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 287.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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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3)
"그 뒤로 나는 하루종일 고민하다가... 밤늦게 실례를 무릅쓰고 유정겸 장군께 찾아가 그분께 여쭈었지. '장군. 제가 감히 전군에 적을 두고서도, 활을 써도 되겠습니까.'라고 말이야."
"장군님은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클로에의 물음에 인환은 그 옛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아련하게 말했다.
"장군께서는 함박웃음을 지으시며 말씀하셨지. '네가 그렇게 말한다니 오히려 좋다.'라고."
"잘됐네요! 조장님은 활을 잘 쏘시니까요."
인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 이후로 나는 척후조에 정식으로 임명되어, B급 재앙 토벌 임무부터 활을 사용했다. 강력한 재앙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줄 수 없었지만... 내 엄호로 부대의 생존율이 크게 올랐지."
"와..."
인환의 말에 감탄하는 클로에.
그런 그녀에게 인환은 말한다.
"클로에. 왜 너에게 이 이야기를 한 것 같으냐."
"케르티아씨의 말을 전해주시려고... 겠죠."
"그래.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는 수인이고, 나는 수인이 아니니 다른 감상이 있을 터다."
"헤헤... 글쎄요. 막상 듣고 보니 제겐 너무 큰 이야기 같아서요.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멋쩍은 웃음을 내보이는 고양이 수인 소녀. 그녀 역시 케르티아의 말에 공감은 하고 있다.
지금의 수인국은 타고난 종족에 따라서 일을 부여받고, 그 일을 수행하며 지낼 뿐이니까. 어찌 보면 자신도 역시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생겨났다.
클로에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사실... 케르티아씨가 말한 게 대부분 사실 같긴 해요. 그런데 삶의 목적이라던가. 진정한 강점. 그런 건 제가 딱히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요."
"그러냐."
"저도 다른 수인들이랑 별반 다를 게 없어서 이런 걸 수도 있겠네요. 하하..."
"흠..."
그녀의 말에 인환은 잠시 말이 없어졌다.
만약 자신이 이 자리에 없는 케르티아나, 유정겸 장군이었다면, 이 아이에게 어떤 말을 건네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잠시간의 시간이 흐르고... 두 사람이라면 각자 이런 말을 했을 것이라 떠올리게 된 인환.
그는 말했다.
"그럼... 함께 고민해보자꾸나."
"네?"
"고민해보지 않았다면 지금 해보면 되겠지."
이것은 케르티아의 사고방식이었다. 인환에게 그녀는 일단 해보는 사람이었으니까.
그 행동이 과연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모르나, 케르티아는 행함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물론 인환은 그런 대인배가 아니다. 하지만 고민을 하는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거기에 더해...
"삶의 목적은 둘째치고. 적어도 내가 너의 강점에 대해서는 말해줄 수 있을 것 같구나."
"제 강점이요?"
"그래. 지난 이틀간 네가 척후조에서 수행했던 모든 임무를 기억하고 있느냐."
"네. 그건 당연하죠."
"거기에 너의 강점이 숨어있다."
"음... 잘 모르겠는데요."
사실 인환은 이곳에 오면서 클로에가 자신의 장점을 발견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유도했다.
그 옛날 유정겸 장군이 자신을 케르티아에게 붙인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계획한 일이었다.
인환은 대화를 이어간다.
"먼저. 나는 너에게 마차의 소리가 어디쯤 들리냐고 물었다. 너는 그때마다 정확했지."
"그건... 그렇죠."
"그건 수인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특히 소리의 지향성에 특화되어있는 묘인족이 능하지."
"헤헤... 다른 종족보다 저희 종족이 낫긴 해요. 그런데 이게 딱히 강하진 않은 것 같은데..."
"그건 일반적인 수인들이 추구하는 전투방식 아래에서만 통용되는 말이다."
"일반적인 전투방식..."
"만약 야간전에서 적의 소리를 듣고, 그 방향에 내가 활을 쏜다 생각해보거라. 어떨 것 같으냐."
클로에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확실히 일방적인 공격이 될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 너는 지금 은연중에 전투를 수인들이 자랑하는 힘 싸움으로 한정 짓고 있지 않았느냐."
"……."
"이미 시하 공의 아래에는 아일라와 같은 마법사도 있다. 시하 공 본인도 유능한 마법사지. 네 귀와 그들의 마법이 합쳐져도 꽤 무서울게다."
"생각해보니 그렇긴 하네요."
"너는 수인국을 나왔으니, 그 나라의 잣대로 세상을 판단할 필요가 없어졌다. 염두에 두거라."
"... 네."
그 나라의 잣대로 판단할 필요가 없어졌다. 인환의 말은 클로에의 마음속에 세게 부딪혀 왔다.
클로에는 애초에 수인국에서 인정받지 못했기에 나왔던 것이 아니었던가. 굳이 고향 사람들의 잣대를 자신이 지금도 쓸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잠시 생각해보니...
클로에에게는 아직 다른 불만이 남았다.
"근데 다른 분들이 없으면 전 약한 게 맞잖아요."
"허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그럼 다른 것도 역시 생각해봐야겠지."
"다른 거요?"
"내가 척후조장이라는 자리에 올라 여러 수인들을 보아왔지만, 그 누구도 너만큼 평형감각이 좋지는 않았다. 수인임을 참작해도 넌 훌륭해."
"고향에서도 그쪽으론 평가가 좋긴 했는데..."
"그래. 그걸 응용할 전투방식을 정립하면 된다. 너는 아직 젊으니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래도 모르겠어요..."
"허허. 급할 필요 없다."
인환에게 들은 자신의 장점을 이해할 순 있지만, 영 마음에는 들지 않는 클로에.
표정에서 그 마음이 전부 드러나고 있는 그녀에게 인환은 제일 중요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다른 것들을 모두 뛰어넘는 너의 가장 큰 장점은... 목표 의식이 강하고, 열정과 노력이 대단하다는 게다."
"목표 의식이요?"
"한 번 정한 것은 무조건 완수하려 하지. 지금은 네가 길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을 뿐. 너만의 길을 찾는다면 언젠가 해낼 것이다."
"……."
"그걸 위해서는... 케르티아가 말한 삶의 목적이라는 걸 찾아야겠지. 그게 너만의 도가 될 게다."
시하의 상담 기록, 그리고 지난 이틀간의 클로에의 행적. 이 두 가지를 지켜본 인환에게 클로에는 모든 면에서 잘하려는 마음이 앞서 큰일을 그르치는 성격이었다.
인환은 클로에의 이런 성격을 고치기보다는 좋은 방향으로 틀기 위해. 그녀로 하여금 삶의 목적을 정하도록 하는 게 우선이라 판단했다.
클로에는 중얼거렸다.
"삶의 목적... 나만의 길..."
"이곳에 출발하기 전. 윤 대장이 너에게 '바깥세상과 수인국의 차이'를 말하지 않았느냐. 대장은 너에게 재앙 토벌을 예로 들었지."
"네."
"그때 너는 재앙 토벌의 의미를 묻는 말에 뭐라고 답했었는지, 기억하고 있느냐."
"업무. 라고 했었죠."
"그래. 하지만 바깥세상에서 재앙과 싸운다는 것은 조금 다른 의미가 있단다."
"어떤 의미인데요?"
"몇몇 타고난 힘을 가진 인종을 제외하면, 나머지 인종들은 수련을 통해 강해질 수밖에 없다. 대표적으로 수인들은 전자에 속하지."
"... 그렇죠."
"허나 힘없는 이들도 재앙에 맞설 때가 있어.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무엇일 것 같으냐."
잠시 고민에 빠진 클로에는... 지난 대화 속에서 그 답을 찾아 말했다.
"그게. 삶의 목적과 신념인가요?"
"그렇다. 자신의 뒤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 연인. 소중한 이를 지키는 것. 그것만을 위해 모든 걸 바치는 이들이 있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힘의 유무도 괘념치 않는 숭고한 신념이다."
인환은 여기에 마지막 당부를 덧붙인다.
"확실히 조금 과한 예시긴 했다만... 자신만의 길을 찾은 사람은 강하다. 너만의 길, 삶의 목적, 신념을 찾도록 해보거라."
"네 모든 걸 바칠 수 있는 길을 찾거라. 이것만큼은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을 것이야. 네가 스스로 노력해야만 한다."
사실...
클로에는 그의 말을 완벽히 이해할 순 없었다.
자신만의 길. 삶의 목적. 숭고한 신념. 수인국에서부터 살아온 그녀의 짧은 삶 동안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수인국에서는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라는 말만 들어왔을 뿐,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것은 배운 적이 없다.
그렇기에. 이 밝은 달빛 아래에서 서인환과 나눈 대화는 평생 마음속에 남을 것만 같았다.
"... 노력해볼게요."
"그래. 너는 잘할 거다. 그럼 이번 작전에서 실수한 벌은 지금까지의 훈계로 대신하마."
"아하하... 감사합니다."
* * *
(시하 시점)
역시나 혜세국 정규군의 부장이었던 경력이 있어서인지, 윤흠서는 내가 내건 조건을 정확히 준수하여 자리 잡은 듯하다.
시온 자작령과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는 않는 숲속. 나는 우리 일행의 임시 거점에 도착했다.
나는 헤르만에게 말했다.
"헤르만. 주변에 사람은 없지?"
"그래. 오면서 이미 숲을 한 번 둘러봤어."
"수고했어. 나중에 다른 사람들 앞에서 수칙을 설명할 땐 차음 마법을 넓게 펼쳐줄래?"
내 말에 헤르만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아. 그 정도로 중요한 사항이야?"
"그래. 부탁할게."
"... 알았어."
... 해방 교단이 엮인 일은 어떤 상황으로 번질지 모르니까.
거기다 지금은 실제 게임이 시작하기 4년 전의 시점. 내가 모르는 정보는 많고, 신중에 신중을 기해도 아깝지 않다.
헤르만과 대화하고 있으니, 이번 행군을 무사히 이끈 윤흠서가 다가왔다.
"시하 공. 도착하셨소."
"윤 대장님. 일행을 안전하게 이끌고 오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별말씀을. 다른 일행들은 방금 막 식사를 마치고 공터에 모여 있소."
"마침 잘됐네요. 일행 모두에게 전해야 할 사항이 많습니다. 이동하죠."
그렇게 임시 거점의 공터로 이동하니, 지난 여섯 달 간 제법은 친해진 서른 세 명의 일행이 있었다. 나와 헤르만, 윤흠서를 포함하면 서른여섯이다.
내 옆에서 윤흠서가 외쳤다.
"주목! 시하 공이 전할 말이 있다고 한다!"
그의 말에 순식간에 집중된 이목. 나는 그들 모두가 나를 잘 볼 수 있는 연단에 올라 말했다.
"다들 먼 길 오느라 다들 수고했어."
노고를 위로하는 내 말에 모든 이들이 자축이라도 하는 듯한 분위기가 되었다.
그 모습을 보니 조금은 마음이 착잡해진다. 내가 지금부터 할 말은 이 분위기를 깨버릴 테니까.
내가 헤르만에게 신호를 보내자, 헤르만은 고개를 끄덕이고 차음 마법을 전개했다.
나는 일행에게 말했다.
"이번 일정은 단순한 구제 활동이라고 전해 들었을 거야. 내가 일단 그렇게만 말해뒀으니까."
"먼저. 우리만 있는 이 장소에서 작전의 정확한 내용을 공개하게 된 점, 양해해주길 바란다."
내 말에 의아한 눈빛을 보이는 몇몇 사람들. 아일라를 제외하면 전부 혜세국 출신 무인들이다.
"지금 시온 자작령에는 수상한 정황이 몇 가지 포착되었다. 먼저 시온 자작령의 영주, 마크 테크니. 그는 여기 있는 수인 꼬맹이들에게 용병 길드와 짜고 수상쩍은 의뢰를 맡겼다."
일행 중 몇 명은 수인 아이들에게 들은 적이 있는 듯, 끄덕이는 사람도 꽤 있다.
"하지만 이것보다 중요한 사실이 있다. 지금 시온 자작령에는 기근을 해결하겠다며 수상쩍은 단체 하나가 방문해 있어. 그 이름은 해방 교단."
"이번 일정에서 내 목적은 크게 둘이다. 첫 번째, 마크 테크니의 의도 파악. 두 번째, 해방 교단의 실체 파악. 이걸 위해 모두가 지켜줘야 할 수칙이 있어."
해방 교단. 게임에서도 그들이 처음 속내를 드러내기 전까지는 언제나 선을 가장하고 있다.
"시온 자작령에 도착하면 우린 수많은 사람과 대면할 거야. 굶주리는 백성들. 자작령 아래의 관리들. 그들 모두를 돕는다며 나서는 해방 교단..."
교단이 출현한 그 지역에는 '귀'가 많다.
그들은 자선을 가장해 교인을 늘리고, 그 교인들은 모두 그들의 하수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을 이기기 위한 첫 번째 수칙.
"그들 모두를 의심해. 그 누구도 믿으려 하지 마."
"이곳에 모인 서른여섯 명. 그 외에는. 누구도 믿어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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