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 2101. 시온 자작령 7일차.
* * *
2101. 시온 자작령 7일차.
검은 로브를 머리끝까지 두른 교인 두 사람이 폐광 입구로 나오며 상투적인 인사를 건넸다.
"교대 시간이다. 별 이상은 없었지?"
"그래. 안쪽은 잘 되고 있냐."
"뭐. 그렇지."
"그럼 보초 수고해라."
무난하게 이루어진 근무 교대.
그로부터 5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근무를 서는 교인 하나가 말했다.
"왜 일정을 반년이나 당기라는 건지 모르겠네."
"덕분에 마을에 배정되는 시간은 줄었잖아. 난 여기가 훨씬 더 편해."
"그건 그렇지."
두 사람 사이에 찾아온 잠시간의 침묵...
사실 교인들은 각자의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 모였을 뿐, 서로 간의 유대감이 깊지는 않다.
하지만 각자의 성향 차이라는 존재하는 법. 먼저 말을 꺼낸 보초는 꽤 말이 많은 편이었다.
"야. 너 그거 아냐."
"뭐."
"저기 아래에 갇힌 사제 있잖아."
"어."
"그 새끼. 주교한테..."
말을 이어 나가려던 그가 다른 동료를 본 그 순간.
"억...!"
동료의 목에는 피가 터져 나오고 있었으며, 그 피보라의 중앙에는 날카로운 촉 하나가 보였다.
'촉... 화살?'
느려진 세상 속에서 그 정체를 파악한 교인이었으나... 피하기에는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동료의 목을 뚫고 날아오는 그 화살촉은 그대로 말 많은 교인의 목에 박혔고. 그는 절명했다.
화살이 날아온 방향에서 척후조가 튀어나온다.
"서준. 선재. 시체를 숨겨라."
""예.""
"클로에. 방금 들어간 둘의 냄새는 기억했느냐."
"네. 그런데 빨리 쫓아가야 해요. 제가 냄새는 특기가 아니라서..."
"알았다. 수습이 끝나는 대로 진입한다."
.
.
20여 분 뒤.
교단의 은신처로 의심되는 폐광에 진입한 척후조였으나, 인환의 마음속엔 의심이 싹텄다.
상황이 너무 순조로웠기 때문이다.
'좁고 긴 통로의 중간 지점마다 있는 공동을 둘이나 지나쳐왔는데 교인을 보지 못했다.'
'교인의 수 자체가 적다거나. 모든 교인이 대공동에 모여있다거나. 둘 중 하나인데...'
시하가 건네준 이 폐광의 지도에는 종 모양의 대공동이 하나 있고, 그를 중심으로 수많은 방과 갱도가 연결되어 있었다. 지금 척후조의 앞에 남은 공동은 그곳 뿐.
대공동의 명칭은 보스 룸. 인환이 그 의미 묻자, 시하는 그저 대공동의 꼭대기에서 더 이상 내려가지 말라는 답만을 주었다.
그 이유는 여러 방과 갱도에 숨어있던 적들이 한꺼번에 나오면 포위당하기 쉽다는 것.
인환이 머릿속으로 셈을 하던 중, 클로에가 말했다.
"조장님. 여기가 유일한 갈림길 아니에요?"
"그래. 그놈들은 어디로 갔느냐."
"왼쪽이긴 한데요. 그게..."
더 말하기를 망설이는 클로에.
그녀에게 인환은 말했다.
"말해도 된다."
"피와 분뇨의 냄새가 점점 짙어져요."
"... 혹여 가축의 냄새는 아니더냐."
"……."
인환의 물음에 클로에는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한때 폭력이 난무하는 슬럼가에서 살아도 보았던 클로에다. 이 냄새가 가축의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인환은 그런 클로에에게 말했다.
"클로에. 공작의 말대로 우리가 상대하는 자들은 미친놈들일 수 있다. 각오 단단히 하거라."
"네."
"선재. 서준. 우리 앞의 길을 조금만 더 가면 대공동의 상층부와 이어진다. 사람이 많아지면 발각될 가능성이 커지니, 여기서 대기하며 퇴로를 확보해두도록."
"그래도 함께 가는 게..."
"아니. 어차피 시하 공은 대공동의 위까지 진출하는 것만을 허가했다. 절대 발각당하지 않을 정도로만 하고 올 터이니, 퇴로를 확보하고 있게."
인환의 말에 고민하던 서준과 선재는 어쩔 수 없이 명을 수락했다.
"알겠네."
"어쩔 수 없겠군."
"그럼 클로에. 우리는 계속 진행한다."
"네."
* * *
그 후 또다시 걷기를 5분.
인환과 클로에는 '보스 룸'이라 명명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적진이지만... 굉장하군."
"네. 생각보다도 엄청 넓네요."
"마치 개미집에 온 것 같구나."
말 그대로 종 모양처럼 생긴 거대한 공동. 짙게 깔린 어둠을 밝히려 애쓰는 희미한 마력등.
그 깊이는 100미터는 가뿐히 넘을 듯하며, 그 폭과 너비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정녕 이곳이 인간의 작품인가 싶은 의심이 들도록 하는 공간.
그 둘레에는 나선형의 통로가 존재하며, 일정 구간마다 인부들이 사용하던 것으로 보이는 방과 갱도로 이어지는 통로가 뚫려 있다.
지도에 따르면 갱도의 갯수만 20여 개.
최상층에 위치하는 곳에서 인환이 말했다.
"네가 맡았다던 냄새가 심하게 나는구나."
"조장님. 저기 방마다 있는 저건 뭘까요?"
"흠. 마도구에 쓰이는 마력선 같은데, 왜 저런 탁한 빛을 내뿜고 있는 거지?"
"저는 저런 빛을 어디서 본 것 같긴 해요. 은색에 칙칙한 검정이 섞인 듯한..."
지도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았지만, 이 대공동에는 수은을 닮은 어둡고 끈적한 무언가가 벽에 그려진 선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그걸 보고 인환은 생각했다.
'마법진의 획 하나하나는 전용 안료로 그려지기 마련. 그 안료들은 각자 고유의 색을 띤다.'
'하지만 저런 빛을 내는 안료는 세상에 없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한 가지...'
유일하게 세상에서 '고유의 색'이 없는 안료.
만약 저 마력선이 심상 마력 검사지에 쓰이는 그 안료로 그어진 것이라면...
"재앙. 부정의 마력."
"아. 맞아요. 제가 수인국에서 잡았던 보어가 저런 색이었어요."
"입마. 아니 타락해버린 자들이 심상 마력을 사용할 때도 저런 빛을 낸다더구나."
"... 그렇군요."
"그런 마력을 사용한다는 건... 이들이 판타스매터의 출현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겠지."
그렇게 중얼거린 인환은 발밑을 내려다본다.
하지만 희미한 달빛조차 존재하지 않는 폐광의 내부인지라, 마력으로 강화한 그의 눈에도 탁한 빛 외에는 보이는 게 없었다.
그는 클로에에게 말했다.
"너무 어두워서 저 밑이 보이지 않는구나."
"제가 한 번 볼게요."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조심스럽게 아래쪽을 내려다보는 클로에.
하지만 그 끝이 너무나도 멀기에, 묘인족인 그녀의 눈에도 탁하게 빛나는 무언가만이 보인다.
"밑에 마법진 비슷한 게 있어요."
"다른 것은?"
"마력진의 빛 때문에 다른 건 잘 보이지 않아요. 너무 깊기도 하고요."
"알겠다."
인환은 지금까지의 정보를 머릿속으로 정리해보지만... 무언가 꺼림칙한 예감만이 있을 뿐, 결정적인 무언가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클로에에게 물었다.
"클로에. 네가 말한 냄새와 소리의 근원은 어디인 것 같으냐."
"냄새는 사방에 진동하고 있는 데다, 소리도 엄청 많이 울려서 확실하지 않아요."
"뭐라고?"
"... 사실 저 방들마다 전부 같아요."
"……."
"어떻게 할까요. 대장님?"
분명 시하는 이 이상 내려가지 말라는 지시를 했었지만... 지금 여기서 한 발자국만 나아간다면 무언가 큰 실마리를 잡아낼 듯한 예감이 든 인환이었다.
고뇌하던 그는 무구를 점검하다 말했다.
"클로에. 내가 첫 방까지만 정찰하고 오마."
"공작님께서 이 이상 가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그건 포위당할 때를 상정한 지시였다. 첫 번째 방은 포위 따위 당하지 않아."
"그래도..."
"각 갱도마다 거리가 어느 정도 멀게 형성되어 있구나. 이 정도면 충분히 후퇴할 수 있다."
"……."
그의 말에 망설이는 클로에.
지금껏 인환의 앞에서 참고 있었을 뿐, 그의 귀와 코를 괴롭히는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인간의 몸에서 배출된 오물이 방치되었을 때의 냄새. 상처를 입었을 때 흐르는 비릿한 피의 향. 고통 속에서 뱉어내는 낮은 신음.
그 모든 게 그녀를 괴롭히고 있다.
그리고, 그런 현장에 누군가를 혼자 보내기는 싫었다.
"저도 그럼 같이 갈래요."
"여기서 대기하거라."
"싫어요."
"……."
"저도 도망에는 자신 있어요."
"후우... 그럼 절대 위험한 짓은 말거라."
"네."
어두컴컴한 대공동.
벽면에 설치된 희미한 마력등과 칙칙한 은색의 빛을 의지해 조심스럽게 전진하는 두 사람...
대공동의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방에 도달하자, 닫힌 문틈으로 새된 웃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아하하하! 이것 좀 봐. 새로 들어온 놈이라 아직 힘이 넘치잖아!"
"... 쯧. 성질머리 고약한 년."
"이 새끼가 점잖은 척하기는. 지가 이렇게 만들어놓고 지랄이야."
남녀의 대화 사이로 무언가가 땅에 끌리는 소리와 함께 힘없는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으으으..."
당장 이 문을 걷어차고 내부를 확인하고 싶지만, 이곳에 몇 명의 교인이 있는지 확실치 않다.
인환은 위로 솟은 클로에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다음 방에는 소리가 있느냐."
"... 없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지금 이 대공동이 워낙 넓다 보니, 방마다의 거리가 꽤 되는 편이다.
거기다 본거지에서는 긴장을 풀 수밖에 없는 법. 교인들이 이 방 바깥으로 새 나가지 못하도록 순식간에 제압한다면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틈을 봐서 돌입하마. 너는 바깥에서 대기하거라."
"... 네."
그렇게 말한 인환은 소리 없이 칼을 뽑아 쥐었고, 적절한 틈을 잡기 위해 대기했다.
방 안의 교인들이 말했다.
"봐. 아등바등하는 꼴이 참 귀엽지 않아?"
"미친년."
"지랄은. 그럼 들어가서 먹이나 줘볼까아..."
어디를 들어간다는 건지 그 말뜻은 알 수 없다.
잠시 후 짝짝거리는 박수 소리와 함께 여자 교인이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
"돼지야아! 여기야! 여기 밥이 있어요!"
그 소릴 들은 인환은 곧장 문을 열고 돌입했다.
열 평 남짓한 작은 방에는 감옥처럼 쇠창살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그 창살 밖에는 남자 교인이 서 있었다.
인환은 곧장 그 교인에게 돌진했다.
"무... 무슨!"
침입자를 알아차린 남자 교인은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으나... "하압!" 인환의 기합과 함께 그 자세 그대로 양단 당했다.
창살 안쪽에 있던 여자 교인이 황급히 나오며 마력을 손에 담아낸다.
"너. 너... 뭐야!"
그에 인환의 시선은 자연스레 그쪽을 향했고.
그 안에 기어 다니는 '돼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
그 돼지의 정체는 인간이었다.
무릎과 팔꿈치 아래에는 존재하지 않는 사지.
그 끝은 전부 불로 지져버린 듯 태워져 있으며
안대로 가려진 눈에서는 피눈물이 흐르고
재갈이 물린 입에서는 신음이 새어 나온다.
인환은 남은 교인에게 달려들었다.
"이 쓰레기 놈들!"
여자 교인은 최대한의 마력으로 장벽을 치러내려 했으나, 완전히 자세를 잡은 인환의 참격을 완전히 막아낼 순 없었다. 그녀의 한쪽 팔은 그대로 땅바닥에 떨어진다.
"꺄아아악!"
도망쳐야 한다. 그 생각이 든 여자 교인은 남은 손으로 견제용 물 마법을 쏘려 했지만... 인환은 그 물 마법째로 여인의 목을 베어버렸다.
"후우..."
"조장님! 괜찮으세...요?"
인환이 숨을 돌리는 사이, 클로에가 다급히 방 안으로 들어오며 인환의 상태를 보려 했지만...
"히익!"
창살 안의 참혹한 광경을 목격해버렸다.
"보지 말거라! 나가 있어!"
"...네!"
방 구조를 확인한 인환은 벽면에 마법진이 빼곡히 그려져 있는 감옥에 들어갔다.
그리고 주민의 입에 물린 재갈을 벗겨낸다.
"... 어떻게 된 건가."
"즈겨어... 즈어..."
하지만 주민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교인들이 혀까지 도려낸 탓이었다.
하지만 인환의 귀에는 주민의 소원이 똑똑히 들린다.
그의 소원은.
구원.
"... 이 썩을 놈들."
인환은 주민이 최대한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단칼에 목을 베자... 감옥 벽면을 메우고 있던 탁한 빛이 꺼져버렸다.
인환의 머릿속에는 여러 단어와 말들이 스쳐 지나간다.
클로에의 의뢰. 기근. 재앙. 부정의 마력. 보어. 먹이...
해방 교단은 적어도 재앙을 유도할 순 있습니다.
힐데스비니를 저렇게나 자세히 묘사하니까요.
…….
'그 이명은 탐식, 그렇다면 이 쓰레기들은...'
밖에서 클로에가 외쳤다.
"조장님! 밑에서 놈들이 올라와요!"
"바로 여기서 탈출한다! 서둘러!"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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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 침입자입니다! 비명이 들리더니 72번 마법진의 가동이 중단되었습니다!"
"허허. 그렇군. 잠시 대기하라."
"...예!"
침입자라는 말에도 허허 웃으며 태연하게 지령을 내리는 주교, 절제자 뵈브.
그에 성난 마크 테크니가 묻는다.
"주교. 이곳에 침입을 허가해놓고 웃음이 나오나? 미치기라도 했나 보군!"
"왜. 뭐가 문제지?"
"침입 자체가 문제지!"
"허허..."
뵈브는 이번에도 웃으며 말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대공동 최하층 중앙, 자그마한 흑색 구슬이 놓인 곳으로 천천히 향했다.
그 주변은 부정의 마력으로 꿈틀거리는 중이다.
주교가 말했다.
"마크 테크니. 네놈에게 지금 당장 시련을 주마."
"뭐... 뭣!"
"말 그대로 네 모든 것을 해방할 시련이지. 흑옥을 줄터이니, 너 자신을 옭아매는 봉인을 직접 풀어내도록."
"……."
주교는 꿈틀거리는 어둠을 머금고 있는 흑옥을 마크에게 넘겼고, 이어 측근 사제에게 말했다.
"추격조는 나를 포함해 다섯이면 충분하다. 나머지는 마크 테크니의 시련에 함께 하도록."
"예. 그리하겠습니다."
측근 사제는 마크 테크니와 함께 자리를 비웠고.
주교는 해방 교단의 앰블럼이 그려져있는 거대한 원형 방패를 집으며 읊조렸다.
"그가 다시금 자신을 해방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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