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173화 (173/215)

〈 173화 〉 2­137. 길드 사장님의 결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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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7. 길드 사장님의 결단. (1)

'어떻게든 시간을 마련해보겠다.'

내가 뱉은 말이기는 하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너무나 큰 노력이 필요하다. 남은 시간은 일주일. 그동안 나는 쌓인 일을 전부 처리해야 하며, 쌓일 일은 최대한 줄여야 하니까.

왕성을 나선 나는 곧장 모험가 길드로 향하자, 접수를 맡고 있는 밀리가 나를 맞이해주었다.

"안녕하세요. 공작님. 일찍 오셨네요."

"일은 일찍 해두는 게 나으니까요. 그런데 오늘은 조금 한가하네요."

오늘도 길드에 사람이 가득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들어왔는데, 다행히도 사람은 적었다.

밀리는 내게 멋쩍은 웃음과 함께 답했다.

"지금 시간대에는 원래 평화로워요."

"그런가요?"

"네. 아침에는 의뢰를 받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점심은 식사 문제로 소란스럽고. 저녁에는 의뢰를 마친 사람들로 바빠지긴 하는데. 지금처럼 낮 시간대는 평화롭답니다."

"……."

"아마 공작님께서는 낮 시간대에 외근으로 바쁘시니까, 모르실 만도 하죠."

그녀의 웃음 사이로 창백해진 얼굴이 엿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를 답답함이 차오른다.

'악덕 업주는 안 되기로 마음먹었는데...'

나는 내 밑의 모든 사람에게 에코니아 기준 넉넉한 급여와 고용 조건을 보장하는 편이다.

하지만 모험가 길드를 맡은 뒤로. 내가 바쁘다는 이유를 들며, 다른 사람들 신경을 영 써주지 못했다는 기분이 든다.

지금 내 앞의 밀리도 그렇다. 그녀의 말을 요약하자면, 낮을 제외한 모든 시간대가 힘겹다는 뜻이 되어버리지 않나.

당장은 나부터가 바쁜 상황이긴 하지만, 해방제가 끝나고라도 처우 개선을 고민해봐야겠지.

나는 그녀의 심경을 물었다.

"밀리. 지금 일이 힘들지는 않아요?"

"... 네?"

"용병 길드 시절에 비해 업무가 과해졌잖아요. 지금 하는 일이 힘들지는 않냐고요."

"……."

그 순간. 밀리의 두 눈에 지진이 일어났다.

저 반응은 분명 두려움. 내가 딱히 무서운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참 뜬금없는 반응이었다.

내가 의아한 눈을 한 채 그녀를 쳐다보고 있자, 밀리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내게 애원했다.

"공작님. 제가 더 노력해서 더 잘할게요!"

"노력은 이미 잘하고 있는데..."

"아뇨. 그 노력이 부족하니까 하는 말씀이시겠죠. 제가 자랑스러운 모험가 길드 접수원으로서 더 잘할 테니까. 자르지만은 말아주세요!"

"그냥 힘드냐고 물어본 거 뿐인데..."

근처의 다른 접수원들은 밀리를 안쓰럽게, 다른 한편으로 나를 무서운 듯이 올려다본다.

그리고 내 뒤편에서는, 길드에 남아있던 몇몇 모험가들이 근처에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밀리 씨가 잘린다고?"

"뭐! 우리 길드의 꽃인 밀리 씨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저러는 거야?"

"일을 힘들어했다고 자른다는 것 같은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길드장님. 저렇게 안 봤는데..."

"야. 너 말조심해. 저 사람 귀 엄청 좋아!"

... 가짜뉴스 유포를 멈춰 달라고 해명해야 할 상황.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2층 집무실 난간에서 한 남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아. 시하 공작님 오셨군요! 그런데..."

가끔 길드 업무를 대신 처리하러 와주는 에딘 테크니였다. 그는 동생의 면회를 주마다 한 번씩 시켜주겠다는 조건으로, 내가 일을 도와달라 부탁해서 와있는 것이다.

모험가 길드 건물 안의 모든 이들이 나와 밀리를 쳐다보고 있는 이 난장판 속에서.

우리 대화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헤르만이 기가 찬다는 듯이 내게 말했다.

"형. 방금 형이 한 말 말이야."

"내가 한 말...?"

"응. 그거 우리 아부지가 왕궁부에서 관리들 자를 때. 말머리로 자주 쓰시는 말이거든."

"……."

아.

불현듯 내가 살던 세계의 모습이 뇌리에 스친다.

내가 직접 겪은 적은 없지만, 주변 사람들이나 대중 매체을 통해 많이 접했던 그런 장면들이다.

근로자에게 사퇴 압박을 가하는 고용주. 하지만 정부 지원금이 끊긴다는 이유로 권고사직은 절대 인정해주지 않는다. 결국 근로자는 직장 내 괴롭힘을 이겨내지 못해 자진 퇴사. 쓸쓸하게 자기 짐을 싸 들고 사무실을 걸어 나간다.

…….

아이고.

"아니. 내가 밀리를 자르려던 건 아니고. 진짜 힘든 건 아니냐고 물어본 것일 뿐이에요. 밀리. 그만 울어요. 뚝! 아니. 진짜 미치겠네!"

... 나는 수많은 '아니'를 외치면서.

울고 있는 밀리를 달랠 수밖에 없었다.

.

.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밀리를 겨우 진정시킨 나는 그녀를 길드장실로 호출했다. 다른 일은 아니고, 업무 내용을 자세히 듣기 위해서다.

방으로 들어온 밀리는 내게 고개부터 숙였다.

"죄송합니다. 공작님..."

"아뇨. 오해가 생길만한 말이었잖아요. 괜찮으니 자리에 앉으세요."

일을 하는 게 힘드냐.

그 말이 그렇게나 무서운 퇴직 압박 멘트가 될 수도 있다니. 오늘에서야 처음 깨달았다.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

솔직히. 나는 직장에서 오랫동안 근무해본 경험이 없으니까. 경험이라고 해봐야 교생 실습 한 달과 인턴 한 달 뿐. 이곳에 오기 전까지 나는 저쪽 세계에서 평범한 대학생일 뿐이었다.

거기다 내가 에코니아에 온 뒤로 공작위를 받긴 했지만. 한 단체의 장으로서 활동하는 건 이곳 모험가 길드가 처음이니. 윗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을 부리는 일에 서투를 수밖에 없다.

우리 대화를 멍하니 듣고 있던 에딘이 물었다.

"저는 잘 이해가 안 되는군요. 밀리 양은 그 말을 왜 그렇게 까지나 무섭게 들으신 건가요."

"사실 전 직장에서도 그 말을 듣고 잘려버려서..."

"전 직장은 어디였어요?"

"아카데미 상인회의 민원대에서 근무했어요."

"……."

그녀의 대답에 에딘은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침묵하게 되었다.

이전 아카데미 상인회라면 그럴 만 하지. 내가 정리해버린 세 상인회 중에서 제일 뒤가 구렸던 곳이니까. 지금은 내가 실권을 전부 틀어쥔 상태라 비리는 전부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과거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공손한 자세로 앉아 있는 밀리가 말했다.

"공작님. 그런데 저는 왜 부르신 거에요?"

"아. 저는 위에서 보고만 받고 있다 보니, 현장 상황을 잘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밀리에게 직접 업무의 어려움을 들어보려고 부른 거에요."

"그... 그렇군요."

"긴장할 것 없어요. 솔직히 말해주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되니까. 평소 불편했던 점을 말해봐요."

내가 길드장이긴 하지만, 직접 처리하는 일들은 굵직한 것들 뿐이다.

모험가 간의 분쟁 끝에 누구 한 명이 크게 다치거나 죽는다던가. 의뢰 도중에 모험가가 민간에 큰 손해를 끼친다던가. 그런 일들은 곧장 길드를 나서 현장에서 처리해야만 하니, 그 탓에 나는 길드의 내부 사정을 정확하게는 모른다.

'어쩌면 나보다 에딘이 더 잘 알겠지.'

분명 에딘은 나보다 길드에 붙어있는 시간이 더 길다 보니, 길드의 사정을 나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겐 약간의 문제가 있으니, 남들이 느끼고 있는 문제의식에 제대로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다 보니, 그에게는 차마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 옆에 서 있던 헤르만이 말했다.

"형."

"왜?"

"상사가 솔직함을 강조하면서 불편한 부분을 이야기하라고 말하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

"... 잘 모르겠는데."

"인사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 그렇게 말해버리면. 네놈이 내게 불만을 제기하는 순간 나는 너를 잘라버리겠단 소리로 들리는 법이야."

"……."

이 무슨 악랄한 기업 문화인가. 저는 그런 무서운 문화에 대해서는 배운 적이 없어요...

그의 말을 믿지 못한 나는 밀리에게 물었다.

"밀리. 방금 제 말이 저렇게 들렸어요?"

"아... 아뇨! 공작님은 친절하신 분이고. 용병 길드에 근무할 수 없게 된 절 거두어 주셨으니...!"

"... 괜찮아요. 안 잘라요. 진정해요."

조금 전, 접수대에서의 반응이 다시 나와버린 밀리.

비록 나에게 친절하다는 포장을 해주려고 노력은 했으나, 저렇게 떨면서 말해버리면 내 마음에 내상만 깊어져 버린다.

악덕 업주가 아닌 착한 사업가가 되는 게 이렇게나 힘든 일이구나. 나는 분명 선의로 다가가고 있지만 직원들이 나를 무섭게 봐버린다.

'그런데. 헤르만은 왜 이렇게 잘 아는 거지...?'

이 녀석. 나보다도 어리면서 이런 기업 문화는 나보다도 훨씬 더 잘 아는 느낌이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헤르만. 너는 이런 걸 어떻게 잘 알고 있는 거야."

"나야. 배우니까."

"네가 이런 걸 배운다고?"

"나는 업체에 취직해야 할 때도 있거든. 그때 감정 이입을 제대로 하려고 배워두는 거야. 이도 저도 안 되는 놈들은 태연한 척만 배우겠지만. 우리는 조직에 녹아드는 법을 배운다고."

"아..."

에딘과 밀리의 앞이라서 정확히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대충 그 의미는 알 것 같았다.

헤르만은 그림자로서 다른 조직의 말단으로 잠입해야 할 일이 있다 보니, 맡은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기 위해 배운다는 듯하다.

역시 그림자들을 통솔하는 티오리아 가문답다.

"그럼. 너 같으면 이런 걸 어떻게 조사할래?"

"그냥 내가 직접 접수원으로 위장해서 하루를 보내보던가. 무기명으로 적어달라 하겠지."

"내가 직접 물어보는 건 안 되는 거야...?"

"그거야 당연하지. 내 직장의 안 좋은 부분을 고용주에게 어떻게 말하라는 거야."

"……."

"아니.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잘 대해주면서. 왜 아랫사람 다루는 법은 이렇게 모르는 거지?"

헤르만은 내 아픈 부분을 서슴없이 찔렀고. 나는 마음속으로 슬픈 변명을 할 뿐이었다.

'... 겪은 적도 없고. 배운 적도 없으니까.'

만약 내가 이세계에 와서 사장님이 될 줄 알았으면 리더쉽 관련 강의도 수강했을 것이다.

우리가 답답한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자, 앞에서 우리를 멍하게 지켜보던 밀리가 말했다.

"저기. 공작님. 헤르만님."

"네. 밀리."

"그냥 제가 평소에 힘들었던 부분들을 전부 말할 테니까. 두 분 그만 싸우세요..."

"……."

"……."

우리의 일상적인 대화가, 길드 접수원인 그녀에게는 높으신 분들의 말다툼으로 보였나 보다.

그것마저도 본인을 문제 삼는 말다툼.

하아...

아랫사람 대하기는 정말 어렵다.

차라리 내가 아랫사람인 게 편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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