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화 〉 282. 수상할 정도로 근면한 고양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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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 수상할 정도로 근면한 고양이 (3)
서준이 다치게 되어 진군을 멈추게 된 척후조. 어쩔 수 없이 그들은 그 자리에서 야영하기로 했다.
습격해왔던 놀들의 시체를 먼 곳에 옮겨 태우고, 보급조의 짐마차를 기다려 천막을 세우고, 저녁 식사를 해결하며 야영 준비를 끝내갈 때 즈음. 윤흠서가 이끄는 본대까지 그곳에 도착했다.
인환이 척후 조원들에게 말했다.
"나는 대장에게 오늘 야인들의 이상 행동을 보고하러 갔다 오겠다. 너희는 휴식하도록."
"알겠소."
다른 척후 조원들은 각자 자신들에게 배정된 천막을 향하지만, 클로에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그..."
"왜 그러냐. 클로에."
"저는 오늘 밤에 다른 친구들이랑 지내다 와도 될까요?"
"아. 전하는 걸 깜빡할 뻔했구나. 여성용 천막이 하나뿐이니 너는 그곳에 가야 할 게다."
인환은 자신이 소지한 시계를 확인한다. 에퀼리아에서 유통하는 보급형 시계, 그 시침은 이미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척후조는 내일 다섯 시에 출발이니 시간에 맞춰 오도록."
"알겠습니다!"
인환의 허락을 받은 클로에는 쏜살같이 친구들에게 배정된 숙소, 그중에 여성용 텐트를 향했다.
그곳에는 아일라와 라나가 있었다.
"어. 안녕하세요. 아일라 언니!"
"안녕하세요, 클로에."
"언니도 오늘은 여기서 자는 거예요?"
"네. 지금 이곳에 여자는 우리 셋뿐이잖아요."
아모스와 아일라. 윤흠서를 비롯한 혜세국의 군인들. 클로에와 그 친구들까지. 시하의 밑에 있는 모든 이들 중 여자는 이곳에 있는 셋이 전부였기에, 자연스럽게 이 천막을 세 사람이 쓰게 된 것이었다.
라나가 클로에에게 물었다.
"클로에. 척후조 일은 괜찮아?"
"응. 엄청 열심히 하고 있어."
"... 네가 괜찮냐고."
"응? 뭐가?"
수인 중 클로에만이 척후조로 빠지게 되었고, 나머지 아이들은 모두 본대에 배치되었다.
그들 역시 동방 무인들에게 전투 훈련을 받긴 했지만... 라나로서는 혼자 떨어지게 된 클로에가 걱정이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걱정은 계속 더해져 갔다. 그도 그럴 것이, 만나는 군관마다 하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 다른 혜세국 아저씨들은 척후조 일이 부대에서 제일 힘들다던데?"
"음. 같은 척후조 아저씨들이 그러는데, 체력만 있으면 쉬운 일이랬어. 나는 수인이라 그런지 조금 쉽게 느껴지던데..."
태연해 보이는 클로에의 반응에 라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래도 다행이다."
"왜. 내 걱정이라도 한 거야?"
"당연하지. 괜히 또 열심히 한다고 혼자 나대다가 뻗어버리지는 않을지..."
"걱정하지 마! 은근히 할 만해!"
"내가 다행이라고 말하자마자 얘는 또 불안한 이야기만 하네."
"에헤헤..."
"그렇게 웃으니 더 불안해져..."
멋쩍은 웃음과 자신만만한 태도. 이 두 가지 요소들이 모여 라나의 불안감을 더한다. 클로에는 꼭 이런 말을 하고 나서 무리하기 마련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아일라가 말했다.
"음. 저는 클로에가 척후 부대에 있었다는 건 방금에서야 알았네요."
"그러고 보면 아일라 씨는 모르셨을 만 하네요. 오늘 종일 마법 연습을 따로 하셨으니까요."
"네. 여기 계신 무인분들께서도 자연 마법은 잘 모르겠다고 하시더라구요."
라나의 말처럼, 아일라는 오늘 종일 혼자였다. 자연 마법에 능통한 무인들은 없는 탓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아일라는 자신의 지병인 마력 축적병을 예방하기 위해 마력을 써야 하는 입장이니, 마차에 혼자 남아서라도 꾸준히 마법 연습을 해야만 했다.
아일라가 말했다.
"그런데 라나의 말만 들으면 척후조 일이 엄청 힘들다는 인식 같은데..."
"아니에요, 언니. 의외로 안 어려워요."
"그럼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거죠?"
"그냥 숲이 있으면 나무를 타고 다니고, 높은 나무에는 올라가고, 언덕이 있으면 또 올라가고..."
아일라의 질문에 클로에는 오늘 하루 동안 자신이 겪은 일을 줄줄이 늘어놓았고...
"저녁엔 야인들이 습격해왔는데, 조장인 인환 아저씨가 칼을 뽑으면서 슉! 슈슉! 하시더니 활을 휘이잉 "
마음이 들뜬 채 쉴틈없이 말을 뱉어냈으며...
"내일 일 열심히 하면 그렇게 활 쏘는 방법도 알려주신대! 내가 직접 쓰진 못하겠지만, 원리를 알면 재밌을 거 같아!"
"클로에. 지금 몇 신지 알아?"
"아... 그러고 보니 몇 시지?"
"음. 두 시네요."
"으아앗! 다섯 시부터 출발인데!"
"빨리 지금이라도 자..."
후다닥 침낭으로 뛰어드는 클로에였지만, 이미 심각하게 늦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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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세 시간이 흐르고. 새벽 다섯 시.
어떤 그림자 하나가 여성용 텐트에 침입하고 있었으니... 누구도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사뿐사뿐 발걸음을 옮긴 그가 멈춘 곳은 침을 질질 흘리며 잠들어있는 클로에의 침낭 옆.
인환은 클로에의 팔을 흔들며 말했다.
"기상. 5시다. 기상."
"히이익!"
"출발 시간이다."
"인환 아저씨..."
비몽사몽인 채로 일어나는 클로에. 그런 그녀를 보고 인환은 텐트 밖으로 나서며 말했다.
"빨리 준비를 마치고 나오거라. 척후조 마차에서 기다리마."
"네에..."
몸 구석구석의 근육은 비명을 내지르고, 머릿속에는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로 가득 찬 듯한 느낌을 받으며
"온 몸이... 쑤셔..."
다크서클이 눈 밑까지 축 내려온 클로에는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텐트를 나선다. 그녀를 제외한 인원은 이미 전부 출발 준비를 마친 상황.
인환이 말했다.
"오늘도 일정은 똑같다. 다만, 서준이 부상 중이니 선행조의 공석은 지원조의 한 사람이 돌아가며 채우도록 하지."
"이거... 매도 먼저 맞는 게 낫지. 내가 첫 번째로 가도 되지?"
"그래. 고생해라."
"하루 정도야 괜찮지."
다른 이들의 독려 속에서 보급조의 한 사람이 나서자, 인환이 고개를 끄덕이며 클로에를 돌아본다.
"클로에. 몸 상태는 괜찮은가."
"네에..."
"얼굴만 봐서는 안 괜찮아 보이는데."
"문제 없습니다아!"
"... 그럼 일단 진행해보지. 출발한다!"
* * *
피로가 쌓인 것 치고 클로에는 꽤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버틴다는 것은 결국 그 의미 그대로 버틴다일 뿐.
클로에는 결국...
"우웁."
"마차 안에서 토하지 말고 밖에 해라."
"웨에에엑"
"... 저기 말 먹이로 쓸 짚단 위에 누워. 거기 있으면 멀미가 덜 할 거야."
"감사합니다..."
보급조의 마차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녀의 옆에서, 전날 부상을 입어 왼팔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서준이 말한다.
"으이구. 이 고양아..."
"에헤헤..."
"어제 그리 무리할 때 알아봤다."
"죄송합니다..."
"고양이가 나무를 타다 떨어진다니. 너 이거 묘인족 실격 아니냐?"
"서준 아저씨. 고양이도 나무에서 떨어져요. 아저씨가 하신 말씀은 수인국에서 묘인족에게 코르셋을 씌우는 차별 발언으로 간주되어..."
"….…."
되지도 않는 농담에 서준이 오른팔로 클로에의 머리를 콩 하고 가볍게 쥐어박는다.
"이 녀석이. 나자빠져서 마차 타고 있는 주제에 그런 농담이 나오냐."
"에헤헤... 면목 없습니다."
"알면 조용히 쉬어. 어젯밤에도 네 친구랑 그렇게 떠들었다며?"
"헤헤..."
비록 겉으로는 이렇게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걱정투성이인 클로에였다. 그녀는 한껏 풀죽은 얼굴로, 조심스럽게 서준에게 말했다.
"저... 이제 목적지에 도착하면 인환 조장님한테 엄청나게 혼나겠죠?"
"뭐냐. 인제 와서야 걱정하는 거냐?"
"그게. 일을 망쳤으니까요."
"쯧쯧..."
혀를 차는 서준. 사실 서준은 클로에가 이렇게 된 것이 마냥 그녀의 탓이 아님을 안다. 어제 인환과 선재의 대화를 통해 이 상황이 의도했음을 짐작하고 있으니까. 그렇기에 자신은 별말을 하지 않으려 하는데...
그 옆에 있던 고양이가 마차 벽면으로 고개를 돌리고, 어깨를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클로에로서는 '또 실패해버렸구나.' 그런 생각이 떠올라 버틸 수 없게 된 것이었다.
"... 욘석아. 울지 마라."
"히끅. 안 울어요."
"에휴..."
한숨을 쉰 서준이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넌 안 혼난다."
"네?"
"뭐. 조금은 혼나야겠지. 그래도 크게는 안 혼나."
"... 왜요?"
"네가 혼나야 할 구석은 따로 있기 때문이지. 너는 충분히 잘 해낸 거다."
사실 서준에게 짐작 가는 구석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인환이 처음 전군에 발을 들이던 그 순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옛일을 회상하며 이야기한다.
"고양아. 다른 대부분의 수인 용병들이 일을 어떻게 하는지 알고는 있냐."
"그게... 몰라요."
"계약서에 제대로 명시되지 않은 일에는 드러눕기 마련이다. 게으르고 나태해서 자기만의 일을 찾아서 하려 들지도 않아."
"……."
"어차피 계약서에 적힌 일만 해도 돈은 받으니까. 그것만 받아도 수인국에서보다 훨씬 사치스럽게 살 수 있으니까. 그딴 식으로 목숨 팔아가며 일하다 평판이 떨어지면 거처를 옮기면 되니까. 다른 수인놈들은 다 너 같지 않다, 이 말이야."
하지만 클로에는 서준의 말을 듣고 의문이 생겼다. 자신이 혼나야 할 구석이 무엇인지, 서준의 말을 듣고서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물었다.
"그럼 제가 시킨 일만 해야 한다는 거에요?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당연하지. 너는 다른 수인들보다 낫다. 스스로 일을 찾아서 더 열심히 하지 않냐. 하지만 그 정도가 문제다."
"정도..."
"자기 몸까지 상해가며 그렇게 하다 보면, 일을 잘하는 것만도 못하다."
"그... 그렇죠."
이미 많이 겪은 일이다. 특히 루이와 라나가 그녀를 많이 나무라지 않았었나. 하지만 클로에로서는 다른 아이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동시에,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 자신을 조절하기 힘든 면이 있었다.
그녀가 수인국을 나온 가장 큰 이유는, 타인에 의한 인정이었으니까. 아무리 실적을 올려도 승진이 막혀있는 듯한 종족 간 분쟁 관리 위원회에서의 생활. 그것이 너무나 큰 불만이었다.
고민을 하는 클로에에게, 서준은 의외를 말을 건넨다.
"예전에. 우리 부대에는 너와 똑 닮은 인간이 하나 있었다. 사실 지금도 있긴 하지."
"네?"
"그 인간은 자기에게 맞지도 않는 군에 들어와서는,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모든 걸 바쳤지. 마치 지금의 너처럼."
"그게... 누구에요?"
"맞춰봐라. 너도 아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은 칼만 들고 다니는데, 혼자 활도 들고 다니는 놈이 있지 않냐."
혼자서 활을 들고 다니는 사람.
그런 사람은 한 사람뿐이다.
"인환 아저씨요...?"
"그래. 녀석은 우리 부대에서 칼로 인정받기 위해 모든 걸 바쳤었다."
바로 눈앞에 옛일이 어른거리는 듯, 서준은 나지막이 읊조린다.
"정말 멍청한 놈이었지. 서씨 가문의 장남이 칼 따위를 든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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