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127화 (127/215)

〈 127화 〉 2­91. 시온 자작령 ­ 2일차

* * *

2­91. 시온 자작령 ­ 2일차

다음 날.

나는 최대한 일찍 일어나 각 촌락의 중심이 되는 숲에 새로이 자리 잡은 본부로 향했다.

"일단 수하들의 연락 사항을 전부 취합해 보았을 때, 해방 교단과 관련된 수상한 정보는 딱히 들어오지 않았소. 그들은 단순히 각 촌락의 구제를 돕고 있다더군."

"그렇습니까. 혹시 네 곳 중에 주교라고 불리는 자가 있는 곳은 없었습니까?"

"주교? 그런 보고는 없었소."

"그렇군요..."

시온 자작령에 파견된 교단의 책임자를 만나 그 의향을 떠볼 생각이었는데, 정작 그 주교가 없다니. 조금은 답답해지는 보고였다.

윤흠서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게 시하 공에게 유의미한 정보인지는 모르겠소."

"무슨 일입니까?"

"각 촌락의 경작 사정이오. 나 같은 칼잡이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내용이오만. 네 곳의 농민들이 경작을 포기한 상황이라더군."

"네? 경작을 포기하다니요. 지금껏 들어온 정보에는 그런 말이 없었는데..."

시온의 영주인 마크 테크니도 이런 말을 한 적은 없었고, 헤르만이 움직일 수 있는 왕궁부 그림자들의 보고에도 이런 내용이 없었다.

... 아니. 애초에 경작을 포기했다는 게 무슨 뜻이지.

나는 윤흠서에게 물었다.

"윤 대장님. 농민들이 경작을 포기했다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이죠?"

"그게... 나도 이해가 가질 않아서 정보를 가져온 수인 아이들에게 물었소. 허나 녀석들도 촌락민들이 집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다고 말할 뿐이었소."

"집 안에 틀어박혀 있는다라... 어제 영주관이 있는 시온 타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부분이 집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어요."

"... 이상하다는 말 외엔 나오지 않는군. 돌림병이라도 돌고 있는 건가?"

돌림병이라...

나는 헤르만에게 물었다.

"헤르만. 그림자들은 언제까지 시온 자작령의 촌락들에 머물렀던 거야?"

"흐음. 우리가 출발하기 전까지였으니까. 닷새 전까지였지."

"그럼 닷새 안에 생긴 변화라고 봐야 하나."

"그렇지."

아무리 헤르만이 부릴 수 있는 그림자라 해도, 완벽히 내 사람이라 여길 수는 없는 이들이니 왕도로 다시금 호출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그사이에 이 변화가 있었다는건데... 상식적으로 닷새 안에 새로운 전염병이 도는 게 가능한 일인가. 전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기근은 이미 두 달 가까이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전염병이 생겼다 해도 이 기근까지 설명할 수 없다.

"... 각 촌락을 돌아볼 수밖에 없나."

"시하 공이 직접 가겠다는 건가?"

"그래야죠. 마땅한 방법이 없으니까요."

내 말에 윤흠서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겨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밀리아 마을로 가보는 건 어떻소?"

"밀리아 마을이요?"

"시온 타운 기준으로 동남쪽에 있는 마을이지. 그곳에 내 수하 중 가장 똘똘한 놈들이 모여있소. 척후를 담당하는 녀석들인데, 이번 일정에서 클로에를 맡고 있기도 하지."

그러고 보면 내가 출발하기 전에 아모스와 수인 아이들의 훈련을 맡겼었지. 그때 윤흠서가 클로에의 교육 담당으로는 꽤 특별한 사람을 붙여보겠다고 했는데, 그 사람일 수도 있겠다.

흠...

거기다 수인 아이들이 일곱 명이라는 이유로 클로에는 혼자 배치했던 걸로 기억한다.

다른 아이들 앞에서 너무 잘 보이려는 경향이 강해서 서로를 잠시 떨어뜨려 둔 건데, 그 바보 고양이 녀석이 잘하고 있으려나.

그 녀석을 확인할 겸 밀리아 마을로 가보는 게 좋을 듯하다.

"알겠습니다. 밀리아 마을로 가보죠."

"알겠소. 그럼 건투를 비오."

"네. 다른 곳에서 중요한 정보가 들어오면 바로 전달 부탁드립니다.

"알겠소."

* * *

그렇게 도착한 밀리아 마을. 그곳에서 나는 어렵지 않게 클로에 일행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자신을 척후조장이라 소개한 서인환과 인사를 나누고, 현지 상황을 전해 들었다.

"공작님께 말씀드리긴 송구스럽지만, 지금껏 해방 교단과 촌장을 제외한 그 누구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만날 수 없었다니요?"

"이곳 밀리아 마을의 모든 주민이 자기 집에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질 않습니다."

이거 참 구린내가 너무 대놓고 나는데...

게임 속 해방 교단은 왕국을 헤집고 다니며 각지의 인간들을 통제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속내를 드러내기 전에는 교묘하게 인간들을 선동하여 자신들을 따르도록 하고, 국가의 적이 된 시점부터는 중독이나 세뇌에 가까운 수단을 써 인간들을 해친다.

시점상으로는 분명 전자. 그렇다면 나는 해방 교단이 어떤 목적하에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압박한다는 전제를 깔아야 하나.

…….

나는 서인환에게 말했다.

"그럼 촌장의 집은 어디죠?"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아뇨. 저와 헤르만, 아일라만 가면 됩니다. 집 위치만 대강 알려주시고, 여러분은 제 부탁을 들어주세요."

"... 하명하십시오."

그의 말에 나는 일단 주변부터 살폈다.

먼발치에서 우리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네댓 명 정도 보이는데, 모두 하나같이 검은 로브를 두른 채 얼굴만 드러내고 있다.

겉보기엔 평범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나로서는 평범함을 가장하고 있는 저 모습마저 가증스럽다. 그들이 저 로브로 얼굴을 가리는 그 순간을 목도했으니까.

나는 저 쓰레기들이 다 들을 만큼 크게, 클로에와 인환을 비롯한 네 사람에게 명했다.

"지금부터 이 마을에 있는 주민들의 실태 조사를 시행하세요."

"허나 공작님. 이곳 사람들이..."

"모든 가구에 몇 명의 사람이 사는지, 혹여 질병에 걸려있는 것은 아닌지, 그 집의 식량 상황은 어떤지. 문을 열지 않는다면 그 문을 쪼개서라도 확인합니다."

"그... 그런!"

서인환이라는 무인은 내 말에 당황했다. 나름대로 무인의 자존심 같은 게 있는 사람일까.

... 하지만 지금은 해줘야만 한다.

나는 그에게 몸을 기울이며 작은 목소리로 입술을 가린 채 말했다.

"말씀드린 것을 기억하세요. 그리고. 누군가를 믿고 싶다면, 그 전에 의심하세요."

그리 말하고 다시금 거리를 벌리자, 그의 눈은 잠깐 동요의 빛으로 흔들렸다.

어쩔 수 없다. 나도 이 마을이 평범하게 기근에 시달리고 있는 마을이었다면, 이런 명령 따위 내리지 않았겠지. 하지만 여긴 교단이 먼저 자리 잡은 마을이다. 약하고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믿는다면 우리 중 누군가는 죽을 수 있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런 강경책이 불가피하다. 나와 상관없는 남보다는, 조금이라도 연이 닿아있는 사람이 우선이니까.

내 앞의 무인도 내 의도를 읽어준 것일까. 이내 인환은 마음을 다잡은 듯 자세를 고쳤다.

그걸 확인한 나는 신체 강화와 간단한 소리 증폭 마법을 활용해 성량을 키웠다.

"에우데미아의 공작 이시하가 말한다. 지금부터 이 마을의 기근과 관련된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내 수하들이 그대들의 가택을 방문할 예정이다."

"비협조적인 인간은 그 문을 부숴서라도 내부를 확인할 것이니 그리 알라. 이 모든 것은 식량 원조를 위한 것이니, 최대한 협조하길 바란다!"

간단한 공지를 마치고... 마법을 거둔 나는 수업용 미소로 내 앞에 있는 넷에게 전했다.

"다들. 자기 몸부터 조심하세요. 여기 있는 사람들을 돕다가 자기 몸을 상하면 제가 꽤 많이 화가 날 것 같습니다."

"이해했습니다. 뜻대로 진행하겠습니다."

"클로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해했다.

이 상황에서 그 말 한마디면 충분하지. 윤흠서가 똘똘하다고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네 사람이 내가 내린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자, 그들과 교대하듯 나이 많은 노인 하나와 키가 큰 교단 신자 하나가 내게 찾아왔다.

노인은 내게 고개를 숙이며 다급히 말했다.

"고... 공작님! 방금 말씀하신 건 대체!"

"아. 자네는 이곳의 촌장인가?"

"그렇습니다."

"촌락민들이 전부 집에서 나오지 않는다던데. 어디 몸이라도 불편한 게 아닌가 확인해야지. 촌장인 자네가 모든 주민의 상황을 설명할 수 있나?"

"……."

옆을 힐끗거리는 촌장.

그는 귀족 신분인 날 앞에 두고도 옆에 있는 해방 교단의 눈치를 보고 있다. 마음 한편으론 농사나 짓고 살던 사람이 어디까지 알겠나 싶지만, 하필 나를 제쳐놓고 저 쓰레기의 눈치를 보니 마음속에 불이 올랐다.

그리고 그 불은 내 안의 꼰대를 깨웠고, 그 꼰대는 노인 공격을 시작했다.

"이거 촌장으로서 책임 의식이 이리 없어서야. 여기 해방 교단이라고 불리는 분들이 이 마을을 돕고 있다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마을의 어른인 자네가 모든 이들의 실태를 파악하지 않는다니. 이는 업무 태만이 아닌가."

"그건..."

"아직 말하는 중이야. 토 달지 마시게나. 자네가 방금 마을 사람들 하나하나 읊어가며 상황 보고했으면 이런 말도 하지 않아. 도와주는 이들에게 모든 걸 맡기고 책임을 떠넘기는 건 무슨 행위인가. 거기다 자기 책임은 저 멀리 내팽개친 채 내가 내린 명을 따지러 오다니.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는가."

"...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고쳐."

"예..."

"더 말할 게 있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누구인가."

촌장의 말을 꼰대질로 일축하고 나는 옆에 있는 광신도 놈에게 말을 걸었다. 옆에 있던 그는 히죽히죽 웃는 얼굴로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공작님. 이 마을의 구제 활동을 총괄하고 있는 사제이옵니다."

"그래. 반갑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해방 교단은 주교까지. 일반 신도를 시작하여 그 아래에 수하를 거느리는 자가 사제, 그 위가 주교이다.

이 인간도 내게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찾아온 듯 한데... 그럴 수는 없지. 나는 내 페이스대로 대화를 이어 나가기로 했다.

"영주에게 들은 바로는... 교단의 주교분께서 시온 자작령의 구제 활동을 총괄한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그럼 같은 목적으로 온 동료로서 제가 그 주교라는 이를 만나볼 수 있겠습니까."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뭡니까."

"주교님께서는 따로 일이 있으셔서..."

역시나 쉽게 만날 수는 없는 건가.

주교 정도는 되어야 해방 교단의 숨겨진 목적을 알 수 있을 텐데, 이것들은 내게서 주교를 감추려는 듯하다.

나는 일단 마을 상황을 물었다.

"그렇다면 일단 당신에게 물어야겠군요. 이 마을의 식량 상황은 어떠하고, 구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죠?"

"마을의 식량은 이미 동이 난 상황이지만... 저희 해방 교단에서 식량을 적절하게 배분하는 중입니다. 공작님께서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호오. 배려라도 해주시겠다는 겁니까?"

"무례하게 들렸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사과하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 사제의 얼굴은 히죽거리고 있다. 이는 저 쓰레기의 마음이 아직 여유롭다는 뜻이겠지. 마치 자기 뜻대로 대화가 흘러가는 중이라 믿고 있는 것만 같다.

…….

저 말에서 거짓은 얼마나 섞여 있을까. 해방 교단이 관련된 루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저것들은 분명 미쳐있으니까.

대부분 일반인이 살인이나, 강간, 강도... 아니. 그 이전에 단순한 폭행이나 욕지거리하면서도 그 행위를 진정으로 '즐기는' 경우는 매우 적다고 생각한다.

마음 한편으로는 그게 잘못된 행동임을 자각하고 있으니까. 아무리 떳떳한 척하더라도 그게 비난받을 일임은 알고 있으니까.

진정으로 미쳐있는 인간과 평범한 죄인을 구분 짓는 요소는 바로 그런 점이다.

하지만 미친놈들은 어떤가.

미친놈들은 악행을 즐기기 마련이다. 사실 단순히 그 행위를 즐긴다고 볼 수도 없다.

마치 자신이 타인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그 사실에 만족을 느끼듯이,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짓밟는다는 것에 행복감을 느끼듯이. 그 행위가 주는 그 충족감 자체를 즐긴다.

해방 교단 역시 그런 미친놈들이다.

이 쓰레기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상대의 감정을 부수는 그 순간을 즐긴다. 지금 저 쓰레기의 웃음마저도 그 순간의 쾌락을 느끼기 위한 인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 저 웃음을 깨트린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그에게 말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니. 당신의 마음 씀씀이에 크게 감동하게 되는군요. 그렇다면 더더욱 제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지요."

"... 예?"

아직도 그 히죽거리는 표정은 지키고 있지만... 그의 입꼬리는 한순간 들썩였다.

나는 그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제가 직접 이 마을을 비롯한 시온 자작령의 실태를 전부 조사하고, 백성들이 자기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 정도로 원조하겠습니다."

정답.

사제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돌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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