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8화 〉 2132. 고양이의 꿈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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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2. 고양이의 꿈 (4)
"왕실에 대적하실 생각은 아니시겠죠?"
약초원. 에우데미아의 내부 사정을 상세히 모르는 자들에게는, 이 시설의 이름이 단순 약초를 키우는 곳처럼 들릴 것이다.
하지만 이 시설이 티오리아 가문 관할이며, 그 가문이 왕실의 그림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어떨까.
특히 호리아는 그 능력을 인정받았기에, 헬렌 교국 출신이었던 에스더를 호위했던 자. 시하는 그녀의 말을 가벼이 여길 수 없었다.
"질문이 잘 이해가 안 되네요."
"제 질의를 이해하지 못하실 정도로 머리가 나쁜 분은 아니라 생각하는데요."
"질문의 의도를 알아야 잘 대답해드리죠."
"……."
입만 웃고 있는 그 표정을 유지하며, 호리아는 계속해서 시하를 흘겨보았다.
분명 시하는 왕실에 대적할 생각이 없다. 아니, 오히려 왕실의 모든 이들을 지키기 위해 사지로 뛰어드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억울함을 토로한다고 해도, 한 번 의심을 산 사람에게는 오해당하기가 쉽다. 시하는 호리아의 질문에 차분하게 답변하기로 했다.
약초원장, 호리아가 말했다.
"공작께서 지난 한 달간 보이신 힘. 그리고 지금부터 거머쥐게 되시는 힘. 그 두 힘이 왕실을 겨냥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그 힘이란 어떤 힘이죠."
"B급 재앙에 개인 세력으로 맞설 수 있는 그 무력. 최근에는 모험가 길드에 이어 왕도 내 모든 상권까지. 이 모든 것을 손에 넣지 않았나요."
"고작 그것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하신 겁니까. 농담이 심하시군요. 어거스트 기사단장 혼자서도 저와 수하들 대부분을 죽일 수 있을 겁니다. 일단 저부터가 꽤 약한 사람이랍니다."
시하는 분명 강해졌다.
선천적인 재능과 노력, 엔크라테아를 만난 기연. 이 셋의 조화가 잘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강함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 법. 시하는 분명 강하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약하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심상 마법이 존재하니까.
자연 마법으로 심상 마법을 이기기 위해서는, 상대보다 더 큰 마력량을 보유해야만 한다.
상대의 심상을 지워버릴 만큼, 순수한 마력의 파장으로 적의 마법을 지워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하는 마력의 공급이 클 뿐, 마력 총량의 한계로 인해 그런 방법을 쓸 수 없다.
시하가 '만반의 준비를 마친 심상 마력 보유자'와 맞붙게 된다면, 속절없이 지게 될 것이다.
호리아는 그에게 담담히 물었다.
"흐음. 공작께서는 저를 너무 무시하시네요."
"무시라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공작님의 곁에는 강자가 너무 많답니다."
"강자라니..."
"동부 변경의 필로네 소피아. 그녀의 심상은 다른 마법을 전부 꿰뚫어 봅니다. 또한 북부 변경의 에딘 테크니까지 끌어들이셨죠. 그 아이는 순진한 척을 하고 있어도, 결단을 내린 순간부터는 무서워지는 남자라고요?"
시하는 그녀의 말에 답할 수 없었다.
그 두 사람은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필로네는 그가 플레이하던 게임 속에서 정치력만 두드러졌고, 직접 싸우는 모습은 제대로 묘사되지 않았다. 그 탓에 시하는 자연스럽게 필로네의 무력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거기다 시하에게 있어 에딘은 그저 요주의 인물에 불과하다. 그야, 게임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인물이니까. 오히려 시하는 그가 아군인지, 적인지 파악하기에 급급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는 결국 시하의 입장일 뿐. 호리아의 입장에서는 시하의 세력이 너무나 커 보인다.
B급 재앙에 독자적인 세력으로 맞설 수 있는 인물이, 모험가 길드의 인력을 통솔하고, 왕도 내 상인 세력과 결탁했으며, 두 변경백 자제들과의 연줄마저 갖추어 버렸다.
거기에 그녀가 염려하는 점은 따로 있었으니...
"이뿐만이 아니죠. 세상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거물들을 끼고 계시니, 제가 경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을 좌지우지하다니요...?"
"모르는 척하지 마시죠. 한때 세상을 주름잡던 분들을 후견인으로 두시고도 능청을..."
그 순간, 호리아는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시하의 반응이 영 이상했기 때문이다.
'설마...'
분명 정곡을 찔렀기에 당황하리라 생각했는데, 시하의 얼굴에는 의아함만이 떠올라있다.
그에 시하가 성난 어조로 물었다.
"왜 하던 말씀을 끊으시는 거죠?"
"... 아닙니다. 제가 헛말을 했군요."
"세상을 주름잡던 분들이라니. 그런 분들이 계신다면 오히려 도움을 받고 싶군요."
세상에 사람을 열받게 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하던 말을 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이유로 시하는 속이 답답해졌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지경인데, 지금 이 사람은 무슨 말을 하다 끊은 거야...'
그는 지금껏 호리아가 한 말에 반박했다.
"애초에. 필로네와 에딘이 '제 편'이라는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그거야 당연히..."
"제 말을 끝까지 들으십시오, 호리아."
시하는 호리아가 말을 끊어버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계속 들어줄 필요는 없으니까.
그는 자기 할 말을 이어갔다.
"두 사람이 지난 한 주 동안 모험가 길드의 면접을 도와주기는 했죠. 그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에딘은 국왕 폐하의 명을 받아 저를 도우러 온 겁니다. 거기다 당신 논리라면 면접에 참여하신 아셰리아 공주님은 어떻게 되는 거죠. 저를 떠보시는 거라면 사람 잘 못 보셨습니다."
"……."
"이쯤 되면 제가 묻고 싶군요. 지난 한 달간 제가 행한 것은 왕명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왕명을 수행하고 있는 제게 반역 의사를 물으시다니요. 의도는 불 보듯 뻔하겠지만, 말이 심하시군요."
시하는 조금 전 호리아의 질문을 단순히 '떠보는 것'으로 규정했다.
분명 티오리아의 가주인 카일과 다른 두 자녀들은 시하에게 우호적이다. 이는 호리아가 내뱉었던 발언들만 생각해보아도 확실하다. 거기다 카일은 국왕의 명을 직접 듣는 왕궁부장이니, 그의 부인인 호리아가 왕의 의중을 모를 리 없다.
그렇다면 호리아가 이런 물음을 건넨다는 것은 오직 두 가지 가능성뿐.
호리아 본인이 배신자이거나.
단순히 시하를 떠보는 것이다.
'사람을 떠볼 거면 괜한 말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지는 말았어야지...'
그렇게 시하가 속으로 분을 삭이고 있을 즈음.
똑똑.
원장실 문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원장님. 환자분의 치료가 끝났습니다."
한 치료사가 클로에를 데리고 온 것이었다.
호리아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
자리에서 일어나 약식으로 예를 갖추었다.
"제가 무례를 범했군요. 죄송합니다."
"……."
"아이를 들여보내렴."
시하에게 더 따지고픈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아군인 티오리아 가문의 인간과 말씨름을 더 해보았자, 그가 얻는 이득이 없다.
그리 생각한 시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여보낼 필요 없습니다. 다음부터 용무가 있을 때는, 헤르만을 통해 전하겠습니다."
"... 알겠습니다."
"클로에. 가자."
말을 마친 시하는 그대로 원장실을 나섰다.
그와 클로에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약초원 내에 고요함만이 남게 되었을 즈음.
"원장님. 미행을 붙일까요?"
클로에를 데려온 치료사가 물었다.
그에 호리아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니. 그랬다가 발각이라도 당하면 곤란해."
"발각되지 않으면 그만이지요."
"헤르만과 함께 마법 파훼를 수련한 인간이야. 잠행술의 대처도 마련해뒀을 수 있지."
"……."
"하아..."
말을 마친 호리아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저지른 큰 실수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었다.
"설마. 정말로 모르고 있었다니."
부군인 카일과 자신의 두 아이들은 시하를 믿는다고 했지만, 호리아는 낙관적으로 있을 수 없었다.
자신이 모시던 주인은 자신의 그런 낙관으로 인해 저 하늘의 별이 되었지 않나. 이미 일어났던 일을 보며 후회하는 것은, 한 번으로 족하다.
그렇기에 그녀는 티오리아 가문의 안주인이 아닌, 개인으로서 시하의 뒷조사를 벌였었다.
그것도 세력이나 인맥 위주로.
"탈락 대주교까지는 그러려니 했는데..."
교국의 권력 경쟁에서 탈락한 대주교, 캐서린.
성녀회 출신으로 강한 신성력과 포용력을 갖춘, 헬렌 교국에 떠오르고 있었던 샛별.
발람과의 결투를 계기로, 시하가 그런 거물과 손을 잡은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자신의 의심이 헛된 것임을 깨달은 호리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캐서린과 시하 사이의 유착이라기엔 그 관계가 너무 얕았으니까.
사실 시하의 수하 중 한 명, 아모스가 성당 내 고아원에 기부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정작 의심스러운 부분은 따로 있었으니...
"이제 나도 모르겠다."
"모르겠다니요?"
"유착이 있었다면 에퀼리아였는데. 저 사람 상태만 보면 전혀 자각이 없는 것 같고..."
"원장님. 그래도 저희가 조사하지 않으면...!"
"오늘은 귀찮아. 오늘은 관두자. 오늘은 쉬자."
"……."
아샤의 어머니답게.
정말 충성심이 높기는 하지만...
아주 가끔 포기가 빠른 그녀였다.
* * *
시하의 마차는 아카데미 거리의 초입에서 멈췄다.
"내리자. 조금은 걷고 싶네."
"네. 알겠습니다!"
원래라면 목적지 바로 앞까지 마차를 타고 가도 되지만, 조금 전에 기분 나쁜 일이 생겼던 터라, 기분 전환을 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둑어둑해진 밤하늘이지만, 아카데미 거리는 마력등의 불빛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다.
'쓰레기 새끼들을 다 처넣어서 그런가. 전보다 업종도 다양해지고, 활기가 넘치는 분위기네.'
시하는 아카데미 거리를 걸으면서, 자신이 해낸 일에 조금이나마 성취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 그의 옆에서, 클로에가 물었다.
"저희 어디 가는 거예요?"
"너도 저번에 가본 곳이야."
"... 네?"
"맞추면 맛있는 거 사줄게."
"진짜요...?"
"그럼 내가 거짓말을 왜 하니."
클로에는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이 거리에서 자신이 가봤던 곳이라고는 미샤 베이커리나 상인회 본부 건물뿐. 마땅히 떠오르는 곳이 없었다.
"공작님. 힌트는 없어요?"
"알아서 생각해봐."
"에이. 치사해요."
"어허. 이렇게 쉬운 문제에 요행을 바라다니."
그렇게 거리를 걷고 있자니, 근처 사람들이 클로에에게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렸다.
"수인이 활을 들고 다니네?"
"보나 마나 장식이겠지."
"맞아. 수인이 진심으로 활을 들고 다닐 리는 없잖아."
동방 출신의 용병들로 보이는 자들이었다.
그들 근처에 있던 수인들도 말을 보태었다.
"뭐? 수인이 활을 들고 다닌다고!"
"활을 들고 다닌다니. 수인의 수치로구먼."
"약해빠진 고양이니까 저딴 걸 들고 다니나?"
"하하하하!"
그들의 대화에 클로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지금껏 인환의 유품을 소중히 하고 싶은 마음에 항상 활을 지니고 다녔던 그녀였지만, 이렇게 본부 밖까지 들고나온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역시나. 이게 정상이겠지...'
본부에서는 그녀와 활의 관계를 알고 있는 사람들 뿐이었으니, 오직 안타까운 시선뿐이었다.
클로에로서는 그 시선마저 조금 거부감이 들었으나, 지금 느껴지는 혐오는 너무나도 아팠다.
하지만.
그녀의 옆에서는...
"저 개새끼들이..."
"고... 공작님! 그거 수인 차별..."
"차별당할 짓을 하니까 쓰는 거지. 이 단어를 안 써도 되는 세상을 만들던가! 저 개새끼들!"
"뭐라고! 개새끼라고!"
"그래. 이 개새끼야! 너야말로 말 다했냐! 우리 애한테 뭐라고 했어. 이 개새끼야! 아니다. 니들이 개한테 사과해! 이 개만도 못한 것들아!"
참고 있던 시하의 열이 오르다 못해 터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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