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130화 (130/215)

〈 130화 〉 2­94. 시온 자작령 ­ 3일차. (2)

* * *

2­94. 시온 자작령 ­ 3일차. (2)

"왜 함께 있어 달라는 것이냐."

"그게..."

인환이 물었으나, 통나무집에 혼자 살고 있던 소녀 에이네는 답을 얼버무렸다.

인환은 그런 그녀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눈높이를 맞추고 타일렀다.

"적어도 우리가 이유는 알아야 네 부탁을 들어줄 것 아니냐."

"... 무서워서요."

"무섭다고?"

"네..."

소녀가 겨우 짜내듯이 말한 한마디. 그것은 인환의 마음을 더더욱 복잡하게 했다.

'분명 이 마을은 무언가 숨기고 있다. 이 아이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사실 인환이 이 마을을 조사하라는 명령을 순순히 받아들인 것은 시하가 부대원들의 안전을 우선하고 있다는 직감 때문이었지, 그 이상의 믿음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 임시 거점에서부터 지금까지... 해방 교단이 재앙을 불러들인다는 그 미친 발언만큼은 믿기 힘든 게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껏 그가 지켜본 밀리아 마을의 분위기는 너무나도 꺼림칙하다.

일행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는 해방 교단, 상위 귀족의 명에 불응하는 주민들, 최근 수많은 인간이 사라진 흔적,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을 꾹 닫은 아이들까지.

무언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이 아이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마저 함정이 아닐까, 이런 생각마저 들 정도다.

하지만 동시에. 눈앞의 소녀가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건 명확한 사실처럼 다가온다.

'이 아이를 돕는 게... 어쩌면 이 마을이 숨기고 있는 진실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케르티아라면 직감을 믿고 행동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이곳에 머무는 건 꺼려지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중 클로에가 말했다.

"조장님."

"음?"

"본부에 가는 길이 조금 멀긴 해도... 저희가 이 아이를 데리고 가면 안 될까요?"

"데리고 간다라... 그 정도라면."

클로에의 말을 들은 인환이 소녀에게 물었다.

"그럼 우리랑 함께 가보겠느냐?"

"... 마을 어른들이 다른 사람들 함부로 따라가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럼. 네가 방금 말한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네 집에서 함께 있는 건 되고?"

"그건..."

"마을 어른들의 허락은 내가 구할 테니, 그 부분은 걱정 말거라."

인환의 말에 에이네는 고개를 푹 숙여버렸고, 그 뒤로 한참을 고민한 끝에.....

끄덕.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

.

그 길로 통나무집을 나선 인환 일행은 다른 조와 합류해 촌장의 집에 방문했다. 그곳에는 헤실헤실 웃고 다니는 해방 교단의 사제 역시 있었다.

사제가 말했다.

"그 아이를 데려가겠다는 겁니까?"

"그렇소. 이 아이의 몸 상태가 유독 좋지 않은 듯해서. 본부에 있는 의사에게 보일 셈이오."

"이거 곤란한데..."

"무엇이 곤란하다는 거지?"

"... 마을 밖으로 나간다면 아이에게 부담이 가지 않겠습니까. 당신들의 본부는 어디죠?"

"그건 말할 수 없소."

"그렇다면 더더욱 안 됩니다."

단호하게 인환의 요구를 불허하는 해방 교단의 사제. 하지만 인환은 대화가 이렇게 흘러갈 것쯤은 예상하였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의 추론이 확실하다면, 해방 교단은 이렇게 말할 것이라는 예감이 있었다.

'역시. 해방 교단은 마을 사람들이 사라진 것과 관련이 있다. 이 아이가 혹여 그 일을 발설할까 두려운 것이겠지...'

'이 아이를 데려간다고 한 이상, 이곳은 이미 적진이나 마찬가지. 이렇게 된 이상 에이네는 무조건 데려가야 한다.'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인환.

인환 역시 한때 장군 가문의 후계였던 자였기에, 이 정도 상황에서 배짱을 부릴 정도는 된다.

그는 사제에게 호기롭게 말했다.

"당신은 큰 착각을 하고 있군. 내가 지금 당신에게 '허락'을 구하는 것으로 보였소?"

"... 무슨 뜻이죠?"

"당신이 이 영지의 관리인은 아니지 않소. 이 마을의 구제 활동을 돕고 있는 종교 단체의 일개 조장에 불과하지."

인환의 말에 사제는 표정이 일그러졌다.

불과 어제만 해도 이시하 공작과의 대화에서 한참을 밀렸는데, 그 수하에게도 밀려야 한다니.

그는 그 자리에서 외쳤다.

"저희 교단을 무시하는 겁니까!"

"무시한 적 없소. 사실을 말했을 뿐이지."

"……."

"지금 난 해방 교단이 이 영지의 협력 단체이니 '최소한의 예의'를 표하러 온 거요. 원래라면 이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알릴 필요조차 없지."

"... 결국 데려가겠다는 말이군요."

"그렇소."

양손에 힘이 들어간 채로 부들부들 떨고 있던 사제는 애써 분을 삭이며 말했다.

"마음대로 하시죠."

"그럼. 오늘은 밤이 늦었으니 실례하겠소."

"……."

인환 일행은 촌장의 집을 떠나고... 겨우 십 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해방 교단의 사제는 큰 소리로 외쳤다.

"전원 집합!"

그의 한 마디에 검은 로브를 두른 해방 교단의 일원들이 촌장의 집으로 들이닥친다. 족히 열 명은 넘는 인원들이 좁은 집을 채웠고, 늙은 촌장은 사제의 옆에서 벌벌 떨게 되었다.

사제가 한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 너. 지금 상황을 주교님께 알려라."

"어떤 말씀을..."

"이 멍청한 새끼가... 공작의 개들이 멋대로 마을 애새끼 하나를 데려갔다고 해!"

"알겠습니다."

지목받은 자는 신속히 자리를 떠났다.

사제의 얼굴에 웃음은 온데간데없고, 분노와 걱정으로 일그러진 표정뿐.

그가 중얼거렸다.

"거기다... 방금 그 새끼들 중에 눈치 빠른 놈이 있다면 충분히 알아냈을 수도 있어."

"위험해. 정말이지 위험해. 진정한 해방이 나 하나 때문에 무너져서는 절대로 안 돼..."

고개를 든 그는 남은 수하들에게 명했다.

"너희 넷. 그놈들의 본부 위치를 알아내. 지금 당장 말을 타고 그 새끼들을 쫓아가."

"하지만 사제. 지금은 밤이 어두워..."

"입 닥쳐. 너희 중엔 수인도 있잖아? 냄새를 맡든 뭘 하든. 빨리 쫓아가기나 해."

"……."

"아. 그렇다고 죽이지는 마. 지금 당장 죽였다간 더 큰 일이 되어버리니까."

"... 따르겠습니다."

"나머지는 마을이나 한 바퀴 돌아. 혹시라도 그놈들에게 허튼 말을 한 놈들이 있다면 당장 광산으로 끌고 가."

"알겠습니다."

사제의 명을 받든 교인들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 * *

밀리아 마을에서 30분 정도 벗어난 곳에 클로에가 속한 척후조의 마차는 멈추었다.

그리고 인환이 말했다.

"클로에. 추격은 있느냐."

"조장님 말씀대로예요. 말발굽 소리 네 개가 점점 가까워지는데... 속도를 생각하면 5분이요."

"그럼 나흘 전 그 전술로 간다."

나흘 전, 밤의 개울가에서 인환이 말했던 전술. 그에 필요한 요소는 지금 모두 갖춰진 상태였다.

실력 있는 원거리 공격수인 인환과 클로에의 좋은 귀. 그리고 그들이 몸을 숨길 수 있는 어둠.

하지만 클로에는 걱정이 앞섰다.

"일단 대화로 푸는 건 안될까요...? 저 사람들을 괜히 건드렸다가 큰일 나는 거 아니에요?"

"대화할 생각이라면 미행 따위 붙이지 않았겠지. 저들이 적이라고 가정할 때, 본진이 발각되면 숫자로 밀고 들어올 우려도 있다."

"……."

"물론 사람을 죽일 정도로는 하지 않는다. 더 이상 따라오지 말라는 경고. 그걸 전할 뿐이다."

"... 알겠습니다."

둘의 대화를 듣던 선재가 말했다.

"고양아. 걱정하지 마라. 만약 저들이 다가온다면 내가 나서마."

"네..."

"서준 너는 한쪽 팔이 병신이 되었으니, 그 꼬맹이를 데리고 뒤에서 구경이나 해라."

"저게 지랄은. 당연히 저것들이 오면 나도 칼을 뽑고 설쳐야지. 뭘 이래라 저래라야."

"팔 병신이 말은 잘해."

둘의 대화에 인환이 말했다.

"조용. 소리 듣는 데 방해된다."

""예이.""

"클로에. 내 마력이 깃든 화살을 일직선으로 날려 보낼 수 있는 거리는 최대 600미터다. 그 거리가 되면 바로 말하거라."

그들의 대화 덕분에 조금은 긴장을 푼 클로에. 그녀는 두 귀를 쫑긋 세운 채 조용히 기다렸고, 인환은 화살을 시위에 얹어 두고 조금씩 푸른 마력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가도는 직선. 마차의 바퀴 자국을 남겨두었으니 그걸 따라오고 있을 터...'

'놈들이 타고 오는 말의 높이를 노린다. 말에서 떨어지는 것만으로도 큰 이득이다.'

그렇게 그가 정신을 가다듬은 순간...

"조장님! 정확히 전방 600미터!"

휘익 ­

클로에의 외침과 함께 활은 비상했고, 멀리서 말이 울부짖는 소리가 클로에의 귀에 들려온다.

"명중! 같은 각도로 한 발 더 쏘세요!"

"명중! 이번엔 오른쪽으로 세 걸음!"

"명중!"

순식간에 세 마리의 말을 사살한 인환.

마지막에 남은 한 마리의 말은 다른 말들이 고꾸라지는 순간에도 쉼 없이 달렸고, 그 모습은 마력으로 강화된 인환의 시야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제 말하지 않아도 된다."

"... 네."

마지막 화살은 그의 손을 떠났고, 100미터 거리에 있던 마지막 말이 끝내 쓰러졌다.

인환이 외쳤다.

"더 따라온다면 다음 화살은 네 놈들의 머리에 꽂힐 것이다!"

"사제에게 전해라. 감히 우릴 미행한 대가는 톡톡히 치를 것이라고!"

* * *

시온 자작령 내의 자그마한 광산 동굴.

횃불로 밝혀진 거대한 공동 한 가운데에서... 옷 하나 걸치지 않은 웅인(곰)족 남성이 거대한 원형 방패를 휘두르고 있다.

그의 몸은 분명 인간의 형태이나 덩치는 인간이 아닌 곰에 가까울 지경으로. 울긋불긋하고 각진 근육이 전신을 뒤덮은 상태.

겉보기에는 그 움직임이 둔할 것 같으나... 그의 모든 몸놀림에는 절도가 있으며, 그 방패가 닿는 곳에는 깊게 팬 자국이 남는다.

한 교인이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주교님. 밀리아에서 보고가 왔습니다."

"수련 중이다."

"... 매우 중요한 보고라고 합니다."

쯧­하고 혀를 찬 곰이 말했다.

"들여보내라."

"예."

그 와중에도 수련은 멈추지 않았다.

부웅 ­

부웅 ­

무식하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만이 공동에서 열댓 번쯤 울려 퍼졌을 때, 교인 둘이 들어왔다.

그중 급이 낮은 자가 말했다.

"주교님을 뵙습니다."

"인사는 됐다. 용건부터 말해라."

"공작의 개들이 멋대로 마을 애새끼 하나를 데려갔다고 해! 라고 사제님께서..."

"공작. 어떤 공작을 말하는 거지?"

"이시하 임시 공작입니다."

교인의 말에 거대한 방패는 그제야 멈추었다.

멈춘 방패에는 태양처럼 빛나는 심장과 그를 둘러싼 초록 뱀 무리가 그려져 있다.

주교가 중얼거렸다.

"이시하. 왕실 가정교사 이시하... 그자가 시온에 왔다는 걸 왜 알리지 않은 거지?"

"주교께서 흑옥을 조정하시는 데 열중하고 계셨기에. 굳이 알리지 않았습니다."

"이거 영 시기가 안 좋았군..."

방패를 내려둔 그가 주변 바위에 걸터앉자, 밀리아 마을에서 전령으로 온 자가 말했다.

"주교님. 저희는 어떻게 해야..."

"기다려라. 생각하는 중이니."

"죄송합니다."

거구의 남성은 앉은 자리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횃불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했다.

'교주께서는... 근원의 마녀에게 한 사람을 가로채였다 하셨었지. 그렇다면...'

자신이 온 마음을 다해 따르는 교주의 신성한 말씀을 떠올린 그는 한참 동안 고민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그는 할 일을 정했다.

"내일. 내가 직접 밀리아로 간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당연한 것 아니겠나."

다시 자리에서 일어난 거구의 남성은 다시금 방패를 잡았고, 다시금 수련을 재개했다.

부웅 ­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읊조리는 주교.

"중요한 손님이 왔으면. 직접 맞이해야지."

그는 나지막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 시험도 할 겸 말이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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