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3화 〉 2147. 공주님의 고민과 어떤 시녀들.
* * *
2147. 공주님의 고민과 어떤 시녀들.
시하가 한참 로란츠와의 면담에 시간을 쏟고 있을 무렵. 왕궁 정원에는 한 소녀가 티테이블의 의자에 앉아 나른한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하아..."
그 한숨의 주인은 아셰리아 공주. 그녀는 선생님과 함께하는 파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그녀에게 충실한 시종 아샤가 물었다.
"공주님. 웬 한숨이세요."
"... 내일 파티 때문입니다."
"지난주부터 고대하고 계시던 파티이지 않습니까. 겨우 하루 남았는데 한숨이라니요."
"하아..."
"또 한숨..."
아샤의 이어지는 채근에. 아셰리아 공주는 하는 수 없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게 되었다.
"선생님 때문에 그래요."
"그 인간이 또 무언가 저질렀습니까?"
"아니요.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럼 왜 이러시는 건데요."
"아샤. 지난 연말 파티를 기억하시나요?"
"네. 그 튀긴 닭요리가 특히 맛있었죠. 거기에 파스타와 찜 요리, 디저트까지. 조금은 분했지만, 음식만큼은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아샤는 어린 시절부터 시중 수업을 받았기에 요리 실력이 좋지만, 평소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경우가 드물다. 언제나 아셰리아 공주의 곁을 호위해야만 하기에, 느긋한 식사를 즐길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 아샤에게 연말 파티에서 가장 떠오르는 것을 단 하나만 대보라고 한다면, 단연코 음식일 것이다. 깐죽거리는 게 귀찮은 오라버니, 뜬금없이 나타나서 공주님의 관심을 앗아간 그 인간, 거기다 비슷한 나이의 학생들까지. 전부 귀찮은 사람들뿐이지만,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라면 안심하고 음식에 집중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공주의 고민은 그쪽이 아니었다.
"선생님께서 하신 요리니 당연히 맛있었죠. 제가 걱정하는 것은 다른 부분입니다."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주세요."
"선생님께서. 파티에 함께 참여해주셨으면 하는데. 그럴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요."
"참여라니요?"
"생각해보세요. 작년의 선생님께서는 당신의 방으로 들어가버리시지 않았습니까."
"그러고 보니..."
"저희들이 부담스러우셨던 걸까요."
"……."
그녀의 물음에 아샤는 답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게 왜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지난 6개월 동안, 아샤는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녀와 아셰리아 공주는 정치나 외교적인 문제에 있어 탁월한 답을 내놓을 수 있으나. '이런 쪽'의 문제가 생겼을 때는 적당한 해결책을 내지 못하는 인간들이라고.
'이런 쪽'의 정의는 제대로 내리지 못했다. 다만 확실한 건. 두 사람 주변의 인물들과 관련된, 다분히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쪽'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 드넓은 왕성에서 데려와야 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그 두 사람을 데려올까요?"
"……."
"저는 이 문제에 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답을 줄 만한 사람을 납치해올 순 있어요."
"... 부탁드릴게요. 아샤."
"예."
아셰리아가 답하자마자.
아샤는 검은 연기가 되어 모습을 감추었다.
.
.
잠시 후.
일전에 알렉산더의 '가슴이 답답해지고, 온몸에 힘이 빠지는 데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지병에 관해 문답을 나누었던 시녀들이 도착했다.
그러나. 그녀들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신체 강화 마법의 출력을 최고치로 끌어올린 아샤의 어깨에 짐짝처럼 매달려서 왔기 때문이다.
아샤가 나름 조심스럽게 그녀들을 내려놓자, 그들은 앞으로 고꾸라지듯 아셰리아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 안녕하세요. 공주님..."
"그간. 우웁. 평안하셨나요..."
아샤가 너무 빠르게 달려온 탓에... 연약한 일반인인 두 사람은 속이 메슥거리고, 눈 앞이 핑핑 돌아가고 있는 상황. 제 자리에서 휘청거리며 중심을 잡으려고 애를 쓰는 중이었다.
아셰리아는 둘에게 미안함을 담아 말했다.
"두 분. 갑작스럽게 모셔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저번보다는 훨씬 낫습니다아..."
"아샤 님께서 속도를 조절해주신 걸까요..."
"... 그때보다 빠르게 달린 건데."
"세라. 우리 적응하고 있는 걸까."
"그런 거 같아. 리사."
"두 분. 일단 자리에 앉으시고 진정하시죠."
""감사합니다...""
아셰리아 공주가 티테이블의 여석을 손으로 가리키자, 두 시녀는 비틀거리면서 자리에 앉았다.
처음에는 '어찌 공주님과 동석을 할 수 있냐'며 끝까지 버티던 둘이었으나, 납치당하는 빈도가 점점 늘어남에 따라 현실과 타협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잠시간의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정신을 차린 두 사람이 아셰리아 공주에게 보고했다.
"공주님. 이제 준비됐습니다."
"저도 괜찮아졌습니다."
"오늘은 어떤 일로 저희를 부르셨나요."
호출이 아니라 납치에 가까웠지만. 스스로 그 사실을 인정해버리면 더욱 슬퍼질 것만 같았던 두 사람이었다.
"지금부터 말하는 건 기밀입니다. 내일 해방제 파티가 진행되는 동안, 저와 오라버니의 일정을 말씀드리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 조심하겠습니다."
"넵."
"이 고민은 작년 연말부터 말씀드려야..."
두 사람의 물음에. 아셰리아 공주는 자신이 간직하고 있던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작년 연말. 선생님의 댁에서 송년 모임을 가졌다는 것을 시작으로,
시하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이 부담스러웠는지 방 안에 들어가셨고,
올해는 진정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파티를 유도하고 싶다는 것까지.
이야기를 모두 들은 시녀들이 물었다.
"공작님의 연세가 올해로 어떻게 되시죠?"
"저와는 열두 살 차이라고 하셨습니다. 올해로 24세이신 거죠."
"흐음..."
언제나 차분한 시녀, 리사가 손을 들었다.
"네. 리사."
"먼저 바로잡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공작님께서는 네 분... 그러니까 학생분들을 피하고자 자리를 피하신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연유로 그리 생각하셨나요."
"만약 파티가 부담스러우셨다면 네 분을 자택으로 초대하셨을 리도 없고, 손수 만드신 음식을 대접하지도 않으셨을 거니까요."
리사의 의견에, 팔짱을 낀 채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던 아셰리아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일리가 있네요."
"네. 아마도 다른 이유가 있으셨던 건 아닐까요."
"다른 이유라면. 무엇이 있을까요?"
"죄송합니다. 아직 거기까진..."
"괜찮아요. 지금부터 차차 고민하면 되니까요."
리사가 본인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음을 사죄하자, 아셰리아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포용했다.
'학생들이 부담스러웠던 게 아니라면, 시하 선생님은 왜 방에 들어가 버리셨을까.'
네 사람은 끊임없이 고민했고. 이번에는 언제나 활기찬 시녀, 세라가 손을 들었다.
"네. 세라."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사례인데요. 사실 제게는 열한 살 터울의 오빠가 있어요."
"저와 시하 선생님의 나이 차와 비슷하군요. 유사한 사례는 언제나 도움이 되죠."
"그게... 세대 차이가 나요."
"세대 차이라고요?"
"... 네."
나이 차이.
세대 차이.
차이라는 단어가 연달아 나오자, 아셰리아는 무언가 부정적인 기운을 감지했다.
지금 세라의 의견을 듣는다면 낙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먼저 문제와 마주 봐야 하는 법.
일단 세라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계속 말씀하세요."
"가끔 축제마다 한 집에서 만나는데, 예전에는 잘 통하던 대화가 안 될 때가 있어요."
"대화가 안 통한다라. 선생님께서는 수업을 진행하실 때, 저희와 잘 소통하십니다만."
"음. 수업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에요. 서로 관심사나 취미가 조금씩 다르다 보니, 대화할만한 주제가 없어진다고나 할까요."
생각해보면, 시하가 자신에게 맞춰주려고 한 기억은 있어도, 아셰리아 본인이 시하의 관심사나 취미를 신경 써본 적은 없는 듯했다.
아셰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두 분은 어떻게 되었나요?"
"하하하... 지금은 오빠가 결혼한 다음 독립해버려서요. 자연스레 대화는 적어지고 멀어졌죠. 해방제나 건국제가 아니면 좀처럼 얼굴 보기도 힘들답니다."
"……."
왜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 걸까. 아셰리아 공주는 그 자리에서 얼음 조각상처럼 굳어버렸다.
그녀를 보고, 두 시녀는 다급하게 외쳤다.
"고... 공주님! 끝까지 들으셔야 해요!"
"아직 셰라의 말이 끝나지 않았어요!"
"아... 죄송합니다. 어디까지 말씀하셨죠."
아셰리아가 애써 정신을 차리자, 셰라는 희망찬 이야기까지 숨도 쉬지 않고 단번에 말했다.
"비록 나이 차이가 많다 보니 대화나 만나는 횟수가 적어졌긴 해도. 축제 기간이 되어 한 집에 모이면 같이 놀 때 정도는 있어요."
"같이 논다고요...?"
"네. 파티에서 선물을 교환하거나, 보드게임을 하면서 온 가족이 함께 노는 거죠. 이렇게 놀다 보면 세대 차이쯤은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어요오옷...!"
온 힘을 다해 제 생각을 토로한 세라는 그 자리에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고. 그녀의 옆에 앉은 리사는 등을 두드려주었다.
하지만 그런 두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셰리아 공주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파티가 하루 앞으로 다가온 지금, 선물을 준비하긴 힘들 거야. 지난번에 선생님과 외출했다가 은방울꽃 장식을 사지도 못했으니까. 그리고 교환은 다른 사람들과 바꾼다는 것을 뜻하겠지. 오라버니들과 유나 언니께 공지하지 못했으니, 아쉽지만 이건 포기해야 해.'
'그렇다면 다음으로 보드게임. 보드게임이 도대체 뭐지. 난생 처음 들어보는 건데...'
보드게임. 분명 아셰리아에게는 미지의 존재였으나, 지금 그녀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고민을 마친 그녀는 세라에게 물었다.
"세라. 혹시 그 보드게임이라는 건 어디서 구할 수 있나요?"
"바로 북부 거리에만 나가도 팔 거예요. 아. 지금은 축제 기간이라 사기 힘드려나..."
"……."
또다시 지난 건국제 외출을 떠올린 아셰리아가 얼음상이 되어버리려고 하자, 세라와 리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잠시 근무 중 외출만 허락해주신다면!"
"집에 있는 보드게임. 전부 들고 올게요!"
"저는 북부 상회를 전부 쓸어오겠습니다!"
그들이 당찬 포부를 밝히자, 아샤는 스커트 아래 미지의 공간에서 자그마한 지갑을 꺼내었고. 그 안에서 은화 여러 장과 종이 두 장을 꺼냈다.
"남는 건 두 사람이 가져. 이건 통행 허가증."
"감사합니다!"
"얼른 다녀올게요!"
신체적으로든 심적으로든.
매번 고생만 하는 두 시녀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