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157화 (157/215)

〈 157화 〉 1­121. 두 분만. 두 분께서.

* * *

2­121. 두 분만. 두 분께서.

그 뒤로 '면접'은 십 분 동안 진행되었다.

아셰리아 공주는 진술 조서에서 의문이 드는 부분을 전부 질문했고, 면접자들은 그때마다 다른 답을 내놓기 일쑤였다.

'그러게. 왜 전부 짜고 치려 들어서는...'

아셰리아 공주와 필로네가 조서에서 느낀 위화감은 단 하나.

사람이라면 진술 중에 조금이라도 다른 부분이 있어야 정상인데, 이들의 모든 증언은 소름 돋을 정도로 일치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증언들이 같았을 뿐이라면 큰 문제가 아니다. 다섯 사람이 실제로 함께 다니다 누명을 썼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모르는 것까지 전부 일치한다면, 짜고 친 것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나는 요나에게 말했다.

"요나. 이 정도면 확신범이죠?"

"여부가 있겠습니까. 저도 어느 정도 의심을 하고 있었는데, 교사님 덕분에 인력을 아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뭐야. 미행이라도 세울 생각이었어요?"

"예. 올리버를 제외한 네 사람은 이번 사건이 세 번째였거든요."

두 번째라... 내가 아는 역사에서 저기 있는 로엠 카리엘은 용병 길드의 호색한으로 유명했다.

적어도 다른 세 사람은 본 적이 없는데, 아마 저 셋은 게임 본편 시점 이전에 검거당해 왕국에서 추방당한 게 아니었을까. 그게 아니라면 로엠이 저 셋을 꼬리 자르듯 버렸을 수도 있겠다.

나는 요나에게 말을 덧붙였다.

"요나. 에퀼리아 사법부와 정보를 교류할 수 있나요?"

"예. 그쪽에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필요한 정보라도 있으신지요."

"저 네 사람 중에 이 정도로 진술을 맞출 수 있는 인간이 있다면, 에퀼리아에서도 전과가 있는 게 당연하겠죠."

"이해했습니다. 에퀼리아 경찰과 공조하여 수사해보라는 말씀이시군요."

"네. 특히 저 로엠이라는 인간은 더 신경 써주세요. 저는 저 사람이 제일 수상하네요."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저 다섯 사람의 심문 겸 면접은 여기까지 해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뭔가 아쉬운데...'

그런 생각이 들 때쯤, 내 옆의 필로네가 7번 면접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요나님. 저기 7번 면접자 있잖아요."

"네. 말씀하십시오. 소피아 영애."

"저자가 공주님을 모독했습니다."

"예? 왕실을 모독했다고요?"

"네."

모독... 이라기엔 영 부족한 것 같긴 한데.

하지만 필로네는 나를 슬쩍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공작님. 방금 저 인간이 공주님을 방금 되지도 않는 누명을 씌우는 꼬맹이라며 면접장에서 날뛰지 않았나요?"

... 꼬맹이라는 말은 안 한 것 같은데.

하지만 필로네가 말하는 것은 내 이해와 일치한다. 저 새끼는 우리 애를 건드렸으니, 감옥에서 더 오랫동안 썩어야만 한다.

왕실 모독이면 최소 종신형이지만, 그건 전혀 내 알 바가 아니다.

"그렇죠. 면접관들은 전부 들었습니다. 여기 계신 친위대장께서도 들으셨고요."

"사실입니까. 친위대장님?"

"... 왕실 가정교사께서 저를 저지하셨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이 자리에서 저자를 베어버렸을 겁니다."

친위대장도 내가 말렸을 때 꽤 화가 나 있었기에 적당히 넘겨봤는데, 그 역시 눈치 있게 우리 말에 힘을 실어 주었다.

그러자 요나의 얼굴에는 화가 치밀어올랐다.

"저 자식들을..."

원래라면 당시 면접장에 있던 다른 면접자들을 전부 끌어모아 대질 심문을 했겠지만, 용병 길드 체포 이후 요나는 화가 많아진 상태다.

정의에 대한 강박감이 조금 줄어버린 것이다.

'이쯤 되면 내가 몹쓸 짓을 했나 싶기도 한데...'

하지만 처음 만났을 때의 요나는 너무나도 고지식했다고 해야 할까. 지금 저 모습 정도면 괜찮을 것 같다.

이내 요나는 치안대원들에게 명을 내렸다.

"대원들. 더 들을 것도 없다. 저들을 당장 체포해 복귀하도록."

""""예!""""

차음 마법에 걸린 채 두 눈이 가려져 있는 범인들은 별다른 저항도 없이 구속당했다. 뭐라 고함을 치는 것 같긴 한데, 차음 마법이 걸려 있다 보니 들리지도 않는다.

이후 손쉽게 체포를 마친 헬창 치안대원들은 범죄자들을 어깨 위에 짊어지고 면접장을 뒤로했다.

그나저나 요나에게 에퀼리아 사법부와의 연줄이 있다면, 다른 것도 부탁해두는 게 좋지 않을까.

나는 요나를 불렀다.

"요나. 저 사람들과는 관계없는 부탁을 하나 드려도 될까요?"

"네. 말씀하시죠. 교사님 덕에 이들을 잡은 셈이니, 저도 은혜는 갚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에퀼리아 출신이 모험가 자격을 획득할 때마다 명단을 드릴게요. 에퀼리아 사법부로 보내서 확인시켜주실래요?"

"흐음..."

요나는 한 손을 턱에 가져다 대며 고민했다.

"초상화도 주시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에퀼리아인들은 이름을 바꾸는 경우도 많다 보니, 초상화를 보내는 게 더 확실합니다."

"그렇군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저도 이만 가보겠습니다."

요나는 이 자리에서 가장 높으신 분인 아셰리아 공주에게 경례를 올린 뒤, 절도 있는 발걸음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아. 속이 시원하네. 그래도 면접을 더 하기엔 좀 지치네요. 다들 쉬었다 할까요?"

"형. 주방장님 지금 바쁘시려나. 우리 요리 좀 부탁드려도 돼?"

"그럴까. 하긴 벌써 시간이 점심때긴 하네."

주방장님이 고블린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던 건 언제고, 그 뒤로 몇 번 식당에 더 가보더니 어느새 적응해버린 헤르만이었다.

우리 대화를 들은 필로네가 물었다.

"주방장이라면, 저번에 베이커리에서 보았던 그 분인가요?"

"네. 맞습니다."

"당시에 그분께 부탁드린 일이라는 것도 모험가 길드였고요?"

"네. 이런 곳에서 일하실 분은 연륜과 실력이 있어야 하니까요."

"……."

내 대답에 약간 아연한 표정을 짓는 필로네. 그녀는 이내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때부터 이런 일을 생각하셨다니. 참 대단한 분이시네요."

"저도 길드 설립이 이렇게나 빨라질 줄은 몰랐습니다."

"모험가 길드 부활을 생각한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에요."

"하하하하..."

본편 시점이 오기 전까지 내가 정리해둬야 할 존재들은 아직 많고, 용병 길드는 그중 하나였다. 나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 주변 사람들은 내가 미래를 알고 있다는 걸 모르니까. 저런 시선으로 날 볼 수밖에 없겠지.

나는 에딘과 필로네에게 물었다.

"필로네. 주방장님 요리 한번 드셔보실래요? 에딘도 여기 오면서 요리가 기대된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알겠어요. 잠시 쉬면서 오찬을 즐기는 것도 좋겠지요."

"저도 좋습니다."

그나저나...

어르신 이야기가 나오면 조금은 아셰리아 공주가 기운을 차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녀는 아직도 멍하니 허공을 보고 있었다.

내가 알기로 이 아이가 이런 표정을 지을 때는 단 하나뿐. 자신이 혹시나 '정답'을 고르지 못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할 때다.

그 감정은 자책감. 어떻게 보면 사람을 가장 힘들게 하는 존재 중 하나다.

최대한 그런 생각을 하지 않도록 옆에서 가르치고는 있지만,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마음속에 뿌리내린 그 생각은 쉽게 버리기 힘들 것이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공주님."

"... 네."

"저와 주방장님께 인사라도 드리고 오실까요?"

"……."

내 제안에 아셰리아 공주는 말없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무언가 눈빛이 흔들리고 있다고 해야 할까. 영 불안한 눈치였다.

그렇게 잠깐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그녀는 힘없이 말했다.

"네. 한 번 인사는 드려야죠."

* * *

모험가 길드의 주방.

그곳에는 왕실의 주방에서 자원을 받아 파견 나온 몇몇 견습생들이 고블린 노인의 오더에 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었으니...

"저분들은..."

"가정교사님과 공주님이시잖아?"

"왕녀님께서 어찌 이런 곳에..."

주방 뒷문으로 시하와 아셰리아가 몰래 들어온 탓이었다.

주방 보조들이 그들의 모습을 보고 동요하자, 고블린 주방장 역시 자신을 찾아온 손님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 시하 공작님. 거기에 공주님까지 오셨군요. 이 늙은이가 먼저 인사하러 가지를 못해 참 송구스럽군요."

"오랜만이에요. 어르신."

"노고가 많으십니다. 주방장님. 주문이 많나 보네요. 식당 주문은 면접 합격자만 할 수 있도록 제한해뒀었는데..."

시하가 영 걱정되는 어조로 말하자, 고블린 노인은 말했다.

"허허. 이 정도는 스승님과 함께할 적에 비한다면 쉬운 편입니다. 충분히 할 수 있어요."

"그래도 첫날이니까 무리는 하지 마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주방에는 어쩐 일로...?"

"아. 저희 점심 식사를 부탁드리려고요. 면접실에 여섯 명입니다."

"사람을 시키셨어도 되었는데..."

두 사람의 눈높이가 비슷한 탓일까. 시하와 말하던 고블린 주방장은 순간 아셰리아 공주와 눈이 맞았다.

'면접장에서 소란이 있었다더니, 영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보군...'

7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온 노인은 눈앞의 아이에게 근심이 깔려 있음을 놓치지 않았다.

"공주님. 무언가 드시고 싶은 음식이라도 있으신지요."

"... 저야 어르신께서 해주시는 음식이라면 무엇이든 좋지요."

"허허. 그거참 감사합니다."

물론 아셰리아는 음식에 기분이 좌지우지하는 아이가 아니다. 지난 여섯 달간 그녀에게 음식을 대접해왔던 고블린 주방장은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방금의 질문은 자신의 생각이 맞나 확인하기 위한 질문이었을 뿐.

'처음 내 식당에 온 뒤로 이런 적은 없었는데...'

노인이 생각하기에... 아셰리아는 어릴 적 자신과 매우 닮았다. 그 역시 인생에서 스승의 지분이 상당히 높았기 때문이다.

혹시나 시하와 아셰리아가 단둘이 있을 시간을 만들어 주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노인은 말했다.

"음식은 30분 정도면 준비될 것 같군요. 그런데 공작님. 부탁을 하나 드려도 될는지요."

"어떤 부탁이십니까."

"이런 큰 식당을 관리하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장부 관리를 제대로 했는지 자신이 없군요."

"아. 그럴 수도 있죠."

시하는 별 의심 없이 노인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런 그에게 고블린 노인은 넌지시 자신의 의도를 내비쳤다.

"공작께서는 이제 제 상관이시고, 공주님께서는 왕국의 지낭으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두 분만' 계실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드릴 테니, '두 분께서' 의견을 나누시면서 장부를 검토해주십시오."

그에 시하는 생각했다.

'왜 둘이라는 단어에 힘이 엄청나게 들어간 느낌이지...'

시하는 고블린 주방장이 범상치 않은 사람임은 알고 있다. 자신은 평범한 식당을 운영했다고 하지만, 그는 무려 100년 전 표류자의 제자가 아닌가.

그런 그가 왜 하필이면 두 사람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자신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 걸까.

그것도 '스승과 함께할 때에 비하면 이 정도는 쉽다'라고 말한 지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이런 말을 하다니.

'다른 의도가 있으신건가...'

시하는 노인에게 답을 내놓기 전에, 아셰리아의 의사부터 확인했다.

"공주님은 어떠세요."

"... 저는 괜찮습니다. 어르신의 부탁이라면 당연히 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네. 그럼 주방장님. 음식이 다 되는 동안 장부를 좀 보다 가겠습니다."

시하의 말에 고블린 주방장은 웃음을 유지하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 사무실을 쓰시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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