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화 〉 2131. 고양이의 꿈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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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1. 고양이의 꿈 (3)
울기 시작하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클로에는 가슴이 쓰리고, 목이 메였고, 더 이상 짜낼 눈물도 없을 정도로 울어버렸다. 온몸의 힘이 빠져버렸고, 근육이 뻣뻣하게 굳은 탓에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다.
시하는 그녀의 근육이 풀리도록 등을 두드려주었다.
"다 울었니."
"네에..."
"그동안 참느라 고생 많았다."
"히끅..."
그의 말에 다시 한번 울컥한 클로에였으나, 이미 한참을 울었기에 눈물이 터져 나오진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시하는 물었다.
"클로에. 지금부터 어떻게 할 거니."
"... 어떻게라니요?"
"네가 정한 목표를 말해보렴. 너는 이제부터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니."
"……."
클로에의 눈은 절로 사로 ? ?를 향했다.
활을 수련하는 그곳에는 인환의 유품들이 있었다.
"저거..."
"활. 말하는 거니?"
"네. 잘 쏘고 싶어요. 인환 조장님처럼."
잔뜩 습기가 서린 목소리로 말하는 클로에.
원래라면 입에 담고 싶지 않았던 말이었다.
아무리 힘이 약하다는 묘인족이라 하더라도, 자신은 수인이니까. 이런 말을 하는 순간, 온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었다.
자신과 친구들을 구해준 은인께서, 이번에는 마음껏 슬퍼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말을 전하는데 저항감은 없었다.
"클로에."
"네."
"지금처럼 멍청하게 수련한다면, 아무리 시간이 흘러봤자, 인환의 발끝에도 이르지 못할 거야."
"……."
또박또박. 고양이 소녀에게 선고하듯 말하는 시하.
클로에 역시 자기 목표가 허황된 것이며, 이루기 힘든 일임은 충분히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런 말을 들어도 그리 마음 아프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말에서 한 부분이 신경 쓰였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몸부터 잘 간수하고, 더 똑똑하게 수련해야지."
"몸부터요?"
"방금 손의 굳은살 이야기를 하고 있었잖니."
"네."
시하에게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기억은 태권도장에 다니던 추억이었다.
대련을 하다 보면 발바닥이 바닥에 쓸리게 되고, 그 끝에 물집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그 순간 잘 대처하지 않으면, 태권도 선수라 해도 발을 버리는 상황이 찾아와버린다.
"지금까지 대충 붕대만 감고 활을 잡았지?"
"... 네."
"그러면 계속 상처가 곪아서 썩어버린다."
"진짜요?"
"당연하지. 내 말이 안 믿기면 무사 아저씨들에게 물어보렴. 다들 같은 말을 할 거야."
"……."
클로에는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시하의 말에 풀이 죽어버린 것도 있지만, 자기 손을 조금 더 잘 보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지금 그녀의 상처에는 시하가 발라둔 소독약이 덮여 있었다.
"그렇게 본다고 뭐가 보이니..."
"아. 에헤헤..."
속 시원히 울어버려서 기분이 풀린 걸까. 클로에는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그에 시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아... 하루라도 수련을 그만두긴 싫지?"
"그거야 당연하죠."
"그럼 티오리아 가문의 약초원에 바로 가자."
"지금 바로요?"
"그래. 손 치료도 하고. 거기서 약도 좀 받고. 손을 보호해줄 장갑도 하나 사러 가자."
"손 보호구는 왜요?"
말 한마디 할 때마다 꼬치꼬치 되묻는 클로에.
그에 시하는 고양이 소녀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당연히. 끼고. 살라는. 거지."
"아야야..."
"빨리 나갈 준비해."
"네."
사로로 돌아간 클로에는 화살통을 등 뒤로 메었고, 활을 허리춤에 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푸른 빛이 감도는 통아를 천에 감아 가방에 넣는다.
그 모습을 본 시하가 물었다.
"그거 통아 아냐?"
"어라. 공작님, 이거 알고 있으세요?"
"... 알고는 있지."
"그럼 이거 쓰는 법 가르쳐주실 수 있으세요?"
클로에는 시하에게 인환의 통아를 들이밀며 물었다.
하지만 시하로서는 방법이 없었다.
'내가 사용법을 알아야 가르쳐 주지...'
평범하게 공부해서, 평범하게 대학에 진학한 시하였다. 그가 어찌 편전을 쏠 수 있겠는가.
웬만해서는 클로에의 모든 부탁을 들어줄 생각이었으나, 이것만큼은 능력 밖의 일이었다.
"나도 그걸 알고 있을 뿐이지, 사용법은 몰라. 내가 붙여준 그 사범도 몰랐어?"
"... 네."
"흠. 근데 신기하게 생겼네. 한번 줘볼래?"
"여기요."
얇은 대나무를 반으로 쪼갠 듯한 외형의 통아. 그 안팎에 푸른 안료로 여러 선이 그려져 있다.
'이게 전부 마법진 같은데. 에퀼리아 마도총들의 총열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건가.'
'기사단에서 활 좀 쏜다는 사람을 붙여줬었지. 그 사람도 모르면 방법이 없는데...'
통아를 이리저리 살펴보던 시하는, 그것을 클로에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이건 나중에 마법진이나 마도구를 잘 아는 사람한테 물어보자. 통아를 쓰는 법을 모르더라도, 그려진 마법진의 원리는 알아야 할 것 같아."
"네."
"그럼 빨리 약초원이나 가자."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궁도장을 나란히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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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하의 마차는 왕도 서문 방향으로 향했다.
마차가 멈춘 곳은 티오리아 가문이 운영하는 약초원. 언젠가 아모스와 아일라의 건강 검진을 위해 찾아왔던 곳이다.
하지만 저번 방문과는 다른 점이 있었으니.
"아니, 저 분은!"
"헤르만 도련님이 모시는!"
"왕실 폭발 가정교사!"
"모험가 길드장! 이시하 공작!"
"빨리 원장님께 보고해!"
"……."
반년간 시하의 명성은 왕도 내에 크게 알려졌다.
그 탓에 약초원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시하의 얼굴을 알아보고 호들갑을 떨었다.
옆에 서 있던 클로에가 작은 말로 중얼거렸다.
"공작님. 인기가 엄청 많으셔요."
"조용히 해. 너까지 이러면 정신이 혼미해져."
"네에에에..."
두 사람이 대화하는 와중에, 약초원의 직원 하나가 약초원장실로 후다닥 뛰어갔다.
'아. 조용히 클로에 치료나 좀 받고. 약이나 타갈 생각이었는데...'
티오리아 가문 사람들은 하나 같이 감이 좋다. 이건 헤르만의 어머니이자, 약초원장인 호리아 티오리아 역시 마찬가지다.
예전 방문에서도 시하가 내뱉는 말의 의중을 파악하듯, 은근슬쩍 떠보던 그녀였다. 시하로서는 호리아를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바람을 배신하기라도 하듯. 약초원장, 호리아 티오리아가 로비로 나왔다.
"어머나. 정말로 오셨네요. 교사님. 아니, 이제부터는 모험가 길드장님이라 불러야 하나?"
"하하. 안녕하세요. 호리아님."
아샤가 어른이 되면 저런 모습일까. 하지만 아샤와는 다르게 살가운 미소를 지으며 시하에게 다가오는 호리아였다.
그녀는 시하와 클로에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연락도 없이 이게 무슨 일이시래요?"
"이 아이가 수련하다 손을 다쳐서요. 여기서 치료도 하고, 약도 받아 가려고 왔습니다."
"어디. 손 한 번 내밀어 보실래요?"
"아. 네에..."
호리아는 지체 없이 클로에의 양손을 살폈다.
"이 정도면 아이들에게 맡겨도 되겠네요."
"아. 혹시 물집이 났을 때의 대처법도 이 아이에게 가르쳐주실 수 있나요?"
"그럼요. 바늘이나 칼로 물집을 터뜨리고, 소독만 하면 된답니다."
"여기도 뭐. 제가 있던 세계와 비슷하네요."
"그런가요. 사실 표류자나 저희나, 사람 몸이라는 건 피차일반이니까요. 에코니아에서 통하는 독과 약은 표류자들에게도 듣는답니다."
"히이이익!"
바늘과 칼. 독과 약.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클로에는 새된 소리를 내버렸다.
특히 사람을 치료한다는 곳의 사람이 '약'보다 '독'을 먼저 말하다니. 클로에는 그 사실을 제대로 자각하진 못했지만, 본능적으로 떨게 되었다.
호리아는 그런 클로에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손목을 꽉 잡은 채 직원들을 호출했다.
"얘들아. 여기 고양이 수인 아이. 손에 물집과 자상. 소독하고 연고를 발라주렴."
""네에!""
"아. 공작님. 공작님 세계에서는 바늘을 쓰나요, 칼을 쓰나요. 아니면 가위?"
"... 바늘로 부탁드릴게요."
"알겠습니다. 얘들아. 말씀 들었지? 이 아이에게 치료법도 가르쳐 주렴. 바늘로!"
""알겠습니다!""
치료한다고 해서 왔는데, 그 치료가 바늘과 칼로 물집을 찔러버리는 것일 줄은 꿈에도 몰랐지.
눈물을 머금은 클로에는 시하를 올려다보았다.
"공작니임..."
하지만 시하의 눈빛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그저 무표정한 눈길로, 클로에에게 담담하게 말할 뿐이었다.
"클로에."
"네?"
"이것도 네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이야."
"으에에에..."
클로에는 울먹이며 치료실로 끌려가 버렸다.
그걸 지켜보던 호리아가 시하에게 제안했다.
"자. 공작님께서는 원장실에서 기다리실까요?"
"아뇨. 저는 로비에 있어도..."
"사실, 제가 공작님께 궁금한 게 몇 가지 있어서요. 자리를 옮기자는 뜻이랍니다."
"... 알겠습니다."
시하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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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리아의 집무실.
예전에는 헤르만과 요나를 대동한 채로 찾아왔으나, 지금 이 공간에는 호리아와 시하 뿐.
시하로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원장님. 저에게는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큰일은 아니랍니다. 집에서 듣는 이야기가 많아서 말이죠. 사담을 나누려 했을 뿐이에요."
호리아는 시하의 질문에 활짝 웃으며 답했다.
그에 시하는 재차 묻게 되었다.
"집에서 듣는 이야기라뇨?"
"이 세상 어떤 가족이든 식탁에서 오가는 대화가 있지 않나요. 제 아이들이 말하는 것도 있고. 남편이 말하는 것도 있지요."
"... 어떤 말들이 오갈지 참 궁금하네요."
에우데미아 왕실의 그림자를 총괄하고 있는 가문의 식탁. 그 자리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가고 있을지 참으로 걱정되는 시하였다.
하지만 그런 그의 불안을 비웃듯, 호리아의 입에서는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요즘. 잠은 얼마나 주무시나요?"
"잠은 잘 자고 있습니다만."
"거짓말은 마세요. 티오리아에서 몇 년을 살아왔는데. 척 보면 척이죠. 공작님의 얼굴 상태만 봐도, 최근 쉬지도 못하고 일하신다는 건 충분히 알겠네요."
"……."
시하는 그녀의 말에 답하지 못했다.
요즘 들어 저택에서 좀처럼 잘 수 없었던 그였다. 무언가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해지고, 그 탓에 밤 늦은 시간까지 잠들 수 없었다.
"아들 녀석도 녹초가 되어 돌아오지만, 공작님은 한술 더 떠서 일하고 계신다더군요. 거기다 그 무뚝뚝한 저희 딸마저, 공주님과 함께 당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건 아시나요?"
"아샤와 공주님이요...?"
"네. 자기 선생의 눈이 충혈되고, 눈 밑에 검정을 붙이고 다니면 당연히 걱정하죠. 지금은 조금 눈을 붙이셨는지, 피가 쏠려있지는 않습니다만."
일주일 전, 왕궁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 갔을 때조차 자신에게 이를 드러내던 아샤였다.
그 아이가 자기 걱정을 하고 있다니, 시하는 그 모습을 쉬이 상상할 수 없었다. 거기다 아셰리아 공주가 내색은 하지 않아도 자신으로 인해 마음이 불편하다 하면...
'그래. 요즘 너무 안 자긴 했지...'
시하는 호리아의 말을 금세 수긍했다.
"모험가 길드 면접도 마무리했으니. 조금 쉴 수 있을 것 같네요. 이제 숙면에 유의하겠습니다."
"네. 좋군요. 그럼 다음 질문이에요."
"다음 질문이라니요...?"
"지금까진 자식들에게 들은 내용으로 질문을 드린 거고요. 이제 남편에게서 들은 내용입니다."
그 순간. 호리아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그녀의 입은 분명 웃고 있지만, 그녀의 눈만큼은 시하를 노려보고 있다. 거기다 마력으로 주변 기온을 낮추기라도 하는 듯, 방 전체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시하는 속으로 조금 당황했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섣불리 반응을 주게 되면, 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공작님."
호리아는 그런 시하에게 물었다.
"왕실에 대적하실 생각은 아니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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