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192화 (192/215)

〈 192화 〉 2­155. 모순. 의심. 그리고 믿음.

* * *

2­155. 모순. 의심. 그리고 믿음.

왕궁부의 지하 감옥.

시온에서의 패착 이후로, 마크 테크니는 이 어둡고 축축한 공간에서의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별다른 희망이 보여서 버티는 건 아니다.

그 역시 유서 깊은 테크니 후작가의 후손이기에, 티오리아 가문의 감옥에 갇히는 것의 의미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법부의 판결조차 받을 수 없는 반역자.

죽을 날만 기다리며 살아가야 하는 노예.

아직 캐낼 것이 있기에 죽지 못하고 살아가게 뒀을 뿐, 생사 여부는 자신의 손을 떠난지 오래다.

마법진이라는 이치를 그려내는 테크니의 인간이 이런 상황에서 삶을 바란다면, 그건 그것대로 세간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 사실을 뻔히 알고 있다 보니, 마크 테크니는 자연스럽게 생에 대한 집착을 내던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의 집착을 버린 마크였으나...

그에게 계속해서 파문을 던지는 이가 있었으니.

마크의 마음 깊숙한 곳에 하나의 의심이 싹텄다.

하나의 모순에서 비롯된 그 괴로운 의심은...

마크가 삶을 이어나갈 새로운 의미가 되었다.

* * *

나와 헤르만. 그리고 에딘.

이렇게 세 사람은 모험가 길드에서 마차를 타고 출발하여 왕궁부로 향하는 중이다.

내 목적은 당연히 마크 테크니를 통해 해방 교단의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캐내는 것.

'마크가 자백 마법이 잘 안 듣는 체질이었기에 심문을 반쯤 포기했었지만, 형인 에딘을 꾸준히 만난 지금이라면 다르지 않을까.'라는 심정으로 동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마차 안의 분위기는 썩 좋지 않다.

헤르만은 내 속셈을 훤히 알고 있다 보니 지겹다는 듯한 눈빛을 띄운 채 나를 흘겨보고 있으며. 에딘은 갑작스럽게 동행한 나를 부담스러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딱히 나도 대화할 생각은 없으니까. 마차 안에서 왕도 거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는데,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에딘은 왜 이렇게까지 하는거지...?'

에딘이 처음 찾아온 날 이후로, 그러려니 하고 마음 속에 묻어둔 의문이었다.

사실 에딘이 마크를 찾아오는 것 자체가 막대한 손실이다. 그는 마법진으로 유명한 테크니의 차기 가주니까. 반역자인 마크와 선을 확실히 긋는 게 '정답'이라 볼 수 있다.

물론 누군가는 서로가 형제이다 보니, 차마 선을 못 긋는게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가 6개월 동안 봐온 에딘은 그리 살가운 사람이 아니었고. 동생 마크는 형과 가문에 증오를 품고 있었기에 난을 일으켰다.

이런 상황에서 에딘이 일방적으로 마크를 위해 희생한다는 것은 누가봐도 이상하다.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그에게 물었다.

"에딘."

"네. 공작님."

"당신에게 조금 실례되는 질문일수도 있습니다만, 괜찮을까요?"

"일단 들어는 보겠습니다."

"왜 마크를 위해 이정도까지 하시는건가요."

"이정도까지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그게..."

나는 마크에게 내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당신은 왕도에 있는 것 자체가 손해고, 날 돕는다는 이유로 모험가 길드에 있을 필요가 없으며, 에딘은 지금 왕국의 배신자 신세가 아니냐고. 거기다 마크는 당신을 싫어하는데, 왜 계속해서 찾아가냐고도 물었다.

그에게 조금 과한 단어가 섞여있긴 하지만, 오해가 생길 바엔 확실히 말하는 게 나을 듯 했다.

내 물음이 끝나자, 에딘은 고민에 빠졌다.

"흐음..."

"이건 제 개인적인 질문일 뿐이니, 답하지 않는다고 해서 에딘과 마크에게 불이익이 돌아가진 않을 겁니다. 답하기 난처한 질문이라면 넘기셔도 됩니다."

"공작께서 원칙을 어기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압니다. 그런데 답하기 난처한 질문인지는..."

"……."

"그렇군요. 답하기 난처하군요. 정확히는 제가 어떻게 설명해야할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곤란한 질문이면 피해도 된다는 뜻이었는데. 에딘은 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형용하기가 어려운 듯 했다.

에딘은 그 뒤로도 내 질문은 곱씹더니, 담담한 어조로 자신의 의견을 표했다.

"확실히 공작께서 말씀하신대로, 지금의 마크는 저를 경멸하는 듯 합니다."

"경멸까지는..."

나는 그저 싫어하는 듯 하다고만 했는데. 한층 더 뛰어버린 단어가 나와버렸다.

"공작님. 마크에 대해 이야기하기 앞서. 한 가지 밝혀둘 것이 있습니다."

"무엇인가요."

"사실 저도 자각은 있습니다. 필로네의 말을 빌리자면, 저는 눈치 없는 공돌이에, 고지식하고, 말귀가 통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

아무리 맞는 말이라 해도, 어릴 때부터 오빠 동생 거리던 사이라 해도. 필로네가 다른 사람한테 너무 심한 말을 해버린 것 같다.

하지만 에딘은 자기 입으로 그런 말을 하면서도 별 감흥이 없는 듯, 특유의 무미건조한 어조를 그대로 이어나갔다.

"이런 성격 탓에, 저는 어린 시절에 영지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에딘이요?"

"네. 당시에는 제 의도를 남에게 이해시키지 않고 일을 벌이다 보니, 가신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타인에게 사과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죠. 사과가 인간 관계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 그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 에딘의 말만 들어보면, 어린 시절의 그는 아셰리아 공주와 미묘하게 닮아있다고 해야 하나.

자기 능력이 너무나도 뛰어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은 쉽게 볼 수 없는 것을 당연하게 보면서도, 그 차이를 자각하지 못하는 부류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공주는 다른 사람의 감정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반면, 에딘의 경우에는 그쪽 눈치마저 없다는 것 정도겠지.

어찌 보면 아셰리아 공주보다 더 암울한 시절을 보냈을테지만, 에딘 본인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마저도 든다.

순간. 예상치 못한 말이 에딘의 입에서 나왔다.

"그런 저를 훈계한 것이 마크입니다."

"뭐...?"

"... 예?"

이게 얼마나 뜬금 없는 말이었냐면, 대화에 관심 없는 척하며 조용히 창 밖을 보고 있던 헤르만마저 반응할 정도였다.

"왜 그러십니까. 공작님. 헤르만?"

"아닙니다. 계속 말씀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먼저 당시 일화들이 있는데..."

이후 에딘은 당시 마크와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마차에 적용할 새 마법진을 설계하는 자리에서.

'형님께서는 의견을 내기 전에, 그 근거를 세 단계 전부터 차근차근 설명하셔야 합니다. 가문의 일원들이 형님의 높은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가치는 반감되어버립니다.'

이후 에딘은 시험삼아 동생의 말을 따랐고, 에딘의 새로운 마법진은 세세한 부분까지 보강되어 높은 가격에 팔렸다고 한다.

그리고 에딘이 어린 필로네를 울려버렸을 때는.

'형님. 아무것도 모르겠으면 일단 숙이십시오.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으니 알려줬으면 한다고 말씀하시고. 상대의 말을 듣고도 모르시겠다면 다른 지인분들께 여쭤보십시오.'

그후로 필로네에게 잔소리를 들었지만 결국에 화해했고. 이 방법을 아카데미에서도 쓰다 보니, 어느샌가 주변에 사람이 많이 모여 수석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저기. 필로네는 어쩌다 울리신겁니까?"

"어느 날 바람이 불어 필로네의 치마가 들추어졌는데. '봤냐'라고 묻기에 봤다고 답했습니다."

"……."

"사실 치마가 들추어지는 모습을 봤을 뿐, 그 안쪽은 보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그 '봤냐'에 담겨 있는 함축적인 의미를 알기에, 함부로 답하지는 않고요."

"장족의 발전을 이루셨네요..."

"그런 셈입니다."

의도치 않게 필로네의 흑역사를 알아버렸다.

제삼자에게 이런 말을 함부로 하는 것도 문제라 지적하고 싶지만, 그의 공감 능력이 빵점이다 보니 귀찮아질 게 뻔해서 말을 아꼈다.

'그나저나. 듣기만 하면 마크가 에딘을 꽤나 소중히 여긴 것 같은데...'

시온 자작령에서 만났던 마크는 테크니 가문에 대한 증오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집사 세바스찬에게도 배신감을 느꼈고, 다른 이들 모두가 자기 편이 아니라 했었지.

그런데 에딘의 말만 듣고 보면, 두 사람의 사이가 틀어질 부분이 없는 것 같다.

"에딘의 말만 듣고 보면, 마크가 에딘을 싫어할 일은 없는 것 같은데요."

"... 모르죠. 제가 은연 중에 무슨 짓을 했을지 모르니까요."

"하지만 에딘. 잘 생각해보세요. 아카데미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관계는 어땠나요?"

"그때만 해도 괜찮았습니다."

"그리고 아카데미를 졸업한 뒤에는요?"

"저는 에퀼리아로 유학을 갔고, 마크는 아카데미에 입학했기에 10년을 떨어져 지냈습니다."

"편지 같은 건 혹시..."

"업무적인 내용만 주고 받은 듯 합니다."

"봐요. 이상하잖아요."

"...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에딘과 마크 사이에 접점 자체가 없는 상황.

거기다 자기 형을 존경하던 마크가 후계자 자리를 놓고 사이가 틀어진 것도 이상한 일이다.

형의 뛰어난 능력을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도록 노력하던 동생이 가주 자리가 탐난다는 이유로 반란을 일으키는 건 너무 급발진이지 않나.

거기다 에딘이 아무리 눈치 없는 인간이라 해도, 마크는 어린 시절부터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데 형을 이해하지 못했을까...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기 보다는, 누군가 끼어들어 이간질을 했다거나 오해가 있었다고 말하는 게 훨씬 설득력 있어 보인다.

"형. 이거 좀 이상하긴 한데. 하필이면 해방 교단이 엮여 있으니..."

"……."

하필이면 헤르만의 말대로, 마크는 교단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인간이다.

'이 형제의 갈등이. 나를 숨겨진 진실로 인도해주지는 않을까.'

마음 속으로 헛된 기대를 하고 있었더니, 마차는 어느샌가 왕궁부에 도착해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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