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화 〉 2115. 일 중독.
* * *
2115. 일 중독.
용병 길드를 습격한 지 일주일 정도가 지나고.
헤르만이 왕도 신문 한 부를 들고 저택에 찾아왔다. 그 1면에는 [용병 길드 폐쇄 명령 … 모험가 길드 부활?]이라는 헤드라인이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다.
헤르만이 내게 외쳤다.
"시하 형. 내가 자작령에 남아 있는 동안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아, 왔어?"
"'아, 왔어?'가 아니지!"
"에이. 왜 그렇게 과민 반응해."
용병 길드 폐쇄는 휴가 출발 전부터 이미 논의를 끝낸 내용이다.
용병 길드를 없애버리고 모험가 길드를 새로 만드는 것. 나아가 용병들의 규범을 확실히 하고 위협이 있을 때는 전력으로 써먹는 것.
나는 그 사실을 다시금 입에 담았다.
"애초에 용병 길드는 유착만 밝혀지면 전부 없애려고 했었잖아."
"하아. 그래도 위험한 일이잖아. 나도 없을 때 그걸 해버리면 어떻게 해."
"괜찮아. 요나가 많이 도와줬었어."
"그건 그것대로 열 받네..."
뭐든 적당히 효율 높게 처리하는 헤르만.
뭐든 정해진 규정에 따라 처리하는 요나.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성향이 반대라서 아직도 실적으로 티격태격하는 사이라고 했었나. 서로 부서도 다른 데 왜들 그리 날을 세우는 건지.
나는 그에게 말했다.
"뭐. 그럼 당장 일이라도 할래?"
"그... 그건 아니고."
"막상 시키려 하면 쪼는 주제에 열 받기는..."
내 비아냥에 헤르만은 발끈했다.
"나 엊그제까지 시온에서 구르다 왔거든. 아버지랑 공주님께서 얼마나 일을 많이 시키신 줄 알아? 내 몸이 부서질 뻔했다고!"
"그 정도였냐?"
"... 그래. 그 왕자님이 뭐라 하셨는지 알아?"
"알렉산더가 뭐라 했는데?"
헤르만은 알렉산더 성대모사를 하며 말했다.
"왕자님이 나중에 가서는 '동생아, 이제 이만하면 되지 않았니.'라고 할 정도였다니까."
... 평소에 백성 백성 노래를 부르는 알렉산더가 지칠 정도로 일을 시켰던 건가. 그거참 무섭네.
…….
아니.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선생이란 작자가 아이를 무서워하면 어쩌나. 그 정도로 일거리를 찾아서 시켰다는 거니까, 역시 우리 공주님은 정말 능력 있는 사람이다.
그나저나 헤르만이 왔다는 건...
"헤르만. 다른 사람들도 다 왕도에 돌아온 거야?"
"그래. 댁네 딸이 저녁 먹고 온다고 전해 달란다."
"그렇게 들으니까 영 어색하네..."
우리 집 자식이 '저 오늘 친구 집에서 밥 먹고 가요.'라고 전하는 느낌인데, 그 속뜻은 왕궁 저녁 만찬에 참여하고 오겠다는 거다.
그 스케일에 가슴이 웅장해진다.
헤르만은 말을 이었다.
"왕비님께서도 형한테 말씀 좀 전해 달래."
"뭐라 하셨는데?"
"아이들은 적어도 일주일간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맡은 일을 정리해두세요. 라고."
"아..."
"근데 맡은 일이 도대체 뭐야?"
내게 의문을 표하는 헤르만.
그에 적당히 대답할 말을 생각해보지만, 너무 맡은 일이 많아져서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었다.
"용병 길드는 왕궁부 소관이 아니지?"
"원수부 담당이지. 사실상 예비군이니까. 왜?"
"용병 길드를 털어보니까 참 뭐가 많더라고."
"뭐가 많아?"
"자기 길드 용병들이 패악질하는 걸 막아준다면서 다른 상인 길드에 보호비를 요구했더라."
"뭐어...?"
"그거 말고도 더 있어. 임무의 부적합 배당, 수인 애들과 똑같은 사례도 엄청 많았고, 국가사업에 참여한 용병들의 수당 빼먹기에, 내부 고발을 하려던 사람들은 암살."
"……."
"모험가 길드 만드는 것도 일인데, 그런 것들까지 전부 조사해야 해서 머리가 터질 것 같아."
어이없는 얼굴이 되어버린 헤르만. 사실 이것 말고도 더 많은데 반만 말한 거다. 용병 길드는 해방자가 근원으로 간 뒤 200년 동안 부정부패를 일삼은 조직이니까. 정부의 공인을 받고 뒤에서는 국가적 위기를 이용한다니. 참 미쳐 먹은 놈들이었다.
헤르만이 멍한 목소리로 물었다.
"걔들은 그러고도 자료를 남겨둔 거야?"
"아무리 나쁜 놈들이라 해도 돈 계산은 해야 하잖아. 내가 숨겨둔 비밀 장부를 찾았거든."
"그런 건 또 어떻게 찾았대?"
어떻게 찾긴.
원래 게임에서도 용병 길드를 물 먹일 땐 길드장의 서재 뒤의 공간에 잠입해야 했었다. 이번엔 무려 왕명을 받고 행동한 셈이니, 그냥 들어가서 쏙 빼 오기만 하면 됐었다.
그래도 이걸 말할 수는 없으니...
나는 대충 둘러대고 다음 화두를 꺼냈다.
"여하튼. 그거 찾아서 고문 좀 하니까 술술 불던데."
"... 형이 직접 한 거야?"
"아니. 요나가 했어."
"뭐? 요나 그놈이 고문을 직접 했다고?"
"내 제안대로 해서 심한 고문은 아니었어."
"어떻게 했는데?"
갑자기 고문 이야기에 꽂혀버린 헤르만.
뜬금없긴 하지만, 궁금하다고 하니 말은 해줘야지.
"두뇌 노릇을 하는 견인족이 있다고 했잖아."
"그랬지."
"그 개새끼 묶어놓고 협박했지. 개기면 발톱을 전부 뽑고, 자백하면 감형해주겠다고."
"그건 협박으로 얻은 증거잖아."
"그렇지?"
"요나는 그런 걸 증거로 채택 안 할 놈인데..."
헤르만의 표정은 단순히 '어이가 없다'를 넘어 '믿을 수 없다'는 수준으로 변해버렸다.
사실 헤르만의 말이 어느 정도 맞긴 하다. 수사 초반의 요나는 고문이나 협박을 통해 얻어낸 자백은 증거로 채택하지 않겠다고 말했으니까.
하지만 게임 본편에서도 그렇듯, 요나도 결국 사람일 뿐이었다. 비밀 장부와 문서를 열 때마다 비리가 터져 나오고, 용병 길드를 검거했다는 소식에 수많은 피해자가 몰려드니. 요나도 결국 사흘째가 되어서 뚜껑이 열려버렸다.
'교사님. 왜 전부 안 죽이신 겁니까. 팔 한 짝 가지고는 형량이 너무 부족합니다!'
'... 언제는 즉결 심판 권한은 없었다며요.'
'이것들은 사형! 사형으로도 부족합니다!'
'진정해요...'
'제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 사법부장실에서 즉결 심판과 사형을 열렬하게 외치던 요나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사법부장은 그런 손주의 모습을 보고 부장석에서 흐뭇하게 웃고만 있으니. 나로서는 참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저나 무슨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더라.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고문으로 샌 것 같은데...
아. 할 일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헤르만. 이제 일하러 가자."
"... 무슨 일?"
"읊어 줘?"
내 물음에 헤르만은 큰 각오라도 하듯 침을 꿀꺽 삼켰고, 한참 뒤에야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나는 그가 바란 대로 열심히 일을 읊어줬다.
용병 길드 건물의 개축 확인. 모험가 자격 심사. 모험가 활동 수칙 제정. 상해 용병들의 보상. 각 거리 상인회나 장인 길드와의 보상 교섭...
5분 동안 말해도 내 말은 멈추지 않았고.
그걸 듣다 못 한 헤르만이 말했다.
"형님..."
"왜. 아직 안 끝났어. 클로에가 궁술도 배우고 싶다고 했으니 스승도 찾고, 궁도장도 만들어야 해. 거기다 이번 작전에서 날이 나간 무기도 많으니 슬슬 전속 대장간도 계약해야 하고..."
"그만. 그만해! 알았다고. 도우면 되잖아!"
"그래. 그럼 넌 윤 대장한테 가서 필요한 장비 리스트 받아 와. 대장간이랑 계약해야 해."
"... 알았어."
나는 헤르만을 끌고 저택을 나섰다.
이번 시온 자작령 원정에서 얻은 것도 많았지만, 나는 동시에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다. 내가 죽인 사람들의 숫자는 이루 셀 수 없고, 척후조를 비롯한 아군도 죽어버렸으니까.
덕분에 내 악몽의 리스트가 더 늘어나 버렸다. 어린 시절 집구석은 물론이고, 수많은 광인을 죽이며 나아가는 모습도 나오고, 뵈브에게 죽는 척후조의 모습이 꿈속에서 그려진다.
그리고...
그런 꿈을 꿀 때마다 나 자신을 채찍질하게 된다.
이 악몽에 더 많은 사람이 추가되어버리면 안 되니까. 혹시라도 학생들의 모습까지 악몽에 나와버린다면, 만약 공주마저 죽어버린다면, 그 순간 나는 꺾여버릴 것이다.
'그러니까 더 멈춰서는 안 돼...'
필레몬 국왕은 왕실의 비고에서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어디까지 갈 수 있겠나'라고 물었었지.
내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뿐이다.
'끝까지. 끝까지 가야만 한다.'
* * *
같은 시각.
국왕 내외의 침실을 방문한 아셰리아가 말했다.
"루시아 어머님."
평소 '어마마마'라는 호칭을 쓰는 아셰리아지만, 오늘은 '루시아 어머님'이란 호칭을 사용한다.
그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루시아 왕비가 그 호칭에 약하기 때문이다.
"... 네. 아셰리아."
"선생님 댁에 인사드리러 가도 될까요?"
"아셰리아. 안 돼요. 선생님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루시아의 단호한 거절.
평소라면 호칭 차이 하나로 금방 부탁을 들어주는 왕비이지만, 오늘만큼은 통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오늘 아셰리아는 '루시아 어머님'이라는 호칭을 너무 남발했다. 그 탓에 루시아 왕비에게 그 호칭이 가지는 위력이 반감해버린 것.
다음으로. 루시아는 자신의 부군, 필레몬에게 들어버렸다. 믿음직한 왕실 가정교사 이시하가 이 왕국의 어둠으로 누굴 지목했는지를.
사실 국왕 내외 역시 그 어둠의 편린 정도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뒤에도 흑막이 더 있을 것이라는 말은 쉬이 믿기 어려웠다.
그러나 필레몬은 말했다.
'한번 믿어보자고.'
왕실의 비고에서 그 두 남자가 무슨 말을 했는지, 루시아 왕비는 감히 짐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친구로서, 연인으로서, 아내로서. 루시아는 40년 가까이 필레몬의 곁을 지켜왔다.
적어도 그 말이 진실이며, 자신들을 위협하는 존재가 매우 크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루시아 어머님..."
"안 돼요. 아셰리아."
"……."
"일단 이번 주는 푹 쉬고. 다음 주부터 수업이 재개되면 그때 만나면 되는 거예요."
"치이..."
어머니의 앞에서 삐진 척을 하는 아셰리아.
그걸 보고 루시아는 생각했다.
'그 사람이 없었다면 이 모습도 못 봤겠지...'
그 생각에 잠시라도 걱정을 잊을 수 있었다.
"... 후후. 삐진 척해도 안 돼요."
"왜 웃으시는 거예요."
"딸이 귀여워서요?"
"……."
아셰리아는 입을 삐죽 내밀어 보지만...
그 모습은 루시아를 더 미소 짓게 할 뿐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