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화 〉 2176. 작은 마음의 해방.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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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6. 작은 마음의 해방. (2)
멀어지는 아모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대주교 캐서린은 한 대화를 떠올렸다.
때는 시온 자작령의 참극이 끝난 직후. 아모스가 대성당의 앞에 무릎꿇기를 반복하던 시절.
'아모스 님. 계속 이러시면 곤란하답니다. 왕성에 연락을 취해 출입을 금지할 수밖에 없어요.'
'미안하오. 하지만 대주교님이 아니라면 달리 기댈 수 있는 곳이 없소.'
'하아...'
아모스가 대성당에 거의 매일 찾아오다시피 하며 심상마법을 일깨워달라 하는데, 캐서린에겐 참으로 곤란한 일이었다.
아무리 헬렌 교국과 형제의 나라인 에우데미아라 해도, 아무리 대주교라는 위치에 있다고는 해도, 그녀가 타국 인간의 심상에 함부로 관여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아모스를 무시하기도 참 애매한 상황이었던 것이... 왕도에서 이시하의 영향력이 점차 강해지고 있던 시기, 대성당은 아모스의 존재가 점점 더 부담스러워졌다.
이렇듯 대주교로서의 입장도 어려웠지만, 사실 캐서린 개인으로서도 참 난감했다.
매번 대성당의 고아들과 놀아주러 오는 참된 신도라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의 요청을 마냥 매몰차게 거절하기 힘들었다.
그러니 캐서린은 부탁을 거절하기 위해, 성녀 후보들에게나 꺼낼 질문을 그에게 던졌다.
'이쯤 되면 궁금하군요. 아모스 님. 혹여 당신은 영웅이라도 되길 바라는 건가요.'
'영웅... 그런 거창한 뜻은 없소.'
'그걸 제가 어떻게 믿죠?'
'나 같이 미천한 출생에, 더러운 삶을 살아온 자가 어찌 영웅이 될 수 있겠소.'
'그렇다면. 어째서 이토록 심상마법을 원하는 건가요. 저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요. 햇볕이 내리쬐는 오후에도, 비가 내리는 진흙탕 속에서도, 하루 몇 시간씩 무릎을 꿇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말씀해 보세요. 어째서 이토록 심상마법을 원하는 건가요.'
'그건...'
'대답에 따라 제 결정이 바뀔 수 있어요.'
헬렌 교국은 어릴 때부터 선하다고 소문난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고, 장차 성녀나 사제가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하지만 교국에서의 선함이란 개인의 영달(??)이나 부귀를 이루는 수단이 될 수 있기에, 어느 정도 검증은 필요한 법.
캐서린이 아모스에게 건넨 이 질문은, 성녀 후보들을 판단할 때의 질문과 일맥상통한다.
그 질문에 아모스는 답했다.
'시온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가장 죽기 쉽다는 것을 배웠소. 하루하루를 살기 위해 일만 하다 보면 힘이 없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힘이 없으면 강한 자들에게 착취당하고, 그런 삶을 견디다 보면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잘 사는 이들을 원망하게 되오. 하지만 나는...'
'…….'
'타인의 은혜로 잘 살게 된 주제에, 힘마저도 없었으니. 그들을 하나도 구해 내지 못했소.'
시온 자작령에서...
피난 명령을 불신한 하층민들이 문제였을까, 불신을 야기한 귀족들과 시민들이 문제였을까.
아모스는 그 사소한 문제에 답을 내지 않았다.
아모스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구하지 못했다는 사실 뿐. 그는 자신의 신념을 밝혔다.
'나는 이 세상 제일 밑바닥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놈이오. 그러니 나는 밑바닥 인생들까지 전부 구해 내고 싶소. 이것이 바로 내가 받은 목숨값을 치르는 방법이오.'
교국의 성서를 한 번도 접해 보지도 못한 밑바닥 인생이, 모든 인간을 사랑하라는 초대 성녀의 의지를 잇는 그 모습이란...
교국 본토를 생각해 보더라도, 캐서린은 그토록 순수한 의지를 지닌 자를 본 적이 없었다.
"대주교님!"
캐서린의 회상을 깨우는 한 목소리.
아모스의 훈련을 돕던 성당 기사, 새뮤얼이였다.
"대예배당은 방어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소예배당에 모든 이들을 모았습니다."
"그렇군요. 수고하셨습니다."
"헌데, 아모스 신도는...?"
"그는 떠났어요."
"예...?"
하늘에서 재앙이 비처럼 쏟아지는 지금, 쓸 수 있는 마법이라고는 신체 강화가 전부인 아모스가 성당 밖으로 나서버리다니.
새뮤얼은 다급하게 말했다.
"대주교님. 지금이라도 제가 가보겠습니다."
"아뇨. 저희는 먼저 내부 수습을 마쳐야 합니다."
"하지만 대주교님. 아모스 신도는 아직..."
"그렇기에 더더욱. 혼자 가야 하는거예요."
캐서린 대주교의 단호한 대답.
대주교님은 아모스 신도를 아끼는 줄 알았는데, 성당 기사 새뮤얼로서는 의외의 명령이었다.
하지만 캐서린 역시 생각은 있었다.
'아모스 님. 밑바닥에서 더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하면, 모든 사람을 구할 순 없어요.'
우물 밑바닥의 개구리는 바다를 모른다.
캐서린은 아모스가 더 많은 경험을 통해, 더 넓은 세상과 더 깊은 사랑을 보았으면 한다.
'지켜낸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 좋은 경험이 될 테고. 만약 지켜내지 못한다면...'
대주교 캐서린은 무엇이든 확실한 인간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드려야겠죠.'
그녀가 아모스를 한 번 돕기로 한 이상, 상황은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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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인생에 빛이 든 순간이 언제였냐고 묻노라면, 아마 그때일 것이다.
'오랜만에 손님? 근데 아저씨, 멋있다아...'
'미샤, 손님에게 그러면 안 돼.'
'히잉...'
자신에게 멋있다는 말을 해주고.
'아저씨, 아직 맛있는 거 전부 골라주지 못했으니까, 다음에도 또 와요!'
'아이에게 맞춰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오시면 서비스도 드릴게요.'
자신과의 '다음'을 기약해준 부녀.
그 두 사람을 구한 그때야말로, 아모스가 처음 뿌듯함을 느낀 순간이리라.
그전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을 떠나보냈나.
처음으로 상실감을 느꼈던 유년기.
지난겨울에 심은 보리에 이삭이 패이고, 드넓은 밭에 노란 물결이 일렁일 때였다.
정말이지 아쉽게도 그해 보리는 한 톨도 수확할 수 없었다. 전부 불타버린 탓이다.
그렇다고 보리밭 따위에 안타까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보리밭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소년의 얼굴에 부모의 피가 흩뿌렸고, 덩치만 컸던 그는 납치당했으니까.
기억은 슬럼가 폭력단으로 이어진다.
여자아이 대부분과 남자아이의 절반은 시종이란 이름의 노예로 팔렸다.
남은 아이들의 절반은 우는소리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매질 당해 죽었다.
그때까지 살아남은 몇몇은 얼굴이 곱다는 이유로 남창이 되어 미쳐갔다.
살아남은 것은 오직 두 사람 뿐.
아모스는 '덩치만 큰 놈이 쓸데없이 순진하게 생겼다'라는 이유로 팔리지 않았으며, 남창으로 쓰이지도 않았다.
병약한 아일라는 '이런 년과 하면 재수 없어진다'라는 이유로 살아남았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생존 사유였다.
타인의 삶을 뜯어먹고 사는 밑바닥 인생.
그 뒤로 과거의 자신처럼 끌려온 아이들이 팔리는 모습을 구경할 수밖에 없었고.
서있기만 해도 다른 이들이 두려움에 떨며 돈을 바치는 모습에 자괴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런 삶을 거쳐 왔기에.
그 불행을 겪고도 살아남았기에.
아모스는 빛을 마주할 수 있었다.
'미샤, 그리고...!'
살아 있어야 한다.
아모스는 다른 이들에 비하여 초라한 능력... 지난 1년간 꾸준히 단련해온 체력에 신체 강화를 더하여 달려 나간다.
아일라에 비하면 미천한 마법, 바위를 쪼개는 무인들에 비하면 하찮은 실력, 수인 아이들과 비할 수조차 없는 신체.
고작 이 정도가 아모스의 최선이다.
빈약한 최선으로 거리를 달리고 있자...
쿵 하는 낙하음과 함께, 쩌적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옆을 바라보면, 쥐 형상의 자그마한 재앙이 슬럼가의 건물로 떨어진 상황.
충격의 여파로 건물은 무너지고 있었고, 그 밑에는 미처 건물을 나오지 못한 모녀가 있다.
"모니카!"
"엄마!"
어미는 아이를 자기 품에 감싸 보지만, 아이를 지킬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자기 갈 길을 재촉하는가, 아니면 저 모녀인가. 아모스는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았다.
인간치고는 튼튼한 육신에 신체강화 마법을 최대한 두르고, 잔해를 향해 몸을 날렸다.
"하아아압!"
퍽! 아모스의 몸통과 잔해가 부딪힌다.
슬럼가 건물의 건축재라 그런 건지, 그다지 튼튼하지 않고 무겁지도 않다.
잔해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날아가고, 모녀는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았다.
"감사합니다..."
"피하시오! 어서!"
아직 재앙이 남았다.
크기가 작다 해도 허리 높이까지 올라오는 쥐를 보니, 징그럽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빨리 처치하고 가야 한다. 저 정도는 시온에서도...'
일반인이라도 힘을 합치면 잡을 수 있다는 E급 재앙. 아모스라면 능히 해치울 수 있을 것이다.
시온 자작령에서도 수인 아이들과 힘을 모아 더 큰 적도 잡아낸 적이 있으니, 충분히 가능하리라.
아모스는 여러 높으신 분들께 배운 격투술... 실상은 난투에 가까운 주먹을 연신 날려댔다.
하지만 E급이라 하더라도 재앙은 재앙. 현실에 대한 악의를 품은 판타스매터는 발톱을 세우며 맹렬하게 저항한다.
"꾸에에엑!"
"윽!"
슈트의 방검 기능은 눈먼 칼 정도는 막아 주지만, 송곳처럼 생긴 발톱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였다.
아모스의 팔에 작은 구멍이 뚫려 피가 줄줄 새어 나오고, 아모스의 온몸은 붉은색으로 물들어간다.
하지만 아모스의 기세는 줄어들지 않았다.
"우어어어!"
아모스는 질세라 소리 지르며 커다란 쥐 형태의 판타스매터를 쉼 없이 두들겨 팼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을 보던 슬럼가의 주민들이 가세했다.
"저 분을 돕자!"
"빗자루던 뭐던 다 끌고 나와!"
"죽어라! 이 쥐 새끼!"
이빠진 식칼. 대걸레. 숱이 적은 빗자루. 심지어 의자나 식탁을 들고나온 이들도 있었다.
밑바닥에 사는 모든 이들은 합심하여, 아모스의 앞에 있는 재앙을 내리치고 또 내리쳤다.
아모스 역시 그들과 함께 신체강화를 두른 주먹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인간들의 합공에 작은 재앙은 숨이 끊어졌고, 얼마 없는 부정의 마력은 흩어졌다.
"하아... 하아..."
"저기!"
"상처가 심하신데..."
"가야 하오."
주민들이 뭐라 말하는 것 같지만...
아직 아모스에게는 갈 길이 멀었다.
아카데미 거리, 미샤 베이커리를 향해 아모스는 달리고 또 달렸다.
목적지의 먼발치에 도착하자마자 확인한 것은... 천장이 무너지고, 유리창이 전부 부서진 베이커리. 그 처참한 현장의 바로 앞에서, 아버지가 딸을 끌어안고 토닥이는 중이었다.
소녀는 울고 있었다.
"미샤..."
살아 있었구나. 다행이다.
그런 생각을 해버린 찰나...
베이커리의 잔해에서, 머리 세 개 달린 지옥견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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