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125화 (125/215)

〈 125화 〉 2­89. 시온 자작령 ­ 1일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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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 시온 자작령 ­ 1일차 (1)

임시 거점을 출발한 나는 헤르만이 모는 자그마한 마차를 타고 자작령 영주관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마차의 디자인은 앞이 뻥 뚫려있어 마부 노릇을 하는 헤르만과 나, 아일라가 원활하게 대화할 수 있는 형태.

나는 헤르만에게 물었다.

"헤르만. 마크 테크니는 어떤 사람이야?"

"어떤 사람이냐니?"

"마크 테크니의 공식적인 직책 정도는 아는데, 그 사람의 평판은 잘 모르거든."

"아. 평판이라..."

아쉽게도 마크 테크니는 내가 플레이했던 게임 속에 등장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내가 아는 게임 속 정보는 테크니 령의 영주는 여성인 제인 테크니이고, 그 슬하에는 아들이 하나 있다는 것. 하지만 지금 시점에는 아들이 둘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내가 게임보다 더 이른 시점에 있다 보니 이렇게 모르는 사람도 꽤 만나게 되는데, 그때마다 판단할 근거가 적어 힘든 편이다.

"일단 테크니 가문에는 아들이 둘 있다는 건 알지? 첫째가 에딘, 둘째가 마크야."

"첫째 이름이 뭐라고?"

"에딘 테크니. 왜?"

장남의 이름도 내가 못 들어본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게임 내에서 테크니 가문의 아들은 양자라는 정보가 있었지...

나는 헤르만에게 물었다.

"그 사람 혹시 양자야?"

"이 사람이 큰일 날 소리를. 두 사람 다 가주와 죽은 남편 사이에서 난 친아들이야."

"아. 그렇구나."

"거기다 에딘은 아카데미 수석 졸업생이기도 해. 엄청 대단한 사람이라고."

"뭐? 그 사람이 아카데미 수석이라고?"

"그래. 에딘과 필로네가 연달아 수석을 따낸 게 얼마나 화제가 됐었는데."

아카데미 수석은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아카데미에는 전 세계의 상류층이 모이는 것은 물론이요, 심상 마력에 소질이 있거나 자연 마법 좀 쓴다는 마법사들이 모두 모이기 때문.

그 많은 사람 중에서 무력, 통솔력, 지식, 응용력 등 수많은 부분을 고려하여 수석을 선정하기에, 그 사람은 무조건 능력자일 수밖에 없다.

'... 근데 왜 게임에선 나오지 않은 거지? 높은 확률로 죽었다는 건데.'

고민하고 있었더니 헤르만이 말했다.

"뭐. 말이 새긴 했는데, 이것도 마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은 될 거야. 그런 엄청난 형을 둔 동생은 어떤 느낌이었겠어?"

"... 귀족들 사고방식을 생각해보면 답 나오네. 매번 비교당하면서 살았겠지. 시온 자작령 영주가 된 이유도 후계 순위에서 밀린 탓이겠고."

"와우. 그거 완벽한 정답이야."

지금 이 시기는 게임과 비교하면 재앙의 출현 빈도나 강함이 훨씬 덜한 편이다.

그 덕에 상급 재앙은 가만히 있어도 중앙군이 해결해주고, 하급 재앙 따윈 돈으로 산 용병들에게 맡기면 된다는 게 일반 귀족들의 인식.

이런 평화에 젖어 살고 있으니, 오락거리를 찾아 사교계에서 서로 물고 뜯고 편먹는 걸 즐기는 역겨운 놈들이 차고 넘치는 편이다.

... 나라가 이 꼴이니까 게임에서는 망할 수밖에 없었지. '아셰리아 여왕'이 죽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거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에휴. 하여간 귀족들이란..."

"형도 지금은 그 귀족의 꼭대기인 공작이거든."

"하아... 알고 있어. 그래도 난 임시거든."

"공작님. 귀족의 자각을 가지셔야 합니다."

"……."

거참 머리를 쥐어박고 싶게 말하네.

장난스럽게 말한 헤르만은 말을 이었다.

"뭐. 마크 테크니는 운이 좋다고도 볼 수 있지. 무려 자작령을 상속받은 게 어디야."

"그렇지. 부모 작위가 낮으면 마을 하나만 받아도 감지덕지해야 하는 걸."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

사실 자작 자체가 '후작이나 백작 가문의 보좌'에 가까운 개념이다. 그렇기에 자작가는 옛날부터 윗 가문을 모시던 가신이거나 가족인 경우가 많다.

이걸 반대로 말하자면... 높으신 분들은 정식 후계가 아닌 자식이더라도 쓸만하거나 이쁜 자식이라면 영지를 줘서 옆에 붙여둘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 가며 왕실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테크니 가문은 이 나라에 셋뿐인 변경백 가문이니 그 정도는 쉬웠을 테고.

여기서 중요한 건 마크가 쓸만한 인간이거나, 어미에게 아픈 손가락이란 거지.

나는 말했다.

"내가 마크였다면 평생 영지 관리나 하면서 조용히 살 거 같은데."

"하하. 그래도 그게 쉽지만은 않지."

"왜?"

"형. 테크니는 너른 영토를 가지고 왕국에 합류한 변경백 가문이야. 그래서 후작위도 추가로 받은 거고. 그런 가문에서 살다가 자작령 생활을 하면 얼마나 하찮겠어."

"... 지금껏 살아온 삶의 질보다 떨어져서 만족을 못 한다. 이런 거야?"

"삶의 질. 좋은 단어네. 어찌 됐건 마크는 발람의 차남회에 가입했었고, 은밀한 모임에 참가하는 움직임도 보였어. 물론 형이 발람을 이겨버려서 그 기세는 꺾여버렸지만."

... 이게 발람이랑 이어지네.

차남회는 발람이 만든 파벌로, 이름이 좀 그렇긴 해도 그 구성원은 장남 차남을 가리지 않는다. 가입 조건은 단지 경쟁에서 밀린 탈락자일 것. 후계 경쟁에서 밀렸다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단체였다.

뭐. 그 취지에 맞지 않게 유능한 인간들도 몇몇 섞여 있었다지만...

그럼 뭐 해.

당시에 내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어쩌다 보니 철저하게 짓밟아 버렸는 걸.

첫 참관 수업으로 보내버린 쓰레기들이 차남회가 대다수였고, 무엇보다 내가 결투를 통해 발람에게 맹약이란 목줄을 채워버렸던 게 결정적이었다.

온갖 핑계를 대며 책임을 회피하던 발람은 재앙 토벌만 해도 몸이 남아나질 않게 되어 차남회에 더 이상 힘을 쏟을 수 없게 되었으니까. 그 덕에 차남회는 반쯤 붕괴 상태다.

…….

그나저나 마크 테크니가 그런 단체에 가입했었다니. 그가 빡대가리일 확률이 높아졌다.

이건 약간 불안한데...

"다 왔어. 영주관이 있는 시온 타운이야."

헤르만의 말에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샌가 우리는 조그마한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소도시에 도착해있었다.

사실 소도시라는 말도 아깝긴 하다. 그나마 우리말로는 읍내라던가 면이라는 단어가 제일 어울릴 법한 장소.

내 옆에 앉아있던 아일라가 말했다.

"조금 그리운 풍경이네요."

"뭐야. 아는 곳이야?"

"아뇨. 어릴 적에 아모스와 살던 곳이 한 소도시 근처의 촌락이었거든요. 가끔 마을의 아이들과 이런 곳에 들러 생필품을 사가던 기억이 나요."

"……."

그녀의 말에 나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아모스를 제외한 마을 친구들은 슬럼가에서 이미 다 죽었을 테니까. 괜히 말을 꺼내는 건 적절하지 못한 판단이다.

내가 묵묵히 있자, 거리의 풍경을 보던 아일라는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

"공작님. 그런데 조금 이상하네요. 왜 이렇게 사람이 다니지 않는 걸까요."

"기근 때문에 그런 거 아냐?"

"... 그걸 감안해도 이상해요. 지금은 봄보리를 파종하고 수확을 두 달 앞둔 시기에요. 지금쯤이면 근처 촌락 사람들은 사냥감이나 채집물을 팔아 생활하죠."

"……."

"그런데 지금은 다른 촌락민으로 보이는 사람은커녕, 다니는 이마저 없어요."

"듣고 보니 확실히 이상하네."

마치 영화나 드라마 촬영 세트장을 걷는데, 배우가 전부 빠져있는 느낌. 분명 간판들은 이곳이 상점가임을 알리고 있지만, 영업 중인 곳은 너무나 적다.

적어도 내가 게임에서 본 지방 거리의 풍경은 이 정도로 을씨년스럽지는 않았다. 되려 주변 촌락민들이 모여들어 자잘한 물품을 팔아대기에 소란스러웠지.

앞에 있던 헤르만이 아일라에게 물었다.

"혹시 작물의 수확시기가 다르다던가, 시장이 열리는 기간이 따로 있다거나..."

"여기도 제 마을과 날씨는 비슷해요. 저도 에우데미아 북부 출신이거든요. 그리고 이 정도 규모의 마을에 상점이 모두 닫혀있다는 건 비정상적이잖아요."

아일라도 그동안 내 보좌역을 수행하기 위해 많은 공부를 해왔다. 그녀가 저런 단순한 것을 생각해보지 않았을 리 없었다.

오히려 아일라는 어린 시절 촌락 생활부터 왕도 생활까지 다양하게 겪었기에 더 바른 판단을 할 수도 있고.

나는 헤르만에게 물었다.

"헤르만. 짐작 가는 건 있어?"

"글쎄. 이런 보고는 못 받았어. 이 정도면 다른 녀석들이 보고하지 않을 리 없는데."

"그렇다면 가장 가능성이 큰 건... 최근 들어서야 이런 상황이 생겼다?"

"그렇...지."

무슨 미스테리 소설도 아니고. 자작령이 유령 도시로 변한 이유를 찾아야 한다니.

마음속에 이런저런 근심이 쌓여감과 함께 마차는 하염없이 마을 중앙으로 나아갔다.

* * *

그렇게 도착한 시온 자작령의 영주관.

마당에서는 이곳의 집사장으로 보이는 초로의 노인이 우리 일행을 맞이해주었다.

"이시하 임시 공작님을 뵙습니다."

"... 그래."

"마차는 저희가 마구간으로 옮겨두겠습니다. 영주님께서는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제가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그에게 헤르만이 답했다.

"마차는 제가 직접 관리하겠습니다. 아일라. 시하 형님의 수행을 부탁해."

"알겠습니다. 헤르만님."

"... 그럼 두 분만 모시도록 하죠."

이건 조금 전에 이미 합의해둔 사항이다. 아무리 내가 상급자로서 이곳 시온 자작령을 방문한 셈이라 해도, 이곳은 분명 적진일 확률이 상당히 높은 편이니까.

괜히 이런 상황에 방심했다가는 한순간에 가버리는 수가 있다. 이곳에서 내어주는 모든 음식물을 입에 대어서는 안 되고, 우리의 마차 역시 제대로 간수해야 한다.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은 바로 이런 걸 말하는 거니까.

그렇게 나와 아일라는 노집사를 따라 시온 자작령의 영주관으로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방 앞에서 멈춰 섰다.

"여기가 영주님의 응접실입니다."

그렇게 말한 노집사는 똑똑­ 하고 문에 노크를 하더니 말했다.

"영주님. 이시하 임시 공작께서 방문하셨습니다."

"안으로 모셔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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