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화 〉 2154. 뒤통수를 언제 맞더라도 괜찮게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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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4. 뒤통수를 언제 맞더라도 괜찮게끔.
'혹시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던걸까...'
마차에서 나는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해방력 200년. 그때가 오면 에우데미아 왕국은 지금보다도 국력이 훨씬 약화된 상황에서 한층 강력해진 재앙의 습격에 맞서 싸우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해방력 197년의 10월이다. 내가 비록 그 답 없는 게임을 폐인처럼 플레이하긴 했었지만, 200년까지는 2년하고도 4개월이나 남았다.
결국 나는 이 기간 동안 일어날만한 일을 유추할 수 밖에 없는데... 벌써부터 틀려버렸나 싶다.
게임에 따르면. 본편 시작을 앞둔 어느 날, 필레몬 국왕은 상급 재앙을 토벌하던 중 전사한다.
그리고 지금 이 왕국에는 내가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개중에는 왕실에 충성하는 자도 있는 반면, 반항하는 자 역시 있다.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것은, 그 반대파 귀족들은 재앙을 부리는 해방 교단과 연결되어 있다.
나는 이 세 가지 사실을 토대로 발람이 이끄는 차남회가 쿠데타를 일으킬 것이라 생각했으나...
"헤르만. 아직도 소식은 없지?"
"또 차남회 이야기야?"
세 달 째 계속되는 내 물음에. 헤르만은 답답함을 숨기지 않고 한숨을 쉬듯 말했다.
"형도 충분히 알고 있잖아. 사실상 차남회의 회장 노릇을 하던 발람 프라시스가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않다 보니 전부 와해되어 버렸다고."
"... 해방 교단은?"
"혹시나 발람이 원정 중에 접촉하지는 않을까 싶어서 일일이 그림자를 붙였고. 형 말대로 지방 영주 출신 회원들에게도 그림자를 보내뒀거든. 그런데도 해방 교단과 접촉한 흔적은 없었어."
차남회가 쿠데타의 주축일 것이라는 내 추측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지금의 이 시기는 평화 그 자체였다.
발람은 재앙 토벌을 열심히 수행하고.
왠지 모르게 재앙의 출현이 적어졌고.
차남회의 분탕질은 이제 없어진 상황.
게임 본편은 커녕, 내가 처음 이 세상에 왔을 무렵과 비교해도 왕국의 사정은 훨씬 나아졌다.
'여기에 불만인 사람은 나 뿐이겠지...'
내가 표정이 영 안 좋았는지, 헤르만 녀석이 내게 작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형. 이제 인정하자고. 우리가 시온 자작령에서 해방 교단을 물리쳤잖아. 덕분에 교단이 겁을 먹고 물러난 거 아닐까?"
"그 미친놈들이...?"
"그래. 차남회와의 연줄도 끊고 도망가버린거지. 알고 보니 마크 테크니의 단독 행동일 수도 있잖아. 방금 형이 아셰리아 공주님 앞에서 뭐라했어. 현재는 과거에 행동한 결과라 했었나? 우리의 행동 덕분에 해방 교단이 종적을 감춘거지."
"……."
"형. 시온 자작령 사태 이후로 벌써 반년이나 지났어. 그동안 형이 일에 파묻혀 살고, 밤 새고, 안 먹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니까 나까지 힘들어진다고. 폐하께서도 말씀하셨잖아. 조금 쉬면서 하라고. 쉬라는 게 왕명이었단 말이야."
솔직히 내 우려는 결국 추측일 뿐, 확정된 미래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허황된 추측으로 들리는 게 정상이지.
해방 교단이 차남회와 결탁한 증거도 없고, 발람이 왕실에 반기를 든다는 확신도 없고. 지금껏 차남회가 왕도 내의 여러 사건을 사주한 증거는 충분히 확보했지만, 쿠데타의 증거까지는 찾지 못한 상황이다.
결국 내가 쿠데타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해봤자, 게임 속 역사에 정황 증거를 억지로 끼워 맞춘 허황된 추측일 뿐.
그나마 필레몬 국왕은 내 말을 믿고 다른 몸을 조심하는 중이지만, 원래 남들에게는 내가 하는 말이 개소리로만 들릴 것이다.
하지만 그 자각이 있어도 나는 불안하다.
"헤르만. 세상에는 징조 없이 일어나는 일도 있는 법이야. 혹시 알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큰 음모가 싹트고 있을지..."
"에이. 농담하지 마. 무슨 음모론자도 아니고."
"나는 진심이다."
"형.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그 게임은 친절하지 않았다. 물론 게임 자체는 잘 만들었지만, 내가 쓰레기 같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뽑는다면 단연코 스토리였다.
다른 게임들은 플레이어에게 자그마한 복선 하나하나 친절하게 알려준다면, 그 게임은 언제나 유저를 기만하고 통수치기 마련이었다.
내가 아무리 조심해도, '이 세상 어딘가에서는 이런 위협이 있었답니다!'라면서 새로운 위협이 등장하기 일쑤였지.
그런데...
…….
나는 그 통수 게임 속에 떨어져버렸다.
비록 지금 나의 눈 앞에 펼쳐져 있는 왕도의 풍경은 평화롭지만... 어느 순간 재앙이 출몰하고, 해방 교단이 들이닥치고, 폭동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래.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위협은 언제나 찾아올 수 있어.'
이 세상에는 숨겨진 위협이 너무나도 많다. 한 가지 위협을 배제하면 또다른 위협이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오는, 그런 세계인 것이다. 그러니 나는 뒤통수를 언제 맞더라도 괜찮게끔 대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내가 언제부터 남의 시선을 신경썼다고. 에코니아에 와서, 행복한 루트를 찾아보겠다고 결심한 뒤로 남들에게 이해받는 건 포기한지 오래다.
"차남회가 망했건 말건 상관 없어. 일단 대비는 해둬야지."
"하아..."
헤르만의 한숨은 계속해서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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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후.
모험가 길드에서, 나는 곧장 접수대로 향했다.
"어라. 공작님. 안녕하세요."
"오셨습니까."
"안녕하세요, 밀리. 안나. 다른 사람들은요?"
"지금은 점심 교대 근무 시간입니다."
"수고가 많으시네요."
그곳에는 순진무구한 접수원 밀리와 대청소 사건의 주역 중 하나인 안나가 있었다.
'마침 잘 됐네...'
이 두 사람이 길드 접수원 중 에이스라고 해야 할까. 밀리는 특유의 해맑은 미소 덕에 험상궂은 모험가들과도 두루두루 잘 지내는 편이고. 안나는 눈치가 빠르고 이해력이 좋은 편이다.
마차 타고 오던 길에 즉석에서 생각해낸 일이지만, 두 사람에게 맡기면 제대로 구체화시켜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나는 말했다.
"밀리. 안나. 길드에 새로운 시스템 하나를 도입할까 해요."
"시스템이라니요?"
"……."
밀리는 고개를 갸웃거렸으며, 안나는 의문스러운 표정을 띄운 채 나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길드장이 출근하자마자 스케일이 큰 이야기를 한 셈이니, 당연한 반응이다.
"왕도에 위협이 닥치기라도 한다면, 모험가들이 전부 나서서 도와주면 좋을 것 같아서요."
"혹시 전쟁이라도 일어나는건가요?"
"아니면 재앙 경보라도..."
"에이. 전쟁이라니, 그런 일은 아니에요. 만약에, 혹시나 싶어서 하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렇군요."
"흐음..."
사실 나는 전쟁이나 재앙을 대비하고 싶어서 하는 말이지만. 이 사람들이 헤르만도 아니고... 굳이 근거 없는 이야기를 꺼내기는 힘들었다.
잠시 고민하던 안나가 내게 물었다.
"길드장님. 만약 모험가가 나서야한다면 꽤 심각한 상황이지 않을까요. 그런 시스템을 만든다 해도 동기가 부족할 것 같습니다."
"네. 그래서 긴급 의뢰를 배포하는 형식으로 시스템을 구현하려고 하는데. 의뢰 조건과 보수, 예산이 고민이라서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건 길드장님께서 결정하셔야..."
"제가 책상에서 숫자나 계산하며 고민하기 보다는. 현장에 계신 두 분의 의견을 채용하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아서요. 웬만하면 두 분의 의견을 따르려고 합니다."
"……."
순간 밀리와 안나의 말이 사라졌다.
두 사람은 멍하니 내 얼굴을 보고만 있을 뿐, 입을 열지 못하고 있다.
... 아니. 정확히는 입이 헤벌레 벌어진 채로 차마 닫지 못하는 상태다.
'내가 못할 말이라도 했나...?'
최근 들어 나는 제왕학이라던가, 조직 리더쉽이라던가... 책을 통해 고위 귀족으로서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는 중이다.
나는 일단 왕실 가정교사니까. 아이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나부터가 공부해야하는 법이지 않나. 거기다 나는 임시 공작이기도 하니, 아랫사람을 다루는 방식 정도는 익히고 싶었다.
내가 읽은 책 중에서는...
[정책을 정함에 있어 현장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현장감이 필요한 정책의 경우에는, 실무직의 의견을 경청하고 조율하는 편이 효과적이다.]라고도 적혀있었지.
그래서 나름 길드의 에이스인 두 사람에게 물어본 건데.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모르겠다.
"혹시 두 분께 부담이라면 제가 정하고요."
"아...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딱히 부담 되는 일은 아니에요."
혹시나 내 제안이 부담스러웠던 걸까. 아니면 일이 늘어나서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내 염려에 안나는 활짝 웃는 얼굴로 답했고. 밀리 역시 일이 늘어나는 게 딱히 싫지만은 않은 듯, 밝은 표정이 되었다.
무언가 떠오른 듯한 안나가 조심스레 물었다.
"시하 길드장님. 혹시 예산은 얼마까지 쓸 수 있을까요...?"
"비상시를 대비한 긴급 의뢰니까 평소 의뢰 대금 보다는 비싸야겠죠. 길드의 돈으로 모자라면 다른 국가 부처에서 지원을 받아도 됩니다."
"그럼 저희끼리 의논한 다음, 계획서를 작성해 검수 받아도 될까요?"
"그러세요."
"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게 어딜 봐서 감사할 일이지. 오히려 내가 감사해야할 일 같은데...
나로서는 영문을 모를 감정 변화였다.
그렇게 접수원들과 대화를 하고 있자니. 2층에서 한 남자가 내려왔다.
"안녕하십니까, 공작님."
"아. 에딘..."
언제나 모험가 길드의 업무를 도와주고 있는 멋진 공돌이, 에딘이었다.
공돌이라기 보다는 마법진 기술자가 맞는 단어지만, 공돌이라는 단어가 훨씬 더 어울린다.
"어디 가시는건가요?"
"왕궁부에 다녀오려 합니다. 오늘이 면회날이지 않습니까."
"아..."
오늘이 그 날이였구나.
에딘은 일주일에 한번씩 마크와 면회를 시켜주겠다는 계약 하에 길드 일을 돕는 중이다.
사실 계약이라는 말로 표현하고는 있지만, 내게 이득만이 남는 조건이다.
수감되어 있는 마크 테크니의 마음을 흔들고, 길드 일을 도울 인력도 늘어나고, 마도구에 관한 자문을 구할 사람도 곁에 둘 수 있다니. 그야 말로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털어 불 피울 정도의 거래였다.
'그러고 보니...'
왜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돌고 있었을까.
지금쯤 다 익었나 찔러봐야했을 고기가 감옥 안에 있었는데, 이걸 깜빡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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