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화 〉 2100. 시온 자작령 7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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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0. 시온 자작령 7일차.
척후조 인원들은 시온 자작령 내 광산 네 곳의 수색. 그리고 내가 직접 지휘하는 본대는 아침이 밝자마자 시온 자작령의 중심 소도시로 향했다.
내가 무인들과 함께 도시로 입장하자, 시온 자작령의 병력이 내 앞을 막아섰고, 우리 부대는 오십보 정도 되는 거리에서 그들과 대치하게 되었다.
"헤르만. 상대의 전력은?"
"눈에 보이는 기사 열 명에 영지병 백여 명."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전부 끌고 왔네. 너무 대응이 빠른 게 수상한걸."
중세 유럽의 기사와는 다르게, 에우데미아의 기사들은 대충 모아놓은 깡패 따위가 아니다.
그보다는 게임이나 소설 속에서 흔히 묘사하는 이상적인 기사 이미지에 가깝지.
당연히 그 몸값도 꽤 비싼 편이라 자작령에서 기사 열 명이면 꽤 많은 편이지만...
"이런 곳의 기사 중에 위험한 사람은 없겠지."
"당연하지. 성적이 좋은 인간들은 전부 왕실이 아니면 들여다도 안 보는걸."
같은 기사라 해도 급은 나뉘는 법.
이런 변방 자작령의 기사장이라 해봐야, 왕실 기사단의 준기사와 겨우 맞먹는 게 사실이다.
"기사 열 정도는 나랑 아일라, 그리고 너 정도면 충분하겠지."
"그거야 맞는데, 벌써 싸우려고?"
"물론 그 전에 저들의 반응부터 봐야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최고니까."
지붕이 없이 뻥 뚫린 마차에서 헤르만과 대화를 나누고 있자, 일전에 보았던 노집사가 나왔다.
그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임시 공작께서 언질도 없이 이곳을 찾으시다니, 어떤 용무로 오셨는지요."
"마크 테크니를 만나러 왔다."
"그런데... 이 병력만을 보면 단순히 대화를 바라고 오신 것 같진 않군요."
"당연하지. 그는 죄인이니까."
죄인.
그 단어에 영지병들 사이에서 술렁임이 인다.
어떤 말들이 오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 사이에 저런 동요가 생긴 것만 해도 큰 이득이다.
"조용!"
기사장의 외침에야 정숙해진 영지병들.
노집사는 그제야 말을 이었다.
"영주께서 죄인이라면, 그 죄목은 무엇인지요."
일개 자작가의 집사가 공작에게 이런 걸 묻는다.
제 딴에는 주인을 향한 충의겠지만, 원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적어도 자기 주인 되는 자가 직접 물어야 할 말이니까.
아마도 내가 중앙 출신의 영지도 없는 임시 공작이라 만만해 보이겠지. 이게 다 에우데미아의 중앙 권력이 애매한 탓이다.
왕권과 신권의 조화. 중앙과 지방의 균형. 그 아름답지만 개 같은 논리들이 존재하다 보니, 이 나라의 몇몇 고위 귀족들은 그걸 믿고 설치기 마련이니까.
사실 국가적 위기 상황에도 버티는 귀족 새끼들이다.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지금은 그런 경향이 더 심할 수 밖에.
거기에 저 집사는 결국 테크니 후작가의 등에 업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그가 기어오르는 것에는 나름의 계산이 깔려있을 것이다.
나는 말했다.
"집사장. 내가 오히려 묻지. 당신은 이 영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알고는 있는가."
"무엇을 말씀하시는지요."
"촌락민들은 이웃을 해방 교단에게 팔아먹고, 교단은 그 사실을 나에게 은폐하려 했지."
"영지의 위기 상황에 어쩔수 없이..."
개소리를 늘어놓는 집사장.
하지만 나는 저딴 인간을 존중할 생각 따윈 없다.
"닥쳐라. 늙어서 헛소리가 나오나 보군."
"……."
"내 이곳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고, 내가 직접 그 사실을 알아낸 시점에서 영주 역시 책임을 피할 수는 없지. 게다가 다른 혐의도 있지 않은가."
내 추궁에 대답이 없어진 집사.
그의 예상보다 내가 더 강경하게 나오기라도 한 걸까. 얼핏 본 그의 얼굴에는 당황한 빛이 맴돌았다.
짐작 가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겠지.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엔크라테아를 뽑으며 말했다.
"집사. 자네가 알고도 내 앞길을 막겠다면, 나는 말리지 않아."
내 자연 마력의 총량에는 분명 한계가 있고, 그에 따라 마력을 한 번에 소모하는 상급 마법은 쓸 수 없지만... 지난 반년간, 내가 놀고만 있던 건 아니다.
충분한 시간만 확보해줄 전위가 있다면, 이 정도 인간들쯤은 나 혼자서도 해치울 수 있다.
"네놈들을 전부 죽여서라도 이 촌극을 끝내고, 그 미친 교단을 왕국에서 도려낼 뿐이지."
조운회 습격 당시 성문을 부수기 위해 썼던 마법. 하늘 위에 그 화구를 조금 더 크고 뜨겁게 빚어낸다.
엔크라테아의 이성 버프로 마력을 차근차근 집어넣고, 검집을 통해 마력을 세세하게 조정하며 최고의 중급 마법을 만드는 것이다.
윤흠서를 비롯한 무인들은 내 마차 앞에 진을 쳤고. 적진은 점점 커지는 내 마법의 크기에 동요한다.
문을 닫고만 있던 주민들 역시 어느샌가 창문을 활짝 열고 내 마법을 멍하니 보고 있는 상황...
나는 물었다.
"막아내 보겠는가."
내 마법은 이미 이 거리를 덮을 정도.
집사는 그 광경을 멍하니 보더니 말했다.
"길을 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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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시온 자작령의 병력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시전 시간이 더럽게 긴 중급 마법이지만, 내 마법을 재해에 가까운 상급 마법으로 착각한 영지병들이 겁에 질렸으니까.
기사들 역시 병력의 질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인지, 집사의 결정에 토를 다는 인간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으니...
영주관에 도착하자. 늙은 집사가 내게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공작님. 이 늙은 집사가 감히 공작님을 시험했습니다."
"무슨 말인가."
"처음 공작님께서 이 땅을 찾으셨을 때, 해방 교단을 몰아낼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공작님마저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계신다는 정보가 들어왔었기에..."
"그 말은..."
"저는 어디까지나 테크니 후작가의 인간이며, 시온은 테크니의 일부. 도련님께서 테크니 가에 해를 끼치는 길을 걸으신다면, 그 뜻을 바로잡을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본가나 왕실에는 알리지 않은 거지."
"몇 번이고 전령을 보냈으나... 그때마다 해방 교단의 사제들에게 차단당했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나는 헤르만에게 물었다.
"헤르만. 왕실의 그림자들은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사람들로만 보냈다고 했지?"
"확실해. 나와 오랜 시간 함께 지냈던 놈들이니까. 그리고 우리 조직은 누구와 만났는지까지 서로 감시하게 되어있어. 기본적으로 변절은 꿈꿀 수 없는 구조라 해야 하나."
"... 혹시 모르니 확인은 해둬.
"알았어."
"그리고... 그게 아니라도 이번엔 그림자들의 움직임이 파악된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왜?"
"그림자들이 철수하자마자 마을 주민들을 데려가기 시작했잖아. 분명 정보원이 있었던 거야."
"흠. 그쪽으로도 조사해볼게."
이게 지금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해방 교단에 비해 정보전에서 밀리고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자 불안을 지울 수 없다.
…….
일단 할 수 있는 일부터 하자.
나는 집사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마크 테크니는 지금 어디 있지?"
"도련님께서는 해방 교단의 주교를 만나고 오신다고 외출하셨습니다."
"그의 행선지는?
"행선지의 위치는 항상 비밀로 하셨기에..."
…….
씨발.
* * *
시온 자작령의 한 폐광.
해방 교단의 교인 두 사람이 보초를 서고 있다.
그런 그들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있었으니...
폐광 입구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곳에서 클로에가 인환에게 물었다.
"조장님. 여기가 확실한 것 같죠?"
"그래. 설마 이곳이었다니."
"공작님도 이곳은 폐광이니까 가능성은 제일 낮다고 하셨는데 말이에요."
"이렇게 된 이상. 해방 교단의 목적은 적어도 광물이 아니라는 게지."
처음 시하는 해방 교단의 목적이 테크니 령의 풍부한 마력석이라 예상했었다. 각종 무기와 마도구에 두루 쓰이는 마력석은 전 세계를 움직이는 중요한 자원이자 자금원이니까.
척후조는 그 예상에 따라 앞서 세 곳의 광산을 돌아보았으나... 그 결과는 전부 허탕.
혹시나 싶은 마음에 이 폐광에 와보니, 해방 교단이 저렇게 보초를 서고 있다.
'마력석을 노리는 게 아니라면 도대체...'
인환은 그런 의문을 마음속에 품은 채 시하에게 받은 마지막 지도를 펼쳤다.
다른 조원들도 한 데 머리를 맞대고 그 지도를 보며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미 채굴이 많이 진행되어 공동이 많군. 사실상 여러 개의 방이 있는 땅굴처럼 생겼어.."
"그만큼 깊기도 해. 교인들은 하나씩 제거하며 전진하면 큰 소란은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조장. 그렇다면 산개해서..."
"아니. 그건 불허한다."
인환의 단호한 대답.
그에 선재와 서준이 의아한 듯 물었다.
"왜? 이 정도로 넓은 곳을 수색하려면 산개하는 편이..."
"이 구조를 봐라. 각 공동에 몇 명의 해방 교단이 있을지 모른다. 최대한 클로에의 귀를 믿고 안전하게 나아가야만 해."
"하지만... 납치된 주민들의 수가 꽤 많지 않나."
"선재. 서준. 두 사람에게도 여기서 명확히 밝히도록 하지. 우리 목적은 주민 구조가 아니다."
그의 답에 잠시 말문이 막힌 두 사람.
클로에는 이미 본부에서 들었던 내용이라, 그저 멍하니 근처의 땅을 보고 있을 뿐이다.
인환이 말했다.
"공작과 약속했다. 우리 모두 몸이 성하여 돌아가기로."
"그렇다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하고, 공작에게 보고하는 것. 그게 우리의 목표다."
"……."
"이제 우리도 목숨 버릴 생각은 관둬야지."
잠시간의 침묵.
척후조는 언제나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았고, 인환 역시 그런 부류에 속했다.
서준과 선재는 갑작스러운 인환의 말에 고민하다가... 자신들도 모르게 클로에를 힐끔 훔쳐보게 되었다.
그 소녀는 아직도 땅만 보는 중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본 뒤 인환에게 말했다.
"죽을 생각이 제일 많던 놈이 그런 말을 하다니."
"애초에 난 죽을 생각 없었다."
"그래. 작전 효율성 때문에 그런 얘길 한 거지."
"네가 그런 걸 생각했다고?"
"이 새끼가 또 시비네?"
"둘 다 조용."
인환의 제지에 다시금 조용해진 두 사람.
그걸 확인한 인환은 조용히 작전을 지시했다.
"먼저 보초들이 교대하는 시간을 노린다."
"내가 두 명을 동시에 죽일 수 있도록 화살로 처리할테니... 그때부터 잠입을 시작하지."
그리고 인환은...
가장 중요한 목표 하나를 동료들에게 강조했다.
"다시 한번 말한다. 우린 절대로 살아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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