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140화 (140/215)

〈 140화 〉 2­104. 시온 자작령 ­ 7일차.

* * *

2­104. 시온 자작령 ­ 7일차.

해방 교단의 추격을 뿌리치며 동굴을 나선 인환 일행은 숲속에서 잠시 멈추게 되었다.

근처의 가장 높은 나무에 올랐던 클로에가 내려오며 말했다.

"조장님. 교단이 추격을 멈췄어요. 근데 100명 정도 되는 교인들이 소도시 방향으로 가고 있었어요."

"……."

"... 저흰 이제 어떻게 해요?"

클로에의 물음에 인환은 고민했다.

교단의 치부를 발견한 척후조를 방생하고, 곧장 소도시로 병력을 돌려버린다니. 무언가 다른 목적이 있는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에서 척후조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한참 고민하던 인환은 말했다.

"메디아 호수로 간다."

"하지만 조장님. 지금 교단은 소도시로 향하고 있는데, 저희도 본대를 도와야 하지 않나요?"

"... 모두 들어라."

클로에의 반문에 인환은 조원들에게 말했다.

"시하 공의 말이 맞았어."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조장. 무슨 말이 맞았다는 거야."

"... 해방 교단은 재앙을 불러들인다. 아니, 저것들은 재앙을 만들어내려 하고 있었다."

인환의 말에 조원들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그나마 먼저 정신을 차린 서준이 물었다.

"도대체 안에서 뭘 본 거야?"

"저 폐광은 부정의 마력을 생산하는 농장이었다. 놈들이 납치해갔던 주민들은 부정의 마력을 뽑아내게 위한 가축이었어."

"가축...이라고. 그게 가능한 소리야?"

"나도 이 상황을 믿을 순 없다. 하지만 우리가 본 광경은 이것 외에 설명할 수 없어."

그의 말을 듣던 클로에의 뇌리에 방 안에서 보았던 마을 주민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추격을 뿌리치는 순간에는 그 긴장감에 잊고 있었지만, 지금 대화로 인해 뒤늦게 떠오른 것이다.

"우웁!"

"괜찮냐..."

그녀의 등을 토닥이는 선재.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인환은 말을 이었다.

"아마 클로에가 이전 임무에서 탐식의 대재앙을 본 건 우연이 아니었을 터. 지금 소도시에서는 대재앙이 출몰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보았자 큰 도움은 못 되겠지. 한시라도 빨리 메디아 호수로 향해 상황을 알려야 한다."

"왕국 기사들이 우리 말을 믿을까?"

"... 해방 교단에 대한 정보를 숨기는 한이 있더라도, 증원을 요청해야겠지. 대재앙이 소도시에 출몰하지 않았더라도, 이 폐광을 확인시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대화가 마치고서야 조금은 진정한 클로에.

그런 그녀에게 인환은 물통을 건넨다.

"목을 축일 정도만 마시거라."

"감사합니다..."

"어느 정도 휴식을 취했으니 빨리 이동을..."

메디아 호수로 이동을 시작하려는 그 순간. 쿠쿵­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척후조로 한참 멀리에 세워져 있던 큰 나무들이 천천히 쓰러지며 땅을 울렸다.

"설마..."

뒤를 돌아보며 말끝을 흐리는 인환.

분명 밀리아의 사제와 일반 교인들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야밤에 척후조의 마차를 추격해온 떨거지들은 평범한 용병과 비슷한 수준이었고, 사제는 기사보다 조금 못한 정도로 느껴졌었다.

하지만 인환은 저 정도 저력을 낼 만한 인간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주교라면...'

그리 큰 힘을 들이지도 않고 휘하 사제를 날려버렸던 주교다. 만약 그가 진심을 보인다면 나무 따위 쉽게 부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인환에게 클로에가 다급히 말했다.

"조장님! 이쪽으로 추격이 붙었어요. 빨라요!"

"달려라! 우리가 잡히면 본대가 위험해진다!"

네 사람은 메디아 호수 방향으로 달렸다.

하지만 새벽부터 여러 광산을 순찰했던 척후조는 지쳐있던 상태.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는 점점 가까워져 오고, 그 방향은 엄연히 그들을 향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곧 따라잡힐 게 뻔하고, 주교의 전력은 분명 이쪽보다 위일 게 확실한 상황. 그와 맞서게 될 경우를 대비해 시하가 비장의 수단 하나를 챙겨주긴 했지만 그걸론 부족하다.

"클로에."

인환은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 * *

길을 막고 있던 수목을 가볍게 쓰러트린 해방 교단의 주교, 뵈브가 말했다.

"방해물을 치웠다. 계속 따라오도록."

"""예!"""

자연에서 곰은 20킬로미터 밖의 떨어진 사체 냄새를 맡을 정도로 후각이 예민하다. 굳이 개와 비교하자면 그 예민함은 7배에 달하는 수준.

실제 곰보다는 덜 하지만, 웅인족인 뵈브 역시 상대의 냄새를 맡고 추격하는 데 능한 수인이다.

'인족 셋에... 고양이 한 마리.'

뵈브는 냄새가 나는 방향으로 빠르게 몸을 옮기고, 그 뒤로는 발 빠른 사제들로만 구성된 교단 추격조가 따른다. 우회가 필요한 장애물은 그때그때 뵈브가 전부 쓰러트려 버리고 있으니, 그 속도는 빠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순조롭게 추격을 이어 나가던 중...

"음?"

뵈브와 교인들의 앞을 두 사람이 가로막았다.

"더 이상 지나갈 수 없다."

공작의 수하들이 입고 있는 에퀼리아의 정복에 두건을 쓰고 있는 무인들. 서준과 선재였다.

잠시 멈춘 뵈브는 말했다.

"흠. 꼬리 자르기인가."

"주교. 명령을."

뵈브는 차근차근 두 무인들을 관찰했다.

'단련된 몸과 자잘한 상처를 보았을 때, 경험 많은 전사들이군. 그리고 무기는... 칼. 아마도 혜세국 전군이나 중군 출신의 무인. 혹은 세상을 떠도는 동방인 용병들이겠지.'

'하지만 이곳이 혜세국 본토가 아닌 이상, 크게 위협이 되는 인물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눈앞의 두 사람은 주교인 뵈브가 보기에 그리 강해 보이진 않았다. 휘하 사제 4인에게 맡기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수준.

뵈브는 자신을 따르는 수하들에게 말했다.

"이놈들을 너희 네 사람이 맡아라. 나는 단독으로 나머지 둘을 추격하겠다."

"예."

그의 명에 나머지 교인들이 앞으로 나섰고, 그 모습을 본 무인들은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래. 와봐라! 이놈들."

"네놈들 같은 잔챙이들에는 질 수가 없지."

교인들을 도발하는 두 사람.

하지만 교인들은 수적 우위를 점하고 있음에도 방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두 사람을 사이에 두고 조금씩 포위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볼 것도 없겠군.'

그리 생각한 뵈브가 교인들을 지나쳐 다시금 숲을 향해 발걸음을 뗀 순간. 그의 시야에 푸른 빛 하나가 들어 왔다. 그 빛은 점점 그 크기를 키우며 다가온다.

'... 화살!'

간발의 차로 그 빛의 정체를 파악한 뵈브는 다급히 상체를 틀었고, 빗나간 화살은 계속 나아가 뵈브의 뒤에 있던 사제의 머리통에 박혔다.

사제는 피를 뿜으며 바닥에 엎어져 즉사. 곁눈질로 시체를 확인한 뵈브는 그 화살에 눈이 갔다.

'화살이 짧아 식별에 어려움을 겪었군. 저 길이면 에퀼리아의 석궁이나 동방의 편전. 무엇이 되었건 나와 사제를 관통하여 동시에 죽이려 한 실력은 인정해야겠지. 하지만...'

주교 뵈브는 자신의 대형 방패를 꺼내며 사제들에게 명했다.

"화살은 화살일 뿐. 전위 두 사람만 죽이고 나중에 처리하면 된다. 눈앞의 적에게 집중하라."

"알겠습니다."

쓰러진 사제의 시신을 보았을 때, 화살에 담긴 마력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결국 에코니아에서 화살은 화살일 뿐. 화살이 날아온 곳을 의식하며 보호 마법을 펼치면 된다.

뵈브는 서준과 선재에게 뛰어들었고, 사제들 역시 주교의 뒤를 따랐다.

"선재. 작전대로!"

"알았다."

선재는 앞으로 나서 중검술을 준비했다. 위에서 아래로 휘두르는 내려치기 자세. 그 모습을 본 뵈브는 기가 찰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의 것도 아닌 자신의 방패를, 정면에서 칼로 맞설 생각을 한다니! 뵈브는 외쳤다.

"짓뭉개주마!"

해방 교단의 주교 뵈브의 힘찬 함성과 함께, 칼과 방패가 맞대결을 벌이기 위해 달려가는 순간.

또다시 뵈브의 시야에 무언가가 끼어들었다. 하지만...

'화살이 아니다.'

이번엔 화살조차 아니었다. 물건의 정체는 자그마한 주머니 하나. 그 겉면에는 'BEAR SPRAY'라는 문구가 적혀져 있다.

'무슨 잔꾀를...!'

자세를 취하고 있던 선재는 뵈브가 사정거리에 들어오기도 전에 주머니를 베어버렸고, 시뻘건 가루들은 바람을 타고 뵈브에게 흩뿌려졌다.

"우웁! 쿨럭!"

그 내용물은 고춧가루였다.

웅인족의 최대 강점은 힘, 숨은 강점은 후각. 인족에 비해 몇십 배는 발달되어 있는 뵈브의 후각 세포에 캡사이신이 침투하고, 매운 자극은 그에게 무시할 수 없는 고통이 되어버린다.

허나 뵈브는 수많은 경험을 거친 해방 교단의 주교. 그는 자기 감각을 최대한 억제하며, 선재가 있던 자리에 정확히 방패를 내리꽂았다.

­ 쿵!

하지만 사람을 짓뭉개는 감각은 없었다.

굉음과 함께 땅에는 작은 구멍이 파였으나, 다행히 선재는 뒤로 크게 뛰어 물러난 상황. 서준이 그 자리를 대신 채우듯 주교에게 달려들고, 선재 역시 서준에게 뒤이어 가세한다.

"하아아압!"

눈은 벌겋게 충혈되고, 콧물과 침을 질질 흘리며 콜록대는 뵈브. 그 고통 속에서 실눈만을 뜬 채, 뵈브는 두 무인의 공격을 막아내고 역공을 가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뵈브의 감각은 전부 마비된 것이나 마찬가지라 공격의 정확도가 떨어진 상태. 방패는 바람 가르는 소리를 낼 뿐, 오랜 세월 간 합을 맞춰온 두 무인을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간다.

결국, 애써 방패로 공격을 쳐낼 뿐이었다.

"주교를 보호하라!"

"억!"

"오른쪽 45도! 화살에 주의해!"

주교의 뒤를 따르던 사제들이 달려들어 보지만, 어디선가 인환의 화살이 날아와 그들의 머리에 바람구멍을 내버렸다.그 모습을 본 사제 하나는 절규한다.

"무슨 화살에 마력이...!"

첫 화살은 적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마력을 적게 실었을 뿐, 인환의 화살은 한 점에 보호막의 마력을 집중해 그 강도를 높이지 않으면 쉬이 막아내지 못할 수준이다. 그 사실을 모른 채 활을 무시하던 사제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뵈브를 따르던 사제는 네 명. 그 넷은 뵈브의 엄호를 하기 위해 달려들던 사이 모두 죽어버렸다.

'이... 쓰레기들이...!'

두 사람의 견제를 받던 뵈브는 방패를 부채처럼 잡고 휙­ 휘둘렀다. 그리고 뒤편을 향해 크게 날아오르며 거리를 벌렸다.

"네 놈들은 전부 내 손으로 죽여주마!"

뵈브는 끌어낼 수 있는 모든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 모습을 본 인환이 뵈브에게 활을 쏴보지만, 화살은 힘없이 튕겨 바닥에 떨어져버린다.

인환은 숲속에서 칼을 뽑으며 나와 선재와 서준 사이에 섰다.

"역시나. 활로는 안 되겠군."

"살아 돌아갈 수 있다면 시하 공에게 감사해야겠어. 고춧가루가 아니었으면 이미 죽었을걸."

"... 저 인간. 방패를 휘두를 때마다 공기가 갈라지던데, 괜히 화만 돋군 거 아닌지 모르겠네."

선재와 서준은 그 짧은 대치 속에서도 무시 못 할 정도의 마력을 소모해버렸다. 하지만 눈앞의 주교는 싸움은 이제부터라는 듯이 자신의 투기를 전부 끌어올리는 상황.

인환은 자세를 잡으며 말했다.

"이미 목적은 달성했다."

"그리고. 우린 셋이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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