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화 〉 2129. 고양이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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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9.고양이의 꿈.
어느 날, 모험가 길드의 면접장.
면접자들이 자리를 비우자, 내 옆에 앉아 있던 필로네가 물었다.
"공작님. 이게 마지막 조 맞죠...?"
"네."
"오늘의 마지막 조가 아니고, 진짜 진짜 마지막 면접이죠?"
"... 네. 고생 많으셨어요. 필로네."
"하아..."
필로네는 한숨과 함께 면접장 책상에 엎어졌다.
어찌 보면 후작가 영애로서 실격인 모습이지만, 그녀의 행동을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역시 비슷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면접장 끝에서 죽어가던 헤르만이 말했다.
"무울... 물..."
"자. 이거라도 마셔."
"감사..."
"너도 일주일 동안 수고했다."
"……."
모험가 길드 면접은 일주일째 이어지는 중이다.
왕도의 인구는 10만에 가깝고, 그중 5%가 용병이었다. 다시 말해 전직 용병은 오천 명. 우리는 그 오천 명의 면접을 일주일 만에 진행했다.
그렇다고 면접을 실제로 그만큼 본 건 아니다. 왜냐하면, 첫날 몇몇 범죄자들이 구속되는 꼴을 본 악질 용병들이 도주를 시도했기 때문. 약 이천 명 정도의 전직 용병이 왕도를 탈출하려 했고, 그중 대다수가 치안본부에 잡혔다.
결과적으로 면접자들의 수는 삼천 명. 거의 하루에 사백 명 정도의 인원을 면접하다 보니, 여기 모인 사람들은 전부 녹초가 되어버렸다.
나는 측정용 수정 옆에서 천장만 멍하니 보고 있는 에딘에게 감사를 표했다.
"에딘. 수고하셨어요."
"예. 저는 별로 한 건 없지만요."
"아닙니다. 그 수정구들을 만들어주지 않았다면 등급 산정에 애를 먹었을 거예요. 고위험군 분류도 어려웠을 테고요."
"……."
"저는 다른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기다리시면 셰프님이 저녁을 준비해주실 거예요."
내 말에 에딘은 잠시라도 밝은 표정이 되었다.
"그분께서 없으셨더라면 이 일도 못했을 것 같군요. 먹을 때마다 왠지 모르게 힘이 솟는 그 맛이란. 이해할 수 없는 느낌이었습니다."
"하하하..."
당연하지. 게임에서도 건강 수치가 엄청나게 높지만, 수상한 효과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요리를 만들던 사람이니까. 지난 한 주 동안, 밥 한 끼만 먹으면 묘하게 활력이 솟았었다.
대화를 듣고 있던 필로네가 물었다.
"공작님은 다른 일까지 있으신 건가요?"
"네. 미뤄둔 일이 있어서요."
"피곤하실 텐데 오늘 하루 정도는 쉬셔도..."
"아뇨. 이미 오랫동안 미뤄둔 일이라서요. 바로 가봐야 합니다.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니에요."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댄 필로네는 조금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았다. 아직 면접관 자리에 앉아 있는 헤르만도 마찬가지.
사실 나도 피곤하기는 하다. 한 주 동안 내가 직접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으니까.
왕비님이 준 일주일의 기한이 끝나버렸기에 강의를 재개했고, 모험가 길드 면접은 끝이 안 보이는 데다, 각 상인회는 매번 내게 조언을 요청하며, 지금껏 체포한 쓰레기들의 심문에도 참여해야 했다. 솔직히 하루가 24시간인 것에 불만이 생길 정도다.
... 하지만. 오늘만큼은 가야 한다.
"헤르만. 너도 대충 쉬다가 들어가."
"어디 가는 건데?"
"저번에 이야기했잖아. 새로 지은 숙소도 점검하고, 그 애 얼굴도 한번 보려고."
"그냥 나도 따라갈까?"
"아냐. 오늘은 대장님이랑 같이 다닐 거니까. 오늘은 너도 얼른 들어가서 쉬어."
"... 알았어."
영 탐탁지 않은 듯한 대답이었다.
괜히 따라간다고 해도 내가 거절할 걸 아니까 저러는 거겠지. 하지만 시온 자작령에서 뒷수습을 하고도 쉬지 못했던 헤르만이니까, 오늘 정도는 쉬게 해주고 싶다.
나는 다른 두 사람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필로네. 에딘. 둘 다 한 주 동안 고마웠어요. 오늘 정도는 제가 직접 배웅해드려야 하는데, 요즘 워낙 바빠서 그러지를 못하네요. 죄송합니다."
"안 하셔도 됩니다. 저는 큰 은혜를 받았으니까요."
"... 힘내세요. 공작님."
"네. 먼저 가보겠습니다."
인사를 마친 내가 면접실을 나서자, 이미 문 앞에서는 윤흠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하 공. 일은 마쳤소?"
"네. 숙소로 가죠. 그 아이는 오늘은 어땠나요?"
그 아이.
이름을 말하진 않았지만, 너무나 뻔한 표현이었다.
윤흠서와 내가 지금 걱정하는 사람은 똑같으니까.
"후우..."
외팔이 장수는 한숨을 늘어뜨리며 답했다.
"변함없었소. 온종일 궁도장에 틀어박혀 활만 쏘는 중이오. 그나마 아일라와 라나가 반쯤 억지로 식당에 데려 나오고는 있소만..."
"큰일이네요."
"……."
옆에 있는 사람을 잃는 것. 나도 언젠가 겪어본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나는 결국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는 당시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렸고, 세상을 미워하며 술이나 퍼마시고 있을 뿐이었다.
아마도 내가 에코니아에 오지 않았더라면, 그 생활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던 주제에...'
참 웃기는 일이다.
나 자신이 그 상실감을 극복하지 못한 주제에, 다른 사람을 북돋아 줘야 하는 입장이라니.
내 옆의 윤흠서가 말했다.
"내가 다 송구스럽소."
"대장님이 왜 미안해하시는 건데요."
"어찌 보면 내 책임이지 않소."
"왜죠?"
"그 아이에게 인환을 붙인 것은 나였고. 그 아이를 격려해야 하는 것도 나였소."
"클로에에게 스승을 붙여달라 부탁한 건 접니다. 클로에와 계약한 것도 접니다."
"……."
내 단호한 대답에 윤흠서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우리는 말없이 길드를 나와 마차에 탔고, 그제야 윤흠서는 말을 꺼냈다.
"이번 일로 새삼 느꼈소. 시하 공은 정말이지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 나는 군에서 동료를 많이 잃어봤소. 다른 수하들 역시 마찬가지지."
윤흠서의 눈은 마차의 창밖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시야에는 왕도의 거리가 아닌, 과거의 무언가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초점이 너무나도 멀었기 때문이다.
"대의를 위해. 우리 무인들은 그 말 한마디로 동료의 죽음을 견뎌낼 수 있소. 사실 죽음뿐만이 아니지. 우리가 저지른 모든 행위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 마력이 담긴 한마디이기도 했소."
"... 그렇군요."
대의.
정말이지 많은 뜻을 담고 있는 단어였다.
자신이 믿고 있는 큰 뜻을 위해 쿠데타에 동참하고. 타국에 흘러들어온 뒤로도 자금을 모으겠다며 범죄를 저지른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니까.
어찌 보면 자신들이 느끼는 죄의식과 상실감을 속일 수 있는, 가장 허울 좋은 단어였을 것이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는 채 말을 이었다.
"허나 그 아이에게는 차마 그 말을 할 수 없었소."
"……."
"척후조가 출발하기 전, 인환이 말했소. 그 아이가 스스로 뜻을 정하도록 돕고 싶다고. 그 말이 떠오르니, 감히 대의라는 단어를 꺼낼 수 없었소."
나는 인환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정확히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오직 두 가지뿐. 활을 다루는 후군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집안과의 갈등 끝에 전군에 입적했다는 것. 그리고 나중에 가서는 신병을 가르치는 직책을 맡았다는 것.
둘 다 유나를 통해 간접적으로 들은 내용이다.
하지만.
아이가 뜻을 스스로 정하도록 돕고 싶다라...
그 한마디로도 교육자로서 그의 방침이 보이는 것 같았다. 거기다 클로에에게 그런 이야기를 할 정도로 단기간에 친해졌다는 것까지.
이를 깨닫자, 내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윤흠서는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시하 공은 교사이지 않소."
"그렇습니다."
"인환은 한 명 교관이었지."
"그건 유나에게 들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나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무거운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었어."
"그런 건 아닙니다."
"시온 자작령에서 방어전을 마친 후. 시하 공의 제자들과 몇 마디를 나누게 되었소. 이 나라의 미래로서 잘 자라나고 있더군."
"... 그 아이들이 착하고 유능할 뿐이에요."
"일일이 스승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이들인데, 그 어찌 스승의 영향이 없었겠소."
스승의 이름을 올리다니. 이거 딱 보니, 알렉산더가 무슨 말을 했나 보다.
윤흠서는 담담하게 자기 말을 이었다.
"이번에 다시 한번 느꼈소. 나는 시하 공이나 인환처럼, 누군가를 가르칠 자신이 없소."
"……."
"내가 배워온 것은 칼을 휘두르는 방법뿐. 그런 내가 어찌 타인을 가르칠 수 있겠소. 지금 다시 떠올려보면, 나는 내 자식들에게도 그리 좋은 아비는 아니었소."
자식. 아비. 그 두 단어를 말하는 순간, 윤흠서의 목소리가 잠시 떨렸다.
그의 자식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역적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죽었을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전군의 명맥을 유지한다는 핑계로 살아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선택한 삶이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을 리 없다는 것이다.
살아있어도 죽은 듯이 살아야만 하겠지.
"허나. 시하 공이라면 클로에 녀석도 잘 일으켜 세울 것이라 믿고 있소."
"……."
필레몬 국왕도, 공주님도, 윤흠서도. 왜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이렇게까지 기대하는 걸까.
나는 이 세상에 온 뒤로 운이 좋았을 뿐이란 생각이 머리에 스쳤지만, 금세 지워져 나갔다.
'적어도 애들한텐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지...'
공주의 한마디가 그 생각들을 지워냈기 때문이다.
"잘 해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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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오후인지라, 천장이 뻥 뚫려있는 궁도장은 노을빛으로 가득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은 오직 나와 고양이 귀 소녀 한 사람뿐.
'지금도 쏘고 있었구나.'
내가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클로에는 묵묵히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팅 현이 튕기는 소리와
휘익 화살이 나는 소리가 울렸다.
이내 화살은 과녁의 푸른 테두리에 맞았다. 굳이 점수를 따지자면 10점 중 5점과 6점 사이.
'그래도 과녁을 맞히기는 하는구나.'
클로에가 연습을 시작한 건 고작 2주일 전.
활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저 정도만 해도 실력이 꽤 빨리 늘어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클로에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아직 자기 마음에 들지 않나 보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며 이름을 불렀다.
"클로에."
"아. 공작님..."
그제야 클로에는 나를 알아차린 듯, 내 쪽을 바라보며 공손히 인사했다.
하지만 그녀의 상태는 영 좋지 못하다. 눈에는 짙은 다크 서클이 내려와 있고, 정돈되지 않은 금발이 헝클어져 있었다.
거기다...
"손은 왜 숨기는 거야."
"그게..."
머뭇거리며 자기 오른손을 등 뒤로 숨기는데, 나로서는 그 어색한 모습이 신경 쓰였다.
"오른손. 앞으로."
"싫어요..."
"빨리. 잔소리 더 하기 싫어."
"……."
내 채근에도 금발 고양이는 입을 꾹 닫아버린 상황.
나는 그녀의 오른손을 낚아채듯 당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수인이니까. 신체 강화까지 써가면서 말이다.
"빨리 내놔."
"아..."
"……."
역시나. 클로에의 손은 엉망진창이었다.
붕대로 칭칭 감겨는 있었지만, 동시에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손을 잡은 채 클로에를 바라보면...
내가 야단이라도 칠 거라 생각했는지 얼굴을 돌린 채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으며. 살랑거리던 꼬리 역시 한껏 말려 있었다.
'이걸 어찌 한다...'
참 막막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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