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174화 (174/215)

〈 174화 〉 2­138. 길드 사장님의 결단. (2)

* * *

2­138. 길드 사장님의 결단. (2)

길드 집무실에서 밀리와 에딘이 말했다.

"결론적으로 두 달 전에 비해 길드를 찾는 모험가님들의 수가 많이 늘어났어요.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처음에 간을 보던 사람들이 의뢰를 적극적으로 수행하려고 온다고 해야 할까요..."

"밀리 양의 보고 외에도 다른 요인은 있습니다. 제가 공작님이 안 계시는 동안, 신규 모험가의 등급 산정을 맡지 않았습니까. 그동안에도 꾸준히 모험가의 수는 증가했고, 총원이 6할 정도는 늘어났습니다."

6할. 60퍼센트.

두 달 전. 길드에 지원한 면접자는 5천 명이었고, 그중 거의 절반이 합격했었다. 거기서 6할이 늘어났다면 거의 4천 명 정도인데...

너무 많다. 아무리 내가 거리별로 길드 건물을 따로 두었다 해도, 너무 많다. 길드 지부마다 1천 명에. 본부는 처리할 일이 더 많으니 사람도 더 쏠리는 게 당연하지 않나.

'내가 대외적인 인식에만 집중하고 있다 보니, 기본적인 걸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구나...'

지난 두 달 동안. 나는 모험가들이 큰 사고를 쳤다 하면 당장 달려가서 직접 처벌하고, 보상까지 마련해주었다. 그리고 각 상인회와 협의해서 정기적인 호위 업무나 운송 업무도 많이 따온데다 인식 개선을 위한 홍보도 자주 했었지.

덕분에 길드에 크고 작은 의뢰는 훨씬 더 많아졌고. 모험가는 인식도 많이 개선될 수 있었다.

대화를 듣고 있던 헤르만이 말했다.

"시하 형. 사실 형부터가 무리하고 있으니까 말을 안 하고 있었던 건데."

"또 무슨 일이야."

"사실 지금 길드 직원들 전부 조기 출근에 야근은 기본으로 하고 있어."

"뭐... 뭐라고?"

…….

이거. 신문의 사회 경제 파트에서 본 것 같은데.

매출은 좋지만, 그 매출 전부가 직원들의 희생에서 나오는 기업. 돈을 꼬박꼬박 주고는 있지만, 주는 돈 이상으로 직원 등골을 빼먹는 기업. 사장이 외부 계약을 잘 따오긴 하지만, 내부는 점점 곯아가고 있는 기업. 회사 몸집은 점점 커지는데, 직원들은 점점 과로사에 가까워지는 기업.

... 나는 블랙 기업의 사장이었다.

"밀리. 진짜에요...?"

"네. 특히나 의뢰인 전용 창구에는 방문하시는 분들의 계층이 다양하다 보니, 안내를 돕다 보면 보고서를 나중에 적어야 할 때가 많아서요. 그 부분은 저희가 야근과 조기 출근으로..."

"아니. 그럼 언제 출근해서 언제 퇴근해요?"

"오전 5시에 나와서 오후 10시쯤 들어가요."

"그럼 잠은 얼마나 자는데?"

"다섯 시간 정도요!"

내 물음에. 밀리는 다섯 시간 잔다는 그 사실이 자랑스러운 듯 가슴을 활짝 펴며 답했다.

그리고 그녀는 다른 말까지 덧붙였다.

"하지만 공작님. 저는 괜찮아요. 왕도 내 여성들의 구직 1순위가 모험가 길드인걸요. 업무량이 많긴 해도 그만큼 벌이는 쏠쏠하고. 위험한 일도 하지 않으니까요. 오죽했으면 아카데미 출신 졸업생들까지 이곳을 지망하겠어요."

"... 돈만 주면 다야?"

"모험가들에게 수고비를 빼먹지 않고 챙겨주시니까요. 그만큼 공작님께 신용이 있는 거죠."

"……."

밀리는 정말이지 해맑아 보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는 나는 더 깊은 죄의식의 구렁텅이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돈만 주면 다라는 마인드로 온갖 부조리한 근무 환경을 이겨내야만 한다니. 판타지 세상치고는 너무 어두운 이야기라서 더 머리가 아파진다.

그렇게 내가 골머리를 싸매고 있을 무렵, 헤르만이 내 옆에서 말을 걸어왔다.

"뭐. 밀리 양은 긍정적이니까 저런다 치고. 문제는 아직 더 남아있어."

"문제가 더 있다고?"

"그렇지. 나도 사실 들은 이야기가 전부지만. 형. 형이 없을 때 에딘이랑 주방장님이 얼마나 고생하시는지 알아?"

"뭐야. 에딘. 무슨 일 있었어요?"

"저는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내게 답하는 에딘. 그의 성격상 별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말하기가 영 꺼려지는 일임은 틀림없어 보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러는 거야...'

의아한 눈으로 헤르만을 바라보자, 그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모험가든. 의뢰인이든. 나랑 형이 외근을 나가는 시간대에는 진상들이 몰려온다더라고."

"진상? 무슨 진상인데?"

"밀리 양에게 물어봐."

"밀리. 말씀해주실래요?"

"그... 그게..."

밀리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려고 하던 그 순간.

바깥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지?"

"뭐. 형이 직접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헤르만은 조용히 나와 자신의 주변에 마법을 걸었다. 내가 왕실 가정교사로서 '첫 참관수업'을 준비할 때 아샤가 써주었던, 인식 저해 마법이었다.

"갑자기 이건 왜?"

"그런 게 있어. 일단 나가보자."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러는거야..."

나는 조용히 헤르만을 따라 밖으로 나섰다.

.

.

2층에서 길드 내부를 내려다보니 청년 모험가 한 명이 접수대 앞에서 난동을 피우고 있었다.

"왜 대금을 못 주겠다는 거야."

"죄송합니다. 하지만 확인을 마치지 않으면, 섣불리 대금을 드릴 수 없어요."

"아니. 내가 의뢰를 마쳤다고 하면 마친 거지. 왜 이렇게 말이 많아?"

"웬만해서는 의뢰인에게 확인증을 받아 오시는 게 처리가 빠르답니다."

무슨 진상인가 했더니, 저거였구나.

모험가로서 한 사람이 의뢰를 마친 후. 대금을 받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길드의 입회하에 의뢰를 완수했음을 증명하던가. 의뢰인에게 간단한 증빙 자료를 받아 오던가.

결국 길드는 의뢰인의 돈을 가지고 의뢰를 알선해주다 보니, 이런 귀찮은 절차를 어쩔 수 없이 지켜야만 한다. 이는 용병 길드부터 내려오던 전통적인 절차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규칙이기도 하다.

나는 내가 바라보던 방향을 손으로 가리키며 헤르만에게 물었다.

"헤르만. 저게 문제라는 거야?"

"저것도 문제긴 한데. 그 옆 사람이 더 문제래."

"옆 사람...?"

"저기. 요즘 들어 직원에게 매번 추파를 던지는 에퀼리아 출신 유학생이 하나 있거든."

유학생. 그 말은 아카데미 학생이라는 뜻인데...

내가 게임을 통해서 접한 사람일 수도 있으니, 나는 그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어차피 본편 시점에나 주요 인물들이 유학을 올 테니까. 아직은 중요한 사람은 없겠지...'

그 유학생은 길드 접수원에게 붉은 장미 한 송이와 건네며, 닭살 돋는 웃음과 함께 말했다.

"안나 씨. 오늘도 의뢰를 위해 왔습니다!"

"... 네."

"아카데미 기숙사 청소. 대금은 소금화 한 장!"

…….

미친놈인가.

아주 돈지랄을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모양이다.

각국의 수재들이 모인 아카데미라 해도, 그곳의 기숙사가 대궐처럼 넓다든가 하는 일은 없다. 애초에 기숙사는 상대적으로 돈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왕국이 장학 기금으로 운영하는 자선 사업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진짜'들은 왕도 내에 존재하는 빈 저택을 통째로 빌려서 거주하니까. 기숙사에는 그럴 형편이 안 되는 나머지 사람들만이 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아카데미 기숙사는 제일 넓은 곳이 침실 두 개가 딸린 스위트룸 정도. 그런 방을 청소하는 데 소금화 한 장은 말도 안 되게 비싼 가격이다.

의뢰 내용을 들은 안나라는 접수원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그에게 되물었다.

"어제도 똑같은 의뢰를 맡기지 않으셨나요."

"어제 배정된 모험가가 의뢰를 포기하더군요."

마음속으로 '방이 너무 더럽기라도 한가. 얼마나 더러우면 청소를 포기하는 거야.'라는 생각을 할 때 즈음. 저놈의 입에서 더 역겨운 말이 나왔다.

"안나 씨가 직접 제 기숙사에 오셔서 직접 청소해주신다면 대금화로 드리죠. 어떻습니까."

"... 저는 그런 일은 하지 않겠다고 예전부터 말씀드렸습니다. 의뢰를 넣으러 오신 게 아니라면 돌아가 주세요."

"에이. 대금화 한 장인데도 안 해요?"

"……."

대가리에... 피도... 안마른... 쉐키가...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휴먼아재체로 온갖 욕이 튀어나오는 동시에, 내 발걸음은 절로 2층에서 1층을 향해 뚜벅뚜벅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헤르만이 내 뒤를 따라오며 물었다.

"어디 가는 거야?"

"자라나는 잡초를 밟으러 가지."

"... 쟤 에퀼리아 마도구 협회장의 넷째래."

"아. 그 엘프와 드워프의 노예 새끼들? 그런 거 알 게 뭐야. 협회장 본인이 저래도 난 밟는다."

"에휴.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어차피 에퀼리아에서 조심해야 할 세력은 셋뿐.

마도구에 수명을 불어넣는 엘프.

마도구 외형을 담당하는 드워프.

마도구에 마법진을 새기는 마탑.

이들이 에퀼리아 정부와 의회의 주 구성원이고. 마도구 협회란 그들의 꼭두각시일 뿐이다.

그런 가문의 넷째 따위가, 해방제를 한 주 남긴 시점에서 저런 꼴값을 떤다니. 나로서는 절대로 봐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게 계단을 내려가 접수대로 향하자...

"거기. 접수원 씨. 내가 돈이 급해서 그러는데. 오늘은 좋게 좋게 넘어갑시다."

"안 돼요. 저희 규칙이 이런걸요."

"아. 이거 말이 안 통하네. 담당자 바꿔! 여기 가장 높은 사람한테 나오라고 해!"

접수원과 진상 1번의 대화를 자세히 듣게 되었다.

'여기서도 이딴 말을 하는 인간이 다 있네. 높은 사람 나오라는 걸 보면 에퀼리아 출신인가...'

나로서는 지금 이 대화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야."

"... 어?"

"길드장님...?"

"길드장이라고? 마침 잘 됐군. 제가 지금 의뢰를 마치고 확인증을 깜빡했는데 말입니다..."

키는 나와 비슷하지만, 얼굴에는 고집이 그득한 금발의 청년이었다. 내가 길드장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자기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 내 성격을 제대로 모르는 걸 보면 왕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초짜 모험가겠지.

하지만 나는 그런 개인 사정을 봐주기는 싫었다.

"자격 박탈."

"... 뭐요?"

"아니다. 모험가여야 손을 댈 명분이 있지."

말을 마치자마자. 나는 그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감싸듯 밀었고. 이내 그의 머리는 접수대 테이블에 쿵­하고 박혔다.

그 소리와 함께. 길드 전체는 고요 속에 잠겼다.

"으어어..."

"아픈 척 하지 마라. 한 번 더 하는 수가 있다."

"... 예."

"확인증을 깜빡한 건 네 책임이지?"

"그렇습니다."

"근데 왜 우리 접수원에게 이래라 저래라야."

"……."

"잘하자?"

"예."

"우리 접수원들이 너 같은 놈들을 하루에 천 명이나 받는데. 너 같은 예외를 다 챙겨주면 우리 접수원들이 얼마나 피곤해지는지 알아?"

"……."

"빨리 확인증이나 받으러 갔다 와."

"예."

내가 금발남을 길드 정문 방향으로 밀자, 그는 비틀거리며 자리를 빠져나갔다.

이 정도 해뒀으면 더는 안 오겠지. 이렇게 많은 사람의 앞에서 수모를 겪고도 돌아온다면 그것도 참 대단한 거다.

그렇게 금발남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

"안나 씨. 오늘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길드 분위기도 영 안 좋으니..."

안나라는 접수원에게 치근덕거리던 아카데미 학생이 길드에서 내빼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나를 보고 도망을 치려 해...?'

저놈은 길드장인 내가 자리를 비웠을 때만 찾아오는, 상당히 악질적인 진상이기 때문이다.

"어 딜 도 망 가 시 나."

나는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하면서,

다급히 도망가려던 그를 멈춰 세웠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