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211화 (211/215)

〈 211화 〉 2­174. 나쁘지만은 않았으니까. (2)

* * *

2­174. 나쁘지만은 않았으니까. (2)

이 꿈은 언제까지 이어지는 걸까.

낯 익은 경찰서 앞 벤치인 걸 보면, 아직 내가 '정신 차리기 전'의 기억인 듯하다.

30대 중반의 사복차림 아저씨... 아마 나랑 20살 차이였으니까 아저씨 맞겠지.

그가 내게 물었다.

"시하야.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냐."

"쟤들이 먼저 잘못했잖아요."

"그건 맞긴 한데. 촉법에게 촉법으로 대항하는 모습이 참 통쾌하긴 한데. 이렇게 해 줄 때마다 통쾌해하는 나도 참 문제긴 한데...!"

저분의 성함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말끝마다 '~한데'를 자주 붙이셔서 '한데 계장님'이라 불렀던 기억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계장님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 있던 친구 녀석이 계장님에게 대들었다.

"아니. 계장님. 우린 아무 잘못 없다니까요. 쟤들이 먼저 우릴 협박하는데. 가만히 있어요?"

"네 말이 맞긴 한데. 너는 일단 좀 가만히 있어 봐라. 일단 시하랑 말 좀 하게."

"아니. 계장님은 맨날 나한테만 이래..."

"어허. 내가 시하한테만 말하는 것 같긴 한데. 너는 얘 따라다니면서 일진놈들 패고 다니잖아. 그러니 시하랑 담판을 봐야 너도 변하지."

"아니..."

극한의 아니시에이팅과 '~한데'의 대결.

저 친구의 말버릇은 '아니'였는데, 이 두 사람이 만나면 저런 식이 되기 일쑤였다.

하필 두 사람의 말버릇이 옮아 버린 탓에, 나도 저런 단어들을 꽤 많이 쓰곤 한다.

'한데 계장님'이 말을 이었다.

"얘들아. 난 너희가 잘 됐으면 좋겠다. 너희가 이런다고 그놈들이 공부를 하겠냐, 개과천선을 하겠냐. 결국 너희 시간과 평판만 날리는 거야."

"……."

"사실 어른 딱지를 달고 있는 인간들은 애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척만 하지, '진짜 관심'을 주는 사람은 적단다. 일진 놈들이 다른 애 후드려 패고 돈 뜯는 걸 말리다가 싸움이 났습니다? 그런 말을 해 봐야, 나이만 찬 위선자들 눈에 너희는 '똑같이 싸움박질한 나쁜 애들'이 될 뿐이야."

새삼 말하는 거지만.

우리 학교엔 멀쩡한 쓰레받기가 없었다.

'장애인과 함께하는 학교'로 선정되었는데, 일진들이 매번 장애인 학우들의 머리를 청소도구로 내려쳤기 때문이다.

학교의 음지에는 사람 없는 곳이 없었다.

자그마한 빈틈마다 애새끼들이 담배를 태우고, 선량한 아이들을 끌고 가서 삥을 뜯는 공간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생들은 그저 가만히 있더라.

'장애학생과 함께 가는 학교'

'학교 폭력 근절 N년차 학교'

이 두 개의 타이틀을 지키기 위해, 일진 놀음하는 병신들의 횡포를 쉬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기에 있는 내 친구와 둘이서 그 타이틀을 성대하게 부숴 버렸다.

장애인 학생을 패는 새끼들을 패고, 삥뜯는 새끼들의 지갑을 찢어 버렸다.

나중 가서는 일진들과 2:17까지 해봤는데 우리 둘에겐 상처 하나 없었다.

하지만...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니었지.

담임은 나한테 애비 없는 새끼라더라.

나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칭찬이지만, 오히려 그 일로 내 주변 사람들이 꽤 열불이 났었다.

"담탱이는 왜 나랑 시하한테 지랄이야."

"너 오랜만에 말 잘했다. 그게 어딜 봐서 선생이냐. 일진놈들이 다른 애들 팰 때는 입을 꾹 닫고 있다가, 너희 같이 말 통하는 애들 상대로는 강제전학 보내겠다 협박이나 하고 말이야."

"미친년. 지애비 걱정이나 할 것이지."

"어허. 맞는 말이긴 한데, 좀 심하다."

"아니. 미친년은 미친년이라 불러야죠."

"쓰레기 욕하지 마. 똑같은 놈 되니까."

딱히 우리가 정의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설령 우리도 처벌 받더라도, 일진놈들이 받아야 할 온당한 처벌을 받길 바랬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 담탱이년은 '누굴 보내야 군소리가 줄어드나'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었지.

그런 그녀가 '열일곱보다 둘 보내는 게 쉽다'라는 결론에 이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시하네 어머님께서 신고한 덕이긴 하지만, 내가 그 사건을 담당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겠냐. 그놈들 특수폭행에 성폭행, 금품갈취를 엮어서 소년원 보내서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너희들만 합의금 물고 전학까지 당했을 거다."

"그땐 감사했어요. 계장님."

"... 내가 지금 감사를 바라는 게 아니고, 너희 앞길부터 생각하란 말이야."

"……."

어린 나는 대충 감사를 표하고 넘어가려 했지만, 저 날따라 '한데 계장님'은 끈질겼다.

결국 나는 미래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고

"아."

의외로 꽤 순수한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왜 그러냐. 시하야."

"계장님. 저 교사가 될래요."

"... 뭐?"

"제가 교사가 되면 저 같은 애가 덜 생기지 않을까요. 계장님이 고생할 필요도 없고요."

"……."

계장님은 한동안 말 없이 나를 바라보셨다.

내가 마주할 현실에 대한 염려가 컸던걸까.

아니면 꿈을 가진 나를 응원하고 싶었을까.

"그래. 힘내라."

착잡한 얼굴로 한마디를 남기실 뿐이었다.

이후로 내 기억은 동영상을 거꾸로 감는 듯.

앞으로...

과거로...

계속 나아갔다.

.

.

내 꿈은 점점 과거로 향하고 있었으니, 결국 마지막에는 이곳에 도착할 것 같았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지낸 단칸방.

괴물의 폭거로부터 벗어난 우리 모자가, 겨우 모아둔 비상금으로 마련한 보금자리.

어머니께서 내 비밀 일기장을 내미셨다.

"시하야."

"네."

"혹시 이게 뭔지 물어봐도 될까?"

"그게..."

"괜찮아. 시하를 혼내지 않을 거야."

"……."

어린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여기서 살게 되었을 즈음에는, '정상적인 삶'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저 일기장에 적힌 내용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10월 7일, 엄마의 등에 멍이 남아버렸다. 내가 약을 발라 주었다. 10월 9일, 나무로 만든 의자가 부서졌다. 술에 취한 괴물이 엄마에게 내려쳤기 때문이다. 다행히 엄마를 빗겨나갔다. 10월 14일, 고모년이 엄마에게 칼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돈을 내놓으라 소리쳤다...]

우리 모자가 괴물들에게 당해온 기록.

어머니는 그 내용을 조금씩 읽으셨다.

[12월 1일, 괴물이 내 방문을 돌리며 '애미를 닮아서 인사도 안 하는 개자식'이라고 했다. 12월 3일, 어머니는 뜨거운 보일러실로 들어가셨다. 엄마는 무거웠지만, 내가 겨우 빼냈다. 엄마가 나를 안고 울었다...]

비참한 삶을 하루하루 한 줄씩 기록한 일기장은 어머니께 악몽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래도 어머니께선 끝까지 읽으셨고.

[여기까지. 내가 괴물을 죽여야 하는 이유.]

일기의 마지막 장에 도달했을 때.

어린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

"……."

저 일기의 마지막 장에 있는 것은, 스스로 괴물이 되겠다는 다짐.

이제 어머니께서는 나를 포기하시리라.

어린 시절의 나는 그 괴물을 연상시키는 작은 괴물에 불과하니까.

"시하야."

"네..."

하지만 어린 나의 예감과는 다르게.

지이이익 ­

종이 찢는 소리가 내 귓전을 때린다.

"이 부분은 모두 잊자."

"네?"

감겼던 눈이 뜨이고, 내 앞에는 일기의 마지막 장이 어머니의 손에서 나풀대고 있었다.

"너는 엄마를 지키기 위해 행동한 거야. 너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단다."

"엄마...?"

"전부 그 사람이 나빴던 거야. 지금부터라도... 너만의 행복을 찾으면 돼."

어머니의 말씀을 마지막으로, 주변을 감싸고 있던 기억들이 먼지가 되어 날아오르고.

이제 남은 건 나를 가두고 있는 순백의 공간 뿐. 결국 내 꿈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

아니.

적어도 하나는 남은 것 같다.

어머니가 찢어 버린 일기의 마지막 장이 어느샌가 내 손에 있었다.

분명 버렸는데. 왜 남아 있는 걸까.

사실 끝까지 모르는 척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나는 인간실격이던 괴물이 미웠고.

그를 방치하는 주변인이 싫었으며.

바르지 못한 세상이 가증스러웠다.

아마도 나는 버리지 못한 것이리라.

이 종이는 괴물에게로 향했던 미움.

생존을 핑계로 마음속에 품은 증오.

모두에게 평생토록 숨겨 왔던 치부.

'저쪽'에서는 이 감정을 애써 숨길 수 있었지만, 이곳에서라면 어떨까.

…….

여기 에코니아에는 내가 미워해야 할 놈년들이 왜 이렇게 많은건지.

저쪽에서의 내 삶이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감상이 문득 떠오를 정도.

'그러고 보면...'

나는 '그 게임'을 플레이할 때조차도, 이 세상을 죽도록 미워 했었지.

그 사실을 자각한 순간,

그나마 남아 있던 순백마저 산산이 부서지고.

이 세상을 미워할 이유들이 종이장을 메웠다.

* * *

사극을 보다 보면, 오체분시라는 형벌이 나오지 않나.

인간의 사지를 밧줄로 묶어 두고, 각자 다른 방향에서 잡아당겨 사람을 레고처럼 뽁뽁 분리시켜 버리는...

꿈에서 깨어난 내가 몸을 움직이려고 해보니, 어느샌가 내 사지는 오체분시를 준비하듯 구속당해 있었다.

'맞아. 그 변태년의 심상 마법이 천이였지.'

헬렌 교국 최악의 성녀, 일리아드.

뜬금없이 역사서 속에서 튀어나온 시체한테 져버렸고, 나는 결박당한 것이다.

찡그린 눈으로 주변을 돌아보려 하자, 머리맡에서 그 여자의 말소리가 들렸다.

"일찍 일어났네?"

"……."

"왜 갑자기 똥 씹은 얼굴이 된 거야?"

왜 내 표정이 일그러졌는가.

그 이유는 내가 이 미친년의 허벅지에 머리를 베고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이런 상황을 좋아한다던데. 눈을 뜨자마자 여자의 밑가슴이 보이는?"

전혀 의식하고 있지 않았지만, 훤히 드러난 밑가슴의 피부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이건 중요한 일이 아니다.

"거. 말씀 좀 물읍시다."

"그래. 적극적인 대화. 나도 그런 거 좋아해."

"왜 이런 짓을 벌이는 겁니까."

"이런 짓이라니?"

"... 수많은 사람을 죽여서, 남겨진 이들을 슬픔에 빠뜨리는 이 미친 짓 말이죠."

내 물음에 성녀는...

움푹 파인 가슴골 사이로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 볼 뿐,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일리아드는 저 멀리 재로 뒤덮인 왕좌를 아련하게 올려다보며 말했다.

"모든 이들이 서로를 사랑으로 감싸 안는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 하면 믿을래?"

"꿈은 꾸기 나름이니까. 여하튼 그 목표를 위해, 이 왕국을 폐허로 만들어야 한다는 소린가."

"그래. 이 세상은 이미 썩어 버렸으니까."

이 썩어 빠진 현실 대신, 자신이 꿈꾸는 이상으로 세상을 채우겠다는 건가.

…….

정말이지. 충분한 이유였다.

"확실히 이 세상은 썩었지."

"오. 그럼 우리 한 배를 탈 수 있지 않을까?"

"……."

아니.

그딴 허황된 꿈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통 받을지, 전혀 신경 쓰고 있지 않잖아.

'아셰리아와 알렉산더를 시작으로'

오빠에게 찔린 여동생을 필두로, 기억 속에 각인된 수많은 배드 엔딩이 스쳐 지나간다.

'유나와 기디언, 그리고 아샤...'

일러스트로 표현된 아이들의 눈물이, 그들의 시체가, 피로 뒤덮인 참극이 실사화된다.

'거리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까지...'

화면 너머로라도 올바른 세상을 보고 싶었건만, 비극을 유도한 주동자가 눈앞에 있다.

"우읍..."

흡사 울화병에 걸린 것처럼.

끈적한 화기가 마음속에 북받쳐 오르고, 눈의 핏줄이 터지는 듯한 감각이 느껴진다.

아니. 정말로 실핏줄이 터져 버린 걸까.

내 시야에서 붉은빛의 아지랑이가 조금씩 피어오르는 와중에, 격통이 시작되었다.

"아아아악!"

고통을 이겨 내지 못하고 소리치자, 온몸에서 갑작스레 검붉은 마력이 스며 나왔다.

"읏..."

단숨에 알현의 홀 입구로 물러난 일리아드.

나를 구속하던 천 조각은 타버리고 없는 상황.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나는 추하게 무릎을 꿇었고, 입에서는 절로 신음성이 튀어나온다.

미쳐 버릴 것 같다. 강제로 마력 중독을 일으켰을 때에 비하면 차원이 다르다.

단순히 답답하고 뜨거운 기운이 몸속을 돌아다닌다기 보다는...

내 혈관 하나하나가 쥐어뜯기면서 새로운 길이 개척되는 느낌이다.

"칫.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점점 붉게 변해가는 시야 속에서, 가증스러운 성녀가 몸을 움직였다.

휘익­ 시선 위로 날아드는 검은 채찍.

본능적으로 팔을 들자, 내게 닿은 채찍이 재도 남기지 않고 타버렸다.

'저 개같은 년. 암만 봐도 악질이야...'

마음속으로 일리아드를 욕하는 나.

하지만 나는 내 몸의 위화감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 위회감이란, 전신을 찢어발기는 듯하던 통증이 사라지고 호흡이 편해졌다는 것.가슴이 턱­ 막히는 듯한 열감만 남은 상태다.

'일리아드. 저 쓰레기를 죽여 버리면, 세상이 조금이나마 깨끗해지지 않을까.'

머리는 자연스럽게 죽일 대상을 찾았고.

내 앞의 성녀는 여유로운 얼굴로 말했다.

"진정한 해방... 축하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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