함께, 척후조가 이미 정찰을 끝낸 수풀 사이에서 하이에나와 닮은 존재 몇 마리가 튀어나왔다.
"저건... 놀!?"
"아니. 방금 숲속을 정찰할 때만 해도 없었던 놈들이...?."
"왜 저것들이 지금 나오는 거야?"
인지의 축복을 받은 수인과는 다르게, 인간의 모습에 가까워졌어도 야성에 지배당하는 존재들이 있다. 그들을 바로 야인이라 하며, 그 야인 중 놀은 가장 흔한 존재들이다.
동그란 눈은 노란색으로 형형하게 빛나고 있지만, 방금 막 진흙에서 뒹군 듯한 얼룩진 몸.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그 모습에, 옷을 걸치지 않아 덜렁거리는 무언가가 훤히 보이는 모습은 절로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클로에는 당황하여 물었다.
"조... 조장님. 저희 어떻게 해요?"
"둘... 셋... 넷... 일곱 마리군. 클로에. 귀를 열어라. 근처에 다른 무리가 있는 것 같은가?"
인환의 말에 클로에의 귀가 쫑긋 선 채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들리는 소리는 앞에 있는 놀들을 제외하면 전혀 없었다.
"다른 적은 없어요. 그런데 방금까지 소리도 없었는데, 저것들이 왜..."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다. 선재. 서준. 발검하라. 후퇴하기엔 적이 가깝다."
""예!""
스릉 하고. 명이 떨어짐과 동시에 각자 패용하고 있던 환도를 뽑는 동방의 무장 두 사람.
비록 정체를 숨기기 위해 로브를 두른 그들이나, 오랜 시간 휘두른 검을 쥔 자세는 흠잡을 데 없다. 그런 무인들을 보고, 놀 무리는 거리를 유지한 채 척후조를 응시하고 있다.
놀 무리를 유심히 살피던 인환이 말했다.
"거리는 20m. 저것들도 지금은 탐색 중인가 보군. 궁에 시위를 거는 데 남은 시간 30초."
"클로에. 너에게 달려드는 놈을 피한다는 생각으로 전투에 임해라. 싸울 필요는 없다."
인환이 사용하는 활은 평소 탄성을 유지하기 위해 둥글게 말린 채로 보관해야 하는 각궁. 그는 동료들의 뒤편에서 무릎 꿇은 채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시위를 내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는지, 대장 격으로 보이는 덩치 큰 놀이 "크헝!" 큰 소리로 짖자, 그의 수하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이 개새끼들이!"
"우리 수가 적다고 얕봐!"
전위를 담당하게 된 선재와 서준이 특유의 중검으로 서걱 소리를 내며 놀을 한 마리씩 베었다. 하지만 중검술은 너무나 큰 동작을 요구하는 검술,
"클로에. 조장!"
"그쪽에 두 마리 간다!"·
동작의 빈 틈 사이로 빠져나가 버리는 두 마리의 놀. 허나 두 사람은 보낼 수밖에 없었다. 다른 두 마리의 놀이 그들에게 붙었기 때문이다.
새어 나온 짐승들이 흉흉한 이빨과 발톱을 드러내며 인환과 클로에에게 육박하려 한다.
"조... 조장님!"
아직도 무릎 꿇은 채 시위를 매는 인환을 보고 '내가 조장님을 지켜야...!'라는 생각을 했던 클로에였다. 하지만 돌아오는 지시는 클로에의 예상과 달랐다.
"내 옆에서 대기!"
"그... 그래도 활이!"
"내 말대로 해!"
클로에에게 외친 인환은 '앞으로 10보.' 시위를 매는 중에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한 마리는 자신을, 한 마리는 명백히 클로에를 노리고 있는 상황.
7보. 4보. 각궁을 완성한 인환은 생각했다. '시위를 매길 시간은 없다!' 그리고 자신 역시 패용하고 있는 검의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발검과 동시에 스릉 소리를 내며 놀 한 마리를 내려친다.
그리고 내려친 그 자세에서 그대로, 클로에에게 향하던 놀마저 올려 베어 일격으로 죽였다.
"괜찮으냐!"
"아... 네!"
클로에의 안전을 확인한 인환은 그대로 검을 내동댕이치고, 완성해 두었던 각궁에 화살을 메긴다.
전위 두 사람은 이미 거리를 줘버렸기에 고전하는 상황. 그 중 서준의 왼팔 움직임이 매끄럽지 않아 보인다. '초반 협공에 당했군... 그렇다면!' 인환의 생각은 빨랐다.
"서준! 고개를 오른쪽으로!"
그 말과 함께 발사된 화살은 공기를 헤치며 나아가 서준의 머리가 있던 곳의 바로 왼편을 스친 뒤, 그가 상대하고 있던 놀의 미간에 박혔다.
"고맙소!"
"선재를 도와라!"
"예!"
전위는 순식간에 2:4에서 2:1 국면으로 전환되어 사실상 결착이 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 모습을 보고 뒤에서 구경만 하고 있던 놀들의 대장은 등을 보이려 하고... 그 모습을 본 인환은 다음 화살, 이번에는 조금 더 짧은 애기살을 푸른 통아에 장착해 시위를 메긴다.
"어딜 도망가려고..."
마치 물이 흐르는 듯한 동작. 오직 푸른 빛이 감도는 통아만이 인환의 손에 남았으며, 짧은 애기살은 그대로 놀 대장의 목을 관통해버렸다.
... 잠깐 사이에 인환은 일곱 중 네 마리의 놀을 도살해버린 것이다. 그 모습을 본 클로에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와..."
특히 그녀가 놀란 것은 인환의 활 솜씨.
수인국 내 대부분의 종족은 발사 무기... 특히 활은 매우 혐오한다. 수인의 폭발적인 육체 능력을 뽐낼 수 없으며, 즉각적인 대처가 힘들다는 것이 그 이유다. 거기다 에코니아 전역의 무인들은 타고날 때부터 마나의 운용을 배우다 보니, 간단한 방어 마법으로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발사 무기의 취급은 굉장히 안 좋은 편이다.
그에 더해 활의 단점은 총과 비교하면 더 극명해진다. 마력 총은 상대의 마력 장벽을 뚫어낼 정도의 마법진과 마력을 사용하면 즉각적인 살상력이 생기지만, 활은 시위를 매긴 채 화살에도 마력을 부여해야 하니 난도는 높아지고 대응력은 훨씬 떨어져 버리니까.
"이...인환 아저씨. 그... 그게 뭐예요?"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원래 화살에 마력을 부여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잖아요! 엄청나게 빨리 쏘셨는데..."
하지만 방금 클로에가 본 인환의 활 솜씨는 신속함도 신속함이지만, 그 위력이 문제였다. 화살에 마력이 감돌아있다는 확신이 생길 정도로, 질긴 놀의 가죽을 단숨에 관통해버렸으니까.
내던졌던 환도를 다시금 회수하던 인환이 클로에의 물음에 답했다.
"이건 집안의 비전과 나만의 기술이 합쳐진 것이라, 나름대로 기밀이다."
"치사해요!"
"뭐가 치사하다는 거냐. 어차피 가르쳐줘도 해내기 힘든 기술이라, 이해하기 힘들 거다."
"어차피 힘든 기술이면 원리를 가르쳐주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아요...?"
처음에는 굳이 캐물을 생각은 없었으나... 비밀이라는 인환의 말에 호기심이 더 동해버린 클로에였다. 인환은 그런 클로에를 곁눈질로 슬쩍 살피며 말한다.
"어허. 임무 중이다. 임무에 집중해. 임무 실적만 좋으면 내가 가르쳐주마."
"진짜요?"
"... 한 입으로 두말 안 한다."
"아싸!"
그런 그들에게 전투를 마친 선재와 서준이 다가왔다. 서준은 역시나 왼팔을 반대편 팔로 감싸 쥔 상태. 그에게 인환이 물었다.
"서준. 왼팔은 괜찮나?"
"괜찮습니다. 조장. 한 마리에게 가볍게 깨물렸을 뿐입니다."
"흠... 하지만 치료가 필요해 보이는군. 오늘은 후행조 녀석들을 기다리다 이곳의 뒷수습을 한 후 마차로 이동하도록 하자."
"죄송합니다."
"죄송할 필요 없어. 그나저나 놀 무리가 갑자기 나타나다니... 우리 정찰 반경이 그리 좁았던 것도 아니었는데."
대화를 듣던 선재가 말했다.
"굴이라도 파고 숨어있던 건가."
"그런 생활을 하는 놀은 집단에서 떨어져 혼자 사는 놈들 뿐이네."
"거... 귀신이 곡할 노릇이구먼."
선재와 마찬가지로 생각에 빠져든 인환이었으나... 그다지 해답이 보이지 않았다. 그도 역시 이미 벌어진 일을 수습하는 게 고작이었다.
"일단. 서준의 상처 소독이 먼저다. 클로에, 선재. 잠시 경계를 부탁하마."
"네."
"알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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