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화 〉 2140. 길드 사장님의 결단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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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0.길드 사장님의 결단 (4)
손놈들에게 정의 구현을 선사한 다음 날.
"길드장님! 출근하셨습니까!"
"인사드려라!"
"""어서 오십쇼!"""
"아... 안녕...?"
헤르만과 아일라를 대동하여 모험가 길드에 도착하니, 왠지 모를 환영 인사를 받게 되었다.
'무슨 조폭 두목이라도 된 느낌인데...'
아무리 내가 모험가 면접에서 악질 용병들을 잘라냈다고 해도. 합격한 모험가 중에서는 전직 용병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거기다 용병이란 직업 자체가 워낙 위험한 일이다 보니. 얼굴에 상처가 있거나, 몸이 근육으로 뒤덮인 사람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 그런 사람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우리를 향해 인사하니, 참 묘한 기분이었다.
집무실에 도착한 내가 말했다.
"헤르만. 저 사람들 갑자기 왜 저러냐?"
"... 나도 모르겠는데?"
"어제 길드에서 작은 소란이 있었다고 하셨잖아요. 그 일 때문에 저러는 게 아닐까요?"
아일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함과 동시에.
똑똑
누군가가 집무실 문에 노크했다.
"길드장님. 접수원 안나입니다."
"들어와요."
노크를 했던 사람은 어제 그 '수치사 파티'의 파티장, 안나였다. 길드장실로 들어온 그녀는 인사를 마친 뒤, 내 책상 위에 서류 한 장과 신문 한 부를 내려놓았다.
"어제 대청소 의뢰 결과를 보고드리러 왔습니다."
"그렇군요."
어젯밤. 나는 의뢰 결과를 제대로 보고받지 못했다. 동쪽 상인회에 선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제 한 일이라고는, 밀리에게 '무슨 일 생기면 저택에 사람을 보내라'라고 전했을 뿐이다.
'어제 저택으로 사람이 찾아오지는 않았으니, 의뢰 도중에 별일은 없었을 건데...'
나는 그런 생각으로 안나에게 물었다.
"뭐. 별일은 없었죠?"
"의뢰는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잘됐네요. 안나. 속은 후련하던가요?"
"네. 길드장님. 배려 감사합니다."
안나는 다시 한번 내게 고개를 숙였다.
그래. 자기 마음이 편해졌으면 된 거지. 진상 손놈의 얼굴을 보지 못한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지금 안나의 얼굴을 보니 간접적으로나마 내 속이 시원해졌다.
그나저나...
안나가 내려놓은 것 중, 신문이 신경 쓰였다.
"안나. 이 신문은 뭔가요?"
"어제 대청소 의뢰를 마치고 돌아오던 중. 왕도 신문의 기자 한 분이 저희를 취재하셨습니다."
"... 뭐라고요?"
왕도 신문이라면...
나에게 '왕실 폭발 가정교사'라는 악명을 씌운 쓰레기 언론사이지 않나. 나로서는 영 거부감이 드는 이름이었다.
…….
에이. 설마.
내가 벌인 일 때문에 '길드장 폭행 논란' 이런 기사가 뜬 건 아니겠지. 나는 조금 긴장한 상태로 왕도 신문을 펼쳤고. 헤르만과 아일라는 내 옆으로 다가와 신문의 내용을 훑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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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도 신문 칼럼 ]
거리를 메운 모험가들의 행진. 그리고 '대청소.'
6월 29일. 저녁 시간이 되자 한 무리의 모험가들이 아카데미를 습격했다.
아니. 사실 이 서술에는 여러 오류가 있다. 모험가들의 수는 '한 무리'라고 설명하기에 너무나도 많았으며, 말 그대로 아카데미를 '습격'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일의 발단은 다음과 같다.
……
모험가 길드의 장, 이시하 임시 공작이 의뢰 대금으로 걸었던 10장의 대금화는 '대청소 의뢰'에 참가한 모험가들에게 균등하게 분배되었고. 당일 길드 본청에서는 '대청소 의뢰 성공 기념회'가 열렸다고 전해진다.
한편, 아레트 아카데미 측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학생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하겠다는 성명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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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전문을 모두 읽은 나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게 뭐야..."
"저희 측에는 상당히 기분 좋은 보도군요."
"와. 이전에 형을 '왕실 폭발 가정교사'라고 썼을 때랑은 완전히 다른 분위긴데?"
"그 이야기는 다신 꺼내지 마라."
"아. 예. 알겠습니다."
신문에는 내가 유학생에게 엄벌을 가함으로써 왕국의 권위를 바로잡았으며, 접수원 한 사람의 인권을 지켜준 의인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접수원 안나는 보고를 이어갔다.
"길드장님께서 의뢰하신 '대청소 의뢰'에는 총 258명의 모험가가 참여했습니다."
"이백... 뭐라고요?"
"이백오십팔 명입니다. 출발할 당시에는 130명이었는데, 거리에서 점점 불어나 258명까지 늘어났습니다. 그들과 함께 청소 의뢰자의 기숙사를 방문, 밤 11시까지 청소 작업과 길드 홍보 작업을 나누어 진행했습니다."
"열한 시라고요...?"
"네. 총원 258인이 의뢰인의 방을 최소 한 번씩 방문했고. 출입과 동시에 새로운 먼지가 생겨 청소를 반복했습니다. 의뢰인께서 청소 완료를 처음 '주장한' 시간은 9시 20분. 다른 학생에게 민폐가 될까 싶어 철수한 시각이 11시 10분입니다."
"……."
"마지막으로 모험가 258인에게 의뢰 수당을 분배한 시각이 11시 40분. 이후 길드에서 의뢰 성공 기념 파티가 새벽 1시까지 열렸습니다."
... 이런 악마들을 보았나.
먼지를 조금씩 퍼 나르면서 청소를 이어 나갔다는 뜻이잖아. 거기다 돌아가 달라는 부탁을 해도 억지를 부리며 계속 청소한 거고.
'이 인간들. 임시 공작인 내가 발령한 의뢰라고 진짜 막 나갔구만.'
나는 적당히 50명 정도가 발만 들였다가 나오길 바랐는데. 예상보다 일이 더 커져 버렸다.
옆에서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헤르만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안나에게 물었다.
"아레트 아카데미의 학장 할멈은 별말 안 했어요? 그 겉만 젊은 늙은이 엘프 말이에요."
"의뢰 도중에 찾아오셨습니다."
"...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제가 의뢰 신청서를 보여드렸더니, 의뢰를 끝까지 진행해달라 하시더군요."
"그 능구렁이 학장이?"
아. 내가 그 사람을 깜빡하고 있었구나.
능구렁이 학장. 아레트 아카데미의 엘프 학장을 설명하기엔 헤르만이 말한 단어가 딱이다.
사람 자체는 분명 선하긴 하지만, 영 꼬여있다고 해야 할까. 아카데미와 학생들에 대한 사랑이 여러모로 뒤틀린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밥 11시가 되도록 258명이나 되는 외부인을 부지에 들여놓다니. 순순히 의뢰를 받아들인 의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설마 다른 꿍꿍이라도 있나..."
"신문 내용만 보면 이 일을 계기로 유학생들을 통제하려고 한 것 같은데?"
"겉보기에는 확실히 그렇지. 그 학장이라면 다른 의도가 있을 것 같아서."
"뭐야. 형은 그 학장도 잘 알아?"
... 당연히 잘 알고 있지.
이방인이 아레트 아카데미에 입학할 때마다, 그 학장은 매번 다른 미친 짓을 선사하니까.
아카데미를 습격한 마법사를 잡고 보니 학장이었다던가. 마지막 졸업 시험이 학장 부부 듀오를 이기는 거라던가. 일부러 학생들 사이가 틀어지도록 하여 배틀물 전개를 유도한다던가. 아무튼 온갖 아카데미물의 클리셰를 때려 박은 게 그 학장이다.
그녀의 옆에서 드워프 부학장이 뜯어말리기에 망정이지. 혼자였으면 더 큰 미친 짓을 저지를 게 뻔할 정도.
아카데미 걱정에 빠져 있자, 접수원 안나가 내게 물었다.
"길드장님. 보고를 계속해도 될까요?"
"아. 부탁드려요."
"대청소 의뢰의 소식이 왕도 내에 빠르게 퍼진 탓인지. 오늘 하루 길드에서는 별다른 소란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평소보다 의뢰인분들께서 저희를 예의 있게 대해주십니다."
하루도 안 되어서 소문이 그토록 퍼지다니. 왕도 신문의 영향이 크긴 한가 보다.
거기다 어제 일 덕분에 의뢰인들이 알아서 착해졌다는 건 특히나 좋은 현상이다.
옆에 있던 아일라가 내게 제안했다.
"공작님. 지금 바로 길드 직원 채용 공고를 내는 건 어떻습니까."
"그래.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형.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일이 잘 풀릴 때. 더 열심히 하라는 말이야."
"지금보다 일을 더 하라고...?"
"이것만 제대로 해두면 우리 일은 훨씬 더 편해질걸. 어제 이야기해둔 건 어떻게 됐어?"
"아버지랑 기사단장님 뵙고 왔는데. 은퇴한 사람들을 써주면 오히려 고맙다고 하시더라."
"그럼 경비는 해결됐고. 공고만 내면 되겠네."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있던 차에, 내 시야에 쭈뼛거리고 있는 안나의 모습이 들어왔다. 분명 표정은 밝긴 한데. 조금은 피로가 엿보이는 얼굴이었다.
"안나. 어제 길드에는 언제까지 있었어요?"
"그게. 파티가 끝날 때까지 있었습니다."
"다른 접수원들이랑 주방장님도요?"
"몇 분은 일찍 들어가셨습니다만. 대부분이 남아서 파티를 즐겼습니다."
"파티는 언제 끝났나요?"
"... 새벽 3시쯤입니다."
얼마나 신이 났으면 새벽까지 논 걸까. 거기다 주방장 어르신은 그 연로하신 몸으로 새벽까지 음식을 해주셨다는 것인데...
그녀의 상태만 보면 휴가를 주고 싶지만. 당장에 일할 사람이 적어 그러기는 힘들 것 같았다.
"아침에 의뢰를 받아 간 모험가 수는 어땠나요."
"어제 파티의 영향인지. 평소보단 적었습니다."
"그럼 2층에 내빈용 침실이 남았으니까. 접수원들은 돌아가면서 휴식을 취하세요."
"하지만 사람이 적으면..."
"길드장 명령입니다. 주방장님도 오늘 저녁 장사는 접고 일찍 쉬시라고 전해주세요."
내 단호한 명령에, 안나는 마지못해 답했다.
"... 알겠습니다."
"다른 보고는 있으신가요?"
"보고는 전부 마쳤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제 지시를 전해주시고. 안나는 먼저 쉬세요. 나가셔도 됩니다."
"네."
안나는 최대한 걷는 소리를 죽이며 집무실 문까지 나아갔다. 그리고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젖힌 그녀는 내게 작은 목소리로 고했다.
"감사합니다. 길드장님."
"네. 빨리 가서 쉬세요."
마지막으로.
문을 닫고 계단을 내려가던 안나는 생각했다. 길드장님이 조금 무서워 보이긴 하지만. 그만큼 다른 이를 아끼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고.
처음 안나가 시하를 본 날은 채용 면접일. 싸늘한 얼굴로 날 선 질문을 던져 오는 그의 모습을 보고, 일자리를 잘못 찾았다고 생각한 그녀였다.
하지만 막상 면접에 붙고 나서는 무언가 이상했다. 건조한 느낌으로 사람을 대하는 건 면접과 똑같았지만, 적어도 해를 끼치진 않았기 때문.
그 의문마저 어제를 기점으로 전부 해소되었다. 방법이 조금 과격하긴 하지만, 알고 보면 다른 이를 충분히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분이었다.
'다른 모험가분들도 비슷하게 말씀하셨지.'
어제 파티에서 다른 모험가들이 말하길, 시하 길드장의 어딘가 차가운 듯한 그 느낌이, '사람 냄새'를 풍기지 않아 영 힘들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런 평가도 어제를 기점으로 끝이다. 모험가들은 시하를 전적으로 신용하게 되었다.
'접수원 일. 더 열심히 해야겠다...'
자신이 보답할 수 있는 길은 이것 하나뿐이라고.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다짐한 안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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