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화 〉 2135. 고양이의 꿈 (7) 수인이 인간에게, 인간이 수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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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5. 고양이의 꿈 (7) 수인이 인간에게, 인간이 수인에게.
의류점의 여직원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보충재를 가져와 벽을 수리하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던 시하는 말했다.
"저기. 어르신. 방금 도대체..."
"자네도 보지 않았나. 실험을 했을 뿐이네."
"뿐이라고요?"
"그렇지. 내가 직접 실험한 덕분에 이 마도구의 성능을 알 수 있게 되지 않았나."
"……."
노인의 답을 들은 시하는 다시금 벽을 보았다.
중간을 파고들듯, 폭이 좁고 깊은 구멍이 하나. 그 주변으로 퍼져 있는 균열. 저것은 분명 '그 게임의 화살'이 보여주던 위력이 아니었다.
그의 옆에서 클로에도 말을 보태었다.
"인환 아저씨가 쏘았을 때는 저 위력이 아니었는데요..."
"인환. 그자가 이 마도구의 전 주인이냐."
"... 네."
"그 자가 전력으로 이 마도구를 쓴 적은 있느냐."
"……."
클로에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시온 자작령에서의 날들을 잘 생각해보면, 인환이 자기 앞에서 통아를 제대로 쓴 적은 없었다.
아니. 애초에 클로에가 본 인환의 전투는 놀들과 맞설 때와 밀리아 마을에서 사제가 보낸 교단 추격자들을 상대했을 때뿐. 그 당시에 인환은 통아를 쓴 적이 없었다.
클로에가 그 모습을 본 것이라고는, 달밤에 인환이 시범을 보였을 때뿐이었다.
"없어요..."
"여기서부터는 내 추론이다."
노신사는 조금 전까지는 들뜬 상태였다면, 이제는 차분해진 목소리로 추측을 늘어놓았다.
"이 마도구에는 짝이 있다."
"짝이요?"
"이를테면, 네가 말한 그 짧은 화살이겠지."
"잠시만요. 여기 화살통에 있을건데..."
클로에는 가방 속에 통아와 함께 두었던 화살통을 뒤져 짧은 화살 하나를 꺼내었다.
하지만 노신사는 그걸 보고도 고개를 저었다.
"이게 아니야. 이건 그저 짧은 화살일 뿐, 마도구로서의 공정이 더해지지 않은 것이야."
"그런가요..."
"조금 전. 나는 저 펜에 임시 마법진을 그려 넣어 발사했다. 그렇기에 저 위력이 나온 게야. 아마 원본은 더 강한 위력을 보이겠지."
"저것보다도 더 강하다고요?"
"그래. 동방의 술식은 난잡하기 그지없어 분석이 어렵다만. 이 마도구는 꽤 오랜 시간 연구를 거쳐 만들어진 걸작이다. 20년 장인인 내가 보증하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시하는 생각했다.
지금 이 노인이 보여준 마법진 관찰력이나 응용력을 생각했을 때, 통아를 맡겨도 될 것 같다고.
통아의 사용법이 당장 발목을 잡긴 하지만. 조금 개량을 거치면 비슷한 역할의 마도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어르신. 이걸 더 사용하기 쉽게 개량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 뭣?"
"저희는 이 마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모릅니다. 그러니 이 아이가 쓸 수 있을 정도로 편하고 간단하게, 되도록 직관적으로 개량해주셨으면... "
시하가 말을 더해감에 따라, 노인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졌다.
하지만 시하는 약간의 실마리가 보이는 이 상황에 들뜬 상태. 노인의 얼굴을 신경 쓰지 못하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간다.
그리고 참다못한 그가 외쳤다.
"예끼!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게야!"
"아니. 갑자기 왜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이 자체로도 걸작이며. 이 아이가 물건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내 눈에 보이는데. 어찌 네놈이 개량을 말하는 게야! 자유권 침해야. 이놈아!"
"……."
갑자기 자유권 침해라니. 평소라면 노신사의 단어 선택에 먼저 의문을 가질 시하였으나, 말을 듣고 보니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시하가 클로에의 안색을 살피자, 그녀는 슬픈 눈으로 인환의 통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괜히 자신이 클로에의 마음을 자극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 시하가 그녀를 불렀다.
"클로에."
"... 네?"
"미안하다."
"아니에요. 공작님 말씀이 맞아요. 제가 쓰지도 못하는데, 개량할 수 있으면 개량하는 게 맞죠."
"……."
"점주님. 저도 부탁드릴게요."
클로에가 담담한 어조로 부탁하자...
"끄응..."
노신사는 아직 이 상황이 온전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얼굴을 찡그린 채 목소리를 흘렸다.
그러던 그는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이 어린놈들이. 나를 뭘로 보고 이딴 부탁을 하는 게야."
"……."
"이딴 마도구 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설계해보았다. 에퀼리아제 마도총의 총신 대부분이 내 검수를 거쳐 갔다 이 말이야."
"그 말씀은..."
시하가 조심스럽게 묻자.
노인은 앉은 자리에서 당당히 가슴을 펴며 말했다.
"개량 따위 하지 않는다. 내가 새로 만든다. 이 마도구는 잠시 참고용으로 쓰다 돌려주마."
"감사합니다. 점주님."
클로에는 그 자리에서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고, 시하는 다시금 지갑을 꺼내 들었다.
"어르신. 제가 이 값은 얼마나 치뤄야..."
"지갑 집어넣어라! 몇 번을 말해야 듣겠어!"
"장갑에 케이스에 마도구까지 만들어주시는데 계속 돈을 안 받으시면 안 되죠."
"어허! 손님 따위가 어디 나한테 말대꾸를...!"
"에헤이. 일단 대금화 열 장은 받으세요."
"계산대에 돈 내려놓는 순간 안 만든다!"
"……."
시하는 머릿속이 지끈거렸다.
'아니. 이 어르신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한테 이런 빚을 지우려는 거야...'
남한테 빚만 지고 살다 보면 언젠가 망한다. 이것은 시하의 마음속 계율 중 하나다.
사실 평소에도 이 노신사는 시하가 옷을 주문할 때마다 반값만 받았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예 돈을 받지 않으려고 한다니. 노인장의 고집에 두려움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돈을 주는 순간 만들지 않는다고 해버리니, 달리 뾰족한 수도 없는 상황. 결국 시하는 노신사에게 쫓겨나다시피 의류점의 문을 나서야만 했고.
... 밖에서 몰래 동태를 살피다, 여자 점원에게 대금화 열 장을 건넨 뒤에야 마음 편히 돌아갔다.
* * *
의류점 [오트 쿠튀르]의 여점원, 페이지는 영업 종료 간판을 내걸고서 의류점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노신사의 방에 똑똑 노크했다.
"들어오거라."
"실례하겠습니다."
그 방의 정체는 노신사의 마술 공방.
넓은 방의 한편에는 마법 서적이 잔뜩 꽂혀 있었으며, 다른 벽면에는 마도총을 비롯한 여러 마도구들의 설계도가 걸려 있었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이 공방의 가장 큰 특징은 천장일 것이다. 천장은 투명한 유리로 뒤덮여 밤하늘의 별빛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 공방에서, 노신사는 클로에가 두고 간 통아의 마법진을 자세하게 전사(??)하고 있었다.
페이지는 노신사에게 보고했다.
"스승님. 시하 공작께서 결국 대금화 열 장을 제게 주신 뒤에야 돌아가셨습니다."
"쯔쯔쯔쯧. 그 어린놈은 결국에 돈을 주고서야 돌아가! 나한테 필요도 없는 것을!"
"... 스승님. 지금 저희는 장사를 하고 있다는 자각은 있으신 거죠?"
"당연하지! 허나, 오늘 대금은 돈이 아니었을 뿐이야."
"……."
고아였던 자신을 주워 주신 뒤로 거의 20년 동안 스승으로 모신 노신사지만, 아직도 페이지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도 적당히 돈을 받고 돌려보냈으면 될 것을, 굳이 일을 더 키우는 스승이었으니까.
마음 한편으로는 이 괴짜 같은 노인네를 이해하기 지친 페이지였으나, 오늘따라 그 이유가 더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평소에는 공작에게 거래 대금의 반 정도는 받지 않았습니까. 오늘은 왜..."
"페이지."
"... 네."
"네가 물어도, 언제나 내 답은 똑같다."
"……."
"내 마음 가는 대로 받지 않았을 뿐이야."
평소와 같은 질문.
평소와 같은 대답.
하지만 오늘의 페이지는 조금 더 묻고 싶었다.
"그래도. 스승님께서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되신 계기가 있을 것 아닙니까."
"... 오늘따라 참 말이 많구나."
"당연하죠. 오늘의 스승님은 달라 보이셨으니까요. 시하 공작이 계기입니까. 아니면 그 고양이 수인 아이가 계기입니까."
"……."
"오늘의 대금은 무엇이었는지요."
페이지의 추궁에 노인은 잠시 손을 멈추었다.
에퀼리아의 길거리에서 막 주웠을 때만 해도 말을 고분고분하게 잘 듣던 아이였는데. 세월이 야속하다는 말을 지금 써도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
세월.
자신도 모르게 그 단어를 읊조리고 마는 그였다.
"세월. 세월이라..."
"오늘의 대금은 세월이었습니까."
"그게 아니다. 페이지. 너는 조금 더 다른 이들의 말을 파고들 필요가 있어."
"... 20년 내내 들어온 말씀입니다만."
"20년 동안 나아지지 않았다는 뜻이지."
"스승님. 치사해요."
"치사해도 어쩔 수 없다."
"……."
페이지는 삐친 듯이 입을 다물었고. 의자를 뒤로 돌린 노신사는 혀를 차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변한 것 같아도, 아직은 아이 같은 제자. 그런 제자에게 노신사는 말했다.
"그 수인 꼬마가 들고 온 활을 보았느냐."
"네. 동방의 각궁 아닌가요."
"그 활에 걸린 시위는?"
"그 정도로 관심을 가지지는 못했습니다."
"그래. 거기까지 보기는 힘들었겠지..."
노신사는 말끝을 흐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대재앙이 에퀼리아를 덮쳐온 그 날. 그날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맑은 하늘이었다.
"시기의 대재앙. 라합."
"라합이라면..."
"흰 고양이가 숨통을 끊었던 그 대재앙이지."
"정확히는 스승님께서 그분을 도우셨죠. 그런데 갑자기 그 이야기를 왜 다시..."
"그 시위가 라합의 파편이었으니까."
"... 그 시위가요?"
언젠가. 노신사에게 '흰 고양이'가 다시금 찾아와 들뜬 목소리로 말한 적이 있었다.
동방의 어느 바보 같은 무인에게, 자신이 품었던 뜻과 함께 그 보물을 넘겼노라고.
"수인이 인간에게. 인간이 수인에게..."
자신을 찾아온 노란 고양이의 눈에서는, 흰 고양이가 품고 있었던 빛이 엿보였다.
그 빛은 아직 미약했으나, 언젠가 머지않은 미래에 더 밝게 타오를 만한 빛이었다.
거기다...
그 노란 고양이의 옆에는, 타인의 자유를 끔찍이도 아끼는 이가 함께 하고 있었다.
분명 그라면 그 빛을 지켜줄 것이다.
…….
노신사의 사고는 물처럼 자연스레 흐르고.
조금 전, 시하와 나눈 대화가 문득 떠올랐다.
이윽고 그의 생각은 또다시 흐르고 흘러.
그의 제자가 입에 담았던 한 마디에 이른다.
"후우..."
"스승님. 갑자기 웬 한숨을..."
"걱정되는구나."
"갑자기 무슨 걱정이신가요."
"……."
노신사는 차마 자신의 생각을 말해줄 수 없었다.
곁에 있는 자의 자유를 위해 세상을 등지는 스승.
곁에 있는 자의 자유와 세상을 함께 위하는 제자.
... 이것만큼은 부디, 이 늙은이의 쓸데없는 고민이길 간절히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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