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193화 (193/215)

〈 193화 〉 2­156. 모순, 의심 그리고 믿음. (2)

* * *

2­156. 모순, 의심 그리고 믿음. (2)

에딘의 면회는 왕궁부 지하 감옥에 별도로 존재하는 취조실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두 사람이 면회에서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마크에게 헤르만과 내가 동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 이 의견을 제시했을 때는 그 에딘마저도 난색을 표했지만, 둘의 관계가 어색해진 이유를 찾기 위함이라고 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에딘과 마크는 서로를 마주보고 앉게 되었고. 나와 헤르만은 취조실 유리 너머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게 되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었으니...

"헤르만."

"왜?"

"여기 말은 저쪽에서 안들린다고 했었지?"

"그렇지. 소리 지르지만 않으면 돼."

"근데 마크가 왜 이쪽을 신경 쓰는 것 같냐."

"... 나는 잘 모르겠는데. 저쪽에서는 이 유리가 거울로 보이거든. 거울 보려고 하는 거 아냐?"

"그런가..."

"높으신 분들은 이 방에 들어올 일이 없으니까. 왕궁부에 이런 방이 있다는 것조차 모를 걸?"

내가 다른 사람의 행동에 민감해서 그런가. 계속해서 이쪽을 힐끗힐끗 쳐다보는 마크의 시선이 영 따가웠다.

헤르만의 말대로 마크가 거울을 보는 걸수도 있겠지. 그런데 실제로 거울을 보는 것이라면, 그 너머에 비치는 형상을 보기 위해 눈의 초점이 이동하지 않나. 허나 지금의 마크는 유리 자체에 관심이 있는 듯 초점이 고정되어 있다.

물론 마크는 마력 운용을 방해하는 수갑을 차고 있기에, 유리 너머를 투시할 마법을 쓸 수 없을 것이다. 그걸 뻔히 알고 있는 나지만, 그래도 마크의 행동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옆에서 헤르만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형. 그런데 나는 다른 게 이상한데."

"뭐가 이상한데."

"저 두 사람. 왜 저렇게 말이 없어?"

"……."

헤르만의 말대로...

마주 본 형제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도 없었다.

그저 취조실의 책상에 깍지 낀 양손을 얹은 채 서로를 마주보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 와서 느끼는 건데. 둘 다 엄청 닮았네...'

뾰족한 매부리코에 올백머리가 어울리는 날선 얼굴. 뚜렷한 이목구비가 두 사람의 공돌이다운 성향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나마 차이가 있다고 하면 눈의 형태일까. 형인 에딘은 기본적으로 두 눈에 힘이 풀려 있다면, 마크는 한껏 힘을 준 채 찡그린 상이다.

그런 두 사람이 같은 모습으로 서로를 마주보고 있으니, 그 모습은 쌍둥이가 있는 듯 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동생 마크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에딘.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셈인가."

"오해가 깊어질 수도 있으니까. 타인의 말을 먼저 경청하라고 한 건 너다. 마크."

"... 역시, 오늘도 똑같은 말을 하는군."

"그래. 이것이 네가 가르쳐준 정답이니까."

에딘의 대답은 너무나도 건조했다.

하지만 그런 형의 한 마디를 들은 마크는 힘 없이 고개를 떨구었고, 떨리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왜..."

"……."

"왜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말들을. 그리 한결 같이 말할 수 있는거냐..."

* * *

마크는 이 상황을 쉬이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작은 방에 갇혀 누군가에게 관찰당하는, 이 현상을 납득하지 못한 건 아니다. 자신은 죄수에 불과한 몸이다 보니 오히려 이런 취급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마크 역시 테크니 가문의 일원이니까. 머리 속 이미지를 현실의 '맥락'에 부합하게끔 마법진으로 풀어내는 자로서, 이 정도 맥락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현재 에딘이 보여주는 모습'

'마크가 인식하고 있던 에딘.'

두 맥락이 너무나도 다르다는 사실이다.

마크가 인식하고 있는 에딘. 그것은 '증오해 마땅한 인간'이었다.

동생을 업신여기는 기만자. 타인을 내려다보는 오만한 자. 인간을 보지 않는 테크니의 망령. 온갖 경멸스러운 수식어를 붙여도 아깝지 않은 자. 이 명제들은 마크의 마음 속에서 하나의 진리이자, 행동의 근거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에딘이 자신의 눈 앞에서 보인 맥락은 마음 속 명제에 전혀 부합하지 않았다.

그는 이마에 피가 흐르는 모습으로 찾아왔고. 6개월 동안 왕도에서 종처럼 부려지는 와중에도. 자신에게 말을 함부로 꺼내지 않았으니까.

모순. 그야말로 자신의 마음 속 명제와 충돌하는 모순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마크는 둘 중 하나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마음 속 명제와. 눈 앞에 있는 에딘...

조금 더 믿음이 가는 쪽을 선택해야만 했다.

"왜 계속 나를 찾아오는거지."

"너는 하나 뿐인 동생이니까."

"테크니를 위해서라면, 나 같은 대역죄인과 계속하여 마주하는 것이 큰 손해일텐데."

"사람을 잃는 것은 다른 것에 비할 수 없는 크나큰 손실이다. 네가 내게 말한 것이다."

어찌보면 자신이 편해지고 싶어 던진 질문이나. 답을 들을면 들을수록 점점 더 답답해져간다.

그 답답함을 담아, 마크는 외쳤다.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고...!"

타인의 말을 먼저 경청하라던가, 사람을 잃는 것은 크나큰 손실이라던가. 자신의 머리 속에는 그런 말들을 건넨 기억이 남아있지 않다.

그럼에도 저 말들을 건조하게 내뱉는 에딘을 볼때마다, 마크는 미칠 것만 같은 충동을 느낀다.

하지만 마크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에, 에딘은 너무나도 담담한 모습으로 답했다.

"해방력 188년 2월 24일. 네가 갓 12세의 생일을 맞이한지 2주가 되는 날이었다."

"뭐..."

"네가 처음으로 맹약 마법의 개량에 참여했을 때이기도 했지. 나는 당시 15세였다."

이것 외에 정답은 없다는 듯이, 나는 확실히 기억한다는 듯이. 단호함마저 느껴지는 어조였다.

"내가... 그랬을 리가..."

마크는 그 새로이 제시된 그 명제를 반박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신의 기억을 뒤졌다.

해방력 188년 2월 24일.

갓 12세의 생일을 맞이한 날.

그로부터 2주 후...

맹약 마법의 개량...

…….

하지만 이번에도 그 기억은 없었다.

아니.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정확히는...

"12살. 12살의 나는 뭘 하고 있었지...?"

떠오르지 않았다.

12살의 생일은 커녕...

12살 자신의 모습조차 전부 떠오르지 않았다.

11살. 10살. 9살...

마크는 조금씩 조금씩. 그보다 더 앞선 기억을 떠올리려 노력해보았다.

하지만 기억의 맥락을 아무리 과거로 감아 보아도, 떠오르는 건 없었다.

그래. 차라리 미래로 돌려보자.

기억 떠오른 곳에서부터, 차근차근 맥락을 거슬러 올라가보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기억을 더듬다 보니, 한 지점에서 멈추게 되었다.

'17세... 내가 아카데미에 들어가던...'

형과 함께 하는 1년의 아카데미 생활을 고대했으나. 에딘이 너무 뛰어난 탓에 그러지 못했다.

3년 만에 아카데미를 졸업한 에딘과 교대하듯이. 자신은 왕도로, 에딘은 테크니 후작령으로...

하지만.

그의 마차는 후작령의 경계에서 멈추었고.

어떤 남녀를 만났다.

한 사람은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성녀. 일리아드 헬레니아. 그곳에서 그녀와 처음 마주했다.

그리고 다른 남자는... 검은 연미복에 중절모. 검은 망토. 눈을 가리는 하얀색 가면. 그리고 뾰족 튀어나온 엘프 특유의 기다란 귀...

­ 안녕하십니까. 제 이름은 휴브리스. 당신의 역사를 인도할 자입니다.

그 기억을 떠올림과 동시에.

머릿속으로 타는 듯한 격통이 밀려들어왔다.

* * *

"아아아악!"

"마크...!"

한창 대화 중이었던 마크는 갑자기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을 나뒹굴기 시작했고. 에딘은 동생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목격한 나와 헤르만은 다급하게 취조실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이야!"

"공작님...! 갑자기 마크가..."

"헤르만. 빨리 진정제를!"

"나도 알아!"

헤르만은 평소 휴대하고 다니는 약병들을 뒤적거리며 마크에게 달려들었다.

"으아아아악!"

"에딘! 마크의 입 좀 벌려줘요!"

"알겠습니다...!"

"시하 형! 이 인간 팔 좀 잡아줘!"

나. 헤르만. 에딘. 나름 건장한 청년 세 사람이 마크에게 달려들었으나. 온몸을 비틀면서 악을 쓰는 사람을 감당하기엔 벅찬 느낌이 있었다.

결국 나는 신체 강화까지 부여해가며 그의 양팔과 양다리를 눌러야만 했고. 덕분에 마크에게 겨우 약을 먹일 수 있었다.

하지만...

"아악! 으아아악!"

"뭐야. 이거 바로 잠들어야하는 약인데..."

"무슨 약이었는데!"

"진정제. 수면제. 진통제. 전부 다 먹였어!"

사람에게는 과할 정도로 약을 먹인 셈인데. 마크는 눈이 시뻘개진 채로 잠들지 못했다.

"이렇게 계속 두면 다칠 수도 있어. 헤르만. 일단 손수건 같은 걸로 재갈부터 물려!"

"알았어!"

발작 증세가 있는 사람을 구속시켜두는 것은 당사자가 다치지 않기 위한 목적도 있다.

나는 당장 겉옷을 벗어 마크의 두 다리를 묶었고, 헤르만은 남는 천으로 재갈을 물렸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방금 먹였던 약의 효과가 돌기를 기다리는 것 뿐.

지쳐버린 나는 취조실 바닥에 널부러지듯 주저 앉았고, 다른 두 사람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 순간...

"어...?"

"왜 그래. 형."

마크의 이마에 탁한 금빛 문양이 빛나고 있었다.

태양을 감싸고 있는 뱀의 무리들. 게임을 속에서나 시온 자작령에서 목격한 그 문양이었다.

"해방 교단..."

"갑자기 그게 왜 나와?"

"마크의 이마에. 교단 문양이 그려져 있잖아."

"나는 안 보이는데?"

"아..."

헤르만의 반응에, 나는 바로 내 손에 닿은 감촉을 확인했다. 방금 주저앉으면서 엔크라테아의 검집에 무심코 손이 스쳤는데, 그 탓에 마력의 흐름이 보이게 되었나 보다.

"에딘. 마크의 이마에 마력이 모여 있어요."

"... 뭐라고요?"

에딘은 놀란 표정을 짓더니, 허리춤에 차고 있던 홀스터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 카드를 마크의 이마에 댔더니...

해방 교단의 금빛 문양이 카드에 떠올랐다.

그 모습을 본 나와 헤르만은 순간 시선을 교환했고, 당장에라도 날뛸 것만 같은 마크에게 다시 달려들어 사지를 구속했다.

"이건..."

"마법진인가요? 해주할 수 있어요?"

"마법진입니다만. 맥락이 보이지 않아요. 이건 누군가의 심상 마법에 가까운데... 제가 차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난해합니다."

"그렇다면..."

에딘의 얼굴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언제나 감정이 없는 듯 행동하는 그였는데, 지금은 낙담이라는 두 글자가 얼굴에 쓰여있었다.

"... 해주할 수 없습니다."

"아..."

세계에서 가장 특이한 마법진을 다룬다고 알려진 테크니 가문의 후계자가 한 말이다. 아무리 마법진에 무지한 나라도, 그 한 마디의 무게 정도는 알 수 있다.

어느새 마크는 소리지를 힘도 없어졌는지, 아니면 고통이 줄어들었는지. 누운채로 거친 숨을 내쉬며 잠들어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이제 한숨 돌리겠구나...'라고 생각한 그 순간.

취조실의 문이 난폭하게 열렸고. 온몸을 검정으로 칠한듯한 티오리아 가문의 그림자 한 명이 방 안으로 뛰쳐들어왔다.

"도련님! 공작님!"

비록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얼마나 다급하게 달려왔는지 정도는 알 것 같았다.

헤르만은 가라앉은 어조로 그를 다그쳤다.

"여긴 허락 없이 들어오지 말라고 했을텐데."

"그... 그게, 왕명입니다! 두 분께서는 당장 왕궁으로 등성하시라고...!"

"... 뭐?"

"왕명이라고?"

지금껏 '당장' 등성하라는 명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국왕 내외의 배려 넘치는 성격 덕분일까, 그들이 나를 호출할 때는 하루간의 여유를 주는 게 대부분이었다.

나와 헤르만이 당황하여 서있자, 그림자는 말을 덧붙였다.

"전령의 보고에 따르면 재앙 경보에 부정의 마력이 여럿 잡혔다고 합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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