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화 〉 2134. 고양이의 꿈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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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4. 고양이의 꿈 (6)
의류점 [오트 쿠튀르]에 들어서자, 클로에가 물었다.
"공작님. 여기 저번에 옷 맞추러 온 곳 아니에요?"
"맞는데."
"그런데 여길 왜 또 온 거에요?"
"네 손에 맞는 장갑이나 하나 맞추려고."
"여기서 맞추면 너무 비싸지 않아요? 저는 아무거나 쓰면 되는데..."
일전에 시하는 아랫사람들 모두에게 보호 슈트를 입혀주었지만, 클로에와 다른 아이들에게는 그 기능성을 말해주지 않았다.
일반 옷의 가격에도 지레 겁먹는 분위기였기에, 아일라의 제안에 따라 부담감을 낮춰 준다는 이유로 알리지 않은 것이다.
'근데. 지금은 말해줘도 될 것 같은데...'
이미 시온에서 광인들의 파도에 맞서면서 그 옷의 기능을 체감했을 아이들이다.
시하는 옷의 비밀을 말해도 되리라 생각했다.
"네가 지금 입고 있는 옷. 그냥 옷 아니다."
"... 네?"
"다섯 가지 보호 마법이 붙어 있는 기능성 슈트야. 네 장갑도 그런 걸로 하나 새로 맞춰야지. 세탁하기 쉽고, 활 다루기도 좋고, 손 안 다치게 만든 걸로."
그 말을 듣자마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린 클로에. 그녀는 새된 목소리로 시하에게 되물었다.
"저번에 여기. 일반 의류도 금화 두 장이던데. 그럼 이 옷은 도대체 얼마에요...?"
"금화 두 장."
"네? 그럴 리가 없잖아요. 마법진이 새겨져 있으면 당연히 더 비싸야 하잖아요."
"더 비싸긴 하지. 네가 말한 건 소금화고. 내가 말한 건 대금화니까."
"……."
클로에는 그 자리에서 자기 손가락을 전부 펴고 멍하니 쳐다보았다.
내 반년 동안의 생활비가 소금화 두 장. 그 소금화 다섯 장이 대금화 한 장.
... 마지막으로. 내 연봉은 대금화 두 장.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히끅."
"갑자기 웬 딸꾹질이야."
"아니. 히끅. 이게 대금화 두 장이요?"
"그것도 여기 점주님이 싸게 해주신 거야. 원래 가치는 대금화 네 장 정도일걸?"
"끄윽!"
"... 숨 참으면 딸꾹질 멈춘대."
"흐읍!"
클로에가 딸꾹질을 멈추기 위해 숨을 꾹 참고 있을 무렵, 안에서는 여성 점원이 나왔다.
깔끔하게 말아 올린 머리. 무릎까지 오는 스커트. 하얀 버클이 눈에 띄는 검은 재킷. 마지막으로 깐깐한 성격을 보여주는 것만 같은 큰 테 안경.
그녀는 시하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공작님."
"안녕하세요. 지금 사장님은 계시나요?"
"네. 의상실에서 원단을 보고 계십니다. 오늘은 어떤 일로 찾아오셨나요?"
"이 아이 손에 맞는 장갑을 맞춰 주려고요. 활 연습할 때 손 다칠 일이 많아서..."
시하의 말에, 여성 점원은 숨을 참으며 히끅거리고 있는 클로에를 바라보았다.
에퀼리아 슈트 차림에 동방에서나 쓸법한 활. 그리고 작은 가방을 메고 있는 묘인족 수인. 분명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이상한 조합이다.
하지만 점원은 표정 하나 변치 않고 물었다.
"활을 연습하신다고요?"
"네."
"알겠습니다. 저흰 마도구를 취급할 때 쓰는 장갑도 만드니까요. 사장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여점원은 계산대 뒤편의 방으로 들어가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드르르륵
바퀴 구르는 소리와 함께, 중절모와 외알 안경이 인상적인 노신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쩐지 거리가 시끄럽더라니. 자네였나."
"안녕하세요. 어르신."
"그래. 거기 있는 아이의 장갑을 원한다고?"
"네. 활 연습에 쓸 장갑입니다."
"흐음..."
외알 안경을 통해 클로에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점주.
그는 이내 자기 손을 내밀며 말했다.
"손."
"네?"
"손을 봐야 장갑을 만들어줄 것 아니냐."
"그게..."
클로에로서는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다.
활 연습을 위해 손 관리를 해야 하는 건 알겠지만, 이 비싼 의류점에서 장갑까지 맞춰야 할까.
자신이 입고 있는 근무복의 가격이 대금화로만 두 장인데, 장갑의 가격마저도 무서울 정도.
그녀는 시하에게 말했다.
"공작님. 저는 다른 곳에서 사도 되니까..."
"안 돼. 그냥 여기서 맞춰."
"그래도 너무 죄송한걸요. 제가 이 정도 되는 돈을 갚을 방법도 없고..."
"갚을 필요 없어. 빨리 손이나 보여드려."
클로에는 쭈뼛쭈뼛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다.
치료를 마치고 붕대가 정성스레 감겨 있는 손. 그 손을 잡은 노신사는 붕대를 조심스레 풀었다.
"손이 엉망이군."
"……."
"쯧쯧..."
혀를 차던 노신사는 시하를 흘겨보며 말했다.
"자네 주변에는 왜 이렇게 별종이 많은 건가."
"... 어르신. 말씀이 심하십니다."
"어디 수인이 활쏘기를 연습하다가 이 꼴이 되겠어. 그러니 별종이 맞지."
"아닙니다. 얘가 어딜 봐서 별종입니까. 그리 생각하는 이 세상이 미친 거지."
"자네부터가 별종이라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거리가 떠들썩했던 것도 자네 탓 아닌가."
가게에만 있었을 이 노인이 거리에서 벌어진 소란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의문이 든 시하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그에 반해 노인은 자기 말을 이어간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 누구든 간에, 이 아이가 별종이라는 사실에는 고개를 끄덕일 게야."
"……."
"왜 자네가 그토록 분노를 표출한겐가. 그 용병들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어. 자네 지위가 아무리 높다고 한들, 그 결과는 좋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지 않나."
아무리 시하가 왕실 가정교사, 한 나라의 공작, 모험가 길드의 수장이라 하더라도. 거리에서의 그 처사는 분명 손해 보는 선택이었다.
자기 사람을 옹호하기 위해서 다른 모험가들을 핍박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거기다 그 모습을 본 왕도민들이 무슨 생각을 할지 모른다.
어떻게 보면, 그가 지금껏 쌓아 올린 좋은 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시하는 그 순간에 고민하지 않았다.
조금은 격해진 어조로, 시하가 말했다.
"이 아이를 둘러싼 세상이 잘못되었고. 제겐 그 세상을 바꿀 힘이 있으니까요."
"세상이 잘못되었다라..."
"이 아이가 활을 드는 것은 자유입니다. 이 결정으로 손해 보는 인간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그런 건 아니지."
"예. 애초에 이 아이를 비정상, 별종으로 규정하고. 그것만을 이유로 이 아이를 깎아내리기 바쁜 그 쓰레기들이 잘못이지요. 그놈들을 치우기 위해서라면 작은 손해는 감수할 수 있습니다."
"……."
노신사는 잠깐 말이 없었다.
그저 상처투성이가 된 클로에의 손을 살피면서, 고민에 빠져있을 뿐이었다.
이내 점주는 클로에를 향해 말했다.
"고양아."
"고양이 아닌데요."
조금 새침한 어조로 답하는 클로에.
수인을 동물처럼 부르는 것은 엄청나게 친한 사이거나, 상대를 낮잡아 보는 경우다.
마지못해 노인은 시하와 비슷한 호칭을 사용했다.
"그래. 아이야."
"……."
"네가 이 멍청한 주인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는. 딱 한 가지 방법 외에는 없을 것이야."
"... 어떻게 하면 돼요?"
고양이라 부른 건 마음에 안 들었지만.
왠지 모르게, 이 비싼 옷들은 만드는 장인의 말이라면 들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클로에였다.
그에 점주는 담담하게 답했다.
"그야말로 최고가 되는 거지."
"최고라니요...?"
"그래. 그 누구도 네 선택과 네 주인의 믿음을 비웃지 못할 정도로, 높은 경지에 이르는 게다."
"……."
"이 정도 각오는 되어 있어야, 이 몸께서 '너만의 장갑'을 만들어 줄 가치가 있겠지."
그녀에게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강요하는 동시에, 너무나도 오만한 말을 내뱉는 노신사였다.
하지만 클로에는 그 말을 흘려듣지 못했다.
이 길을 선택한 것은 자신이고, 자신의 은인은 그 선택을 믿어주었으니까. 남이 일로 치부하며 넘겨들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잠시간의 시간이 지나고...
"할게요."
결심을 마친 클로에가 말했다.
그에 노신사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그래. 그 주인에 그 부하로군."
"주인 아닙니다. 고용주입니다."
"그게 둘 다 거기서 거기지. 시하 공작. 자네는 참 어린 주제에 말이 많아."
"어르신도 오늘따라 말씀이 많으시네요."
방금 거리에서의 일을 다시 떠올린 탓인지, 오늘따라 한 마디도 지지 않으려는 시하였다.
그런 시하의 반응에, 노인은 혀를 차며 말했다.
"쯧. 잠시만 기다리게. 그리고 페이지!"
"네."
"이 아이가 활을 가지고 다닐만한 케이스도 하나 꺼내 둬. 바이올린 크기면 되겠구먼."
"알겠습니다."
페이지라는 이름으로 불린 여자 점원은 종종걸음으로 카운터 뒤편을 향해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본 시하는 말했다.
"저기. 어르신. 케이스까지는 제가 주문한 적이 없습니다."
"자네가 없을 때, 저 아이가 거리를 자유롭게 다니기 위해서는 필요하지 않겠나."
"……."
"케이스 가격은 청구하지 않을 터이니 걱정하지 마. 어차피 내 물건 중 하나를 줄 뿐이야."
"그게 더 부담스러운데요..."
"어허! 오늘 더 말대꾸하면 장갑은 없을 줄 알아!"
"아. 예."
"... 그럼 잠시 기다리게. 금방이면 돼."
그 말을 남긴 노신사는 작업실로 돌아갔고.
의류점의 홀에는 클로에와 시하만이 남았다.
"아. 여기 올 때마다 피곤해..."
"하하. 하하하... 조금 그렇긴 하네요."
도대체가. 이곳에만 오면 장사꾼과 손님이 바뀐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 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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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자. 한 번 손에 껴 보거라."
장갑을 완성한 노신사가 계산대에서 말했다.
그에 클로에는 붕대투성이 손에 그 장갑을 착용했고, 작은 탄성을 질렀다.
"와. 진짜 편하네요. 이거."
"당연하지. 20년 장인의 솜씨를 뭐로 보는 게야. 환기가 잘 되고 세탁하기 쉬운 엘브리움 소재를 사용했고, 마법진으로는 방검, 방탄, 순수 마력 저항을 추가했다."
"... 뭔지는 모르겠지만. 비싼 거 아니에요?"
"오늘은 무료다!"
그 대화에 시하는 정색하며 끼어들었다.
"아니. 어르신. 값을 치뤄야..."
"어허! 말대꾸!"
"……."
하지만. 노신사의 맹렬한 기세에 대금화를 꺼내던 시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노인의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귀가 얼얼해질 정도.
그 모습을 본 노신사는 고개를 끄덕였고, 바이올린 케이스를 들고 있는 조수를 불렀다.
"그래. 페이지. 그 케이스를 가져와."
"여기 있습니다."
"자. 여기 네 활을 넣어보거라."
"네."
옆에 있던 시하도 그 케이스의 안을 구경했다.
'뭐야. 이거. 바이올린 케이스가 아닌데...?'
조수가 연 케이스의 내부에는 벨트 몇 개가 달려 있을 뿐, 다른 것은 전혀 없었다. 바이올린을 수납하기 위한 자리도, 활을 보관하는 홈도 파여있지 않다.
... 애초에 바이올린 케이스가 아니었던 셈이다.
하지만 생전 악기 케이스를 본 적이 없는 클로에는 별 의심도 없이 자기 활을 넣었다.
그 후, 잠깐 고민하다 그녀의 가방에 있던 통아도 그곳에 함께 집어넣으려던 참이었다.
"잠깐. 그건 뭐지?"
"통아요."
"내가 한 번 살펴봐도 되겠나."
갑작스러운 노신사의 제안에, 클로에는 시하의 얼굴을 살폈다. 과연 인환의 유품인 통아를 이 수상한 노인에게 맡겨도 되는지 의문이 든 탓이었다.
'어차피 마법진을 잘 아는 에딘에게 보여줄 생각이었는데. 여기 점주도 실력자긴 하니까...'
언젠가 이곳에 함께 찾아온 요나가 말하길, 점주가 만들어내는 옷들은 에퀼리아 마탑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자들이 만드는 수준이라 하였다. 그러니 보여주는 것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
"한번 보여드리렴."
"네. 여기요."
"흐음..."
이리저리 돌려보며, 통아 안팎에 그려진 마법진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한 노신사. 그는 그곳에 마력을 주입하여 통아에 푸른 빛을 띄워보기도 했다.
그러던 그는 말했다.
"에퀼리아제는 확실히 아니고. 동방의 방식이야. 내가 알 수 있는 식은 가속, 마력 증폭, 회전력 부여. 이 도구 안에 넣은 무언가에 마력을 더하는 방식이군. 이건 도대체 어떻게 쓰는건가?"
"이전 주인은 짧은 화살을 쏠 때 그걸 쓰셨는데. 저는 그 방법을 잘 몰라요."
"짧은 화살을 쏠 때라..."
고민하던 노인은 이내 '방긋' 미소를 지음과 동시에, 계산대에 굴러다니던 펜 하나를 통아 안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 그 통아를 점포 벽에 겨눈 순간...
푸른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니. 어르신! 갑자기 그렇게 하시면!"
"위험해요오오오!"
"어허! 말대꾸!"
팡! 하는 소리와 함께.
볼펜은 맹렬한 기세로 날아가 벽에 박혔고, 자리에서 몇십 바퀴를 더 회전한 뒤에야 멈추었다.
"오호!"
"……."
"……."
재미있는 장난감이라도 찾은 듯한 노신사의 탄성.
그와 대조되게도, 시하와 클로에는 아연한 눈을 한채로 금 간 벽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여자 점원은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참 오랜만에 벽 수리를 다 하게 생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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