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139화 (139/215)

〈 139화 〉 2­103. 시온 자작령 ­ 7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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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 시온 자작령 ­ 7일차.

온갖 곤충과 동물, 그리고 마물들까지. 그 모든 것이 부정의 마력에 침식당한 채 몰려오고 있다.

그 수는 적어도 이백, 혹은 그 이상. 숲속에서 튀어나온 그것들은 3분 내로 성벽을 오를 것이다.

시하의 옆에 서 있던 윤흠서가 외쳤다.

"시하 공. 자료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큰 놈이오! 저건 이미 단순한 B급 재앙이 아니오!"

"진정하세요. 윤 대장님."

동방에서 수많은 재앙과의 전쟁을 치러온 윤흠서조차 한 명 지휘관으로서 당황한 상태. 다른 사람들은 더 심각할 수밖에 없다.

성벽 위에 선 영지병들의 얼굴에는 절망의 빛이 떠오르고, 기사들은 애써 내색하지 않는 게 고작이었다. 수인 아이들 역시 처음 보는 상급 재앙의 위세에 몸이 굳어버린다.

그나마 경험 많은 동방의 무인들만이 각자의 칼을 뽑아 들고 전투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시하는 검을 뽑아 들며 아일라를 불렀다.

"아일라. 적진 한가운데에, 네가 쏠 수 있는 최대 규모의 번개 마법을 떨어뜨려."

"알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필요합니다."

"영창에 필요한 시간은?"

"10분입니다."

"시간은 우리가 번다. 시작해."

마법서를 펼쳐 든 아일라가 한 손을 하늘로 뻗고 영창을 시작하자, 먹구름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일라가 행하는 주문은 거대한 자연 현상 그 자체를 마력으로 유도하는 상급 마법. 그 주문은 여러 절차와 이론을 담고 있기에, 마법 완성까지 오랜 시간과 큰 노력을 들여야 한다.

그 사이 시하는 다른 두 사람을 불렀다.

"윤 대장님. 집사장."

"... 말하시오."

"... 예."

집사는 긴장감에 떨리는 목소리로 답한다.

그 역시 이런 습격을 보는 건 전대 테크니 가주와 함께 막아낸 이후로 처음이기 때문.

시하는 왼손안에 두 개의 폭탄 마법 구슬을 생성하며 말을 이어 나간다.

"영지병들과 수인 아이들은 전부 주민들을 피난시키는 데 돌리세요. 피난지는 영주관."

"그렇게 되면 전선이 무너질 수도...!"

"지금 힐데스비니를 보세요."

시하의 말에 멀찍이 떨어진 힐데스비니를 바라보는 윤흠서. 대재앙은 오만한 눈길로 자신의 아랫것들을 내려다보며 일그러진 웃음을 보이고 있다.

시하는 말을 이었다.

"힐데스비니는 쉽게 적을 죽이지 않아요. 적을 타락시키고, 참상 속에서 몸집을 불리려 하죠."

"그런...!"

"타락에 저항할 수 없는 사람이 있어 봐야 아군을 물어뜯는 괴물로 변할 뿐입니다. 마력 적성이 높은 사람만 남기고 전부 전선에서 제외하세요."

혜세국의 수많은 자료 속에도 존재하지 않는 정보를 술술 읊어내는 시하. 그런 그에게 말문이 막힌 윤흠서는 잠시 고민하다 부관에게 말했다.

"부대에 공작의 명을 전하라!"

"예!"

듣고 있던 집사 역시 자리를 나서며 말했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그사이 완성된 폭발 마법의 구슬들.

시하는 그것들을 바람 마법에 날려 보냈고, 그 마법들은 보기 좋게 하급 재앙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펑! 소리와 함께. 그 구획에 있던 재앙들은 마법의 여파에 휩쓸렸지만, 그 빈 자리는 금세 다른 재앙들로 메꾸어진다.

시하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적들을 후속 마법으로 요격하며 생각했다.

'힐데스비니의 디버프는 두 개. 기근과 폭식. 기근은 접근한 대상의 이성을 깎아내리고, 폭식은 이성 스텟이 부족한 자를 미치게 한다.'

'내 지식과 마력 이론들을 연관 지어 생각해보면, 분명 지금 내가 고른 선택지가 정답이야. 게임 속 힐데스비니 토벌의 첫 단추도 이거였어.'

'하지만 이 작전은...'

시하가 고민하는 사이, 수많은 재앙이 성벽 근처로 쇄도해 벽을 타오르려 하기 시작했다. 성벽에는 남은 기사들과 무인들이 올라오는 적들을 애써 쳐내는 상황.

시하의 옆에서 윤흠서가 말했다.

"나도 전선에 서겠소."

"그 전에 윤 대장님. 아일라의 마법이 떨어진 후에는 저희도 영주관으로 후퇴합니다."

"... 알겠소."

윤흠서가 자리를 비우자, 시하는 청명한 마력을 끌어올렸다.

'잡몹을 쓸어버리는 데엔 역시...'

언젠가 발람과의 결투에서 사용했던 그 연계를 준비하기 위해, 시하는 성벽 바로 아래서부터 저 멀리까지 수류를 흘려보낸다.

성벽 위의 병사들이 소리친다.

"여기 부상자 발생!"

"윽! 몇 마리가 샌다!"

"어쩔 수 없어. 일단 전선을 유지해!"

"마법이 거의 완성되어 간다! 버텨!"

이 성벽에는 서른에 가까운 정예병이 모여있었고, 이시하의 중급 마법에 하급 재앙들이 휩쓸린 탓에 전선은 겨우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한계에 가까워질 무렵. 어느새 아일라가 약속한 10분이 되었다.

시하가 하늘을 올려다보자, 푸른 하늘은 먹구름에 뒤덮여 우르릉! 소리를 뿜어내고 있다.

아일라는 하늘로 뻗었던 손을 아래로 휘두르며 영창을 마친다.

"지금 내가 바라보는 곳에... 라이트닝."

그 순간.

번쩍­ 빛이 세상을 메우고, 순수한 자연의 마력이 실린 번개의 창이 지상에 굉음과 함께 꽂혔다.

전류는 시하가 깔아둔 물줄기 위에 선 재앙들 모두에게 번졌고. 자연이 품은 그 거대한 마력은 지상에 있는 부정의 마력을 씻어내리듯 퍼져나간다.

그와 동시에. 시하의 뒤에 있던 아일라가 휘청거리며 자리에서 쓰러졌다.

상급 마법은 시전자가 마법을 완성시키는 순간 엄청난 마력을 소모한다. 아일라 역시 체내의 마력이 뽑혀 나가다시피 소진된 탓에 다리의 힘이 풀려버린 것이다.

시하는 그녀에게 회복용 포션을 먹이며 물었다.

"괜찮아?"

"네. 상급 마법은 이번이 겨우 두 번째라. 조금만 쉬면 괜찮아질 거예요."

"... 수고했어."

하급 재앙의 대부분을 최대한 성벽에 끌어들인 뒤 퍼부은 뇌격이었다. 소도시로 진격하던 대부분의 하급재앙은 먼지로 변했으며, 후미에서 쫓아오던 몇몇만이 남아 버렸다.

'이 정도면 1페이즈, 대공세는 끝난 거나 마찬가지야. 그리고 2페이즈는...'

그리 생각한 순간, 성벽에 인접한 곳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꺄아아아악!"

검을 집어넣은 시하는 신체 강화마법을 쓴 뒤 아일라를 등에 업었다. 그리고 성벽 뒤편으로 내려와 소리쳤다.

"무슨 일이냐!"

"공작님! 해방 교단이 마을 안에...!"

"거기다 피난을 거부했던 빈민가 주민들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시하의 눈은 절로 비명이 들려왔던 곳을 향했다. 그곳엔 헐벗은 주민들이 눈을 까뒤집은 채 서로를 잡아먹겠다는 듯이 물어뜯으려 하고 있었다.

맹수가 고기를 뜯듯이, 이성을 잃은 광인들이 서로의 살점을 물어뜯자 피가 비산한다. 몇몇은 인간의 연약한 이빨이 전부 뽑혀 나갔음에도 다음 희생자를 찾고 있다.

마치 좀비 영화 속 한 장면과도 같은 참극. 영화와 차이가 있다면, 눈앞의 주민들은 영화 속 좀비들과는 다르게 살아있는 인간이 미쳐버린 것이다.

'2페이즈. 폭식 디버프의 확산...'

시하에게 가장 큰 고민을 안겨준 페이즈다.

지금 이 단계를 버텨내야만 힐데스비니만을 남겨둔 최종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그리고 이 시련을 버텨내기 위해서는 단 한 가지 방법뿐이다.

'지금 저 구역은 피난을 거부한 광인들끼리 물어뜯고 있지만, 조금 더 시간이 지나버리면...'

업혀있던 아일라가 말했다.

"공작님. 이제 걸을 수 있을 것 같아요."

"... 그래."

"감사합니다."

아일라를 내려놓은 그 순간. 방금 그 거리에 있던 광인 하나가 주변 거리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 끝에는...

"아!"

"라나! 위험해!"

갓난아이를 안고 영주관으로 향하고 있는 너구리 소녀 라나가 있었다.

그녀는 아일라의 외침에 뒤를 돌아다 보았으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 순간 몸이 굳어버렸다.

'구해야 해...!'

시하는 그 자리에서 가장 빠르게 발동시킬 수 있는 마법, 화구를 날려 보냈다. 그리고 시하보다 조금은 늦었지만, 아일라 역시 상대방을 꿰뚫어버릴 빙창을 투척한다.

화구에 적중당한 광인은 순간 비틀거렸고, 이어서 아일라의 빙창이 광인의 머리에 꽂혔다.

광인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아일라는 회복 포션의 기운에 몸을 맡겨 라나에게 달려갔다.

"라나! 괜찮니!"

시하는 그 자리에서 망연해졌다.

'2페이즈. 지역 내의 미쳐버린 인간들을 전부 제거하면서 방어전을 치러내야 한다.'

'타락한 사람이 되돌아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 희생을 줄이려면 죽이는 수밖에 없는데...'

에코니아 아포칼립스. 그 게임에서의 '공략'이란, 단순히 루트 개척을 위한 절차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시하의 앞에 펼쳐진 것은 현실. 어린 시절부터 그의 뇌리에 자리 잡은 정언 명령, 타인을 함부로 헤쳐서는 안 된다는 그 명제가 살인을 거부하도록 한다.

멍해진 그에게 윤흠서가 달려왔다.

"시하 공! 전장에서 왜 넋을 놓고 있는 것이오!"

"아."

"지금 저 재앙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시하 공이지 않소. 당신이 무너져선 절대 아니 되오!"

"... 알겠습니다."

윤흠서의 말은 천번 만번 지당한 말이었다. 재앙을 앞에 두고 시하가 감상에 빠질 틈은 없었다.

그는 '우선 순위'를 다시 한번 떠올린다.

선한 사람들을,

더 많은 사람들을,

내 주변의 사람들을.

그리고 그는 다짐했다.

'다른 병사들이 망설이지 않도록, 나부터가 스스로 움직여야만 해. 지금 내가 망설였다가는, 저 쓰레기 자식들이 원하는 대로 되는 거야.'

'게다가 이 도시에는 해방 교단까지 들어와 있어. 이런 정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로 고민한다면 더 많은 희생자가 생길 뿐이야.'

자신의 다짐을 증명해내려는 듯, 시하는 허공에 빙창을 여럿 만들어 낸다. 적어도 단 숨에 끝낼 수 있도록, 최대한 예리하고 차갑게...

그 빙창은 이내 빈민가에서 서로를 물어뜯고 있는 광인들에게 투사되었고, 그들은 그 자리에서 머리를 꿰뚫린 채 즉사했다.

시하는 그 모습을 굳이 돌아보지 않고 외쳤다.

"최대한 마력을 아끼면서 영주관으로 후퇴한다! 피난을 유도하는 병사들을 최대한 엄호하라! 해방 교단과 광인들은 전부 사살한다!"

""""예!""""

그의 다짐을 본 기사들과 무인들은 힘차게 답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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