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135화 (135/215)

〈 135화 〉 2­99. 시온 자작령 ­ 6일차.

* * *

2­99. 시온 자작령 ­ 6일차.

"그 아이가 그렇게 말했다고?"

"요약해서 다시 말해줄 수 있겠느냐."

"네. 일주일 전, 해방 교단이 에이네의 아버지를 데려가서는, 우리에겐 1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말하라고 시켰다고... 아! 거기다 마을 친구들도 상황이 비슷하다고 했어요."

"하아..."

절로 한숨이 나온다.

어쩐지 어제 밀리아 마을에서 구제 활동을 진행할 때 느낌이 싸하더라니. 그딴 작은 촌락에서 그 정도 빈부격차가 난다는 게 여러모로 수상했다.

게임에서도 일부 촌락민들이 이웃 주민들을 도적에게 팔아넘기는 챕터가 부지기수였으니까.

그 게임의 '없는 사람'들은 대체로 선량한 면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게 착한 사람의 기준은 아니었다. 오히려 여유롭지 못한 삶 속에서 악해지는 경우가 훨씬 많았지.

나는 윤흠서에게 물었다.

"대장님. 제가 부탁드린 조사는 어떻게 되었나요."

"다른 촌락들도 마찬가지요. 다시금 전수조사했더니, 아이들만 남아있던 집이 꽤 많았소."

"그렇다면..."

이 정도면 모든 마을에서 주민들을 동원해 데려갔다는 건 확실해졌다.

나는 클로에에게 물었다.

"혹시 에이네의 아버지를 어디로 끌고 갔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었니?"

"광산이라는 말은 들었대요. 그런데 해방 교단이 믿을만한 이야기를 할 것 같진 않아서..."

"아니. 그 사제가 말한 거면 아마 사실일 거야."

"네?"

"시하 공, 그게 무슨 말이오. 그 무뢰배들의 말이 진실이라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내게 묻는 윤흠서.

그럴 만도 하지. 나도 해방 교단과 관련된 루트를 처음 해금했을 때는 무슨 말을 믿어야 할지 항상 고민했으니까.

하지만 에이네가 들은 말이라면 사실일 것이다.

나는 말했다.

"해방 교단은 완전한 거짓말을 하지 않아. 타인의 마음을 짓밟는 걸 즐길 뿐이지. 놈들의 말은 언제나 비틀 수 있는 건 의심하고, 비틀 수 없는 건 믿어야 해."

"그게 무슨 뜻이에요?"

"예를 들면, 그 사제 새끼는 에이네가 말을 잘 들으면 아버지가 돌아올 거라 했었지."

"... 네"

"이건 가정일 뿐이지만. 사제는 아버지가 살아서 돌아온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

"아..."

클로에는 한순간 눈의 초점이 흐려졌다.

주민들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한창 들떠있는 마음에 찬 물을 부은 셈이지만, 이 정도에 평정을 잃으면 안 된다.

나는 말했다.

"정신 차려, 클로에. 나는 가정이라고 했어."

"네..."

"그놈들과 싸울 거라면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해. 앞으로 우린 어떤 꼴을 더 볼지 몰라."

"넵!"

옆에서 윤흠서가 담담히 말했다.

"시하 공의 말을 요약하자면, 미친놈들이군."

그렇다.

해방 교단은 단단히 미친놈들이다.

나는 윤흠서에게 물었다.

"윤 대장님. 미친놈들을 상대할 때 가장 까다로운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가장 까다로운 것이라..."

내 물음에 잠시 고민하던 윤흠서가 답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지."

"그렇습니다. 거기에 문제가 또 있습니다."

"시하 공의 말뜻은 짐작하고 있소. 우리 상대가 단순한 미친놈들은 아닌 듯하군."

"솔직히, 저도 지금 놈들의 목적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을 납치해서 뭘 하려는 건지..."

멍청이나 미친놈을 상대할 때 가장 까다로운 부분은 일반적인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

그런데 지금 우리가 상대하는 건 충분히 머리는 잘 돌아가는 미친놈들이다.

엊그제 만난 절제자 뵈브만 해도 모든 행동에 숨은 의도가 있는 듯했었지.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인환이 말했다.

"공작님. 대장님. 발언해도 되겠습니까?"

"무슨 일인가요."

"저희가 아이를 데려온 것을 주교 역시 알게 되었는데,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게 수상합니다."

"저도 그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그러니 제안을 하나 드리려 합니다."

인환은 나와 함께 주교를 만난 사람 중 하나. 그 역시 주교의 실력과 언행을 눈에 담았었다.

어쩌면 그와 나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

"지금은 각 촌락에 퍼져있는 분대원들을 다시 불러 모아 정비를 하는 게 우선입니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의 생사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니, 별동대가 필요합니다."

"별동대라니..."

"저희 척후조가 사라진 마을 주민 탐색에 나서겠습니다."

... 그의 제안은 내 생각을 뛰어넘은 것이었다.

내 계획은 구제를 진행하며 마크 테크니와 해방 교단의 조사를 이어 나가는 것이었으나, 해방 교단이 마을 사람들을 데려간 게 밝혀진 이상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 사이비들이 영지 전역에서 사람을 끌고간 뒤 내게 은폐를 시도한 셈인데, 영주인 마크 테크니가 이런 중대 사항을 모를 리 없으니까.

해방 교단과 마크 테크니는 이미 한통속으로 간주해야 하며, 지금은 인환의 말처럼 각지에 파견되어있는 인력을 한데 모으는 게 우선이다.

하지만...

"영주가 이 사실을 모를 리 없어요. 교단이 아직 적의를 드러내지 않았을 때를 노려 영주의 신병을 확보하는 게 우선입니다."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지금껏 공작님께서 말씀하신 대로라면. 마을 주민들의 생사 또한 다급합니다."

"... 우리 인원은 겨우 서른여섯 뿐입니다. 전력이 분산되면 위험해요."

"공작님과 아일라님께서는 중급 마법을 난사할 수 있는 자연 마법사로 알고 있습니다. 두 분의 엄호만 있다면 이런 변경 자작령의 호위들 따위, 저희 전군은 단숨에 돌파할 수 있습니다."

"그걸 뚫어내더라도..."

"영주관을 점령해버린다면 교단이 이빨을 드러내더라도 방위전의 형태가 될 터, 척후조 4인을 제외하더라도 전력은 충분합니다."

"……."

내 논리는 하나하나 인환에게 논파 당했다.

내 말문이 막히자, 윤흠서가 인환을 나무랐다.

"인환. 지금 이곳에는 클로에도 있었다!"

"... 죄송합니다."

"거기에 우리 목적은 교단의 실태를 밝혀내는 것. 그 목적을 실현하기 전까지, 우리는 왕실에 섣불리 도움을 청할 수 없다. 그건 기억하고 있는가?"

"알고 있습니다."

"왕국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 시하 공은 우리 부대가 안전할 최선을 생각해낸 것이야. 별동대를 내는 것은 내가 보기에도 위험해."

"……."

인환이 사죄하는 그 모습에는 약간의 당황이 섞여 있었다. 클로에 역시 자기 이름이 나온 탓에 놀란 모양.

그러고 보면, 지금 클로에는 무인들이 혜세국의 옛 전군이었다는 과거를 모르고 있겠지. 나와 윤흠서가 그 과거를 철저히 숨기기로 했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이틀 전 인환이 클로에를 대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마치 그녀를 여동생이나 딸처럼 아끼는 느낌이었다.

아마 지금 저렇게 강한 주장을 내비치는 것도 클로에와의 약속을 지키게 위함일 터.

사실 나도 알고는 있다.

척후조 넷을 제외하더라도, 저 영주관따위, 지금 전력으로 10분이면 함락시킬 수 있다.

그들을 별동대로 삼아 다른 일을 시키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뜻이다.

…….

새삼 말하는 거지만.

나는 정말 모순적인 인간이다.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헤르만을 제외하면 내가 전력으로 쓰기 위해 모은 사람들.

하지만 나는 애써 모은 이 사람들을 내 '테두리' 안에 들어온 사람들로 인식하고 있다.

그렇기에 위험 속으로 내몰고 싶지 않다.

그 광산에 미치광이들이 몇이나 있는지도 모르고, 만약 그 광산에 절제자 뵈브라도 있다면 별동대의 위험은 배로 뛰어버릴 것이다.

그 주교의 전투 방식은 모르지만, 적어도 마을에서 본 실력은 무시할 게 아니었으니까.

너무나 감수할 리스크가 큰 것이다.

한참의 고민끝에... 나는 말했다.

"인환."

"예."

"위험할 수 있어요."

"척후조는 언제나 위험을 감수해왔습니다."

내 우려를 미리 짐작이라도 했다는 듯,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하는 인환.

내 시선은 클로에를 향했다.

"클로에."

"네."

"내 눈앞에 있을 때는 방호 마법으로 지켜줄 수 있지만, 별동대는 그럴 수 없어."

"알고 있습니다."

"위험한 짓은 절대로 하지 마. 작전 중에는 절대로 인환의 말을 따르겠다고 여기서 약속해."

"... 알겠습니다."

"난 내가 아는 사람의 시체 따위 보기 싫으니까. 명심해."

"……."

클로에는 말이 없었다.

... 보내기로 했다면 만반의 준비를 해서 보내야지.

나는 헤르만을 불렀다.

"헤르만."

"왜. 형."

"이 주변에 광산이 넷 있지?"

"어... 그렇지."

"시온 자작령의 지도 하나 가져오고, 빈 종이 네 개 가져와. 광산 지도를 전부 그릴 거야."

"광산 지도...?"

"내부 구조는 전부 외우고 있어. 가져와."

"... 알았어."

내가 부탁한 물품을 찾으러 가려는 헤르만.

아.

그러고 보니...

나는 따로 생각난 게 있어 그를 다시 불렀다.

"아. 잠깐만."

"왜. 뭐 더 필요한 거 있어?"

"지도는 오늘 저녁까지 그려야 할 것 같거든."

"그 정도로 세세하게 그리게...?"

"슬럼가 토벌 정도로는 그려야지. 적어둘 것도 많고... 그러니까 오늘 저녁은 같이 못 먹는다고 메디아 호수에 적당히 전해 줄래?"

"에휴... 알았어. 빨리 갔다 올게."

"그래."

헤르만이라면 다른 학생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알아서 이유를 만들어 전해 주겠지.

나는 천막 안에서 말했다.

"작전은 내일부터 시작합니다."

* * *

메디아 호수.

헤르만은 커다란 나무 밑에 모여있는 학생들과 레온에게 전했다.

"교사님이 오늘 식사는 참석하기 힘들 것 같다고 하네요."

"... 왜죠?"

냉랭한 어조로 이유를 묻는 아셰리아.

헤르만은 땀을 삐질삐질 거리며 답했다.

"그게. 영주와 약간 문제가 생겨서! 오늘내일 저녁 식사를 함께하며 조율할 생각인가 봐요."

"……."

"그럼... 저는 다시 시온으로 가볼게요. 여러분. 잘들 쉬고 계세요!"

찬 바람이 쌩쌩 부는 아셰리아 공주를 피해 달아나려는 헤르만. 그는 신속하게 그 큰 나무에서 이탈했다.

사실 그의 마음속은 걱정투성이다.

지금껏 시온 자작령에서 본 바로는 해방 교단에 크게 위협이 될 사람은 없어 보였지만, 시하가 그 정도로 긴장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자신도 모르겠으니까.

만약 문제가 생길법하면 당장에라도 메디아 호수로 달려 지원을 요청할 생각이다.

사실 지금 빨리 돌아가려는 이유 중에는 시온 자작령의 일행들이 걱정되는 탓도 있었다.

그렇게 헤르만이 떠난 자리에서는...

아셰리아 공주는 차 탁자 아래 지면만을 뚫어져라 보고 있으며. 유나는 그녀의 눈치를 보는 중이다.

그걸 눈치채지 못한 알렉산더와 기디언이 말했다.

"스승님께 무슨 일이 생기신 거지?"

"영주와의 마찰이라고 했으니... 아마도 식량 배급에서 갈등이 있던 게 아닐까요?"

"그럴수도 있겠군."

그 대화에 유나가 끼어들었다

"에이. 별일이라도 있겠어. 의부님이라면 어떻게든 알아서 잘하시겠지."

"그 부분이야 스승님이시니까. 당연히 잘 해낼 것 같군."

"문제가 생기면 저번에 식량을 구할 때처럼 도움을 요청하셨겠죠."

"그래. 그러니까 아셰리아, 걱정하지 말고..."

"아무리 그래도..."

하지만 유나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쿵!

티 테이블을 작은 주먹으로 내려찍는 아셰리아.

다른 이들은 순식간에 합죽이가 되어버리고.

그녀가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다.

"공작이 사비 털어서 구제 활동을 벌이는데, 감히 갈등이라고요? 촌구석의 자작 따위가?"

"아셰리아. 의부님께서 알아서 잘하실 거니까..."

"그래도 정도가 있어요. 후작인 어미를 등에 업고 반항해보려는 수작인 게 분명해요."

평소에는 냉철한 아셰리아지만...

지금 상황을 깊게 생각할 수 없는 그녀였다. 그녀의 머릿속엔 몇 가지 단어만이 떠다닐 뿐.

선생님. 저녁 식사. 불참.

시온 자작령. 영주. 조율.

그 단순한 단어들 간의 싸움 속에서...

순식간에 마크 테크니는 '선생님과의 저녁 식사 시간을 빼앗아 간 적'이 되어버린 셈.

"여... 여동생아. 말이 심하구나."

"진정하세요. 공주님! 진정!"

"그래 아셰리아. 조금만..."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알렉산더와 기디언도 유나에게 가세해 그녀를 말려보려 하지만...

아샤는 거기에 기름을 부었다.

"지방 귀족 새끼들 하는 꼬라지 하고는. 공주님. 저도 마음에 안 드네요."

"어허! 아샤! 험한 말 멈춰!"

"이게 분위기 파악도 못 해서는!"

"맞습니다. 아샤. 이건 분명 문제 상황이에요."

"난 모르겠어..."

'선생님과의 시간을 되찾는다.'

한 가지 목적이 생긴 아셰리아의 두뇌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돌아간다.

사실, 그 목적 외에 다른 요소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순식간에 '정답'을 찾은 그녀가 말했다.

"맞습니다. 아샤. 반년 전 사건으로 지방 귀족들은 어느 정도 기강이 잡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모자랐네요. 내일 당장 시온 자작령에도 '시찰'을 나갈 필요성이..."

"리아. 스승께서 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건 저희가 구제 활동에 방해된다는 전제 하였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요, 오라버니."

"음. 그건 그러고 보니..."

그 모습을 지켜보는 레온은...

그저 머리를 싸맬 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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