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4화 〉 2177. 작은 마음의 해방.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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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7. 작은 마음의 해방. (3)
지옥을 지키는 문지기의 형상을 본딴 판타스매터, 케르베로스.
지옥견의 네 발과 세 머리가 움직일 때마다, 부녀가 운영하는 점포는 점점 더 그 형태를 잃어갔다.
"미샤! 주인장!"
아모스의 외침은 부녀에게 닿지 않았다.
그들과의 거리가 너무 멀었기 때문이다.
아모스의 위치는 슬럼가 거리에서 아카데미 거리로 빠져나오는 한 골목길.
갑작스레 출몰한 재앙들로 인해 아카데미 거리는 혼란에 빠졌으니, 아모스의 목소리가 전해질리 없었다.
혼비백산해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는 사람들을 헤치며, 아모스는 부녀에게로 달려나갔다.
"안 돼..."
아모스가 달려가는 와중에도...
미샤 부녀는 자신들의 보금자리가 박살나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움직일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케르베로스의 전신에서 스며 나오는 부정의 마력이 그들의 공포감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
더군다나 미샤 부녀는 왕도민이다.
평생토록 두터운 성벽 안에서만 살아가기에, 좀처럼 재앙을 볼 일이 없는 왕도민.
그런 그들이 재앙의 비를 목도했다.
자기 눈으로 보고도 쉬이 믿을 수 없는 이 상황에, 넋이 나가 버린 미샤 부녀였다.
쿠쿵. 쿵.
중심을 잃고 버둥거리던 케르베로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운다.
케르베로스의 크기는 건물의 절반에 달하는 수준, 산산조각난 건물의 잔해는 지옥견의 둥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내 케르베로스가 세 개의 머리로 거리를 돌아 보니, 가까운 곳에 있는 먹잇감을 포착했다.
재앙이 몸을 움직이자, 그 주변에 있던 잔해들이 달그락거리며 소음을 낸다.
그렇게 재앙의 발걸음이 점점 다가오는데...
"아... 아빠."
"미샤. 도망가야 한다. 어서."
"바... 발이 안 움직여..."
낮게 깔린 울음소리에 오금이 저려온다.
미샤의 온몸은 딱딱하게 굳어 버리고, 두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미샤의 아버지가 딸 안고 도망쳐보려 하지만, 그 역시 한낱 일반인이다.
평소라면 가볍게 들어올릴 수 있는 딸이건만, 근육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르르르...]
재앙이 부녀의 앞까지 와버린 상황.
케르베로스는 공포에 질린 부녀의 모습을 감상하려는 듯, 우뚝 멈추어 서있다.
"미샤!"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가 옆으로 돌아간다.
미샤로부터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는, 피투성이가 된 아모스가 달려오고 있었다.
"아저씨...?"
"어서 피해!"
하지만 아모스의 목소리는 닿지 않는다.
단순히 물리적인 거리 때문은 아니었다.
바로 앞에 있는 케르베로스의 위압감이 그의 목소리를 차단할 정도였으니까.
미샤로서는 익숙한 얼굴을 본 탓에 막혀 있던 눈물이 터져 나올 뿐, 아모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들리지않았다.
마찬가지로 아모스를 알아차린 케르베로스.
하지만 이 괴수에게는 '더 크고 맛있어 보이는 먹잇감이 오는구나'라는 감상뿐.
눈앞의 먹잇감들이 아쉽긴 하지만...
어차피 다른 먹잇감도 많으니, 이 둘은 가지고 놀다 버려도 될 것 같다.
부녀를 걷어차버릴 앞발이 들리고.
'안 돼...'
아모스의 뇌리에 절망이 스쳤다.
이곳까지 쉼 없이 달렸고, 도중에 작은 재앙 한 마리를 죽이다 체력까지 소진했다.
후들거리는 다리도, 구멍 뚫려 피가 철철 흐르는 팔에도,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저곳까지. 다섯 걸음이나 남았다.
짧기만 한 거리가.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더 빨리...!'
크기만 한 몸뚱이는 둔하기까지 해서, 유일하게 배운 신체강화를 써도 느리다.
이딴 속도로 뛰어가서 구하려 해봐야, 저곳의 부녀는 형태만 남아있을 것이다.
반면, 어린 미샤는 필사적으로 달려오는 아모스를 보며 어렴풋이 깨달아 버렸다.
아마 지금 이 모습이 마지막일 거라고.
처음 만난 그때부터 지금까지.
다른 이들에겐 '고작 1년'일 뿐이지만, 소녀의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시간.
그동안 아모스 아저씨는 '다음에 만나자'는 자신과의 약속을 성실하게 지켜 주었다.
하지만 이제 마지막이다.
두 팔에 들려 하늘을 나는 것도. 반갑게 맞이하고, 웃으며 헤어지는 것도. 더는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고마운 손님과의 작별 인사는 웃으면서.
경직된 얼굴에 애써 웃음을 띄우는 미샤.
아모스는 눈물로 가득한 웃음을 보았고, 나약해져 가던 자기 마음을 채찍질했다.
'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저 아이를 죽게 내버려 둘 수 없다.
아니, 설령 죽음이 아닐지라도. 저 아이에게 조그마한 상처마저 허락할 수 없다.
아픔. 고통. 상처. 죽음...
지독한 불행을 저 해맑은 아이에게 감당토록 하는 것은 부조리하다.
만약 누군가 그 불행을 감내해야 한다면, 타인의 불행 앞에 언제나 침묵해온 자신이 대신해야 마땅하다.
케르베로스의 앞발이 움직이고, 아모스는 두 사람의 방패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몸을 내던졌다.
쓸데 없이 큰 몸은 방패로 쓰기에 충분하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신체강화마법이 한계를 넘어버리고, 그 힘을 버티지 못한 몸이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것은 신경쓰지 않는다.
한 달음에 날아 두 사람의 앞에 제때 도착할 수 있었으니, 오히려 좋다.
이제 저 흉폭한 일격이 내게 꽂히겠지.
한낱 평민일 뿐인 아모스는 그 충격에 온몸이 흉측하게 뭉개질 게 뻔하다.
'와라...!'
하지만 그런 것쯤은 괜찮다.
부녀가 도망칠 틈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저 일격을 버텨 내리라.
아모스는 부녀의 앞에 섰다.
"아저씨!"
두 팔을 모아 자세를 잡는 아모스.
미샤는 차마 아모스의 모습을 끝까지 볼 수 없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뼈가 부러지고, 살점이 뭉개지는 소리가 들렸다.
재앙과 아모스 아저씨의 충돌...
아니, 충돌은 서로 힘을 비교할만한 대상들 사이에서 쓰이는 말이니까.
미샤보다 몇십배는 커 보이는 재앙이 앞발을 휘두른 지금 상황에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그러니 미샤는 전부 끝났다고 생각했다.
아모스 아저씨가 버텨내지 못한 괴물의 앞발은, 이제 자신들 부녀마저도 날려버릴 것이다.
하지만.
정말이지 이상하게도.
아무런 충격이 전해지지 않았다.
"... 어?"
조심스럽게 실눈을 떠보면, 제일 먼저 아모스의 등이 시선에 들어왔다.
자연스럽게 그 너머를 바라보면...
재앙의 앞발은 커다란 벽에 부딪히기라도 한듯 뼈가 뒤틀리고 형태가 무너져버린 상황.
커다란 지옥견의 재앙과 아모스 아저씨의 사이에는 웬 칠흑의 마력이 요동치고 있었다.
"아저씨...?"
"……."
아모스는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건만, 재앙의 일격은 칠흑의 벽에 가로막혀 버렸으니까.
상황이 와닿지 않는 건 케르베로스 역시 마찬가지.
괴물은 눈앞의 미물로 인해 자신의 손이 망가졌다는 사실을 쉬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케르베로스는 넝마가 된 오른발을 다시금 움직였고, 아모스는 반사적으로 두 팔을 교차하여 들어올렸다.
이번에도 들려오는 둔탁한 충격음.
으드드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케르베로스의 짓이겨진 살점과 핏물이 튀어 오른다.
"설마..."
아모스는 무언가를 시험해보는 듯, 이리저리 팔을 움직였다.
'내 몸에... 따라오고 있어?'
마치 아모스를 지키기 위한 결계라도 되는 듯, 칠흑의 마력은 주인의 몸을 감싸기 위해 시시각각 형태를 달리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모스는 캐서린 대주교의 말을 되새겼다.
'당신에게 꼭 이루고픈 목표가 생긴다면, 그 누구보다 간절해지는 순간이 온다면, 당신의 심상은 한줄기 마력이 되어 피어날 거예요.'
이 어두컴컴한 마력과 함께라면, 다른 이들을 불행으로부터 지킬 수 있다는 걸까.
아모스는 그 사실이 제대로 와닿지 않았다.
[그르르르....]
케르베로스는 미물에게 질 수 없다는 듯, 부정의 마력이 잔뜩 담긴 흉흉한 이빨을 드러냈다.
작은 미물의 심상을 물어 뜯기 위함이다.
아모스는 오른손을 있는 힘껏 쥐었다.
지금껏 무기를 다뤄본 적도 없고, 이 심상 마법을 움직이는 방법조차 모르니까.
하지만 그런 아모스를 응원하기라도 하듯, 심상 마력이 그의 주먹에 깃들었다.
케르베로스와 아모스.
재앙은 미물을 물어 뜯기 위해 움직였고, '한낱 평민'은 괴물에게 맞서기 위해 온몸의 체중을 실어 주먹을 휘둘렀다.
혼탁한 마력과 칠흑의 마력의 격돌.
하지만 아모스의 마력은 부정의 마력이 주인에게 닿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는 주먹은 삼두견의 머리 중 하나에 닿았고. 케르베로스는 그 주먹에 밀려나지 않기 위해 네 다리와 목에 온 힘을 주었다.
하지만 저항하면 저항할수록, 아모스의 일격은 지옥견의 두부(??)에 깊이 깊게 파고 들었고. 괴수의 살점은 흐트러지고, 골격마저 분쇄되어 사라졌다.
머리를 잃은 충격에 휘청거리는 케르베로스.
하지만 아모스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사력을 다해 연신 주먹을 휘둘렀고, 그때마다 지옥견의 마력과 몸통은 조금씩 흩어져 갔다
그렇게 지옥견의 형태가 전부 사라졌을 즈음...
털썩
아모스는 자리에서 쓰러졌다.
'힘이 안 들어가...'
슬럼가에서 하급 재앙을 때려잡기도 했고, 한계 이상으로 신체강화마법을 사용한 탓에 온몸이 삐걱거린다. 뼈마디는 끊어지고, 근육도 찢어졌으리라.
그리고 그 사실을 자각한 순간, 격한 고통이 몰려왔다.
"으으으윽!"
"아저씨! 괜찮아요!?"
"괜찮... 으아아악!"
"미샤, 손대지 말거라. 몸이 상한 것 같구나. 일단 여기서 몸부터 피해야할 것 같은데..."
가장 강한 케르베로스가 죽었을 뿐, 거리에는 다른 소재앙이 넘쳐나는 상황.
미샤의 아버지는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꼬리침에서 탁한 마력이 뚝뚝 흘러내리는 전갈 한 마리를 발견했다.
이윽고 전갈의 재앙은 미샤 부녀와 아모스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런..."
"아... 아빠. 저희 어떻게 해요?"
미샤의 아버지는 이리저리 흩어져있는 잔해 속에서, 쇠막대기 하나를 손에 쥐었다.
"미샤. 아모스 씨를 데리고 피하거라."
"안 될 일이오. 세 명이서 같이 피해야..."
"지금 그 몸으로 어떻게 싸우시려고."
아모스는 자신과 딸을 지키려고 몸을 내던진 은인. 그런 그를 내버려두고 도망칠 수 없다.
한 명의 가장이 각오를 다진 순간, 그의 옆에 두 사람이 내려섰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와... 왕자님? 거기다 공자님까지..."
가끔 일반 귀족의 모습으로 변장한 채 가게를 찾아오는 알렉산더와 기디언이었다.
거기다 한 여성이 미샤의 근처로 왔으니.
"아모스, 미샤! 둘 다 괜찮니!?"
"아일라 언니!"
"누님..."
"아모스. 정신 차려!"
"아저씨. 죽으면 안 되요!"
이제 살았구나.
별안간 찾아온 안도감에, 아모스는 기절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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