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205화 (205/215)

〈 205화 〉 2­168. 선생님께 배운 것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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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8. 선생님께 배운 것 (2)

한 차례 환통을 겪은 유나는 아샤가 진정제를 투약하고서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후 그녀는 눈을 부여잡은 채 왕궁의 상황을 다른 이들에게 전했고, 아일라를 비롯한 호위대는 사실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

기디언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숙부님께서 결국... 면목이 없습니다..."

"기디언. 혼란스러워할 것 없다. 조짐은 충분히 있었으니까. 그리고 네가 사과할 게 아니다."

설마 했던 숙부의 반란이라니, 기디언으로서는 머리가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알고 있다.

기디언은 시하의 결투 이후 프라시스 공작저를 나와 왕궁 동관에서 생활했기에 무죄라는 것을.

지금은 오히려 정보 분석이 먼저인 상황. 아셰리아가 아일라에게 물었다.

"언니의 정보와 아일라 님의 말씀에 따르면, 선생님은 알현의 홀에서 싸우고 계신건가요?"

"... 확실하지 않습니다. 최대한 몸을 피하며 시간을 번다고 하셨으니까요."

"……."

아셰리아가 고민에 빠진 사이, 알렉산더가 다시금 아일라에게 물었다.

"혹여 스승께서 다른 당부는 하지 않았나."

"이 저택은 다수 적에게 포위당하면 방어에 적합하지 않으니, 상황을 살펴 아카데미나 모험가 길드로 피신하라 이르셨습니다."

"피신이라..."

알렉산더는 다시금 하늘을 보았다.

지금 먹구름에서 떨어지는 재앙은 대부분 E급. 개중에는 D급도 몇 개체 섞여 있다.

'저 정도면 손쉽게 쓰러트릴 수 있다.'

그가 1년간 놀고만 있던 것은 아니니까.

타라스 마을에서의 쓰라린 경험 이후 아버지의 밑에서 자신을 갈고 닦은 알렉산더다.

지금은 주위에 호위까지 충분한 상태이니 D급 재앙 쯤은 안전하게 쓰러트릴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알렉산더 에우데미아는 왕족이다.

그는 장차 수많은 백성들을 이끌어야 하는자.

목숨을 걸고 경거망동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고민할 요소가 하나 더 있었으니. 아셰리아가 알렉산더에게 말했다.

"오라버니. 치안본부든 모험가든 저희가 전력을 수습하여 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안 됩니다, 공주님. 왕궁은 위험합니다."

"레온. 알현의 홀 천장을 깨부술만한 마법은 그만한 소음을 동반하겠죠. 방금 전 폭발이야말로 선생님께서 싸우고 계신 증거입니다. 선생님을 구하러 가야 해요."

"하지만 그 교사님께서는 당신을 지키고 왕궁에서 멀리 피신시키라 명하셨습니다."

분명 레온의 말은 정론이었다.

왕궁에 군 병력이 배치되어 있는데다 알현의 홀이 반파된 상태라면, 이미 충분히 위험하다.

그리고 현시점 한정으로, 왕도 아레트의 최고 결정권자는 분명 시하다.

레온은 우선순위를 철저히 지킨 그 지시를 무조건적으로 따라야만 한다.

하지만

아셰리아에게는 그 말이 다르게 들렸다.

"지금 선생님을 버리자고 하는 건가요?"

"고... 공주님. 그런 뜻이 아닙니다...!"

"당신에겐 선생님이 '조금 뛰어난 한낱 표류자'에 불과하니까 버리자는 거 아니예요!"

"저도 교사님을 존경합니다. 그러니 더욱 그분의 말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아셰리아는 표류자의 역사를 알고 있다.

민중 사이에서는 표류자가 '이 땅에 변혁의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로 알려져 있으나...

과거 몇몇 높으신 분들에게 표류자란 '민중을 통제하기 위해 적당히 쓰다 버릴 말'에 불과했다.

그를 증명하듯, 실제로 역사서에 이름을 남긴 표류자는 50년에 한 명인 셈 치고 소수일 뿐이다.

그리고.

언젠가 본인도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이 근원에 도달하기 위한 준비물.

처음에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시하 선생님은 그녀의 마음속에서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이 되어 버린 상황.

혹여 '선생님'을 잃을 수 있다는 애탐과 모종의 죄책감이 섞인 이 마음을 뭐라 해야 할까.

아셰리아는 그런 마음을 차마 정의할 수 없었으며, 그런 마음을 고민할 여유조차 없었다.

"여기 계신 분들도 강하시니 치안본부 병력까지 끌어들이면 충분히 가능해요. 그러니까..."

"리아. 그만하거라."

"... 오라버니."

결국 알렉산더는 '선생님을 구할 방법'만을 궁리하던 아셰리아를 말려야만 했다.

동생이 너무 당황한 상태이다 보니, 눈앞에 보이는 단서들마저 놓치고 있으니까.

적어도 그 단서들을 통해 설득해야 했다.

"리아. 우리에게는 정보가 너무 없다. 발람군에 정확히 누가 붙어 있을지도 모르고, 스승님의 생사마저 분명하지 않아."

"……."

"또한 왕도에 재앙이 떨어지고 있는 지금, 치안본부 대원들마저 왕궁 탈환에 동원한다면 왕도 전체가 불바다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저쪽에는 원거리에서 유나를 헤칠 정도의 강자가 있어."

"그... 그렇죠..."

아셰리아는 그제야 유나의 상태를 살폈다.

불과 10분 전, 유나에게 닥쳐온 고통을 등한시해버린 것만 같은 미안함이 들었기 때문.

하지만 유나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리아. 의부님께서는 쉽게 죽거나 할 사람은 아니니까. 우리 일을 먼저 서두르자."

"... 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리아의 말대로 의부님을 쉽사리 포기할 순 없지만, 그래도 우리 안전을 우선하긴 해야 해."

"왕자님. 당장 가까운 곳은 아카데미지만, 그만큼 우리 동선을 읽기 쉬울 수도 있습니다."

알렉산더는 아일라와 레온을 보며 말했다.

"아일라. 레온."

""네.""

"저희는 거리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알렉산더가 내뱉은 의외의 말에, 모두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우린 왕도 피해를 최소화해야 해. 먼저 최소 목표는 우리가 잡히지 않는 거고, 여기서 조금씩 조금씩 목표를 늘려 가야지."

"목표를 늘린다함은..."

"거리의 재앙 청소, 스승님 구출, 왕궁 탈환. 이 세 가지 중 가능한 것은 실행하되, 불가능하면 곧장 도망쳐야 해. 하지만 우리가 당장 목표를 설정하기에는 정보가 적어. 당장 전력이 될 만한 왕도 방위군, 치안 본부, 아카데미, 모험가 길드. 네곳의 상황도 전부 모르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알렉스 네 말은 가까운 거리로 나가서 상황을 파악하고 움직이자는 거지?"

"그래.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바로 아카데미를 통해 왕도를 탈출하는 것까지 고려하자."

한 도형의 여러 면을 살피듯,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여러 관점을 살펴야 한다. 이는 알렉산더가 스승으로부터 배운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그의 가르침을 마음속에 새기고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한 결과, 이렇게 침착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그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장님께 그리 전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그럼 출발은 5분 뒤로. 서두릅시다."

"예. 알겠습니다."

뒷뜰에 있던 모든 이들은 각자 준비를 마치기 위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

.

잠시 후.

알렉산더를 비롯한 일행은 저택 앞으로 모이게 되었으나, 몇 사람이 비게 되었다.

먼저, 아일라는 아모스를 찾지 못했다.

"라나. 오늘 아모스 못 봤어요?"

"요즘 매일 대성당에 가시잖아요. 교국 방식으로 수련 받는 중이라나. 저번에 그러셨어요."

"하필이면 이럴 때..."

"그래도 대성당이면 안전하지 않을까요?"

"... 그건 그러네요. 그럼 일단 저희끼리 이동합시다."

"네."

슬럼가 근처에 위치한 대성당에는 교국의 자랑, 성당 기사단이 잔뜩 있을 것이다.

재앙이 떨어지고 있는 왕도 거리보다는 훨씬 안전하겠지. 아일라는 내심 안도했다.

다음으로, 레온은 에딘 테크니를 찾았다.

"그... 대장님?"

"말씀하시오."

"에딘 경께서는 어디 계시나요."

"동생을 지키기 위해 저택에 남는다 하였소."

"아..."

에딘은 테크니 후작가의 차기 당주.

또한 아레트 아카데미의 수석으로서 거둔 높은 성적이 그의 전투력을 보증한다.

그런 에딘이 합류해준다면 큰 힘이 되어 주었을 텐데, 내심 아쉬웠던 레온이었다.

마지막으로. 알렉산더와 유나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동생, 아셰리아를 찾았다.

"저기. 유나. 지금 아셰리아가 보이지 않는데, 너랑 같이 있었던 거 아니었어?"

"아니. 나는 너랑 먼저 기다린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는데. 나는 챙길 게 많아서..."

"... 뭐?"

알렉산더가 얼 빠진 소리를 내자, 안 좋은 생각이 떠오른 유나는 다급히 아샤를 찾았다.

"아샤는 어디 있어? 아샤!"

"아샤도 안 보여. 주변에 없어."

"... 티오리아 가문은 은밀 행동이 특기라며? 그럼 지금 당장 못 찾는 거 아냐?"

"설마 둘이서 왕궁으로..."

두 사람은 마주 본 채 할 말을 잃었다.

* * *

왕궁 동관의 숨겨진 문으로 향하는 길.

마법을 유지한 채 묵묵히 걷고 있던 아샤가 걱정스러운 어조로 아셰리아에게 물었다.

"공주님. 지금이라도 돌아가시는 건..."

"아니요. 지금 꼭 가야겠어요."

"... 도대체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간단한 일입니다. 선생님께서 어딘가에 숨어 계신다면 아샤 당신이 찾아주면 돼요."

"만약 싸우고 계신다면요? 더군다나 유나 님의 마법을 파훼한 그 여자까지 있으면?"

"……."

"공주님. 저는 이게 정답인지 모르겠어요..."

아셰리아는 곧장 대답할 수 없었다.

지금 이 길은 명백한 오답이라는 것을 자신도 역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아셰리아는 이 틀린 길을 걷고 싶다.

알렉산더 에우데미아는 스승으로부터 문제의 '정답'을 보는 법을 배웠겠지만.

아셰리아 에우데미아는 같은 선생님으로부터 전혀 다른 것을 배울 수 있었으니까.

"맞아요, 아샤. 이건 틀린 선택지죠."

"그걸 잘 아시는 분이 왜..."

"가끔은. 이런 것도 필요한 법이에요.

"……."

아셰리아 에우데미아.

그녀는 이 세상에 '진정한 정답'이 없음을 배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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