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화 〉 295. 시온 자작령 4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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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 시온 자작령 4일차.
아침 일찍 시온 자작령의 본부로 향하니, 윤흠서가 급히 할 말이 있다고 하며 나를 맞이했다.
그 할 말이란 밀리아 마을을 담당하고 있던 척후조가 수상한 징조를 발견했다고. 나는 인환을 비롯한 척후조원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그러니까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마을 사람들이 없어진 흔적이 보인다. 라는 거죠?"
"그렇습니다."
"거기다 빈곤층 아이들의 부모들만 없어진 것 같고, 아이들은 그 사실을 숨기려 한다."
"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듣기만 해서는 해방 교단이 주민들을 데려간 게 분명한데...
사실 서인환의 주장은 어디까지나 추론에 불과하다. 지금 당장에 결정적인 증거라고 할만한 건 없으니까.
하지만 정황 증거도 모이면 설득력이 오르는 법이다. 한 집만 그런 것도 아니고 마을 집들의 대부분이 그랬다고 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럼 중요한 건 데려왔다는 아이인데...
"마을에서 데려왔다는 그 아이는 어떤가요."
내 질문에 클로에가 답했다.
"어제 돌아온 뒤로 제가 맡아서 돌보고는 있는데, 그 뒤로도 딱히 말한 건 없어요. 그렇지만... 조금 불안해하는 것 같다 해야 하나."
"불안해한다고?"
"네. 밥 먹을 때도 제 눈치를 보고, 잠자리에 들어서도 조금은 떠는 것 같고. 안정을 못 해요."
"하아. 그거참 수상하네."
"사실 어제 마을에서 돌아온 직후에도 여러 가지 물어봤는데, 입단속을 단단히 시켰나 봐요. 울먹거리기만 하고... 말은 하지 않아요."
"... 더 다그쳐봐야 입만 꾹 닫겠네."
확실한 증거도 없는데 꼬맹이한테 뭐 몹쓸 짓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추궁해보았자 털어놓는 말이 진실일 가능성도 적고.
"공작님. 그리고 또 드릴 말씀이..."
고민하는 중 인환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말씀해보세요."
"어제 마을 아이를 데리고 퇴각하는 중, 해방 교단이 저희에게 무장한 추격조를 붙였습니다."
"추격조를 붙였다고요?"
"예. 본부의 위치가 노출되면 안 될 것 같아, 제 독단으로 말만 쓰러트려 추격을 저지했습니다. 그 숫자는 네 명. 그중 수인까지 있던 걸 보면... 마음을 단단히 먹었던 듯합니다."
교단 사제가 열이 머리끝까지 올랐나 보다.
아무리 내가 임시라 해도 이 나라의 공작이다. 내 부대를 쫓는다는 게 어떤 뜻인지 모르는 놈도 아닐 건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더니 옆에서 윤흠서가 덧붙였다.
"헬레니아 교의 성당 기사도 아닌 일개 종교집단의 인간들이 말과 무장을 지닌 채 추격조를 꾸린다니. 시하공, 이는 간단히 치부할 일이 아니오."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해방 교단의 실체를 모르는 윤흠서이기에 저런 생각이 가능한 것 같다.
아무래도 나는 그 미친놈들의 민낯을 알고 있기에, 그 부분은 당연히 넘기고 있었는데 말이다.
사람을 말에 매단 채 끌고 다니고. 온갖 무기를 들고 학살을 저지르고. 그 모든 행위에 광적인 웃음을 보인 끝에 재앙에 파묻힌다.
이게 내가 아는 해방 교단이다.
…….
그나저나...
이건 오히려 나한테 좋은 상황 아냐?
아이를 데려와 놓고도 정보가 없다는 건 조금 아쉽긴 하지만, 대놓고 추격조를 보낸 건 사제가 제대로 허튼짓을 한 셈이다.
나는 말했다.
"클로에. 데려온 아이는 네가 계속 돌봐줄래?"
"네. 알겠습니다."
"척후조에서는 클로에를 제외한 나머지 세 분만 밀리아 마을로 갑시다. 저도 함께 갈게요."
내 말을 들은 윤흠서가 말했다.
"아니. 저들이 어찌 나올지도 모르는데, 그 인원으로 충분하겠소?"
"헤르만과 아일라도 있습니다."
"그래도 여섯 명뿐이오. 너무 위험해."
내가 이 생각을 하게 해준 건 윤흠서이지만, 오히려 그가 내 걱정하는 상황.
나는 그에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지금은 이게 정답이에요."
"... 그 이유는?"
"저는 그 미친놈들을 단순한 종교 단체로 알고 있는 임시 공작에 불과하니까요."
흠... 하고 윤흠서는 생각에 잠겼다.
"정보가 있다는 것을 감추겠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저는 지금 상황을 어디까지나 단순한 기근으로 받아들여야만 해요. 그리고 인환 조장에게는 부탁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마을에 도착하면, 교단 추격조의 말을 죽였다는 사실은 제게 숨긴 듯이 행동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가봅시다."
그렇게 마을로 향할 일행들과 천막을 나서려 하니, 클로에가 나를 불러세웠다.
"저기. 시하 공작님?"
"왜 그러니. 클로에."
"그게... 에이네의 부모님이라던가. 사라진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해요?"
"그건 지금은 보류."
"……."
클로에는 내 단호한 답변에 고개를 떨구었다.
내가 당장에 어떻게 할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하긴 게임에서도 클로에는 시종일관 착한 사람이었고, 하루 동안 그 아이를 돌보았으니 정도 들었을 거다.
거기다 지금껏 저 아이에게 내 인상은 자기 문제를 단숨에 해결해버린 대단한 사람일 테니까. 이런 기대를 품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뒤돌아선 나는 클로에에게 말했다.
"클로에. 나도 그 문제에 대해선 인환 조장이나 너의 말이 전부 맞다고 생각해."
"그럼 지금 당장이라도..."
"하지만 지금 나서면 안 되는 이유가 둘 있어."
"그게... 뭐예요?"
착한 수인들의 어쩔 수 없는 면이라고 해야 할까. 그 장벽 안에서 살다 나온 수인 중 착하고 어리숙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다.
추후 아카데미에 유학을 올 상위 종들은 온갖 더러운 일을 보며 자랐기에 비비 꼬인 면이 있지만, 클로에같은 일반 종은 사회의 양지에서만 자라났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첫 번째. 확신을 가질 증거가 없어. 지금 그 사이비 놈들을 몰아세웠다간 발뺌할 게 분명해. 오히려 우리를 경계해서 증거를 숨길 수 있어."
"두 번째. 내가 여기 온 목적은 해방 교단의 실체를 파악하는 거야. 지금 그 문제로 해방 교단과 적대하게 되면, 놈들의 속내를 알 수 없게 돼."
아직 제대로 납득하지는 못한 클로에.
나는 몇 마디를 덧붙이기로 했다.
"클로에. 앞에 있는 작은 것을 지키려다 보면, 더 많은 걸 잃을 수도 있어."
"더 많은 거요?"
"당장 추궁했다가 궁지에 몰린 놈들이 대책 없이 일을 벌인다면? 우리가 막기 힘들 수 있어."
솔직히 이건 가능성의 영역이 아닌 확정적인 인과에 가깝다. 해방 교단의 실체가 드러나게 되는 임무는 모두 그런 흐름이었으니까.
나는 말을 이었다.
"... 해방 교단이 수상쩍은 일을 저지르는 건 앞으로도 계속될 거야.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이 세상에 그놈들의 민낯을 알려야 해."
"마을 사람들의 행방도 중요한 게 맞아. 하지만 그것 때문에 섣불리 움직였다가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아마도 다음은 없을 거야."
내 말에 조용히 생각하던 클로에는 말했다.
"그러니까. 교단 사람들의 실체를 알기 위해선 가만히 있어야 하는 거죠? 그 사람들이 더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니까."
"그래."
"그래도..."
클로에는 약간 뜸을 들였다.
... 마치 이걸 말해도 되나 싶은 눈치다.
"클로에. 말해도 돼."
"... 사라진 사람들이 걱정되어서요. 남겨진 아이들도 불쌍하고..."
…….
고심 끝에 클로에가 내놓은 말은...
어쩌면 내가 이곳 에코니아에 온 뒤로 내 마음속에 언제나 짐처럼 남아 있는 것이었다.
악한 이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선한 이를.
동등한 가치라면 최대한 더 많은 사람을.
나는 나도 모르게 사람의 가치를 따진다.
내가 이러는 이유는 알고 있다.
그런 썩어빠진 집안에서 자라나다 보니, 나는 나 자신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어렸던 나는 세간에서 말하는 올바른 답을 광신하게 된 셈이다.
하지만 커가면서 난 깨달았다.
이런 사고방식엔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인간의 가치를 언제나 달라지기 마련이다.
타인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내 가치관이 어떤지에 따라 항상 그 값이 다르게 나온다.
... 그 때의 나는 생각했다.
이왕 선택할 거라면 후회나 하지 말자고.
선택해야 한다면 내게 더 가까운 사람을.
그렇게 나는 내 원칙에 한 줄을 추가했다
하지만 이래도 문제는 남아 있었다.
감히 사람을 판단할 자격이 어디 있다고...
모든 인간의 생과 감정은 하나하나가 소중한 것이라, 내가 감히 판단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나는 가치를 재는 걸 포기하였다.
하지만 이건 또 무슨 아이러니일까.
나는... 이곳 에코니아에 와버렸다.
사람의 가치를 재야만 하는 세상에.
나는 자연스럽게 사람의 가치를 재어버린다.
조운회 습격 때는 적은 목숨으로 더 많은 목숨을 죽였다는 사실에 순간 안도했었다.
분명히 이 짐은 내 마음 한구석에 방치 중이었는데 클로에의 말이 툭툭 건드려버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제가 한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 네."
내 옆에 있던 인환이 나섰다.
"네 길을 찾으라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느냐."
"... 네"
"지금 네가 느끼는 것만큼은 마음에 간직해라."
"……."
"만약 그 길을 정 걸어야겠다면, 내 마땅히 널 도우마. 지금은 이걸로 만족하거라."
"... 알겠습니다."
할 말을 마친 인환은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말했다.
"클로에. 혹시라도 그 아이에게서 무언가를 듣게 되면 나나 여기 인환 조장에게 말하렴."
"그럼 우린 갑시다. 밀리아 마을로."
* * *
그렇게 도착한 밀리아 마을.
하지만 그 분위기는 이틀 전과 달랐다.
"... 형님. 저것들 왜 저렇게 많지?"
"그러게."
해방 교단이 너무 많았다.
어림잡아 세기로 서른 명. 그 정도 되는 교인들이 마을 한가운데에 진을 치고 있었다.
"일단 나아가자. 다른 수가 없어."
"형님."
"날 믿어. 아직 저것들도 당장 우리에게 이빨을 드러내는 건 손해일 거야."
"... 알았어."
그렇게 우리 마차는 점점 앞으로 나아가자... 거구의 곰족 수인 하나가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저 사람은 또 누구야?"
"주교야."
"주교?"
"저건 해방 교단의 주교복이야."
해방 교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반 교인들은 문양이 없는 검은 로브를, 그 위의 사제들은 소매에 초록색 실이 두어줄 덧붙여진 로브를 입는다.
하지만 주교복은 조금 다르다.
금빛 태양이 폭발하는 듯한 원형. 그 태양을 감싸고 있는 뱀 무리들. 해방 교단을 상징하는 문양을 앞뒤에 크게 새긴 로브를 입는다.
지금 내 눈앞이 주교는 곰족 수인의 타고난 체형 때문인지 로브마저 크게 입었으며, 앰블럼도 역시 더 큰 존재감을 자랑하고 있다.
로브의 모자를 덧쓰고 있어 그 얼굴은 잘 보이지 않지만... 그 체형만 봐도 압박감이 느껴진다.
그의 옆에 간신처럼 붙은 사제가 말했다.
"이거. 공작님이 아니십니까!"
"안녕하시오. 사제. 그런데 옆에 계신 분은 누구시죠?"
"공작께서도 주교님을 뵙고 싶다고 하셨지요. 이분께서 저희 교단의 주교이십니다!"
"... 그렇군요."
사제는 자랑스러운 듯 주교를 설명했다. 호가호위라 해야 할까, 조금 분위기가 경박하다는 느낌도 든다.
다시 한번 생각하자.
지금은 내가 갑이다.
사제의 태도에 불만족스러운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약간은 찌푸린 얼굴로 있었더니, 주교가 직접 나섰다.
"내가 직접 말씀드리지."
"아... 알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해방 교단의 주교 중 하나... 절제자 뵈브라고 합니다."
"당신이 주교인가 보군요. 반갑습니다. 저는 에우데미아의 임시 공작. 이시하라고 합니다."
... 절제자라는 이명이 있었나.
애초에 그 게임에서 해방 교단의 주교라는 몹들은 하나같이 그 정체가 숨겨져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되짚어보는 도중.
주교는 갑자기 허리를 숙였다.
"일단 공작님께 사죄의 말씀부터 올리겠습니다."
"사죄?"
"예. 제 옆의 사제가 감히 공작님의 수하들에게 미행을 붙였다는 보고를 들었습니다."
"미행이라고?"
나로서는 갑자기 주교가 나타난 것도 의외인데, 그가 내게 머리를 숙일 줄은 몰랐다.
주교의 옆에 서 있는 사제도 이 상황에 미리 전달받지 못한 듯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상태.
…….
이건 무슨 꿍꿍이지.
나는 일단 대본대로 행동하기로 했다.
"인환 조장."
"예."
"이 자의 말이 사실입니까?"
"예. 몇몇 교인들이 말을 타고 추격해왔습니다."
"그렇군요. 왜 미리 보고하지 않은 거죠?"
"... 죄송합니다."
그에 주교가 말했다.
"그쪽의 무장께서 죄송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감히 공작님의 일행을 미행하다니. 그 죄는 처벌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그거야 주교의 말이 맞습니다만..."
"사죄의 의미로 제가 집행하려 합니다."
... 뭐?
내가 들은 것을 의심하는 그 순간. 주교는 그 덩치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빠른 속도로 움직여 사제에게 주먹을 날렸다.
쿵
엄청나게 큰 충격음이 울리고...
이틀 전 내 앞에서 헤실헤실 기분 나쁜 웃음을 짓던 사제는 한참을 날아갔고, 마을 울타리에 부딪혀서야 멈출 수 있었다.
주교가 수하들에게 말했다.
"... 죽이진 않았다. 참회동에 데려가도록."
"알겠습니다."
...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야.
나는 최대한 평정을 가장하며 무심한 눈으로 날아가버린 사제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주교는 다시 한번 내게 고개를 숙였다.
"휘하 사제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점. 공작님께 다시 한번 사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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