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122화 (122/215)

〈 122화 〉 2­86. 서인환과 어떤 수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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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 서인환과 어떤 수인 (2)

"그게 참. 그녀는 그 행동거지도 꽤 부담스러웠지만, 입고 있던 옷부터가 충격적이었지."

"아하하..."

인환의 한 마디에 클로에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왜냐하면 인환이 설명한 케르티아의 복장, 그러니까 탱크톱이나 핫팬츠는 수인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복장이 그리 흔한 편은 아니지만, 수인국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복장의 노출도에 관대한 나라다 보니 그런 옷을 입는 게 문제 되는 경우는 없으니까.

그렇게 인환의 분위기를 살피던 클로에는 문득 이상한 부분을 떠올렸다.

그녀가 말했다.

"조장님 말씀을 듣고 보니 떠오른 건데, 케르티아씨는 백호족치고 성격이 참 희한하시네요."

"음. 어떤 점에서 그러냐."

"백호족은 강하기도 강한데, 각자의 자긍심이 엄청 높달까요. 그래서 수인 사이에서도 예의나 격식을 엄청나게 중시해요."

백호족은 역대 수왕을 가장 많이 배출한 종족. 그렇기에 수인국의 대중들은 관습적으로 그들을 고위층으로 떠받들 정도다.

백호족 역시 자기 종족의 입지를 알고 있으며, 자신들의 힘을 갈고닦고 사회에 모범을 보이는 것을 강조하는 면이 강하다.

수인국의 사회에서 나고 자란 클로에는 그런 백호족의 인상이 훨씬 익숙하기에, 케르티아가 새롭게만 느껴지는 것이었다.

인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음. 그런 말도 들은 것 같구나. 그녀가 수인국의 이야기를 해준 적이 많거든."

"그렇군요."

"허나 그녀는 예의나 격식이라는 단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자였다. 오히려 그런 걸 무시하는 부류였지. 첫 만남부터 내게 그런 식으로 대할 정도였으니까."

"하하... 정말 신기한 사람이네요."

클로에가 뒷이야기를 묻는다.

"그 뒤로는 어떻게 됐어요?"

"장군의 명을 거역할 수 없으니. 난 하는 수 없이 케르티아와 함께 척후조 엄호를 맡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제가 생겼지."

"문제요?"

"B급 재앙의 동태를 정찰하던 중, 하급 재앙 무리에게 포위당해버린 것이다."

"그거 엄청 위험한 거 아니에요?"

"그렇지."

재앙의 상위종은 가끔 하급 재앙을 동반하여 다니는 경우가 있다.

이는 에코니아에 널리 퍼져있는 상식이기에, 클로에 역시 그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인환은 그때의 상황을 묘사했다.

"동료들의 상처는 점점 늘어가고, 재앙은 우리 숨통을 끊으려 했다. 누구 하나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어."

"그. 케르티아씨는요?"

"그녀는 더 강한 놈과 맞붙다가 우리와 전장이 갈려버렸었지. 당장 도움을 바랄 수도 없었다."

얼핏 듣기로는 엄청난 위기 상황이지만... 클로에는 인환의 언급 가운데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그녀가 묻는다.

"그런데 조장님은 '누구 하나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라고 하셨잖아요. 그럼 그때 동료들은 전부 생존한 거네요?"

"결론만 말하자면 그렇다. 윤흠서 대장의 부대가 우릴 구하러 왔으니까. 거기에 케르티아도 적당한 때에 와주었지."

"그건... 다행이네요."

자기 일이라도 되는 듯 안도하는 클로에.

그런 그녀를 보고 인환은 다른 의미의 한숨을 푹 쉬고 나서, 한탄하듯 말했다.

"사실 그 전투까지 나는 환도만을 고집했다만, 그녀는 나로 하여금 다시 활을 들게 했다."

"케르티아씨가요?"

"그래. 사실 지금 너에게 이야기해주려 했던 것이, 당시 그녀가 날 일깨우려 했던 말이란다."

"정말요!?"

클로에는 인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 수인인 너에게도 의미가 클 거다."

* * *

척후조가 사지를 뚫고 나온 그다음 날.

유정겸 장군에게 휴식을 명받은 인환은 집으로 향하던 중이지만... 문제가 있었다.

안 그래도 기분이 좋지 못한 마당에, 백호족 수인 용병인 케르티아가 계속해서 자신을 따라오고 있던 것이다.

"왜 계속 절 따라오시는 겁니까!"

"뭐? 따라다니면 안 돼?"

"... 이곳은 지금 군영이 아니지 않소?"

"그게 뭐 어쨌다고?"

"내 임무는 어디까지나 당신의 업무 보조이지. 밖에서 당신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오."

능글능글 웃고 있던 그녀는 인환에게 능청스럽게 대답한다.

"그렇지. 그래서 내가 널 따라다니는 건데?"

"그게 무슨 소리오."

"지금 네가 날 수행할 필요는 없지. 근데 내가 널 따라다니는 게 문제야?"

"충분히 문제지. 아주 큰 문제!"

"이곳 법은 이미 다 숙지했거든. 내가 이유 없이 널 따라다닌다고 문제가 생기진 않아."

케르티아의 말처럼, 아쉽게도 혜세국의 국법과 군법에는 스토킹을 금지하는 조항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케르티아의 그 대답은 인환에게 너무 어이없는 것이었기에 그는 황당해할 수밖에 없었다.

... 거기다 문제가 발생했으니.

돋보이는 복장의 백호족 여성과 소리 지르며 대화하는 혜세국의 무인. 이 조합은 주변의 이목을 끌게 된다.

"으윽...!"

점점 모여드는 시선에 부담감을 느낀 인환. 그는 앞에 있는 케르티아의 손목을 잡아채고는...

"따라오시오!"

"와! 꼬맹이가 참 박력 있네!"

"잔말 말고! 빨리!"

어딘가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인환이 그녀에게 따지듯 말했다.

"할 말이 있으면 여기서 전부 하시오!"

"진짜? 해도 돼?"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하시오!"

"그럼 물어본다?"

"……."

인환이 말없이 케르티아를 째려보자.

"어제 싸움에서. 왜 활은 안 쓴 거야?"

그녀는 평소의 그 천진난만한 어조로, 그에게 가장 민감한 질문을 했다.

"안 들려? 왜 안 쓴 거냐고."

"... 그건 갑자기 왜 묻는 것이오."

"이유야 당연하지 않겠어? 넌 활을 들고 다니지만, 그 활을 쓰지 않아. 그러니까 물어보는 거지."

"... 질문은 그게 다요?"

"그렇지."

"그걸 내가 당신에게 굳이 밝힐 이유는 없소. 그러니 비키시오."

다시 갈 길을 가려던 인환. 하지만 그 시도는 케르티아로 인해 저지당했다.

"왜 이러는 것이오. 비키시오."

"잠깐만. 좀 만져 보게."

"뭐... 뭣!"

인환의 몸에 손을 뻗는 백호족 여성.

인환은 그런 그녀를 뿌리치려 했지만... 오히려 그는 양팔을 잡힌 채 벽으로 몰아세워지게 되었다.

최강의 수인종이라고 불리는 백호의 힘을 감당해낼 수 없던 것이었다.

"이.. 이게 무슨 짓이오!"

"흠... 기다려 봐. 어차피 넌 나보다 힘도 약하잖아."

"이 사람이! 그만하시오!"

그녀는 인환에게 자기 몸까지 밀착한 채 인환의 여러 곳을 주물럭거렸다.

양팔을 시작으로. 어깨. 가슴. 등.

이내 의문스러운 표정이 된 그녀는 인환에게서 한 걸음 물러나며 말했다.

"이상하다..."

"... 무슨 말이오."

"너의 모든 근육은 활을 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왜 활을 쓰지 않는 거지?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어."

"……."

고작 몸을 조금 더듬었을 뿐인데, 그녀는 장난스러운 어조로 인환의 지난 삶을 꿰뚫어 보듯 말한다.

"무슨 시답잖은 이유로 활을 안 쓰는 건지. 그게 너무 궁금해서 널 따라왔어.

"그런..."

"말해 줄 때까지. 안 놔줄 거야."

너는 내 먹잇감이라는 양. 팔짱을 낀 채 몸을 앞으로 굽히며 말하는 케르티아.

인환은 그녀가 충분히 그럴만한 힘이 있음을 알고 있다. 자신은 엄두도 못 낼 재앙을 단신으로 해치웠고, 지금 자신을 구석에 몰아붙인 것도 그녀니까.

다른 한 편으로는 방금 자기 삶을 모두 안다는 듯 말했던 게 마음에 걸린다.

이것은. 자포자기의 심정과 반항심이 서로 반씩 섞인 것일까. 인환은 말했다.

"내가 가문을 나오면서 품었던 그 신념을 지키기 위해, 나는 활을 쓰지 않는 거요."

"신념. 그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인환은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갸웃거리며 물었다.

"흠. 그럼 가문은 왜 나온 거야?"

"내 신념과 반대되는 곳이니까."

"혹시 그 가문이 활 쓰는 곳이야?"

"... 그렇소."

"……."

팔짱을 끼고 있던 팔 중 하나로 턱을 짚는 케르티아. 그녀는 생각에 빠진 듯했다.

그리고 잠시 후...

"후우..."

나른한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전까지 천진난만하고 장난스러웠던 그녀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이내 그녀는 인환이 지금껏 들어본 적 없었던 싸늘한 목소리로 고했다.

"네 행동 하나하나는 저 장벽 안쪽에 스스로 갇혀 사는 내 동포들과 다를 바가 없구나."

"아니... 정확히는 그 반대인가. 반대이긴 하지만 결국 같기도 해."

마치 고고한 백수의 왕이 인환을 내려보듯. 어느새 그녀의 표정과 분위기마저 위압적인 것으로 변했다.

일변한 그녀의 어조, 분위기, 모습.

인환은 그 모두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오?"

"네놈은 너 자신을 둘러싼 틀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그러한 행동 자체가 이미 그 틀에 갇히는 것임을 진정 모르는 거야?"

자신의 벗어나려는 행동이 오히려 틀에 갇히는 행동이라니. 인환은 그녀의 의중을 헤아릴 수 없었다.

그런 그의 표정을 보고, 그녀는 먼 하늘을 바라보며 말하기 시작했다.

"오백 년 전. 모든 수인은 해방을 원했지. 세상 그 누구보다도 자유를 원했어. 그렇기에 초대 수왕은 서쪽 불모지로 가 땅을 개척하고, 그곳에 수인국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동력은 수인 그 자체의 생명력. 모든 수인종이 지닌 힘이었다. 모든 종족이 가슴 속에는 자유를 품고, 생명력을 불태웠기에 수인국은 완성된거야."

... 어느정도 역사를 아는 이라면 누구나 아는 수인국의 건국 일화.

그것을 말한 그녀는 조금은 씁쓸함이 느껴지지만, 힘이 담긴 어조가 되어 말을 잇는다.

"하지만. 지금의 수인국은 변해버렸어."

"수인국에서 내가 거리를 나서는 순간. 다른 모든 종족은 내게 머리를 조아린다. 왜지? 왜 내게 머리를 숙이는 거지?"

"내가 서방의 신수, 백호의 형상을 본뜬 종이기 때문이야. 실상은 일반 호인족이 하얀 털을 타고난 것일 뿐인데 말이야."

오직 듣는 이는 인환 하나뿐인 그녀의 연설. 어느새 인환은 그녀의 연설에 빠지게 되었다.

"기껏 얻은 자유인데, 지금의 수인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고민하지 않아. 삶의 목표 따윈 잊은 지 오래지. 그저 편안하게. 가축으로 키워지던 시절처럼 살아갈 뿐이야."

"진정한 강점 따위 잊은 지 오래야. 그저 몇몇 종족을 '강자'로 정의하고, 그들의 타고난 강함을 숭상할 뿐이지. 자기 자신에게 내재하여 있는 강함 따위, 찾을 생각조차 없어."

어느새 그녀는 인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연설은 막을 내리고. 한 손으로 인환을 가리키며 말한다.

"신념. 그래. 신념을 가지는 건 좋다. 하지만 너는 네가 품고 있는 신념이 정확히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은 있는가?"

"서인환. 너라는 개인이 품고 있는 진정한 힘은 무엇이지? 그 힘은 네 신념을 이루는 데 진정 방해가 되는 것인가?"

"신념을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불태워도 모자랄 마당에. 고작 가문이란 틀에 얽매여서는 자기 재능을 썩히겠다니..."

다시 천진한 모습으로 돌아온 그녀는 인환에게 모을 기울이며... 마지막 물음을 고하였다.

"그것 참 멍청하지. 안 그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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