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화 〉 2117. 네 명의 면접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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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7. 네 명의 면접관
마크의 면회를 다녀 온 다음 날.
'오늘 오전부터 모험가 면접 시작. 오후에는 각 거리 상인회와 장인 길드 교섭인가...'
아침부터 일 생각에 빠진 내가 거실로 나오자, 저택 사용인인 사아 씨가 나를 불렀다.
"저기. 공작님."
"네. 왜 그러세요?"
"그게..."
사아 씨는 말끝을 흐렸다.
지난 사흘간은 그녀가 난처할 만도 했다. 그야 에딘 테크니가 매일 새벽마다 찾아와서 머리를 박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가 내 저택을 찾아올 이유는 사라졌다.
'이제 사아 씨가 난처할 일은 없을 텐데.'라는 생각을 할 때 즈음, 그녀가 말했다.
"어제 그 분이요..."
"에딘이요?"
"네. 그분이 오늘 또 오셨어요."
"도대체 왜 또..."
골머리를 앓는 나를 보며, 사아 씨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조금 다행인 점이 있어요."
"네?"
"오늘은 서서 기다리시더라고요."
"하아..."
전혀 다행이 아니었다. 조금 나아지긴 했어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는 건 변하지 않았으니까.
대충 외투를 걸치고 문밖을 나서자...
에딘 테크니는 내게 간략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공작님."
"에딘. 오늘은 또 무슨 일이죠?"
"은혜를 갚으러 왔습니다."
"... 은혜요?"
"예. 공작께서 제 무리한 요청을 들어주셨으니, 어떤 일이건 도와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대뜸 찾아와서는 은혜를 갚겠다니.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정말이지 뜬금없는 사람이다.
'그래도 이건 거절하는 게 낫겠지...'
그는 비록 보은이라고는 하지만, 괜히 이 도움을 받았다가는 오히려 내가 빚을 지는 느낌이다.
나는 에딘의 혈육을 체포한 장본인이고, 마크의 마음을 흔들기 위해 에딘을 이용했었으니까.
나는 그에게 완곡한 거절을 표했다.
"하지만 딱히 도울만한 일이 없으신걸요."
"폐하께 알현을 요청하여 여쭈었습니다. 모험가 길드를 부활시키는 중이라 하시더군요."
"알현을... 했다고요?"
"여기. 폐하의 서신도 가져왔습니다."
동그랗게 말린 종이 하나를 건네는 에딘.
봉인을 풀어내고 그 서신을 읽자...
"하아..."
한숨밖에 안 나오는 내용이었다.
사실 에딘이 마크에게 편지를 전하게 해달라고 처음 부탁했던 곳은 왕성이었고, 국왕은 그런 에딘을 내게 보냈다는 모양이다.
... 그래. 시온 자작령 사태를 해결한 건 결국 나니까. 여기까진 내가 이해할 수 있다. 결국에 마크의 마음에 불안을 만들 씨앗 노릇까지 해줬으니, 내 처지에서는 분명 이득이다.
하지만 보은하고 싶다는 말에 냉큼 모험가 길드 일을 도우라 명하다니. 거기서부터는 도통 국왕님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특히 마지막에 적힌 한 문장이 가관이다.
[ 원래 아카데미 시절부터 꽤 뜬금없는 녀석이었으니,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는 말게나. ]
…….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제일 싫다.
정확히는 지금의 에딘처럼. '이유는 딱히 없지만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부담스럽다.
차라리 화가 나서 저택을 테러하거나, 멱살을 잡으면서 따지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하지. 상대의 의중을 파악할 수 없는 게 나로서는 제일 힘들다.
그런 나에게, '예전부터 뜬금없는 녀석이었으니'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라니. 정말이지 머리가 지끈거리는 상황이다.
'왕명에 항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난처해진 나는 그에게 물었다.
"혹시. 폐하께서 다른 말씀도 하셨나요?"
"예. 면접에 도움이 되는 마도구를 준비하면 좋겠다 하셨기에, 몇 가지를 가져와 봤습니다."
"면접에 도움이 되는 마도구요?"
오늘이 모험가 면접 시작이긴 한데,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들어버리면 곤란하기만 하다.
면접 형식도 전부 정해두었고, 면접관도 한 사람 섭외해두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에딘의 마도구를 이용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어지는 그의 말은 예상 밖이었다.
"네. 심상 판별 수정과 거짓 탐지 수정, 마력 총량 측정 수정입니다. 전부 드리겠습니다."
"예?"
...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방금 에딘이 말한 물건들은 하나같이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물건들이다.
왕도 안에서 저 셋을 모두 보유한 곳은 오직 왕궁뿐, 다른 공공 기관들은 엄두도 낼 수 없을 정도니까.
'수정이 있으면 길드 운영에 도움은 되겠지.'
지금껏 나는 내 기억에 의존해 위험인물을 미리 제거하거나 감시하에 둘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저 수정들이 있다면, 내가 인사에 크게 관여하지 않더라도 거름망 정도는 될 것 같다.
'근데 수정을 도대체 어디서 난 거야...'
그래도 궁금증이 생긴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것들을 전부 어디서 나신 거죠?"
"원재료를 구해다 직접 만들었습니다."
"직접. 만들었다고요?"
"예. 시중에 유통되는 수정들도 대부분 저희 가문의 가주이신 어머님과 제 작품입니다."
"……."
순간 말문이 막혔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어제 왕궁부 지하 감옥을 나선 다음 알현을 요청하고, 알현을 마친 뒤 남는 시간 동안 저 수정구를 만들었다는 뜻이 된다.
아무리 테크니 후작가라 해도 거기까진 힘들지 않을까.
"혹시 그거. 만드는 방법이 쉬워요?"
"쉬움의 기준을 모르겠습니다만. 테크니의 비술과 높은 마력 총량만 있으면 만들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수정들을 만드는 데 마력을 대부분 써야 하니, 안전한 곳에서 제작해야 하지만요. 주문 제작이 아니라면 웬만해서 만들지도 않습니다."
"... 그런 걸 어렵다고 하는 거예요."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이 사람과 대화하고 있으면...
여러모로 내 머리가 어질어질해진다.
* * *
시하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사이.
후궁에서는 국왕가의 아침 식사로 한창이었다.
하지만 평소와는 다른 점이 있었으니. 이 자리에 한 사람이 더 끼어있다는 점이었다.
왕비, 루시아가 말했다.
"필로네. 음식은 입맛에 맞나요?"
"네. 루시아님."
"다행이네요. 아이들이 시하 공작의 음식을 너무 좋아하기에 메뉴를 바꾸었는데, 필로네에게 맛이 자극적이진 않을까 내심 걱정했거든요."
만약 시하가 왕가의 조식 메뉴를 본다면, '이 정도는 자극이 아닙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원래 먹던 음식들이 담백함을 넘어 밋밋한 수준이라 그런지, 루시아 왕비는 이 음식들을 처음 접했을 땐 마냥 자극적이었다. 그녀는 그 기억을 떠올려 필로네를 걱정한 것이다.
그에 필로네는 미소 지으며 답했다.
"아. 어쩐지 익숙하더라니. 오히려 마음에 듭니다. 사실 공작님께서 후원하시는 빵집에도 가보았거든요. 그때도 맛있는 음식을 대접받았었죠."
"아. 혹시 지난 맞선 때 가본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루시아는 한숨을 쉬며 답했다.
"하아. 정말이지.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이 별별 이상한 일을 벌인다니까요. 처음 시하 선생이 빵집 후원을 결정했다고 들었을 땐 사기라도 당한 건가 싶었어요."
"하하... 그 분이 사기를 당한다니. 제 머릿속에는 그 모습이 잘 안 그려지네요."
"그런가요?"
필로네는 속으로 생각했다.
'루시아님. 그 인간은 오히려 사기를 쳤으면 쳤지. 사기를 당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의 수업에 참관했을 때나, 왕궁 정원에서의 능글맞은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 필로네였다.
그녀에게 시하는 무언가 속이 시커먼 존재. 하지만 왠지 모르게 믿을 수 있는 사람 정도다.
루시아 왕비가 필로네에게 물었다.
"필로네. 오늘 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오전부터 새로 생기는 모험가 길드로 가봐야 합니다. 시하 공작님께서 오늘 하루 동안 모험가 길드의 면접관을 맡아달라 청하셨거든요."
필로네는 왕비의 물음에 답하며 대각선 방향의 아셰리아를 슬쩍 훔쳐보았다.
지금껏 묵묵히 식사 중이었던 아셰리아 공주의 손은 어느샌가 허공에 멈추어 있었다.
'조금만 더 놀려볼까...'
필로네는 몇 마디 말을 덧붙였다.
"오전 면접은 공작님과 '함께' 진행하지만, 오후 면접은 제가 총괄해야 할 것 같더군요."
"힘든 일을 겪고 온 둘에게 너무 많은 일을 맡기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특히 필로네에게는 왕도의 일을 떠맡기는 셈이니, 더욱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함께.
그 단어가 나오자, 스푼을 든 아셰리아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필로네는 또다시 한 단어를 강조하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루시아님. 시하 공작님께서 그만큼 저를 '신용'하기에 부탁하신 일인걸요. 기쁘게 돕고 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가요. 잘 부탁드려요, 필로네. 모험가 길드 재건은 워낙 중요한 일이라 직접 돕고 싶지만, 아시다시피 저는 국무로 바쁜 몸이라서요."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필로네라면 충분히 믿을 수 있죠."
"말씀 감사합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마치자마자...
"루시아 어머님."
"왜 그러니. 아셰리아."
얼음 같은 차가움과 날카로움이 느껴지는 어조로, 아셰리아 공주가 말했다.
"모험가 길드의 재건은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깊은 일입니다. 해방자께서 만든 조직을 다시금 일으켜 세우는 일이니까요."
"그렇지. 잘 알고 있구나."
"거기에 왕족이 빠져서야 하겠습니까."
"으음...?"
"저도 선생님을 도우러 가게 해주세요."
그 말을 들은 루시아는 잠시간 고민했다.
분명 아셰리아의 주장은 타당하고, 만약 일국의 공주인 아셰리아가 모험가 길드에 간다면 홍보 효과 역시 굉장할 것이다.
하지만 루시아로서는...
'면접자 대다수가 전직 용병일 텐데. 그런 자리에 내 딸을 보내는 건 아무래도 위험하지. 뿐만 아니라 아셰리아가 행차한 탓에 큰 소란이 일면 선생의 수하들도 대처하기 어려울 거야.'
장점에 비해 단점이 너무나 커 보였다.
"안 돼요. 아셰리아."
"……."
칼 같은 부정에 아셰리아는 입을 다물었다.
'더 말해도 들어주시지 않겠지...'
지난 며칠간 선생님을 뵙게 해달라고 떼를 써보았지만, 도통 들어주지 않던 루시아 어머니다.
이자리에서 그녀에게 더 말해보았자 안 된다는 말만이 돌아올 게 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아셰리아가 아니었다.
최대한 처연함을 가장한 목소리로,
아셰리아는 다른 한 사람의 부모에게 물었다.
"... 안 될까요? 아버지?"
"……."
아버지.
그 말에 국왕, 필레몬은 굳어버렸다.
매번 두 아이에게 아바마마라는 경직된 단어로 불리는 것이 내심 싫었던 그였다.
하지만 이런 때에 아버지라는 말을 들어버리다니. 지금, 이 순간만큼은 마음에 담고 있던 모든 근심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하하! 딸아. 네 마음대로 하거라."
"필레몬! 너무 위험하잖아!"
"괜찮아. 루시아. 선생의 수하들도 그 자리에 있을 테고, 나도 친위대 몇 명을 붙여 보내지."
"하아... 정말 못 말린다니까."
"하하하하하!"
아셰리아는 조용히 필로네에게 미소 지었다.
그 모습은 마냥 천진해보이기도 하지만, 웃음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면 영 기분이 안좋아진다.
필로네는 생각했다.
괜히 도발한 탓에 혹 하나를 붙여 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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