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166화 (166/215)

〈 166화 〉 2­130. 고양이의 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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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0. 고양이의 꿈. (2)

수인들은 활을 수치스럽다고 생각한다.

이는 클로에도 마찬가지였고, 그녀 역시 태어난 이래로 활을 접한 경험이 없었다.

사실 그녀가 유일하게 접한 '진정한 궁사'는 인환 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드넓은 에코니아에서 '궁사'라는 존재는 너무나도 적으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한 사람의 궁수는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클로에의 마음속 깊은 곳에만 남았다.

클로에가 그와 함께한 기간은 단 3주.

숫자로 따진다면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이나, 그 시간은 클로에에게 있어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가 보였던 행동은 클로에의 살이 되었고, 그가 건네었던 말들은 클로에의 뼈가 되어 남았다.

그렇기에 클로에는 정했다.

궁사였던 인환이 칼의 끝에 이르렀던 것처럼, 수인인 자신은 활의 끝에 서보겠노라고.

이는 자신에게 가혹해져야만 하는 꿈이었다.

.

.

노을빛이 들어오는 궁도장.

시하에게 손을 잡히게 된 클로에는 생각했다.

'다른 분들처럼 손을 보고 나무라시겠지...'

그녀의 손은 엉망이다. 어설프게 감은 붕대 사이로는 피가 새어 나오고 있으며, 활과 화살에 닿는 모든 곳에서는 물집이 잡혀 있다.

클로에를 걱정하는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손을 보고 여러 말을 해주었다.

'클로에다운 모습으로 돌아왔으면 한다.'

라나는 수인국 시절을 회상하며 말했다.

클로에는 언제나 다른 이들 앞에서 웃고 있었으니까. 그 해맑은 미소에 이끌린 자들은 많았고, 라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그 모습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었다.

'네가 그 길을 걸을 필요는 없다.'

중상의 몸으로, 병상에 누워있던 서준이 말했다.

길. 혜세국 무인에게 너무나도 의미가 큰 단어다. 그리고 그는 인환이 어떤 길을 걸었는지 알고 있다. 그 길은 고통스러운 가시밭길이었다.

서준은 이 아이가 그 길을 걷지 않았으면 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아일라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말했다.

먼 옛날, 그녀와 함께 슬럼가로 끌려왔던 친구들은 대부분 죽어버렸으니까. 아모스와 단둘이 살아남아 버린 아일라를 지탱하는 유일한 말이었다.

그 말을 전함으로써, 클로에가 살았으면 했다.

하지만.

이들 중 클로에에게 닿을 수 있던 말은 없었다.

물론 클로에는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이 그들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다만, 클로에는 그에 공감해버려서는 안 되었다.

지금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죽을 각오로 노력해야 한다는 자각이 있었으니까.

다른 이들의 말을 공감해버리는 순간, 클로에의 결심에 큰 균열이 생길 것만 같았다.

'시하 공작님도 결국 비슷한 말씀을 하시겠지...'

지금껏 다른 사람들이 전부 그랬으니까. 결국 자신의 은인도 비슷한 말을 할 것이다. 클로에는 그런 생각을 하며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시하는 클로에의 오른손에 감긴 붕대를 천천히 풀어가며 말했다.

"많이 다쳤구나."

"……."

"그만큼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겠지."

"... 네?"

자신의 은인의 툭하고 내뱉은 말은, 지금껏 들어왔던 다른 말들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시하는 클로에의 왼손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손도 줘보렴."

그 말에 클로에는 말없이 자기 손을 시하에게 주면서, 그의 얼굴을 유심히 올려다보았다.

'오늘따라 웃고 계시지를 않으시네...'

클로에로서는 처음 보는 시하의 무표정이었다. 언제나 그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희미한 미소를 유지하고 다녔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시하에게서는, 묘한 무게감과 함께, 슬픔이 깔려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 손도 참 고생한 손이네."

"... 그런가요?"

"여기 손 마디 마디를 보렴."

"……."

손바닥에는 이곳저곳 커다란 물집이 생겨 있었다.

각궁을 손에 쥘 때, 유독 마찰이 생겨나는 부분이다. 오른손에는 화살대와 활줄에 닿아 베인 경우가 많지만, 이곳은 힘으로 지탱해야 하다보니 물집이 많이 생긴 것이다.

"궁도장에 비치된 의료품은 어디 있니."

"벤치 쪽에 뒀어요."

"그래. 가보자."

"... 네."

어느새 손을 놓은 시하가 벤치 방향으로 향하자, 클로에 역시 그의 뒤를 쫓았다.

시하는 의료함을 찾아 자리에 앉았고, 옆자리를 톡톡 손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앉아."

"네..."

"손."

"……."

"그래. 잘했어."

이내 시하는 약초를 빻아 만든 소독제를 찾아냈고, 그 액체를 클로에의 손에 뿌렸다.

그러자 시원하고도 따가운 느낌이 멤돈다.

"앗 따가..."

"참아. 손 못 쓰게 되기 싫으면."

"... 네?"

"이 상태로 계속 연습했다간 아무것도 쥐지 못할 정도로 손이 썩어버릴 거야."

클로에는 이 무슨 협박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시하의 분위기가 워낙 담담하다 보니 차마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시하는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이렇게 계속 물집이 생기다 보면 손에는 굳은살이 박이게 되고, 그 굳은살은 네가 더 열심히 수련해야 할 때 큰 도움이 될 거야. 굳은살 위로는 감각이 옅어지거든."

"굳은살이요?"

"그래. 내 손도 한번 볼래?"

"... 네."

시하는 자신의 오른손을 쫙 펼치고 말했다.

"여기 손바닥. 만져볼래?"

"... 딱딱하네요."

"그래. 에코니아에 와서 검을 쓸 일이 많아졌으니까. 수련하다 보니 생기더라고."

"그렇구나."

"다음은 여기 중지 쪽. 툭 튀어나온 곳도 볼래?"

시하의 중지가 검지와 맞닿는 곳에, 유독 뭉툭하게 튀어나온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그걸 본 클로에는 절로 고민에 빠졌다.

'저건 뭘 쓰다가 생겨난 굳은살이지...'

방금 시하가 보여준 손바닥의 굳은살은 검을 잡다 생긴 것이라 했다. 그리고 활을 잡는 자기 손에도 굳은살이 생길 거라 했으니, 저것도 역시 무기를 잡다 생겨난 혹이 아닐까.

그런 생각에 클로에는 물었다.

"거기는 어쩌다 굳은살이 생기신 거에요?"

"이전 세상에서, 공부하다가."

"네?"

"펜을 너무 오래 잡고 있다 보면 이런 굳은살이 생긴단다. 굳이 무기가 아니어도 생기는 거야."

"……."

검과 펜. 어찌 보면 은인의 오른손에는 두 가지 종류의 노력이 깃들어있던 셈이었다.

클로에는 시하의 손과 자기 손을 비교하듯 같은 높이에 올려놓은 채로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손에서 굳은살을 찾을 순 없었다.

모든 일에 열정적이었으나, 굳은살이 박일 정도로 한 가지 일에 열중한 기억은 없으니까.

그 사실을 자각한 클로에는 풀이 죽어버렸다.

"저에게는 없네요."

"해온 일에 따라 없을 수도 있지."

"그래도 하나쯤은 있을 줄 알았어요."

"하지만. 지금부터 네 손에는 나보다 훨씬 많은 흔적이 생겨날 거야."

"... 네?"

"지금 그 물집들만 봐도 충분히 알지."

그의 말에 클로에는 다시금 손을 내려다보았다.

지금의 그녀에게는 물집이 터져 나오고 있는 왼손과, 긁힌 흔적 가득한 오른손이 있었다.

시하는 그런 고양이 소녀에게 고했다.

"클로에. 너는 언제나 잘하고 싶다는 욕망만 있었을 뿐, 뚜렷한 목표는 없었단다. 그 탓에 인정 욕구만 많았고, 불안감이 과했고, 실수가 잦은 주제에 자신감만 넘치던 상태였지."

"……."

"이건 네가 다시 태어나도 변치 않았을 거야."

뚜렷한 목표가 없었다.

그녀만의 길이 없었다.

언젠가 인환에게도 들었던 것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뒤에 따라오는 말들이 너무나 아팠다.

자기 단점이 타인에 의해 전부 까발려지는 것도 비참한데, 다시금 태어나도 변치 않을 거라니. 그 말은 특히나 더 매정하게 다가온다.

'공작님. 이런 말도 하는 분이셨구나...'

평소에는 한없이 다정하고, 자신과 친구들을 아껴주는 시하였다. 그런 사람이 이런 심한 말을 해버린다니. 조금 당혹스러운 감도 있다.

하지만 시하의 다음 말은 전혀 의외의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걸 걱정할 필요는 없겠구나."

"... 왜요?"

"다른 사람이 너에게 목표를 주고 갔으니까."

그 말에, 클로에의 시간은 잠시 멈춰버렸다.

그 상태로 들은 말을 차근차근 곱씹어 본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목표를. 주고. 가버렸다.

... 그녀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느새 양쪽 뺨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대가는 너무 컸지만... 인환은 내가 포기했던 일을 간단하게 해내고 떠나버렸어."

"흐윽..."

애써 참고 있었던 눈물이 새어 나온다.

자신이 슬퍼해버리면, 마력 속에 깃들어 지켜보고 있을 인환이 안타까워할까 싶었다.

그 이유로 한참을 참고 있었건만, 지금 흐르는 눈물을 차마 멈출 수 없는 클로에였다.

그런 클로에에게, 허락이 떨어졌다.

"울어도 된단다. 떠나간 사람을 추억하며 슬퍼하는 건, 남겨진 사람의 특권이니까."

끝내 클로에는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 스스로 걸어갈 '길'을 품도록 하는 것.

이는 언젠가 시하가 포기했었던 일이었다.

다른 이유는 아니었다. 시하 본인에게 그럴 자격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었기 때문이다.

그가 이 세상에 떨어진 그 순간까지도, 그에겐 삶의 목적은커녕 목표조차 없었으니까.

자신도 오랜 세월 끝에 찾아낸 길을, 타인이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건 더 힘든 일이니까.

그에 반해 인환은, 3주라는 짧은 시간에 '클로에의 길'을 찾아주고 저 멀리 떠나버렸다.

자신이 24년에 걸쳐 찾아냈던 길을, 언젠가 자신이 포기했던 일을 이뤄내 버린 것이다.

시하는 그 사실에 감탄할 뿐이었다.

그는 조용히,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아이는 나와 다르니까. 이 정도 슬픔 정도는 간직하고 살아도 되겠지.'

시하 자신의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감정은 인간을 움직이는 힘이라 하셨었다.

그리고.

자신은 어머니의 죽음에도 세상을 미워할 뿐이었으나, 클로에는 다를 것이다.

지금 이 고양이의 울음은 세상을 향한 것이 아닌, 죽은 이를 향하는 것이니까.

시하는 클로에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 그녀의 울음을 들으며 한참을 기다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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