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화 〉 2107. 시온 자작령 7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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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 시온 자작령 7일차.
거리에서 영주관으로 향하는 동안에도, 적들은 끊임 없이 우리에게 달려 들고 있다.
내 옆에 있던 한 기사와 아일라가 외쳤다.
"저... 저 미친놈! 저 꼴로 이쪽으로 온다고?"
"공작님! 해방 교단이 광인들을 점점 우리 쪽으로 몰아오고 있어요!"
그곳에는 한 교인이 광인들에게 물려가면서도 우리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그의 표정에서 고통 따윈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이 상황에 쾌락을 느끼는 듯하다.
교인의 뒤로는 미쳐버린 빈민들이 쫓아오고 있는데, 그 수는 간단하게 열을 넘어간다.
'아이시클. 스피어.'
게임 속 스킬 이름과 이미지를 떠올리며 빙창을 소환하고, 적들의 머리에 꽂는다. 이런 식으로 스킬 이름을 떠올리지 않으면 집중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늘 마법을 너무 많이 사용한 탓이다. 체내의 마력은 흘러넘치는데, 내 정신이 점점 멍해진다. 엔크라테아의 청명한 마력이 내 몸을 순환하며 정신을 겨우 붙잡고 있는 느낌...
옆에 있던 아일라가 내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
"공작님. 괜찮으신가요?"
"... 괜찮아."
"하지만 얼굴이 창백해지셨어요."
"괜찮아. 영주관에 도착하면 쉴게."
그 정도로 지친 티가 나는 걸까.
지금껏 마력 소모가 적은 마법만 골라서 사용하고 있었기에 마력 탈진이 오진 않았다. 하지만 내 체력과 정신력이 점점 고갈되는 건 사실이다.
한참 동안 이 거리를 달렸고, 근거리에 다가온 적들은 베어야 했으며, 다른 병사들의 사각에서 달려드는 광인들을 전부 요격해야 했으니까.
여기에 마법을 쓸 때마다 마력의 흐름을 제어하고, 그 이미지와 구조를 일일이 떠올려야 했으니. 피로감이 몰려오는 게 당연하겠지.
"공작님. 차라리 제가 길을..."
"네 마력은 지금 아껴둬야 해. 나중에 힐데스비니가 더 접근하면 지금보다 심해질 거야."
하지만 아일라의 마력은 아껴야 한다. 지금은 광인들이 자기들끼리 팀킬을 하고 있지만, 잠시 후 힐데스비니가 더 가까워지면 2페이즈의 후반부에 돌입한다.
모든 광인이 생존자를 찾아 몰려오는 것이다.
그 와중에 병사들이 말했다.
"저 새끼들 전부 제정신이 아냐!"
"어떻게 살점을 물어뜯기면서도..."
"저런 놈들이 어디서 나타난 거야!"
... 겁에 질릴 수밖에 없지.
이 사람들은 저 미치광이들을 처음 보는 거니까. 미리 언질을 줬던 동방의 무인들도 이제는 질색이라는 듯 해방 교단을 보고 있다.
나는 병사들에게 말했다.
"영주관까지 얼마 안 남았다! 달려!"
도착하기만 하면 재정비를 마친 집사와 영지병들이 잠시 동안 광인들을 막아줄 것이다. 그동안 한숨 돌릴 시간은 나겠지.
우리는 영주관으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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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관은 어느새 참호를 연상시키는 목재 건축물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적이 가까워지면 벽에 나 있는 틈으로 창을 쑤셔 넣어 찌를 수 있는 구조. 잠시 후의 방어전에 꽤 도움이 될 것 같다.
나를 발견한 노집사가 달려 나왔다.
"공작님! 괜찮으십니까!"
"집사. 지금 피난 상황은 어떻죠?"
"피난에 적극적인 백성들은 전부 영주관으로 대피를 마쳤습니다. 인구의 절반 정도입니다."
"절반..."
절반. 확실히 적은 숫자다.
영주관은 대부분 재앙에 맞서기 위한 최종 방어선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어져 있고, 지하에는 대피 시설과 비상식량이 갖춰져 있다. 만약 재앙이 출몰했다는 경보가 내리면, 영지민들은 영주관으로 대피하는 게 상식이다.
그 망겜 기준으로는 비상시에 7할에 가까운 주민들이 대피해야 정상인데, 절반밖에 안 된다니.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마크 테크니... 이 쓰레기 자식.'
얼마나 백성들의 신임을 잃었으면, 재앙이 나타났다는 말도 믿지 않아 이 꼴이 되는 건가.
힐데스비니가 가까이라도 온다면 폭식 디버프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고, 미처 피하지 못한 사람들은 점점 광인으로 변해버릴 것이다. 수비 난이도는 그만큼 높아지겠지.
나는 집사에게 물었다.
"그중 무장할 수 있는 사람은 있나요?"
"예. 그리 말씀하실 것 같아 예비 병력까지 전부 무장을 마쳤습니다. 몇몇은 자원을 받아 무기 공급이나 목책 수리를 맡겨두었습니다."
이런 게 불행 중 다행이라는 걸까. 집사는 내가 지시하지도 않은 일을 알아서 잘 처리해주었다.
집사와 대화하고 있으니, 어느새 영주관에 도착한 윤흠서가 내 앞에 나타났다. 격렬한 싸움을 마치고 온 듯, 옷에는 핏자국이 여럿 튀어 있다.
그가 말했다.
"시하 공. 담당했던 거리의 수색은 마쳤소."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어떻게 해야겠소?"
다음을 묻는 윤흠서.
그 순간 성벽 방향에서 쿵! 하는 굉음이 들려 왔다.
"성벽이..."
그곳에 존재하던 성벽에는 큰 구멍이 나버렸고, 그 사이로 힐데스비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딘가의 신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그 괴물이 낮게 포효하자... 도시 곳곳에서 소란이 인다.
나는 집사에게 말했다.
"집사. 광인들이 영주관을 직접 공격할 거예요."
"예?"
"어서 병력을 근처에 배치해야 합니다. 빨리요."
"아... 알겠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인간답지 않은 괴성을 지르는 광인들이 영주관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는 자기들끼리 물기 바빴다면, 지금은 좀비들이 생존자의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듯한 모습이다.
거의 반쯤 헐벗은 자. 아직 열 살도 채 안 된 어린 아이. 침대에 누워있는 게 더 어울릴법한 노인. 재앙의 마력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은 듯하다.
나는 아일라에게 물었다.
"아일라. 마력은 어느 정도 회복했지?"
"네."
"... 이제부터 저 사람들을 향해 마법을 쏴야 해. 할 수 있겠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각오했습니다."
하긴, 라나를 구할 때는 정말 가차 없었지.
괜한 질문을 해버린 느낌이다.
"그래. 그럼 중앙 도로에서 밀려오는 광인들에게, 마력을 아껴가면서 중급 마법을 쏴버려."
"알겠습니다. 그럼 전선에 합류하겠습니다."
"그래."
아일라는 그대로 방어선에 뛰어갔다.
그리고 나는 윤흠서를 불렀다.
"그리고 윤 대장님."
"말씀하시오."
"윤 대장님께서는 잠시 쉬어두세요."
"... 뭐요?"
내 말에 어이없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윤흠서.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금 우리 중에 일대일 화력이 그나마 강력한 사람이 윤흠서니까.
나는 그에게 설명했다.
"저 재앙에 결정타를 먹일 사람이 윤 대장님뿐입니다. 그 때를 대비해서 지금은 쉬세요."
"... 가능한 것이오?"
"가능합니다. 힐데스비니의 본체는 다른 B급 재앙에 비해서는 꽤 약한 편이니까요."
"그렇군. 혜세국에서는 좀처럼 출현하지 않는 재앙이라, 내가 가진 정보가 적소."
재앙의 급을 나누는 기준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개체 그 자체로서의 강함은 어떠한가.
둘째, 인간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끼치는가.
탐식의 대재앙 힐데스비니는 첫 번째 항목에서의 위험도는 꽤 낮지만, 두 번째 항목에서 높은 위험도를 보이는 경우다.
내 앞의 윤흠서가 걱정스레 말했다.
"한데 가능할는지 모르겠군."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가 없지 않소."
"네?"
"... 이거요 이거."
"아..."
윤흠서는 자기 오른팔을 톡톡 치며 말했다.
... 내가 잘라내 버린 그 오른팔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난 반년간 왼팔로 중검술을 다시금 수련했으나, 위력이 예전 같지 않소. 저 재앙을 베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소."
"... 죄송합니다."
"시하 공이 사과할 게 뭐가 있소. 그건 정당한 승부였소.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싸움에서 졌다는 사실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소."
"……."
나중에 가서 의수라도 알아봐야 하나.
아쉽게도 의수를 파는 전용 상점 같은 건 게임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기에, 직접 발품을 팔아야 할 것 같다.
윤흠서가 말했다.
"잡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 심산이오?"
"... 몰아내기라도 해야겠죠."
"몰아낸다고?"
"네. 다른 재앙과는 다르게, 힐데스비니는 여러모로 영악한 편입니다. 압도적으로 이길 수 없는 싸움은 피하려 하죠."
"일전에 그 수인 아이들의 첫 의뢰처럼?"
"... 그것과는 별개입니다. 아이들이 힐데스비니를 몰아낼 만한 화력은 없었으니까요. 당시엔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군... 일단 알겠소."
"그럼 저도 전선에 합류하겠습니다."
"잠깐."
내가 대화를 마치고 아일라를 따라가려 하니. 윤흠서가 나를 불러세웠다.
"시하 공. 지금 공의 몰골이 말이 아니오."
"네?"
"전장에서 많이 보았소. 곧 입마에 빠질 상이오."
"……."
"시하 공에게 오기 전에 전선을 둘러보았소. 아일라에게 맡겼다면 잠시간은 쉬어도 될 거요."
그의 말에 나는 엔크라테아를 뽑았다.
딱히 화가 난 게 아니고, 주변에 거울로 쓸만한 게 검뿐이었기 때문이다. 나를 걱정하는 말에 화가 나면 내가 분노 조절 장애인이겠지.
엔크라테아에 묻어 있던 핏자국을 마법으로 만들어낸 따뜻한 물로 씻어내리자, 그 검신에 내 얼굴이 비쳤다.
"……."
그냥 거울 앞에 섰을 때 보이는 내 얼굴이다.
뭐. 평소엔 표정 관리를 하고 다니니까. 지금은 그럴 여력이 없어 조금 이상하게 보이나 보다.
"괜찮습니다. 저는 마력 회복량만큼은 뛰어나니까요. 강력한 재앙은 못 잡더라도... 지금은 제가 노력해야 할 때입니다."
"……."
내 말에 윤흠서는 말이 없었다. 그의 대답을 잠시 기다리던 나는 전선으로 다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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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시하가 떠난 곳에서 윤흠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평온한 세상에서 온 표류자라면 피에 익숙하지 않을 텐데..."
전장.
어딜 둘러보아도 피가 가득하며, 그 특유의 비릿한 냄새와 분뇨의 냄새가 한데 섞여 진동한다.
그런 전장에서 지금 시하와 같은 표정을 짓는 자들은 실상 위태로운 경우가 많다. 윤흠서 역시 어린 시절부터 여러 전장을 경험해온 동방의 무인 중 하나이기에,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겉보기엔 평온하지만, 귀기가 감추어져 있는. 그런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행동하다 엇나가는 경우가 있다.
"이거... 내가 뭐라 할 수도 없고."
하지만 지금의 그는 시하의 상관이 아닌 부관. 옆에서 큰 개입을 할 수 없는 처지다.
"이걸 어찌해야 할지..."
골머리를 썩히는 윤흠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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