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138화 (138/215)

〈 138화 〉 2­102. 시온 자작령 ­ 7일차.

* * *

2­102. 시온 자작령 ­ 7일차.

테크니 가문은 에우데미아를 떠받치는 세 개의 후작 가문 중 가장 부유하기로 유명하다. 아니, 사실 그들은 왕실 다음가는 수입을 벌어들인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테크니는 어떻게 그런 부를 축적할 수 있는가. 그 원천은 가문이 대대로 쌓아 올린 마법진 기술과 영지에서 나는 풍부한 마력석이다.

200년 전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악인기. 당대 테크니 가주는 여러 국가와 협력 관계를 맺었다. 그 목적은 평범한 사람들도 마도구를 사용해 싸울 수 있도록 하는 것.

이는 그 어려운 시기를 넘기는 중요한 동력 중 하나가 되었고, 당대 가주가 만들어낸 관계망은 이후 찾아온 평화 시기에 막대한 부를 거머쥘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 과업을 달성한 가주는 두 가훈을 남겼다.

'우리는 기술에 의하여 규정당해서는 안 된다.'

'세상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는 스스로 정하라.'

이 두 가훈은 지금도 테크니 가문에 전승되고 있다.

* * *

시온 자작령의 중심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언덕의 위에서, 마크 테크니의 주교의 말을 곱씹었다.

'너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봉인을 직접 풀어내도록.'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봉인. 그로부터 '해방'된다면 동경하는 그녀와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봉인은 무엇인가. 마크는 그것이 테크니 가문과의 연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왕국을 이루는 한 획이 되어라.'

'너의 기술은 주변을 위해 있다.'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라.'

지금껏 가문은 자신을 속박하는 말들을 강요해왔고, 그들은 단 한 번도 마크를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그것도 모자라 가문은 이 좁은 땅에 마크를 가두어버렸다.

그렇기에 마크 테크니는 오늘. 가문으로부터의 독립을 선포할 생각이다.

주교가 직접 붙여준 사제가 말했다.

"이미 영주관은 공작에게 장악당했다는군."

"... 이시하 공작."

마크는 공작에게 어느 정도 감사하고 있었다.

그가 차남회의 찌꺼기들을 벌하고, 발람과의 결투에서 이겨주지 않았나. 덕분에 마크 자신은 성녀의 눈길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지금은 시기심이 샘솟는다.

주교가 말하길. 시하 공작은 자신이 동경하는 그녀와 같은 높이에 설 자격이 있다고 했으니까.

그 한마디에 질투하지 않는다면 남자가 아니다.

"마크 테크니. 어떻게 할 것이냐."

"어떻게 하긴. 정면 돌파만이 답이다."

"……."

"세상에 온 지 겨우 반년밖에 안 된 표류자가, 무슨 수로 흑옥을 품은 재앙을 막을 수 있겠나."

마크 테크니는 손안의 흑옥을 바라본다.

"이는 내 헌신의 증표와 같지."

해방 교단이 흑옥을 주조하던 기존의 방법은 상당히 무식했었다. 부정의 마력을 모으는 수율도 낮고, 그 질마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방식이었으니까.

하지만 마크 테크니는 자신의 마법진 이론을 적용해 부정념을 농축시키는 공장을 만들었다.

인위적으로 부정의 마력을 생성하는 것은 기존의 방식과 같았으나, 그 마력을 정제하는 방법은 온전히 마크의 것이다.

사실 처음부터 그가 이 일을 즐긴 건 아니다. 그도 에우데미아의 한 축인 테크니의 아들이니까.

하지만 그는 자기 행동에 한 가지 의미를 부여했다.

'이 모든 것은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해주고 품어준 성녀를 따르기 위해. 유일하게 나를 봐주는 한 사람의 부탁을 들어줄 뿐이다.'

그리고... 부탁을 들어주는 과정에서 마크 테크니는 가슴 속에 희열감을 품게 되었다. 가문이 강요했던 모든 말이 새로운 의미를 찾았기 때문이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내 기술은 성녀를 위하고 있다.'

'성녀만을 위한 한 획이 되겠다.'

'오직 성녀만의 도움이 되리라.'

어떻게 보면, 마크 테크니는 한 사람만을 위해 미친 사람이 되어버린 격이다.

* * *

시온 자작령 영주관 집무실.

"공작님. 도시 외곽에 마크 테크니가 접근했다는 보고입니다! 그 옆에는 해방 교단의 교인들도 동반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 그 미친놈들을 데려왔다고?"

"예! 그 수는 칠십에 가깝습니다!"

이건 이상한데.

게임 속에서 저 쓰레기들은 사회에 스며들어 혼란을 만드는 게 목표였었지. 교단이 저렇게 떼로 나타나는 경우는 전면전뿐이었다.

거기다 마크 테크니는 교단과의 연결고리를 최대한 숨겨야 하는 처지. 그런 그가 교단 병력을 죄다 이끌고 오는 이유는 하나뿐.

... 하지만 그건 말이 안 된다.

옆에 있던 윤흠서가 말했다.

"아마도 마지막 발악이나 해보려는 걸 테지."

"대장님.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시하 공."

"우리는 각자 본부에서 분대 단위로 따로 출발한 뒤, 소도시 앞에서 재집결했었죠."

"그랬지. 우리 측 정보를 최대한 숨기기 위함이라 하지 않았소. 그런데 그게 왜?"

"... 그 전에 확인해볼 게 있습니다."

나는 곧장 노집사를 돌아보며 물었다.

"집사. 내가 이 소도시에 도착한 직후부터 이 도시를 나간 인간이 존재하는가?"

"없었습니다. 출입은 전부 통제했으니까요."

"그렇다면 이곳에 남은 교인들은 있었나?"

"그 역시 없었습니다. 이틀 전을 기점으로 교인들은 도시에서 자취를 감춘 상태였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곳의 상황을 마크에게 전할 사람은 없었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해방 교단이 구석에 몰려 그들의 이빨을 드러내고, 마크 테크니가 내게 본격적으로 적대해야 하는 이유.

도시의 상황을 해방 교단과 마크 테크니에게 전할 사람이 없었음에도, 그들이 '마지막 발악'을 하는 이유.

... 내가 오늘 고른 선택지는 오직 두 개뿐이다.

나는 당장 헤르만에게 말했다.

"헤르만. 지금 척후조가 위험해."

"... 아."

"너도 이해했지?"

"그래. 그런데 어떻게 해야..."

"우리 일행 가운데 단독 행동을 재빠르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야."

"……."

헤르만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알았어. 내가 가는 수밖에. 그런데 어디부터 가야 할까?"

"척후조가 출발하고 시간이 꽤 지났어. 이 정도면 각 광산을 역순으로 가보는 게 좋을 거야."

"... 형님. 나 없는 동안 무리하지 마."

"알았어."

"아일라. 형님 똑바로 봐야 해."

"알겠습니다. 헤르만 님."

아일라에게도 단단히 일러둔 뒤 영주관을 빠르게 나서는 헤르만.

나는 집사에게 물었다.

"집사. 작은 주인과 맞서게 될 수 있다. 자네와 영지의 전력들은 내 힘이 되어줄 수 있겠나?"

"... 방금도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평생 테크니만을 모셔 온 몸. 마크 도련님 개인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알겠네. 그럼 함께 나가지."

윤흠서는 지금까지의 대화들을 통해 상황을 파악한 듯 고심에 잠겨있는 상황.

나는 그에게도 말했다.

"윤 대장님. 일단 척후조는 헤르만에게 맡길 수밖에 없어요."

"... 미안하오."

"괜찮습니다. 교인들과 맞붙게 되면 제압할 생각은 하지 말라고 부대에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알겠소. 먼저 나가서 출전 준비를 하지."

윤흠서가 나가고 나 역시 장비를 점검했다.

상처에 뿌리는 포션과 에우데미아 성당에 사정사정해 얻은 치유마법 스크롤. 이 둘의 효과는 치유마법에 비해 미미하지만, 응급 처치용으로는 괜찮을 것이다.

그리고 각종 방어 장비와 여섯 달을 함께 한 엔크라테아까지...

점검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려 하니, 문득 조금 전에 헤르만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 일전에 내가 숲에서 윤흠서와 맞선 뒤로 잔걱정이 많아진 그다. 하지만 이번엔 괜찮을 거다.

'이번엔 나 혼자 있는 게 아니니까.'

지금 저 밖의 해방 교단은 고작 70명.

그에 반해 내 휘하의 인원만 35인에, 영지 전력을 전부 합치면 이쪽은 140여 명에 달한다.

상식적으로 우리가 이길 수밖에 없다.

"아일라. 우리도 가자."

"알겠습니다. 공작님."

* * *

영주관이 존재하는 소도시의 둘레에는 자그마한 성벽이 있다.

사실 성벽이라고는 해도 그 높이가 웅장하지는 않다. 높이는 해봐야 7미터 정도. 각력에 자신 있는 수인이 점프만 해도 넘어버릴 수준.

그 초라한 성벽 위에 시하가 오르자, 가까운 곳에 마크 테크니가 그의 눈에 보였다.

전투가 시작하기 전 마지막 대화를 하려는 건가. 시하는 간단한 확성 마법으로 외쳤다.

"마크 테크니. 지금 꼴을 보아하니 영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알고 있었던 듯하구나!"

시하의 외침에 마크 역시 답한다.

"시하 공작. 제 영지를 제가 관리하는데, 왜 그런 참견을 하시는지요."

"재앙을 신봉하는 쓰레기들과 함께한다니.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하! 거기까지 알고 있다니..."

역시나 사도 후보에 오를만한 인간이라는건가... 마크 테크니는 그렇게 생각했다.

잠깐의 침묵.

그리고 마크 테크니는 외쳤다.

"세바스찬 집사장! 왜 네놈은 공작에게 저항하지 않았지?"

"도련님. 이분은 공작입니다. 그리고 도련님께 혐의가 있지 않았습니까."

"허나 자네는 내게 충성해야 하는 입장일 텐데!"

그의 물음에...

늙은 집사장은 힘없이 답했다.

"... 도련님. 저는 테크니 후작가의 가신입니다. 당신 개인의 소유가 아닙니다."

"……."

"당신을 극진히 모시던 것도 후작 각하의 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당신은 가문의 미래를 위협하는 무리에 가담하고 있죠. 제가 당신의 편에 설 이유가 없습니다."

마크 테크니는 집사의 대답에 할 말을 잃었다.

세바스찬은 어릴 적부터 자신을 보필해오던 집사였다.

'지금의 자신을 말리려는 시도라도 하지 않을까.'

마크에게 그런 기대감이 없었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막상 돌아온 말은... 자신을 '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 마크는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나... 저 가문에서는 진정으로 나를 위하는 자는 단 하나도 없었군.'

이미 한 사람만을 위해 살기로 결심했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 마음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

마크는 흑옥을 발동시키기 위해 자신의 마력을 조금씩 흘려보내었다.

그 순간.

­ 까악까악

주위 숲에서 온갖 날짐승이 퍼드득 날아올랐고,

한 짐승의 중후한 울음소리가 지천을 울린다.

수많은 들짐승이 달려오는 듯한 소리와 함께

쿵 ­ 쿵 ­ 대지를 뒤흔드는 굉음도 울려 퍼진다.

... 잠시 후.

타르와 같은 검은 마력에 물든 수많은 괴수가 자그마한 성벽으로 쇄도하기 시작한다.

"시하 공! 저 수는...!"

"상급 재앙의 떨거지들..."

그리고 마침내.

숲의 나무들이 전부 쓰러지면서, 성벽만 한 높이를 가진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주홍 불꽃으로 불타오르는 네 개의 발굽.

탁한 은색 마력으로 뒤덮인 전신의 체모.

찬란한 금빛으로 훤히 드러난 거대 엄니.

자신의 눈높이에 있는 성벽을 바라보는 그 괴수는... 얼핏 일그러진 웃음을 짓는 듯하다.

시하는 멍하니 혼잣말을 내뱉었다.

"탐식의 대재앙..."

"힐데스비니..."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