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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154화 (154/215)

〈 154화 〉 2­118. 기억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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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8. 기억하고 계신가요?

결국 측정용 수정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 나는 에딘을 모험가 길드까지 대동하기로 했다. 저 비싼 것만 쏙 받아먹고 돌려보내기엔 내 평판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착하게 된 모험가 길드.

"와. 딱 내가 말한 대로 지어졌네."

용병 길드는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귀족의 저택 같은 느낌이었다면, 모험가 길드는 평민들에게 친숙한 건물을 지향하기로 했다.

겉보기에 고급스럽지 않은 소재, 그다지 높지 않은 지붕, 없다시피 한 담장이 꽤 친근한 느낌을 줄 것이다.

하지만. 겉보기엔 괜찮은데, 마음속에 불안이 싹텄다.

"한 주 만에 공사가 끝나다니..."

분명 내가 열흘 전에 용병 길드를 급습했던 것 같은데, 그새 건축이 완료되어 있었기 때문.

내가 마법으로 하루 만에 건물을 날려버리긴 했지만, 그걸 생각해봐도 빨리 지어진 셈이다.

내 옆의 헤르만이 대답했다.

"당연하지. 재상부와 왕궁부가 함께 나서서 올린 건물인걸. 양쪽에서 고용한 인부들을 전부 동원하고, 마법까지 써가며 지었단 말이야."

"... 부실 공사를 한 건 아니겠지."

"인간아. 토대 공사까지 전부 다시 했다고."

"하하하..."

이전 세상에서... 땅덩어리 큰 나라에 행해진 부실 건축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겨우 한 주 만에 몇십층을 올렸다나, 그런 건물이 폭삭 무너져 내렸다는 뉴스였었다.

왜 하필 그 기억이 나는지는 모르겠으나, 참으로 사람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래도 여긴 마법이 있으니까...'

그 나라도 엄청난 마법을 쓰긴 하지만, 여긴 진짜 마법이 있는 세상이다. 그 나라만큼 빠르다고 불안에 떨 필요는 없겠지.

길드 마당으로 들어서자, 헤르만이 말했다.

"마당을 넓게 만들어서 다행이네.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전부 수용할 수 있잖아."

"그러게."

"이거 대충 100명 정도 되려나? 이 정도면 마당보단 운동장이라는 말이 어울리겠어."

"전부 용병 길드가 멍청하게 정원을 넓게 지은 덕이야. 용병 따위가 권위를 차리다니."

"확 밀어버려서 속이 시원하긴 하네."

길드 마당에는 동방 무인 몇몇과 수인 꼬맹이 녀석들이 면접자들을 줄 세우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며 헤르만이 말했다.

"형. 저게 면접자들 전부야?"

"아니. 세 시간마다 저만큼 더 와."

"... 뭐?"

"네거리의 용병들이 전부 오는 셈이니까. 오늘 면접자만 거의 300명은 될걸?"

"그 인원을 전부?"

"그래. 이걸 이틀 동안 더 해야 해."

헤르만은 그대로 말을 잃어버렸다.

하긴. 일하기를 그렇게나 싫어하는 헤르만 녀석인데. 당연히 이럴 만도 하다.

내 오른편에 서서 걷던 에딘이 말했다.

"제 안목으로는 부지가 필요 이상으로 넓어 보이는군요. 저기 있는 건 교련장인가요?"

"네. 왕도 내에 부지를 확보하긴 힘들었습니다만, 모험가들의 실력도 생각해야죠. 교관도 몇 명 고용할 생각입니다."

"교관까지요?"

"네. 물론 베테랑 모험가들이 아닌, 신출내기 모험가들의 교육을 맡을 사람들이지만요."

"아. 신진 세력을 키우시겠다는 거군요."

"그런 셈이죠."

"손수 키운다면 공작께 충성하는 세력이 되겠죠. 그런 의도라면 충분히 투자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공작께서는 다 의도가 있으시군요."

"하... 하하."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쿠데타 준비라도 하는 것으로 착각할 말을 하는 에딘 테크니.

조금은 대화를 나눈 탓일까. 이 사람과 대화할 때 지녀야 하는 마음가짐을 깨닫게 되었다.

그건 바로 워딩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괜히 이 사람이 사용하는 단어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다 보면 나만 피곤해진다.

우리 세 사람은 면접 대기자들로 넘쳐나는 널찍한 마당을 지나 길드 본관에 들어섰다.

이곳은 몬스터를 때려잡는 어떤 게임을 참고해 만든 공간이다. 다용도 테이블이 여럿 있고, 한편에는 게시판, 다른 한편에는 의뢰 접수용 창구가 여럿 있다.

이번에도 에딘이 물었다.

"창구 반대편에 있는 저건 식당입니까?"

"네. 전문 셰프들이 식사를 제공할 예정입니다."

"혹시. 그 목적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고단한 하루를 술과 음식으로 마무리하는 거죠.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내 말에 에딘 테크니는 혼자 고민하다 말했다.

"비효율적이라 생각했습니다만, 숨은 기능이 있군요. 내부적인 친목 강화라. 조직 충성도에 큰 영향을 줄 것 같습니다. 음식에 맛만 있다면 말이죠."

"뭐. 음식은 에딘의 입에도 맞을 겁니다."

옆에 있던 헤르만도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도 맛은 보증합니다. 주방장님의 솜씨가 대단하거든요. 너무 많은 사람이 그 맛을 알게 되어 제가 먹지 못할까 봐 두려울 정도입니다."

"그 정도입니까? 저도 경험하고 싶군요."

나는 혼자 머릿속으로 조용히 생각했다.

'아니. 충성이고 뭐고. 그냥 몬헌 베낀 건데.'

굳이 길드에 식당까지 차린 이유를 들자면, 음식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함이었다.

거기다 주방장 어르신의 요리를 여러 사람에게 선보일 수 있다는 것도 크게 작용했고.

애초에 모험가 길드는 왕도에 위기가 닥쳐올 때를 위한 의용병을 양성하려 만드는 거지, 내 사병을 확보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은 아니다.

... 이렇듯 에딘은 효율과 기능에 광적으로 얽매여 있는 사람이라 해야 할까. 내 말 하나하나의 의도를 따지고, 내 행동에서 효율을 찾는다.

이런 사람이 왜 동생에게 편지를 전하고 싶다며 내게 무릎을 꿇었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

'뭐. 그래도 가끔 내가 와서 음식 같은 걸 쏘면, 길드원들의 충성도도 높아지긴 하겠네.'

다른 사람의 관점이란 게 중요하긴 하지. 나는 애써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넘어갔다.

접수대로 가자, 주황 머리 여성이 인사했다.

"아. 공작님! 오셨습니까!"

"안녕하세요. 밀리."

이 여자는 용병 길드의 접수원이었던 밀리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는 취직 사흘 만에 일자리를 잃게 된 꼴이었다.

소식을 접한 정의충 요나가 '공정함'을 요구하며 내게 취직시킬 것을 요구했고, 그런 요나가 영 귀찮았던 나는 그대로 그녀를 채용하게 되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준비는 잘 되어 가나요?"

"네! 주방 식자재도 문제없이 들어 왔고, 면접장 준비도 전부 끝내두었습니다."

"알겠습니다. 주방장님은요?"

"새벽 일찍부터 요리 중이셔요. 일전에 말씀하신 직원들도 따로 고용했습니다."

"잘하셨어요. 면접 진행도 잘 부탁해요."

"네! 헤헤..."

접수원 밀리는 멋쩍은 웃음을 내보였다.

처음에는 밀리의 순진한 성격을 걱정하긴 했는데, 그녀의 일머리는 꽤 좋은 편이었다.

어찌 보면 요나의 그 깐깐한 성격이 의외로 좋은 결과를 만든 셈이다.

그 후 한참 동안 면접 준비를 하고 있었더니...

면접 참가자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로 가득했던 바깥이 한층 더 소란스러워졌다.

"바깥이 왜 이렇게 시끄럽지?"

"그러게..."

바깥에서 면접 참가자들을 줄 세우고 있던 견인족 소년, 루이가 다급히 들어왔다.

"고... 공작님!"

"왜 그러니. 루이."

"그게. 왕실의 행차에요!"

"뭐?"

내 옆의 헤르만이 말했다.

"형. 오늘 면접관은 필로네 양만 더 오면 되잖아. 갑자기 웬 왕실의 사람이 온다는 거야?"

"국왕님께서 토벌 나가는 길 아닐까?"

"그럼 이렇게 소란스러울 이유가 없는데?"

"그러고 보니..."

헤르만의 말이 맞다.

일전에 공주가 말했지 않나. 재앙 토벌을 오가는 국왕에게는 큰 격실을 차리지 않아도 된다고.

루이는 설명을 덧붙였다.

"마차에 친위대까지 대동해서 길드 앞에 오셨던데요."

"……."

"친위대...?"

친위대라니.

그 단어에 나와 헤르만은 얼굴을 마주 보게 되었다.

"설마. 국왕님이?"

"에이. 토벌 나갔다 오셨는데, 설마 직접..."

"아니. 그 팔불출 국왕이라면 가능해."

"형. 그거 왕권 모독이야. 형이 왕실 가정교사가 아니었다면 당장 내가 연행해야 한다고."

"그거 교사니까 괜찮다는 거지?"

"하아. 이 인간이..."

그렇게 실없는 소리를 하고 있자, 길드 마당에는 '우와아아아!'하는 함성이 울려 퍼졌다.

"하아. 빨리 마중이나 나가자."

"... 형. 한숨. 왕권 모독. 대중들 앞에선 조심해."

"그거야 당연하지. 빨리 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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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서자, 100명이 넘는 면접 참가자들이 길드 부지 입구를 보며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와아아아아!"

"공주님께서 납셨다!"

"왕족이 면접에 참여하다니. 꿈이야 생시야!"

무언가 들려서는 안 될 말이 들린 것 같은데.

입구로 시선을 옮기자, 그곳에는 멀리서도 확실히 눈에 띄는 은발의 소녀가 서 있었다.

'진짜 오셨네...'

그 옆으로는 원래 면접관으로 내정되어 있던 필로네가 똥 씹은 얼굴로 수행하는 중이다.

"헤르만. 이거 무슨 상황이냐."

"글쎄. 나도 잘 모르겠네..."

이내 스무 명의 친위대가 그녀들의 양옆에 섰고, 그중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근엄하게 외쳤다.

"정숙하라!"

그의 말에 마당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내 부하들의 통제에 따라 중앙로에서 거리를 둔 면접 참가자들은 침만 꿀꺽 삼킬 뿐이었다.

순식간에 이 분위기를 유도한 친위대장은 공주에게 경례했으며, 그에 아셰리아 공주는 고개를 끄떡인 뒤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작지만, 품격이 느껴지는 발걸음이라 해야 할까. 새삼 저 아이가 왕족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행진이었다.

그렇게 내 앞까지 미끄러지듯 다가온 작은 소녀는, 드레스 끝자락을 잡고 우아하게 인사했다.

언젠가 알현의 홀에서 본 그 인사였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랜만입니다."

무언가 '오랜만'이라는 단어에 힘이 느껴지는 건 순전히 내 기분 탓일까.

그에 나는 멋쩍은 웃음과 함께 답했다.

"하하... 일이 바빠서 찾아가질 못했네요. 오늘은 어쩐 일로 오셨나요?"

"이유를 말씀드리기 전에, 선생님께 확인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네?"

내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자... 아셰리아 공주는 나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는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저와 한 약속. 기억하고 계신가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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