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화 〉 2120. 우리 애 기를 죽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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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0. 우리 애 기를 죽여...?
아셰리아 공주에게 관심법을 당한 7번.
그의 행색만 보면 에우데미아 출신은 아닌데. 밀리터리 룩에 수많은 공격용 마도구를 수납하는 포켓이 있는 걸 보면 분명 에퀼리아 쪽 사람일 것 같다.
그는 아셰리아 공주에게 외쳤다.
"머릿속에 안 좋은 감정이 가득하다니!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증거도 없지 않습니까!"
그에 아셰리아 공주의 옆에 있던 친위대장이 검에 손을 가져가며 소리쳤다.
"공주님께 이 무슨 망발인가! 당장 저놈을...!"
"친위대장님. 진정하세요."
"허나 공작님. 이 자는...!"
"제가 알아서 해보겠습니다."
에퀼리아인들은 자기네 나라에서는 상류층의 눈치를 보며 설설 기는 주제에, 계급제가 확실한 에우데미아나 혜세국에 와서는 저런 식이다.
꼴에 자유를 추구한답시고, 자기 위에 있는 자들에게 열심히 개겨대는 것이다.
물론 저들도 왕국법에 걸릴 정도로 개기지는 않는다. 지금도 아셰리아 공주가 여지를 주었기에 저딴 식으로 소리치는 거지, 이런 상황이 아니라면 가만히 있었을 것이다.
나는 아셰리아 공주에게 물었다.
"공주님. 어떤 점에서 거짓임을 확신하셨나요."
"처음에는 의심뿐이었습니다. 왕도 치안본부의 기록지를 보고, 저자의 결백을 입증시켜준 목격자들이 영 수상쩍었기 때문이죠."
"확신하게 된 계기는요?"
"그건..."
내 물음에 공주는 말끝을 흐렸다. 지금 이 자리에서 설명하기 힘든 이유가 있는 모양이다.
그걸 보고 7번은 다시금 소리쳤다.
"보십시오, 길드장! 명확한 근거도 없이 제게 누명을 씌우려던 게 분명..."
"닥쳐라."
"... 뭣?"
감히 우리 애한테 큰소리를 치다니.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가 극성맘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애한테 어디서 큰 소리를 지르는 거야! 네가 뭔데 우리 애 기를 죽여! 아저씨 책임져!'
라는 마음가짐을 다시 한번 다지며 말했다.
"네가 이 자리에 무슨 신분으로 와있는지 잊었나 보군. 우리는 면접관이고, 네놈은 면접자다. 우리가 언제 네놈에게 발언권을 줬지?"
"그건..."
"이곳은 에퀼리아 합중국이 아닌 에우데미아 왕국이다. 거기다 이분은 이 나라의 계승권을 지닌 제1 왕녀시지. 이 기회를 틈타 소리치면 네놈이 잘난 놈이라도 되는 줄 알았나."
"……."
"혐의는 우리가 판단한다. 네놈은 우리가 묻는 말에 답하고, 말하지 못할 것에는 입을 다물면 그만이다. 꼬우면 변호사 선임해오던가."
내 말에 7번은 입을 다물었다. 정곡을 찔렸으니까 할 말도 없을 것이다.
옆에서 서류를 살피던 필로네가 가세했다.
"말씀 잘하셨습니다, 공작님. 사실 저도 공주님처럼 묘한 부분을 발견해서요. 공작님께서도 한 번 확인해보시죠."
"알겠습니다. 필로네."
그 말에 나 역시 내 몫의 서류를 뒤적거렸다.
사건 발생일은 겨우 일주일 전으로, 상당히 따끈따끈한 혐의였다. 거기다 서류에서 눈에 띄는 이름이 두 개 있었으니...
[ 증인: 올리버 테오도시아. 스웨인 아틱. 로엠 카리엘. 이반 칼라시니코프. ]
'올리버 이 새끼는 테오도시아 가문에서 파문당한 걸로 아는데. 도대체 안 끼는 데가 없네.'
'거기다. 게임 속 로엠 카리엘이면 여자한테 눈 뒤집힌 미친놈으로 유명한 용병이었는데.'
'올리버를 제외한 셋은 전부 에퀼리아 출신 성인데... 둘은 인간족. 하나는 드워프네. 네 사람 다 모험가 길드 면접 예정자들이잖아?'
여기 게재된 이름만 봐도 의심이 훅 올라온다. 한 놈은 내가 아모스를 꼬실 때 사용한 멍청이고, 한 놈은 애초부터 싹을 잘라둘 예정이었던 용병이라니.
이어서 증언 조서도 쭈욱 살펴보는데, 이것도 역시 미심쩍은 부분이 존재했다.
"이거 수상한데."
"그렇죠? 저는 공주님께서 잘 보셨다고 생각해요. 저희 영지에도 이런 쓰레기 같은 새끼들이 넘쳐나서요. 아! 당사자가 듣고 있었네. 미안해요~"
"……."
... 필로네가 원래 이런 캐릭터였나.
그녀는 7번을 똑바로 바라보며 쓰레기 새끼라고 말한 뒤, 눈웃음을 흘리며 약 올리고 있다.
게임에서는 괜한 말은 꺼내지도 않던 인물이었는데. 내가 이 세상에 온 탓인지, 너무 많은 사람들의 성격이 뒤틀린 느낌이다.
'내 성격도 조금 버린 것 같기도 하고...'
확실하다. 이쯤 되면 이 세상, 에코니아에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다.
나는 친위대장에게 말했다.
"친위대장님."
"예."
"친위대원 몇 명을 시켜서 치안본부의 요나와 치안대원 다섯. 그리고 여기 적힌 증인 넷까지 전부 한꺼번에 데려와 달라 명해주세요."
"하지만 저희는 공주님의 호위를..."
"이 방에만 후작가의 자제가 둘. 헤르만과 저까지 있습니다. 폭동이 일어나도 저희 넷이면 제압할 수 있어요. 거기다 대장님이 직접 가시는 건 아니잖아요?"
"아. 알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내 부탁을 받은 친위대장은 빠른 걸음으로 면접실에서 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말했다.
"7번. 네 평가는 여기 적혀있는 증인 넷과 함께 하도록 하지. 의자를 줄 테니 대기하도록."
"...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참가자들의 면접을 진행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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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의 7번 면접자에게 실수를 했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셰리아 공주는 이후 면접부터는 꽤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처음처럼 자신 있게 말해봐도 될 것을 굳이 나를 통해 말하려 한다던가, 조용히 서류의 한 부분을 짚으면서 내게 보인다던가.
... 나로서는 우리 아이를 이렇게 만든 7번을 볼 때마다 화가 치밀어오르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면접이 40번까지 진행되었을 무렵, 면접장으로 요나가 찾아왔다. 그 뒤에는 3대 500은 너끈하게 칠 것 같은 치안대원들도 함께다.
요나가 내게 말했다.
"교사님. 부름을 받고 대원들과 함께 왔습니다. 어떤 일로 부르신 겁니까?"
"아. 저거 때문에요."
그의 물음에 나는 7번을 손가락질하며 답했다.
내 단어 선택과 손가락질에 꽤 자존심이 상한 듯, 그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변하는 중이다.
그를 보던 요나가 말했다.
"지난주에 치안본부로 잡혀 왔던 사람이군요."
"네. 저희가 증언 조서를 확인했는데.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 추가 심문을 하려고 불렀습니다."
"말씀은 알겠습니다만. 그게..."
요나는 내게 말을 흐리며 7번을 슬쩍 보았다. 7번의 앞에서는 말하기 힘든 내용이 있는 모양.
나는 밖에 있던 윤흠서를 불렀다.
"대장님!"
"부르셨소. 시하 공."
"저기 7번 면접자. 잠시 바깥에서 대기 좀 시켜주실래요? 그리고 다른 면접자들 도착했죠?"
"그렇소."
"다섯 명 전부 거리를 띄우고, 서로 대화를 못 나누게 해주세요."
"알겠소. 7번 면접자는 날 따라오시오."
이름이 들키면 안 되다 보니 호칭만으로 부르는데, 영 불편한 방법이다. 하지만 당장에 별수가 없으니...
나는 일단 요나에게 말했다.
"요나. 왜 그러시죠?"
"교사님. 저도 저자가 의심스럽습니다만, 심문을 다시 하기에는 법적인 절차가..."
"어허. 요나. 제가 당신을 하루 이틀 보나요. 그런 말을 할 줄 알았어요."
"따로 생각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저는 여기서 '면접'을 볼 뿐이에요. 마침 이 자리에서 인성을 평가하다 보니, 혐의를 다시 한번 물을 뿐이고요. 당신은 임시 면접관. 치안대원들은 길드 면접을 도와주러 온 봉사자들."
"... 아!"
깨달았다는 듯이 손바닥을 주먹으로 탁 치는 요나.
이내 그의 표정은 다시금 어두워졌다.
"하지만 교사님. 증인이 넷이나 있어서..."
"제게 다 생각이 있어요. 치안대원들!"
""""예!""""
"면접자들 입에 물릴 재갈을 하나씩 준비해두세요. 의자 뒤에 한 사람씩 서 있으면 됩니다."
""""예!""""
갑자기 재갈이라니.
깜짝 놀란 요나는 나를 멍하니 쳐다보며 물었다.
"교사님. 갑자기 재갈은 왜..."
"요나. 당신에게 색다른 심문을 보여줄게요."
"색다른 심문이라니..."
"안심하세요. 고문이나 협박은 전혀 없으니까요."
"... 알겠습니다."
.
.
잠시 후.
면접실에는 7번 면접자와 네 명의 증인들이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는 커다란 덩치의 치안대원들이 한 명씩 붙었다.
"재갈을 채워라."
내가 대원들에게 명하자, 7번과 올리버 테오도시아가 그 자리에서 반박했다.
"이... 이런 법이 어딨습니까! 갑자기 저희에게 재갈이라니요!"
"이시하 임시 공작. 나 역시 에우데미아 귀족의 일원! 나를 범죄자 취급하는 것이오?"
하지만 내게 그런 게 먹힐 리 없었다.
이것도 면접의 일환이니까.
"여기 있는 다섯 명은 전부 면접자인데, 내 면접 방식에 불만을 품는 것인가. 그리고 올리버. 네 놈은 가문에서도 파문당했을 텐데. 테오도시아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하려 드는 것이냐!"
"……."
"……."
사실 더 이상 반항하려야 반항할 순 없을 것이다.
내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에퀼리아 출신 용병들의 대부분은 사기꾼이다. 애초에 산업이 발달한 에퀼리아에서, 계급제가 남아 있는 타국으로 올 이유는 범죄뿐이니까.
거기다 올리버는 가문에서 파문당한 막장 인생. 내가 테오도시아 가문에 편지 한 통을 넣는 순간, 가문의 사병들이 달려와 그를 구속할 수도 있다.
이 상황에서 모험가가 되어 의뢰를 받는 것 말고는 살길이 없으니, 아무 말도 못 하는 것이다.
"빨리 재갈이나 채우도록. 이번 면접은 특별한 방식을 채용하겠다."
내 말에 다섯 사람의 입에는 재갈이 채워졌다.
"지금부터 우리의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되었다면 손을 들어라. 다섯 사람이 전부 손을 들었을 때 재갈을 풀 것이고, 곧장 준비한 답을 내뱉어야 할 것이다. 눈치를 보는 순간 탈락이다."
내 말에 다섯 사람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 이럴 줄 알았어.'
나는 내 옆의 공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공주님."
"... 네. 선생님."
"미심쩍었던 질문을 지금 해보세요."
공주는 예상치 못했다는 듯,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제가요?"
"네."
"정말로 제가 질문을..."
"공주님이 짚어낸 사람이지 않나요. 어서. 자신감을 가지고 질문해보세요."
내 말에 공주는 멍하니 내 눈을 바라보았다. 조금은 걱정이 어려있는 눈빛이라 해야 할까. 내가 처음 이 세상에 왔을 무렵에나 가끔 보이던 그 눈빛이었다.
그 안쓰러운 모습을 본 나는...
'이 지경이 되도록 우리 애 기를 죽여...?'
다시금 마음속에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하지만 아이에게 이 화를 풀어낼 수는 없는 법, 나는 최대한 평정을 가장하며 공주에게 말했다.
"자. 어서요."
"그게..."
"저는 아셰리아를 믿는답니다. 괜찮아요. 해보는 거예요. 마음속에 근거가 있었잖아요?"
내 채근에... 공주는 이내 큰 결심이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섯 면접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첫 질문을 내었다.
"일주일 전, 7번의 범죄 혐의가 생겼던 그 날. 당신들은 한 음식점에서 식사를 함께했었다고 진술했었죠. 그 음식점의 상호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곳에서 어떤 음식을 드셨나요?"
그 질문에 몇몇은 옆 사람에게 눈길을 향했다. 그 눈빛에는 하나같이 불안이 담겨 있었다.
'이 새끼들이 어디서 또 짜고 칠려고...'
나는 그 모습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치안대! 저들의 눈을 가려라!"
""""옛 썰!""""
정말 대답 한 번 우렁찬 헬창들이었다.
그리고 우람한 몸집과는 다르게, 그들은 신속하게 면접자들의 두 눈을 가려버렸다.
이어서 나는 헤르만에게도 말했다.
"헤르만. 저것들 귀에다 차음 마법도 박아버려."
"한 명씩...?"
"당연하지."
"귀찮은데..."
"아. 그전에 이 면접의 룰을 다시 한번 설명하지. 재갈을 푸는 순간 바로 대답해라. 늦어지는 초마다 뒤에 있는 치안대원들이 한 대씩 꿀밤을 때려줄 테니까. 숙지했는가, 치안대원들?"
""""옛 썰!""""
내 지시에 아연해진 요나가 말했다.
"교... 교사님. 이게 협박이지 않습니..."
"어허. 모험가 길드의 특별 면접 방식이 이런데 어쩌겠습니까. 이게 어딜 봐서 협박이란 거죠?"
"아. 아니."
말문이 막혀버린 요나.
나는 그에게 생각할 틈도 주지 않기 위해, 내 옆의 필로네를 돌아보며 물었다.
"혹시 내가 이상한 건가. 필로네. 당신은 이 면접 방식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상황에 들어맞는 아주 적절한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소피아 령에 돌아가면 저도 이 방식을 채용해야겠군요."
필로네가 쐐기까지 꽂아버리자...
요나는 허공을 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아... 나도 모르겠다..."
이번 달 들어 요나의 정의가 두 번째로 꺾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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