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9화 〉 2133. 고양이의 꿈. (5)
* * *
2133. 고양이의 꿈. (5)
시하는 코트 속에서 검집을 찾으며 말했다.
"저 새끼들 뼈와 살을 발라버려야..."
"으아아아. 공작님. 참으세요오오!"
"이거 놔. 클로에. 저런 쓰레기들을 전부 치워버려야 왕도가 더 살만해지지."
클로에는 그의 옷깃을 부여잡으며 말려보지만, 이미 머리끝까지 화가 올라버린 시하는 그녀의 말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동방 무사들과 수인 그룹 사이에서는 술렁거림이 일었으니.
"고... 공작이라고?"
"모험가 길드의 장을 맡았다던 그...?"
"공작이 왜 여기서 걸어 다니고 있는 건데!"
"그래. 저 사람 가짜 아니야?"
"아니. 내 순서 때 면접관이었어."
"……."
불과 오늘 낮까지만 해도 진행 중이었던 모험가 길드의 면접. 그것을 주최한 공작이 눈앞에서 걸어 다니고 있다니. 용병들로서는 쉬이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몇몇 용병들은 시하가 부재중일 때 면접을 보았기에 그의 얼굴을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상황에 의문을 가져보지만, 다른 용병들에 의해 곧장 부정당했다.
잠시간의 침묵이 찾아온 그들 사이에...
"... 좆됐다."
누가 말했는지 모를 한 마디가 나왔고, 그 단어는 모든 이들의 심정을 대변했다.
그리고 동방 출신 용병들이 말했다.
"나는 모르는 일이오."
"맞아. 나는 아무 말도 안 했어."
"수인들이 욕을 해댄 거지. 우린 잘못 없다고."
짐을 주섬주섬 챙겨서 떠나려 한 그들이었으나.
쿵
굉음과 함께 거대한 빙벽이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어딜 도망가."
"이 무슨...!"
"네놈들이 시작했으니까. 책임은 져야지?"
"우리가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러는 것이오!"
"모험가 기본 준수 규정집. 제3조 4항. 모험가 간의 갈등 원인을 제공한 자는 길드장의 심의를 거쳐 처분한다. 분명 너희들은 활이 장식이니 뭐니 하면서 방금 우리 애 무시했지...?"
"뭣...!"
"설마. 내가 사비로 규정집을 만들어서 합격자들에게 배포했는데. 그걸 버린 건 아니겠지?"
시하의 말에 용병들은 가방에서 황급히 규정집을 찾아 펼쳤다. 그곳에는 시하가 말한 내용이 그대로 적혀 있었으니...
동방 용병 중 대다수의 얼굴이 새하얘진 가운데, 한 사람이 나서서 반문했다.
"계속 우리 애라 하는데, 팔은 안으로 굽는 법 아니오! 거기다 그 아이가 모험가이긴 한 거요!"
"그래. 얘가 다섯 번째 합격자인데. 불만 있어?"
"뭐라..."
"그리고. 첫 번째 모험가이자 길드장인 내가 말하고 있는데. 이것도 불만 있어?"
이미 시하는 자기 수하들을 전부 모험가로 등록시켜 두었다. 그 이유는 그들의 확실한 신원을 보장하기 위함. 혜세국 무인들 역시 적당한 가명을 지어 명단에 올려두었다.
시하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고했다.
"그러니까 지금 상황은 모험가 간의 갈등이고. 지나가던 길드장이 우연히 적발한 거야."
그 순간.
시하를 지켜보고 있던 견인족 수인이 외쳤다.
"허! 그렇게 말하면 겁먹을 줄 알고! 나라의 공작이 수인을 차별하다니. 그 발언을 수인국에서 알면 어찌 생각할까!"
"호오... 수인국이 어떻게 하는데?"
"에우데미아는 수인들의 인권을 보장하겠다는 조약에 서명했었잖아! 이제 해방제도 곧이니, 머지않아 수인국 사절단도 올 거라고!"
"그래. 그 게임에서도 조약을 핑계로 가끔 문제가 일어났었지. 왜 선의를 베풀면 뒤통수치는 걸로 갚는 것들이 많을까. 참 모르겠어..."
중얼거림과 함께 빙창 두 개를 만드는 시하. 그 모습을 보고도 견인족 수인은 여유가 넘쳤다.
'저래봐야 어차피 위협이겠지...'
수인국과의 조약에 따르면, 수인들의 인권은 다른 인종과 같은 수준으로 보장받는다. 그것을 믿고 있기에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내 그 빙창들은 '슈욱' 소리와 함께 날아갔고
"아아아아악!"
견인족 수인의 양쪽 발등에 꽂혀 버렸다.
신음성을 내는 그 수인에게, 빙창 다섯 개를 더 연성한 시하가 스산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 인권만 권리야?"
"으아아악! 진짜 날렸어! 저 새끼가아아!"
"약해빠진 고양이. 수인의 수치. 전부 네놈들이 저 아이에게 한 말들이야."
그와 함께 빙창들은 또다시 하늘을 날았고.
투두두두둑
견인족 수인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이번 빙창들은 그의 발치에만 꽂혔다.
"으어. 으어어어어..."
"닥쳐라. 자랑스러운 견인족이 벌로 쐐기 좀 박혔다고 신음성을 낸다니. 한심하구만."
"벌이라니. 네가 왜..."
"공작은 즉결 처분권이 있어. 또한 네 놈은 차별 발언으로 저 아이의 수인권을 침해했지. 그건 수인국에서도 중죄잖아. 안 그래?"
"그건 수인국의 이야기지. 에우데미아가..."
"네가 그리 좋아하는 수인 인권 조약. 나는 왕국 수인들의 권리를 보장할 의무가 있어. 내 뒤에 있는 아이의 인권도 보장해야 한다는 거지."
"……."
"그러니 내가 여기서 네놈을 벌하지 않으면 조약을 위반하는 것과 같아. 거기 다른 놈들. 나의 발언에 문제 되는 부분이라도 있나?"
동방의 용병들과 수인들은 빙창이 박힌 수인과 눈앞의 모험가 길드장을 번갈아 보았다.
... 시하의 뒤엔 새 빙창들이 생겨 있었다.
'방금 속도로 사출된 빙창이. 이번엔 열 개.'
일국의 공작을 공격하는 것은 중죄. 만약 달려든다 해도, 지는 미래 외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금 상황에서 자신들이 논리적으로 앞서는가 하면, 그런 것도 전혀 아니었다.
자신들을 지켜주던 '수인 인권 조약'이, 오히려 자기 목을 찌르는 감각을 느끼는 중이다.
수인 용병들은 그 자리에서 고개를 숙였다.
"없습니다..."
"저희 발언이 부적절했음을 인정하고. 그쪽의 묘인족 여성께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죄송합니다."
그들의 사죄에, 시하의 옷자락을 당기고 있던 클로에가 어색하게 답했다.
"아뇨. 그런 소리 하실만도 했었던걸요..."
그녀의 대답에...
'아니. 네가 지금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시하의 화가 또다시 차오르려는 그 순간.
삐이이이익!
시끄러운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회색 머리의 미청년이 헬창들과 이끌고 나타났다.
"치안본부다! 모두 자리에서 멈춰!"
"안녕하세요. 요나. 무슨 일이십니까."
"아. 교사님? 여기에서 난동이 있었다는 소식에..."
요나는 지금 눈앞의 상황을 의심했다.
한 견인족 수인의 발등에는 빙창이 꽂혀 있고, 그 빙창의 주인은 분명 시하다. 거기다 동방 출신의 용병들과 다른 수인 용병들이 단체로 겁먹은 그 모습이란...
그는 굳은 얼굴로 시하에게 물었다.
"교사님. 자세히 말씀해보시죠."
"네네. 그럼 잘 들어보세요. 요나."
그 자리에서 한참을 설명한 끝에.
발등에 빙창이 박혀 버린 견인족 수인은, '수인 종족 차별 발언', '공작을 상대로 한 협박 및 공갈' 혐의를 선고받아 투옥당했다.
반면에 시하는, 정당 방위를 인정 받아 도로 복구 비용을 부담한 것이 전부였다.
후일. 시하가 벌인 이 사건은 '수인권 역갑질'을 막은 역사적 사례로 기록되었다.
.
.
어느새 소동은 일단락되고. 시하와 클로에는 다시 아카데미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저기. 시하 공작님."
"왜 그러니. 클로에."
"방금 너무 심하셨던 거 아니에요?"
"뭐가 심했다는 거니."
"……."
그 물음에, 클로에는 마음속으로만 답했다.
'빙창으로 발을 뚫어버리고. 거리 한복판에 빙벽을 세우시고. 권위를 남발하신 거요...'
사실 클로에로서는, 조금 전과 비슷한 상황이 언젠가는 찾아오리라 각오하고 있었다.
수인이 활을 든다는 것은 그런 일이니까.
방금은 인환이 떠오른 탓에 슬퍼지긴 했지만, 어찌 보면 이건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런 그녀에게 시하가 물었다.
"클로에. 너도 수인에게 활이란 무기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그거야 당연하죠."
"따로 이유는 있고?"
"그야. 당연히 다른 인종보다 훨씬 힘이 센 수인이 활을 들면 이상하잖아요."
"당연하다라..."
걸음을 재촉하면서 말을 흘리는 시하.
이내 그는 담담한 어조로 클로에에게 고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네?"
"궁수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일까."
"사격 실력이요?"
궁수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
그 물음에, 클로에는 인환의 사격 솜씨를 생각하며 답했다. 그와 함께하는 그 시간 동안, 화살이 빗나가는 것만큼은 본 적이 없으니까.
시하는 그녀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래. 그렇다면 그 사격 실력을 위해서는 뭐가 필요하니. 교관도 가르쳐줬을 것 같은데."
"시위를 당길 수 있는 힘. 목표를 정확히 응시하는 집중력. 미세하게 현을 조절하는 손재주. 이 세 가지가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그렇구나. 그럼 사격 외에는 뭐가 중요할까."
"그건 잘 모르겠어요."
"내가 생각하기에, 궁수 본인에게 있어 위치 선정 능력과 색적 능력도 꽤 중요하단다."
"위치 선정. 색적..."
"하지만 너는 그 모든 것을 갖추고 있어."
"... 네?"
에코니아의 전 인종들을 비교했을 때, 어찌 보면 가장 애매하다는 평가를 받는 묘인족.
시하는 게임을 하던 시절부터, 묘인족을 볼 때마다 한 가지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 안타까움이란, 묘인족이 그들 스스로 한계를 정해두었다는 것이다.
"묘인족은 힘이 그다지 강한 편은 아냐. 하지만 활을 당기기엔 충분할 정도로 강하지. 청각과 집중력이 뛰어나 적을 잘 탐지해낼 수 있고. 균형 감각도 좋아서 전투 도중 위치 선정을 쉽게 할 수 있어. 너는 점프력도 엄청나게 좋잖아?"
"그렇긴 한데요..."
"너는 궁수가 되기에 적합한 인재라는 거야."
"……."
그 순간.
클로에는 언젠가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옛 수인과 작금의 수인을 비교하던 그 이야기.
'진정한 강점 따위 잊은 지 오래야.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강함 따위, 찾을 생각조차 없어.'
인환을 통해 들은, 용병 여왕의 한마디였다.
왜 하필 이 말이 지금 떠올랐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인환과 대화할 당시에는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던 그 말이, 조금 더 와닿게 되었다.
클로에는 확신을 구하듯, 떨리는 목소리로 시하에게 되물었다.
"공작님. 제가 잘 할 수 있을까요...?"
"당연하지. 너는 너 자신을 정의하지 말거라. 방금 그 쓰레기들처럼 남들이 정한 규격에 애써 맞춰주며 살 필요가 없어. 네 뒤엔 내가 있거든."
"규격..."
"너에게 또 그딴 기준을 들이대는 놈들이 생긴다면, 내가 대신 나서서 전부 없애버려 줄게."
그의 말을 한참 동안 곱씹던 클로에는...
잠시 후. 절로 꼬리가 살랑거리게 되었다.
이내 그녀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면서, 조금은 장난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래도 없애버리는 건 너무한 것 같아요."
"사실 내가 없애버리고 싶어서 패는 거야."
"그건 더 너무하신데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클로에로서는 자신의 은인을 더더욱 믿게 된 계기가 되었다.
'무섭지만 우리에게만큼은 친절한 공작님.'
그것이 클로에의 마음 속 시하의 정의였다.
그렇게 두 사람이 대화하며 걸어가던 중, 골목 한복판에서 시하의 발길이 멈췄다.
"아. 도착했다."
"여기는..."
거리 뒤편의 에퀼리아 의류 전문점 [오트 쿠튀르]
언젠가 클로에가 사원복을 맞췄던 의류점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