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175화 (175/215)

〈 175화 〉 2­139. 길드 사장님의 결단.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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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9. 길드 사장님의 결단. (3)

도망가려던 유학생 손놈은 나를 뒤돌아보며 조심스럽게 답했다.

"제게 말씀하신 겁니까?"

"그래. 자네지."

"왜 제가 도망을 간다고 표하시는지..."

방금 그 금발 모험가와는 다르게, 마도구 협회장의 사남이라는 이 변태 자식은 나쁜 쪽으로만 머리가 잘 도는 놈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낮에는 이 길드에 자신을 함부로 대할 사람이 없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에딘은 다른 진상들은 전부 저지할 수 있어도, 이 멍청이는 섣불리 대할 수 없는 처지다. 테크니 가문은 에퀼리아와의 상업적 관계를 소중히 해야 하니까. 이곳 길드 일을 돕다가 괜한 트러블에 휘말리는 것은 피해야만 한다.

그렇다고 다른 이들이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다. 유학생 대부분은 모두 높으신 분들의 자제들. 건드렸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손놈은 내게 저자세로 행동하고 있다.

바로 내가 그의 유일한 갑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걸릴 수밖에 없는 함정을 놓았다.

"하던 접수는 끝마치고 가셔야지. 우리 접수원을 고생시켜 놓고 그냥 가는 건 아니지 않나."

"……."

"청소 의뢰라 했었나. 빨리 접수하시게."

내 말에 진상 학생은 고민에 빠졌다.

접수원이 거절하던 의뢰를 길드장인 내가 직접 받아들이겠다니. 수상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면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니까.

하지만 그는 내 말을 따르게 될 것이다.

왠지 모르겠지만, 내가 대화를 전부 들은 듯이 말하고 있으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몸을 뺀다면, 자신이 안나에게 치근거릴 목적으로 왔다는 사실이 더 분명해져 버린다. 그렇게 의심을 사는 것 보다는, 적당히 접수를 마치고 돌아가는 게 '이득'이라 생각할 것이다.

"공작님의 배려 감사합니다. 접수하겠습니다."

"그래. 안나. 이 학생의 접수를 도와주세요."

"... 알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손놈은 내 제안을 승낙했다.

슬쩍 접수증에 적힌 나이를 보니, 이 똑똑한 바보의 나이는 열여섯. 어찌 보면 어린 나이지만, 아이 시절부터 가업을 물려받기 위해 수많은 권모술수를 배우며 큰 에퀼리아인이다. 이 정도 간단한 셈은 할 수 있어야 정상이지.

이제 이 인간의 기본적인 검증은 끝났고, 지금부터 내 게임 속 행동 강령이 빛을 발할 때다.

에퀼리아인을 엿 먹이는 방법. 그 첫 번째.

상대가 스스로 함정에 걸리도록 해야 한다.

"자네가 말하길. 접수원인 안나 씨가 직접 가주면 대금화 한 장이라고 했었지?"

"……."

"혹시 내 귀에 흘러 들어온 말이 틀렸나."

"아. 아닙니다. 공작께서도 들으셨군요!"

"그래. 안나. 대금화 한 장을 선입금으로 받아 두세요. 오늘은 고생 좀 해야겠군."

에퀼리아인들은 자기 자신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착각 속에 빠져 지낸다. 이는, 그들 스스로가 '자유와 평등의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허나, 무엇이든 과하면 독이 되는 법. 그 자부심이 뒤틀린 에퀼리아인들은 다른 나라의 체제를 무시하고. 타인을 속이며 우월감을 느낀다.

지금부터 나는 그 약점을 공략할 것이다.

내 지시를 받은 안나는 겁에 질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기... 길드장님..."

그녀로서는 당연히 저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 진상 손놈이 말하는 '청소'는 의미 그대로의 청소를 말하는 게 아니니까. 이는 높으신 분들의 은어로, 와서 접대나 하라는 뜻이다.

지금까지의 대화만 놓고 볼 때, 나는 권력을 내세워 안나를 이 손놈에게 판 몹쓸 놈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새끼 좋은 일은 죽어도 못 하지.'

자기 믿기 편한 방식으로 내 말을 해석해낸 손놈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는 히죽거리며 지갑에서 대금화를 꺼내었고, 곧장 내게 건네었다.

"공작님. 여기 대금화입니다."

"그래. 잘 받았소."

일상생활에서는 보기조차 힘든 대금화. 몇몇 이들은 평생 이 동전을 구경조차 할 수 없다.

그런 귀하디귀한 동전이 눈앞에서 오가자, 모험가 길드 내부는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그렇다고 분위기가 그리 밝지는 않다.

이 대금화 한 장은, 어찌 보면 내가 다른 인간을 팔아서 받는 돈으로 보일 테니까. 모험가들의 대화 사이로 작게 욕지거리가 들려오고 있다.

나는 내 뒤를 따르고 있던 헤르만을 불렀다.

"헤르만. 내 금화 주머니. 가지고 있어?"

"당연하지. 여기 있어."

"거기서 대금화 아홉 장만 꺼내 봐."

"갑자기?"

"꺼내라면 꺼내."

"... 알았어."

그가 내게 대금화 아홉 장을 건네자, 내 손에는 금빛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도합 열 장의 대금화. 이를 가지고 접수대 방향에 고개를 돌리자, 접수원 안나가 나를 흘겨보고 있었다. 그 눈에는 원망. 슬픔. 체념. 낙담. 그런 부정적인 감정이 여럿 뒤얽혀 있다.

나는 모험가 길드에 있는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도록, 큰 목소리로 말했다.

"내 이름으로 된 의뢰를 하나 더."

"... 네?"

"모집 인원은 오십 명. 수당은 소금화 하나씩. 의뢰 내용은 접수원 안나 양의 아레트 아카데미 기숙사 청소 보조. 추가 내용은 수락 후 전달. 이것만큼 꿀인 의뢰가 어디 있어. 안 그래?"

"……."

어수선했던 모험가 길드에는 정적만이 남았다. 모험가 대부분은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듯, 이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 의뢰를 다시 묻기까지 한다.

그리고...

이해가 빨랐던 손놈 자식은 내게 소리쳤다.

"아니. 공작님...!"

"왜 그러나."

"말씀이 다르시지 않습니까!"

역시. 자신이 남을 속이는 건 상상할 수 있어도, 자신이 속는 것만큼은 절대로 상상하지 못하는 에퀼리아인들의 습성이란. 이래서 더더욱 속이는 맛이 난다.

나는 금발 모험가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손놈의 머리채를 끌어 잡아 접수대 위로 처박았다.

"억!"

"자네. 내가 언제 말을 바꾸었나."

"으어어어..."

"말해보게. 내가 언제 말을 바꾸었나."

"내가 누구인지는 알고..."

"당연히 알지. 그러니 말해보게. 내가 자네와 대화하던 중에 말을 바꾼 것이 있나."

"... 없습니다."

나는 그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대고 속삭였다.

"이제 해방제가 한 주밖에 안 남았는데, 연회에는 성한 몸으로 참석해야 하지 않겠어?"

"……."

"네놈의 가문에서 생산하는 마도구들. 에우데미아 전역을 통과하지도 못하게 해줄까."

"그... 그건..."

나는 왕도의 굵직한 상인회를 전부 장악했고. 임시 공작위를 이용하여 국왕에게 직접 진언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란 존재는 이 진상에게 '갑'인 것이다.

손놈은 이 지경이 되어서도 머리를 굴리는지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고.

나는 그 꼴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머리 굴리는 소리 들린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그래. 실수할 수도 있지. 아이 실수는 부모가 알아야 하는 법이고. 길드 업무 방해와 성추문은 자네 가문에 잘 전해두지. 내가 직접 서한을 보낼 테니 걱정은 말게나."

"죄송합니다. 제발 그것만큼은...

"아. 말하면 안 되나?"

"... 예. 부탁드립니다."

"청소는 예정대로 진행할 거니까. 전부 알아들었으면 기숙사로 꺼져."

내가 그의 머리채에서 손을 놓자, 우리의 똑똑한 바보 진상이는 힘없는 발걸음을 옮겼고. 그런 그에게 모험가들은 선물을 보냈다.

"우우..."

모험가 한 사람을 지나칠 때마다 빗발치는 욕설과 야유. 그 모욕을 참다 못한 진상이는 울먹임과 함께 길드 정문을 박차고 나갔다.

'참. 이럴 때는 잘 뭉친단 말이야.'

모험가들의 단결된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자니, 뒤에서 접수원 안나가 나를 불렀다.

"저기. 공작님..."

"왜 그러나요. 안나."

"감사합니다."

조금 전까지 원한으로 죽일 듯이 노려보더니. 지금은 눈물이 고인 채 감사를 전하는 그녀였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 상황이 조금 당황스럽다.

'아. 타이밍이 아쉽네...'

그녀에게 줄 선물이 하나 더 남아있기 때문이다.

"뭐가 감사해요. 아직 할 일이 남았잖아요."

"... 네?"

"모험가 50명을 데리고 가서 청소도 해줘야죠. 다른 유학생들에게 '홍보'도 제대로 하시고요. 일을 마치시면 바로 퇴근하셔도 됩니다."

그녀는 내 말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내 옆에 서 있던 헤르만 녀석은 내 뜻을 전부 알아들은 듯, 질렸다는 어조로 내게 말했다.

"형. 개악질이야."

"어허. 개악질이라니.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어."

"에휴..."

한숨을 내쉰 헤르만은 안나에게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안나 양. 아카데미 학생 전부가 알 수 있도록. '모험가 길드에서 청소하러 왔습니다!'라고 외치면서 그놈의 방을 청소하는 겁니다. 부지 안에서 그 진상 놈의 이름까지 확실히 말씀하시고요."

"아... 알겠습니다!"

그제야 내 말뜻을 알아들은 접수원 안나는 사명감에 불타는 표정으로 의뢰서 작성을 마쳤다.

복수란 달콤한 것이고. 자기 손으로 직접 하는 복수는 더욱 달콤한 법이니까. 결정적인 복수는 그녀 손으로 직접 시켜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복수란 바로 수치사다.

'모험가 길드에 찾아가 청소를 부탁했다.'라는 문구 하나만으로도 아카데미의 높으신 분들은 전부 알아들으실 거다. 그 흑역사가 전교생에게 알려진다면, 그 손놈은 얼마나 많은 이불킥을 하게 될까. 이마까지 부어있으니, 내게 혼쭐이 났다는 사실도 알려질 것이다.

... 당장 팝콘을 사 들고 가서 구경하고 싶을 정도.

"헤르만."

"왜?"

"접수원이 되고픈 사람들이 많다고 했었지."

"방금 밀리 양이 그랬었지."

하지만 나는 아직 할 일이 남아있기에, 저 유쾌한 복수극을 구경하러 갈 수 없는 몸이다.

나는 헤르만에게 말을 이어갔다.

"능력 있는 사람들은 전부 고용하자."

"뭐?"

"오늘 일로 깨달았어. 길드 일을 지금 인원으로만 처리하면, 우리 모두 과로사로 죽는다고."

"... 참 빨리도 깨달았다."

사실, 추가 고용은 지금껏 고민만 하고 있었다. 나로서는 '모르는 사람'이 무서우니까. 웬만하면 신원이 확실한 사람만 고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일을 겪고 보니... 사람이 부족해서 망하든, 변절자가 생겨서 망하든. 둘 다 망하는 건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사단이나 친위대에서 은퇴한 사람들도 알아봐. 길드 지부의 경비를 맡기고 싶어."

"그거 좋은 생각이네. 기사단장님과 당주님을 통해서 사람들을 한 번 알아볼게."

거기다.

내가 이 일에만 얽매여서 학생들을 소홀하게 대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본말전도가 아닌가.

배려심 넘치는 공주님이 내가 바쁘다는 이유로 아쉬운 표정이 짓는 것은, 하루로 충분하다.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길드장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서자, 1층에서는 큰 소란이 일었다.

"길드장 특별 의뢰에 참여하실 분! 선착순 50명입니다!"

"저요!"

"믿고 있었다고. 쥐엔자아아앙!"

"나도 간다!"

"... 사람이 너무 많은데."

그 소란에서, 한 모험가가 내게 물었다.

"길드장님! 여기 있는 사람들 다 가고. 의뢰 착수금은 분배 형식으로 해도 됩니까!"

와...

진짜 사악하네.

수치사 파티로 50명도 부족한가 보다.

"안나. 저분 말씀대로 처리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잠시 후.

모험가들은 썰물처럼 아카데미로 향했고.

오래간만에 길드에는 고요함이 찾아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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