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187화 (187/215)

〈 187화 〉 2­151. 소원권 배틀 (3)

* * *

2­151. 소원권 배틀 (3)

2.78%.

주사위의 6이 두 번 연속으로 나올 확률. 알렉산더는 그 확률의 벽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으으으윽!"

"와..."

"어쩜 저렇게 떨어질 수 있지."

"공주님 승리이이~"

고작 주사위 하나가 이곳에 얼마나 큰 긴장감을 가져오던지. 5와 6 사이에서 격하게 갈등하던 주사위는 결국 5가 되어버렸다. 만약 누가 바람이라도 불었다면 당장 6이 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학생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는 가운데. 이 게임의 승리자인 아셰리아 공주는 팔짱을 끼고서 게임판을 내려보고 있으며, 그 광경을 본 헤르만이 한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말했다.

"... 이거 진짜 애들 놀이 맞아?"

"역할극 비슷한 거지. 그래도 우리가 방금 봤던 그 게임들보다는 훨씬 낫잖아."

"그렇긴 한데..."

헤르만이 말하고 싶은 내용은 잘 알고 있다. 이렇게 다른 이들을 속고 속이는 게임이 어딜 봐서 애들 정서에 좋겠냐는 뜻이겠지.

하지만 게임의 시스템이 이런 것을 어떻게 할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의 결과를 만드는 것도 게임의 묘미다. 지금 같은 경우에는 자기 역할에 충실한 아셰리아 공주가 높은 성적을 받는 게 당연하겠지.

거기다 이 게임은 미묘하게 현실을 닮았는지라, '인생은 실전이다.'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만 같다.

'그래도 마지막에 유나는 꽤 의외였지.'

자기가 이기지 못할 상황이 되자마자 게임을 포기하다니. 어린 게이머들은 바로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을 죽일 생각을 먼저 하기 마련인데, 그녀의 선택은 내게도 의외였다.

"유나."

"네. 의부님."

"마지막에 왜 게임을 포기한 건가요?"

"아셰리아의 수는 인정하는 바입니다만, 그래도 속은 느낌이 든 건 사실입니다. 차라리 정당한 방법을 고수한 알렉산더가 이기는 게 낫죠."

"하하하..."

모두를 속인 사람보다 내 적이 이기는 게 낫다는 건가. 하긴, 싸움 구경만 하던 사람에게 승리를 뺏기게 되면 배가 아픈 법이지.

나는 종이 하나를 꺼내 끄적끄적 조항을 집어넣어 증서를 작성했다. 내가 들어줄 수 있는 한도 안에서 한 가지 부탁을 들어줄 것이며, 게임의 승리자에게 모든 권리가 있다는 내용이다.

마지막으로 내 사인까지 곁들인 증서는 아셰리아 공주에게 수여되었다.

"축하드립니다. 공주님."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여기 상품이에요."

"와아..."

급조한 증서를 받은 아셰리아 공주는 활짝 미소 지었다. 내가 작성한 문구를 읽기도 하고, 내 사인까지 꼼꼼하게 확인도 하며, 이리저리 종이를 돌려보기도 한다. 혹시나 '한도 안에서'라는 문구에 상심하지는 않을까 걱정했으나,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다.

다른 아이들은 '부탁을 들어준다'라는 말이 증서로 남은 게 신기했던지, 아셰리아 공주의 그런 모습을 부러움 가득한 눈빛으로 지켜보는 중이다.

나는 그들에게 짝­ 손뼉을 치며 말했다.

"자. 여러분. 이제 감은 잡으셨나요?"

내 한 마디에 모두의 시선은 다시금 게임판으로 모였고. 저마다의 전략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배신의 가능성을 항상 열어둬야..."

"왕자님. 이번에도 저와 연대하시죠."

"알렉. 기디언. 그런 식으로 사전에 동맹을 정해버리면 다른 사람들에게 불공평하지."

"그래. 유나의 말이 맞다. 거기다 동맹을 맺는다는 게 무조건 유리한 건 아니야. 결국 이 게임의 승리 조건은 세력의 강함이 아니라 왕이 되는 것이지 않나."

"그렇군요..."

"현재의 이득보다는 다른 이들을 배제할 수 있는 카드를 보유하는 게 중요하겠지..."

알렉산더 녀석이 게임 한 판을 통해 인생에 적용할만한 교훈을 깨닫고, 맥락을 통해 학습하게 된다니. 이게 게임을 이용한 학습의 효과인 걸까. 아셰리아 공주의 제안 덕분에 진귀한 경험을 다 해보는 것 같다.

한편, 오늘 게임을 제안한 아셰리아 공주는 내게 받은 증서를 고이 모셔둔 뒤 다시금 게임판에 참가했다. 그리고 어느샌가 그녀의 맞은편에 자리 잡은 헤르만이 말했다.

"내 생각에는 아셰리아 공주님을 빨리 탈락시키지 않으면 승산이 없을 것 같은데."

"헤르만 형님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방금 저희가 진 이유 중 하나는 아무도 공주님을 견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음. 우리 중 누군가는 리아를 견제해야 해."

"왜 갑자기 다들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조용히 숨죽이고 있다가 승리를 가로챘잖니. 이런 말이 나올 만도 하지."

"유나 언니까지..."

아셰리아 공주님. 이런 게임에는 분명 '정답'이 있지만, 동시에 '정답'이 없기도 하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정답'만 고르지는 않거든요...

"오라버니. 지금은 헤르만 님을 막으셔야..."

"하하! 리아. 이번에는 안 속는다!"

"공주님. 저에게 누명을 씌우시면 안 되죠."

"……."

이후 진행된 게임에서. 아셰리아 공주는 다른 이들의 집중 견제 대상이 되어버렸고, 헤르만은 그런 공주를 이용하여 우승을 거머쥐었다.

'언제는 이게 애들 놀이 맞냐고 하더니...'

아셰리아 공주의 모든 행동에 경각심을 유도하면서, 자신은 다른 사람들을 죽일 패를 차곡차곡 모아둔 덕택이다. 참으로 어른스럽고 쪼잔한 방법이 아닐 수가 없다.

"오라버니! 그러니까 제 말을 들으셨어야죠."

"미... 미안하다."

"알렉산더, 다른 사람을 편견으로 대하면 안 되죠. 아셰리아 공주님, 자기 의견을 말할 때는 꼭 근거를 말씀하셔야 다른 사람들이 판단할 수 있답니다. 아셰리아 님이 당연하게 보는 걸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할 수도 있어요."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스승님."

"으으으..."

게임이 자기 뜻대로 흘러가지 않게 되자, 제 분을 참지 못하는 듯한 아셰리아 공주였다. 양손을 자기 무릎 위에 얹은 채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보는 내가 다 무서울 지경이다.

하지만. 헤르만 녀석은 그런 그녀가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기름을 부어버렸다.

"하하하! 공주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가 휴가를 타낼 수 있었다고요...!"

그 순간.

아셰리아 공주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추었고.

"... 선생님. 한 번 더 해요."

아셰리아 공주의 목소리는 게임 속 그 얼음 여왕님이 떠올라 버릴 정도로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하하하. 이제 시간이 늦었으니까..."

"한. 번. 더. 해요."

"의부님. 한 번 정도는 더 해도 될 것 같은..."

"스승님. 지금은 해방제 주간이지 않습니까. 리아의 의견대로 조금 더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아셰리아 공주가 한 단어씩 끊어 말하자, 기디언과 아샤는 제자리에서 겁을 먹은 채 굳어버렸고. 알렉산더와 유나는 힐끔힐끔 눈치를 보게 되었다.

하지만 헤르만 이 멍청이는 애들 게임에서 이긴 게 뭐가 대수라고 완전히 들떠버린 상황.

"하하. 공주님. 이미 승부는 결정 났답니다. 이번에 공주님께서 저를 이기셔도 1:1이라고요."

"……."

그야말로 최악의 발언을 해버린 그였다.

완전히 얼어버린 분위기 속에서. 아셰리아 공주는 내게 받았던 증서를 조용히 꺼내 들었다.

"선생님."

"... 네."

"저와 헤르만님 둘이서. 두 판만 더 합시다."

"왜 하필 둘이서 두 번..."

"결판을 내야죠. 서로의 증서를 걸고. 최종 승자만이 선생님의 '상품'을 갖기로 하죠."

"내가 왜 휴가를...!"

"헤르만. 입 닥치고 책임져라."

"... 뭐?"

내 단호한 말 한마디에 헤르만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적어도 네가 한 일의 책임은 져야지.'

평소에는 눈치가 빠른 애가 지금은 왜 이렇게 눈치를 못 볼까. 저번에도 다른 사람들을 놀릴 때 신이 나서 비슷한 짓을 저지른 것 같은데...

나는 다른 학생들에게 협조를 구했다.

"공주님. 이 게임을 두 사람만 하면 직업 뽑기만으로도 결판이 나버리니까요. 다 같이 참여하고 서로의 등수만 따지기로 하죠. 다른 분들은 어떠신가요?"

"찬성."

"... 오늘 자기는 글렀네요."

"찬성합니다."

그렇게 아셰리아 공주를 비롯한 학생 다섯 명과 헤르만의 5:1 게임이 시작되었고.

헤르만은 휴가를 반납할 수밖에 없었다.

* * *

해방제 주간 동안 왕도가 떠들썩해지는 건 맞지만, 그중에 수요일은 더더욱 특별한 날이다.

오개국의 대표들이 한 자리에 모여 크나큰 의제를 토론하고, 왕궁에서는 아카데미 재학생들을 모두 초대한 연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가의 주요 행사가 수요일에 몰려 있다 보니, 높으신 분들을 따라 하기 좋아하는 일반 시민들도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왕도 거리에는 음악이 울려 퍼지고, 모든 이들이 인종을 감추기 위한 가면을 쓰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왕도의 모든 이들이 즐기는 축제.

하지만 이런 날에도 저기압인 이는 있으니...

늦은 밤. 프라시스의 공작저.

"으아아악!"

한 남자의 고함과 함께. 응접실에서는 '와장창!'하고 깨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척해진 프라시스 가의 가주, 발람 프라시스가 장식용 꽃병을 내던진 탓이었다.

"하아... 하아..."

"꼬맹아. 비싼 건 소중히 할 줄 알아야지. 벌써 몇 달째 그러고 있는 거야?"

분을 이기지 못하고 숨을 몰아쉬는 그에게, 은발의 수녀 일리아드가 장난 섞인 핀잔을 던졌다.

하지만 발람은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늙은 창녀의 말 따위는 듣지 않는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는 말을 그딴 식으로 내뱉는구나. 내 도움 덕에 가주 자리에 앉았다는 사실은 기억하지 못하나 봐?"

"……."

"하긴. 평생 열등감에 빠져 살던 놈이 나 같은 미녀와 한 번 자봤다고 떵떵거리다 진짜 나이를 알게 됐으니. 우리 꼬맹이가 충격받은 것 정도는 이 누나가 충분히 이해해줄 수 있어요."

"... 닥쳐라."

말 한마디 잘못 내뱉었다가 몇 배로 돌려받아버린 발람. 그는 더 이상 일리아드의 조롱을 참을 수 없어 화를 내보았지만, 그 한마디는 또 다른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자애로움을 연기하는 평소의 모습과는 다르게. 완전히 싸늘하게 식어버린 어조로, 일리아드가 고했다.

"꼬맹이. 아니. 발람."

그녀의 호명과 동시에.

발람의 옆으로 '촤라락!' 소리와 함께 검은 마력 채찍이 스쳤고, 벽에는 큰 균열을 뚫어버렸다.

"지금 상황이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는지는 너도 잘 알고 있잖아?"

"... 쯧."

"여아에게 눈독 들이지 말라. 왕실에 적대하지 말라.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될 일에 재를 뿌린 건 다름 아닌 너야."

일리아드의 목소리에는 오직 혐오만이 담겨 있을 뿐. 그 외의 감정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