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215화 (215/215)

〈 215화 〉 2­178. 그곳에는... (1)

* * *

2­178.그곳에는... (1)

거리에 도착한 것은 세 사람만이 아니었다.

숙소에서 출발한 모든 이들이 여기 모인 상황.

그중에 응급처치에 관한 지식이 있는 아리아가 아모스의 상태를 살폈다.

"신체강화 마법을 한계 이상으로 사용하신 것 같네요. 치유 마법진이 없으면 손대기도 어려울 지경인데, 급히 나오느라 챙기지를 못 했네요..."

"치유 마법진이라면, 여기요."

"이 귀한걸 아일라 씨 개인이 어떻게...?"

"저희는 한 장씩 상비하고 다녀요."

방금 이곳에 도착한 알렉산더가 보기에도, 아모스의 몰골은 정상이 아니었다.

물린 자국과 피로 가득한 옷. 사지에 힘이 전부 빠져 축 늘어진 몸. 흰자위를 드러낸 채 정신을 잃은 그 모습은 죽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알렉산더는 그를 살피고 있는 아리아와 아일라에게 물었다.

"아모스 씨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제때 조치를 취해서 목숨은 건졌습니다. 그래도 안정이 필요하니 이곳에서 이탈해야..."

그녀의 옆에서 미샤가 울음을 터뜨렸다.

"아일라 언니. 아저씨 죽는 거 아니죠? 저랑 아빠를 지키려다 죽으면 안 되잖아요! 네!?"

"괜찮아. 미샤. 아모스는 안 죽어."

재앙의 비는 그쳤거건만.

하늘이 미샤의 눈물에 호응하듯, 빗물이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알렉산더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자기 안위를 생각하지 않고 몸을 날리고, 맨주먹을 휘둘러대는 그의 모습은 가히 영웅에 가까웠다고.

그런 용기가 있었기에, 평민 출신이었음에도 심상 마법이 발현했으리라.

반면 자신은 어떠했는가.

왕궁의 상황을 모른다며 스승을 뒷전으로 하고, 반군에게 인질로 잡히면 안 된다며 도망을 염두에 두었다.

'내가 틀렸던 건 아니다. 오히려 스승께서는 내 판단이 옳았다고 하시겠지. 그분은 원래 그런 분이시니까...'

왕족의 목숨은 본인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알렉산더는 이 명제를 다름 아닌 시하로부터 배웠다.

수많은 백성들을 이끌어야 하는 자이기에, 왕족은 자기 몸을 온전히 보전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알렉산더는 자신의 판단이 부끄러웠다.

그는 자신을 따르고 있는 이들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거리의 재앙을 격퇴하겠습니다."

"왕자님. 방금 전과 말씀이 다르시지 않습니까!"

"기디언. 만약 온백성이 재앙에게 죽어 사라진다면, 이 나라에 왕족과 귀족이 있을 자리도 없다. 거기다..."

천천히 앞을 향해 나아가는 알렉산더.

이내 그는 황금빛 심상 마력이 깃든 검을 꺼내더니, 전갈의 재앙을 베어냈다.

그리고 검을 높이 치켜 세우자, 어둠을 밝히는 빛이 거리를 향해 퍼져나갔다.

혼비백산하여 발걸음을 옮기던 왕도민 중 한 사람이 그 빛에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저분은...!"

"왕자님이다. 왕자님께서 우리를 구하러 오셨어!"

"프라시스 가의 도련님도 함께 오셨다!"

"저기. 기사단의 신성들도 있어!"

공포만이 가득했던 거리에는 어느샌가 안도감이 섞여 나오고, 왕도민들은 알렉산더 일행 근처로 모여들었다.

알렉산더는 시원한 미소를 띄우며 기디언을 비롯한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이렇게 된 이상, 우리가 도망치는 모습을 보일 수도 없지 않나."

"……."

"왕족이 백성들에게 등을 보였다. 그런 말이 나와서는 안 될 일이지."

기디언은 절로 말문이 막히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재앙의 비를 목격한 순간부터 내내 어두운 표정이었던 그가 지금에서야 환한 웃음을 보이고 있으니까.

기사 레온은 알렉산더를 만류했다.

"왕자님. 그 마음은 알겠지만 지금은 위험합니다. 거리에 반군이 섞여 있을 수도..."

"레온 경. 잠깐만요."

"왜 그러십니까. 기디언 도련님."

"지금은 왕자님 말씀에 따르는 게 낫습니다."

"기디언 도련님까지..."

당신만은 믿고 있었는데,레온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기디언을 보았다.

하지만 기디언은 알렉산더의 선택을 존중하고 싶었다.

다른 이들의 불행에서 눈을 돌리지 않는 알렉산더니까. 기디언 역시 그런 그의 성품 덕에 일어설 수 있었으니, 지금은 그의 의지를 꺾고 싶지 않았다.

거기다...

지금 이 선택이 틀린 것 같지는 않다.

"지금껏 역사에서 재앙을 '만든' 자는 있었지만, 직접 '길들인' 자는 없었습니다."

"그런 걸 지금 왜..."

"거리의 소란은 눈속임이라는 거죠. 양동입니다."

"……."

"또한, 반군이 저희 동선을 파악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진짜 목표는 왕궁. 그렇다면 공주님과 선생님이 위험합니다. 거리를 정리하고 최대한 병력을 모아 왕궁을 탈환해야겠죠."

레온은 눈살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확실히 주변에는 살려달라고 몰려오는 왕도민들만이 있을 뿐, 반군으로 의심되는 이는 없다.

하지만 레온의 걱정거리는 끊이지 않았다.

'왕도민으로 위장한 자객이 있을 수도 있어. 거기다 만약 왕자님께서 다치기라도 하신다면...'

소나기까지는 아니지만, 비가 오는 탓에 사방이 흐리게만 보인다.

한 사람 기사로서 수중전의 어려움을 잘 아는 레온이다 보니, 자꾸만 걱정이 앞서게 된다.

꿀꺽. 자기도 모르는 사이 침을 삼키는 레온. 그는 마지막으로 왕자와 기디언을 만류했다.

"저는 여러분의 호위로서 위험한 행동을 허가할 수 없습니다. 함부로 움직였다가 다치기라도 하신다면..."

하지만 레온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우리가 있으니 괜찮소."

외팔이 무인이 그의 말을 끊었기 때문이다.

윤흠서는 유나를 잠시 돌아보았다.

그러자 유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무언의 허가를 받은 윤흠서는 말을 이어갔다.

"왕자께서 전면에 나설 필요는 없소. 모험가 길드와 왕도 치안본부... 두곳으로 향하는 길을 우리가 앞장서서 청소한다면 그만이지 않소. 그러면 자연스럽게 거리를 수습할 수 있겠지."

"가능하시겠습니까?"

"물론. 대신 레온 경께서는, 후미에서 아가씨를 지켜 주시오."

"... 알겠습니다."

레온이 마지못해 답하자, 윤흠서는 미샤의 아버지에게 물었다.

"주인장. 근처에 몸을 숨길만한 곳이 있겠소?"

"아는 분이 있긴 합니다."

"그렇다면 아모스와 함께 몸을 숨기시오. 아일라, 자네는 수인 아이들과 함께 아모스를 지키게."

"하지만 대장님. 제가 없으면..."

"괜찮다. 여기 오면서 계속 하늘을 확인했다만, 중급 이상의 재앙은 저 지옥견 한 마리가 끝이었다. 하급 재앙 뿐이라면 엄호 없이도 충분해."

아일라는 깊게 잠든 아모스를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그를 지켜야 하는 상황.

미샤 부녀에게 아모스를 맡기기엔 이 거리에 남은 재앙이 너무나도 많다.

그리고 누군가 남아야 한다면, 미샤 부녀와 절친한 사이인 아일라가 이곳에 남는 게 좋겠지.

"그럼... 알겠습니다."

대화를 마친 윤흠서는 레온을 돌아 보았다.

"레온 경."

"네."

"우리 속도가 매우 빠를 터이니, 왕자님을 비롯한 다른 분들을 보좌하여 잘 따라오셔야 할 거요."

"... 예?"

사람이 가득한 거리에서 자기들을 잘 따라오라니. 레온이 듣기에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말을 마친 그는 다른 부대원들에게 지시했다.

"모든 대원들에게 알린다. 지금부터 왕도 중심부까지 재앙을 제거하며 '전속력'으로 나아간다!"

""예!""

윤흠서는 상가 위로 뛰어올랐고, 다른 대원들 역시 지붕을 길 삼아 달리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는 와중에 미끄러짐 없이 몸을 움직이는 것도 신기한데, 재앙을 발견할 때마다 지붕에서 내려와 단칼에 적을 내려친다.

점점 멀어져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아이들과 레온은 멍한 얼굴을 띄우게 되었다.

"윤 부장...?"

윤흠서의 조력에 내심 안도하고 있었던 유나까지도 말이다.

뒤늦게 정신 차린 기디언과 레온이 말했다.

"거리로 다니면 통행이 불편할 테니, 저게 정답이긴 하네요..."

"이럴 때가 아닙니다. 저희도 어서 따라가야 합니다."

알렉산더는 멍한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까지 지붕으로...?"

"왕자님. 지금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어서요!"

역사가 뒤바뀐 탓일까.

알렉산더는 팔자에도 없던 지붕을 타게 생겼다.

* * *

그사이 별이 떨어진 협곡.

일을 마친 고블린 노인은 어거스트 기사단장에게로 다가가 앙상한 손을 내밀었다.

"자네. 괜찮나?"

"……."

어거스트는 함부로 그 손을 잡지 못했다.

자기 눈으로 직접 목격하긴 했지만, 고블린 노인이 일으킨 이적을 차마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식칼 한 자루로 힐데스비니를..."

"방금 저건 몸집만 큰 가짜에 불과했으니까. 만약 저게 진짜였더라면, 나는 손도 쓰지 못했을 거라네."

고블린 노인은 자신을 낮추고 있지만...

작은 재앙 무리를 도살한 고블린의 칼끝은 막힘없이 흘렀고, 티폰이 빚어낸 힐데스비니의 형상마저 해체해 버렸다.

그 사실을 증명하는 듯, 근육 단위로 조각난 멧돼지 재앙의 살점은 검은 마력이 되어 흩날리는 중이다.

어거스트 기사단장이 알기로, 이 정도 실력을 가진 소귀小?는 단 한명뿐이리라.

"에퀼리아의 도귀??..."

"허어. 아직도 그 이름을 기억하는 자가 있다니. 하지만 그런 살벌한 이름은 버린 지 오래라네. 족히 십 년은 지난 일이야."

그리 머지않은 옛날.

세상 모든 이들이 각자 마음을 채워 심상 마법을 발현시키려할 때에, 홀로 다른 길을 걷던 괴짜 고블린이 있었다.

그가 걸었던 길이란, 마음속의 번잡한 마음을 비워내어 세상 모든 이들을 평등하게 대하려는 '내려놓음의 길'이었다.

깨달음을 얻은 고블린의 칼은 이 세상 모든 생명에게 고통 없는 죽음을 선사할 경지에 이르렀고, 사람들을 그를 두려이 여겨 도귀라는 별명을 붙였다.

믿거나 말거나. 이 괴짜 고블린의 전설은 세간에 미신처럼 전해져 오는 이야기지만, 눈앞의 노인은 그 이름을 버렸다고 말한다.

'이럴 때가 아니지...'

정신을 차린 어거스트 기사단장은 고블린의 손을 잡고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폐하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네의 왕을 구한 것은 내가 아닐세. 내 친구 놈이지. 그리고 아직 감사를 표할 때가 아니야."

저 멀리 계곡 안쪽을 노려보는 노인.

그곳에는 한 여인의 형상을 흉내낸 재앙이 흉측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고블린 노인은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아쉽게도..."

"내 칼은 대재액에게 닿지 못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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