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204화 (204/215)

〈 204화 〉 2­167. 선생님께 배운 것.

* * *

2­167. 선생님께 배운 것.

내가 아무런 반응 없이 멍하니 하늘만 보고 있자, 발람은 인상을 한껏 찌푸렸다.

"네놈. 지금 그게 무슨 반응이냐."

"……."

딱히 놀랍지도 않은데 놀라야 했나. 아니면 무슨 게임 주인공 마냥, '무슨 짓을 벌인 게냐!'라고 분개해야 했었나.

아무튼 발람의 모습은 영 불만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내 마음은 너무나도 평온하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저 '찌꺼기들이 그에 걸맞은 짓을 했구나'라는 생각 뿐이다.

... 문득 의문이 샘솟았다.

지금 내 마음은 왜 이렇게 편안할까. 마치 처음 똥개를 잡은 그때처럼 평안하다.

'시온에서는 미칠 듯이 답답해지다가 반쯤 미쳐 버렸는데. 그때랑 다른 게 뭐지.'

나는 내 내면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마력 중독은 인간의 내면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니까. 진짜 미쳐 버리기 전에 자신을 면밀히 파악해 둬야 한다.

내가 미쳐 버리기라도 하면 학생들이 슬퍼하고, 주변 사람들이 갈 곳을 잃는다. 그 꼴을 보지 않으려면 나는 '되도록' 미치면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첫 번째 질문. 혹시 이시하 씨는 눈앞에 재앙이 보여서 미쳤나요?

마법을 쓰지 못하는 일반인들은 부정한 마력의 영향으로 미치는 경우가 많지만...

나는 처음 똥개 앞에 섰을 때도 멀쩡했으며,

시온에서 첫 웨이브를 막을 때도 멀쩡했고,

위에서 똥덩어리가 내리는 지금도 멀쩡하다.

그러니 나는 재앙 때문에 미치지는 않는다.

이제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려는 순간...

분위기 파악 못 하는 돼지 놈이 내게 물었다.

"이시하. 네놈은 진정으로 미친 것이냐."

"……."

"어떻게 왕도 상공에서 재앙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도, 그리 침착할 수 있는 게냐."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면 발람의 애타는 모습을 더 볼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나에게는 그런 걸 보고 흡족해하는 이상한 취향은 없다.

'거기다 싸우기 전에 당혹감을 심어두기 위해서라면, 답하는 게 좋을 것 같기도하고...'

나는 그에게 무미건조하게 답했다.

"이미 대비는 전부 해 두었으니까."

"... 뭣?"

"저렇게 하늘에서 내리는 재앙 따위 대부분 E급이고, 높아봐야 D급이거든. 계획대로 된다면 민간 피해는 천에서 끝날 거야."

"……."

지금쯤 헤르만은 긴급 의뢰를 받은 모험가들을 이끌고 있을 거고, 한나는 사법부와 치안본부에 경보를 전달했겠지. 거기다 아카데미에서도 발 빠르게 교직원과 학생을 풀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 학생들은 수하들의 숙소 저택에서 보호 받는 중이다.

약간 욕심이 있다면 내가 아는 누군가가 다치지 않기를 바랄 뿐. 왕도는 고난을 극복할 것이다.

이 모든 조건을 종합하자면.

지금의 나는 매우 여유롭다.

어쩌면 타락은 내 여유와 관련 있는 걸까.

시온 자작령에서는 루이가 광인들에게 물리는 걸 보고 돌아버린 것 같기도 한데...

…….

생각은 여기까지 하고.

내가 왕궁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결국 발람 프라시스를 쓰러트려야만 한다.

나는 눈앞의 발람에게 고했다.

"발람. 지금 저게 네가 바라던 모습이냐."

"... 그게 무슨 소리냐."

"죄 없는 인간들을 물어뜯기 위해, 재앙이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저 모습 말이야."

"……."

"언제부터 이런 찌꺼기다운 꿈을 꾸고 있었지? 그 계기는 뭘까. 짐작하기도 싫네."

"닥쳐라. 네까짓 놈이 무얼 안다고..."

"아카데미 서열 5위 안에 들던 강자가 이런 악행을 벌인다니. 자연스럽지 않잖아."

심상 마력 보유자를 쓰러트리기 위한 첫 번째 방법, 상대방의 마음을 흔들어야 한다.

게임의 등장인물들이 '특별한 마법'을 배우려면 각자가 꼭 거쳐야 하는 루트가 있었다.

결핍을 겪는다던가, 역경을 넘는다던가, 누군가를 잃는다던가, 특정 삶을 산다던가...

그만큼 심상 마법은 사용자 내면적 성장, 그리고 심리 상태와 밀접한 관계를 이룬다.

"발람. 당신 어린 시절의 기억은 안녕해? 혹시 기억을 바꿔치기 당한 건 아냐?"

에딘과 대화를 나누던 마크처럼 발람 역시 발작이라도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한마디를 던져 보았다.

하지만 발람은 콧방귀를 끼며 검을 뽑았다.

"흥. 내 약조한 것이 있어 싸우지 않으려 했건만, 쓸데 없는 소리로 내 화를 돋구는구나."

... 약조는 개뿔. 원래 남의 가족사는 건드리지 않으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검과 검집을 잡은 손에 힘을 주고, 신체 강화의 마법을 전신에 발동했다.

그리고.

아주 해맑은 어조로 비아냥거린다.

"아. 그렇지. 너는 세뇌를 당한 게 아니라면 죄를 감당할 수 없어. 그게 아니고서야, 어린 시절부터 졸졸 따라 다니던 누이를 그 꼴로 만들어 쫓아낼 리 없잖아?"

"……."

"존경하던 누이를 제 손으로 쫓아 내고, 조카에게 어미를 뺏은 쓰레기 새끼."

바닥을 향한 발람의 검이 떨린다.

물론 검 자체가 진동하는 건 아니다.

검이 아닌 발람이 이를 갈며 떠는 것이다.

'그래. 마크처럼 발작은 안 하지만... 열 뻗친 것만 해도 어디야.'

발람이 천천히 검을 세워 들며 고했다.

"이시하. 네놈은 내가 죽인다."

"아니. 넌 절대로 죽일 수 없어. 왜냐하면..."

수직으로 내려 베는 자세를 취하려는 발람.

하지만 나는 그 순간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나는 또다시 바닥에 마력을 흘렸고...

"여기가 네 매립지니까. 쓰레기 새끼야."

"또 잔꾀를...!"

발람의 발밑이 부풀어 올랐다.

* * *

알현의 홀에서 터진 첫 번째 대폭발의 굉음은 왕도 전체에 널리 울려 퍼졌다.

그에 알렉산더가 왕궁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왕궁에서 웬 폭발음이...?"

분명 에코니아에는 폭발마법이 존재한다.

하지만 전방의 동료가 폭발에 휘말릴 위험이 너무 큰 탓에, 자연 마법사들 사이에서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마법이다.

하지만 그리 위험한 폭발마법을 '즐겨' 사용하는 이가 단 한 사람 있었으니, 아셰리아는 마음속 불안을 감출 수 없었다.

"오라버니. 혹시 선생님께서..."

"... 아니. 진정하렴, 동생아. 아직 우리는 상황을 자세히 모르지 않니. 왕도 안에 침입자가 있을 리도 없고, 폭발 마법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

"그래도 폭발음의 크기가 다르잖아요. 정말 선생님께서 위험한 상황에 처해 계신다면..."

알렉산더 역시 알고 있다.

다름 아닌 본인도 시하 선생님과 발람의 결투를 직접 관전했었으니까.

확실히 방금 전 폭발은 선생님이 사용하시는 마법과는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동시에, 어른들이 자신들을 여기로 보낸 까닭은 일목요연하다.

'모종의 위협으로부터 우릴 보호하기 위해. 국가적인 위협이 아니라면 말이 안 돼...'

알렉산더가 머릿속으로 고민을 이어 나가던 사이, 시녀 세라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라. 갑자기 날씨가 이상하네요."

"그러게요. 조금 전만 해도 맑았는데..."

"저기 웬 먹구름이 몰려 오는데?"

마른하늘에 먹구름이 갑자기 생긴다니.

여름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겠지만, 지금은 건국제를 앞둔 가을이다. 뒷뜰에 있던 이들의 시선은 신기하다는 듯 하늘로 향한다.

하지만 관측 계열 심상마법을 다루는 유나로서는 그 구름이 너무나도 꺼림칙하게만 보였다.

'무언가 불길한 구름이네...'

유나는 명월시를 사용하여 상공에 가상의 마력안을 만들었고, 먹구름을 관찰했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이지만, 오늘 따라 해야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 탓이다.

…….

그곳에서는 직접 본 자신마저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알렉스...?"

"왜 그래. 유나."

"저 안에서..."

"음? 저 안에서라니."

"재... 재앙이..."

"재앙? 판타스매터?"

혹시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알렉산더가 반문하는 사이, 기디언이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긴다.

"왕자님. 저기 보세요. 저기!"

"기디언. 너까지 왜 그러는... 어?"

알렉산더가 다시금 하늘을 보자, 왕도 상공에서는 크고 작은 재앙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것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저택 뒤뜰에서 큰 혼란이 일었다.

"대장님, 어서 모두를 한 곳에 집결시켜야...!"

"알겠다. 아일라 너는 이곳을 지키도록."

"에딘. 에딘 님은 어디 계시지?"

"지금 동생을 간호하고 계셔요."

그렇게 모두가 혼란해진 사이.

­ 콰쾅!

왕궁에서는 또다시 큰 폭발음이 울렸고, 아셰리아의 마음은 더 다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일라님. 아일라님은 알고 계시죠. 지금 왕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제발. 제발 말씀해주세요. 네!?"

"공주님..."

"리아. 잠깐만 기다려. 내가 한 번 볼게."

"유나 언니...?"

유나는 지금껏 시하 외의 사람들에게 심상 마법을 명확히 밝힌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런 걱정 따위는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이제 왕궁 정문이야. 그런데 왜 문지기가 아무도 없지? 그리고 본성 앞에 웬 병사들이..."

"네? 병사들이라니. 그게 무슨..."

"잠깐만. 알현의 홀 천장이... 무너졌어?"

"……."

그러지 않아도 새하얀 아셰리아의 얼굴이 더더욱 창백해져 버린 그때.

"저건... 누구지?"

유나의 시야 안에서, 한 수상한 여성이 본성을 향해 들어가고 있었다.

짧게 자른 은발, 여러 곳에 구멍이 뚫린 성녀복, 얼굴만 가리는 베일...

거기까지 파악한 순간.

"... 어?"

그녀의 붉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내 마력시는 눈에 보이지 않을 건데...'

명월시는 새로운 감각 기관을 허공에 띄우는 것이지만, 타인에게는 단순한 그저 마력 덩어리에 불과하기에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은발의 수녀는 허공의 한 점, 유나의 마력시가 있는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 웃었어?'

씨익 ­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동시에 그녀가 손을 휘젓자, 검은 마력이 채찍처럼 뻗어져 나와 유나의 마력을 강타했다.

마력이 끊긴 반동은 곧 유나에게 전달되었고, 뒤이어 눈을 찌르는 듯한 격통이 밀려왔다.

"꺄아아아악!"

"유나 언니!"

"뭐야. 무슨 일이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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