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탈주닌자-2화 (2/119)

〈 2화 〉 2화. 타락한 닌자마을 (1)

* * *

“와자뵷!”

닌자의 영혼을 담아 단검을 휘둘렀다. 단번에 잘려 나가는 나무통.

“이 씨발새끼. 내가 좆같은 기합 넣지 말랬지!”

느닷없이 두뇌에 찾아오는 초강타.

“오각!”

고통에 육체가 비명, 아니 그냥 생목으로 비명을 질렀다.

“성공 못했으면 나무통처럼 네 대갈통도 쪼개졌을 거야. 알아들어?”

말할 때마다 대머리 교관의 성난 팔근육이 울퉁불퉁 움직인다.

“한 번만 실수해봐라. 아주 아작을 내놓을 테니까.”

“닌닌.”

‘비효율적으로 펌핑된 근육, 네 녀석은 닌자 탈락이다.’

이 새끼는 제 맘에 들지 않는 닌자 후보생의 머리를 손수 박살 내기 위해 근육을 기른 게 분명하다.

“그래도 기술의 정밀함과 이해도는 역대 최고입니다. 급격한 성장의 부작용이라 생각하고, 천천히 교정시키면 될 거 같아요.”

말없이 지켜보던 여자 교관이 나무통의 절단면을 장갑을 낀 손으로 살살 문지른다.

강캐의 상징인 실눈, 존댓말, 장갑, 절도 있는 자세와 복장을 전부 다 갖춘 여자.

이게 진짜 닌자의 귀감이다.

“닌닌!”

이 타락한 닌자마을에서 그나마 스승으로 느끼고 있는 사람이다.

카카시까진 아니더라도 까까시 정도는 되지 않나 싶다.

“그런데, 뭔가 부자연스럽네요. 말끔하게 잘렸긴 하지만 일부러 속도를 조절한 느낌이에요. 맞나요?”

까까시가 조심스럽게 나무통을 내려놓고 나에게 직접 묻는다. 진짜배기 숙련된 살인 병기답게 동작도 은밀하고 차분하다. 눈도 작은데 눈치도 빨라서 골치 아프고.

“중간에 어떻게 하면 더 빠르게 벨 수 있을지 고민을 좀 했습니다. 실전에서는 한 번의 실수가 치명적으로 다가오니까요.”

하지만 난 거짓말 고단수. 닌자가 되기 위해 일반인 흉내를 10년 넘게 해오고 있는 사람이다.

닌자축지법이나 그와 같은 인술을 사용하다 유인원들에게 들켰을 때 의심을 피하고자 임기응변으로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던 노력이 여기서 발휘됐다.

여동생은 내가 만화를 많이 읽어서 미쳐버린 사이코패스 오타쿠로 알고 있다. 당연히 위장 신분이다.

“음. 뭐 그럴 수도 있겠어요. 조언을 좀 하자면, 지금 상태에서는 칼을 내지를 때보단 회수할 때 더 빠르게 하는 게 좋아요. 나무통과는 다르게 움직이는 대상이라면 일격에 죽일 수 없다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하니까요. 일단은 후속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세요. 빠르게 베는 건 그다음 단계죠.”

“닌닌.”

정성을 담은 긴 피드백은 고맙지만, 난 나보다 약한 자의 조언 따위 듣지 않는다. 이제 나는 까까시보다 완벽히 강하다.

“닌닌은 미친놈이, 567 넌 내가 계속 지켜본다. 뭐해! 식사 준비!”

대머리 교관의 샤우팅에 오늘의 수색조(밥 당번)로 지목된 애들이 헐레벌떡 오늘 광산 바깥에서 잡아 온 짐승들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밥경찰 실화냐.”

보자마자 한숨이 터져 나온다. 짐승이라는 말에 토끼나 사슴, 멧돼지를 연상하면 안 된다. 이곳은 야만과 광기가 지배하는 이세계.

애미인 곤충여왕조차도 자연적으로 도태시킨 비주얼의 왕 애벌레 시리즈가 오늘의 점심이다.

닌자 후보생들끼리 암석에다 식탁보를 올려놓고 적당한 돌에 앉았다.

오늘의 반찬은 녹색과 파란색의 으깨진 고기 수프. 이세계에 온 지 5개월이 지났는데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딴 거에 익숙해지면, 요괴가 되는 거다.

“식사 맛있게 하십쇼.”

대꾸도 없이 음식을 집어 드는 후보생들. 부모와 함께 사교성마저 잃은 녀석들이라 아무도 내 점심 인사를 안 받아준다.

그들의 탁한 눈동자에는 일말의 닌자애도 보이지 않았다.

닌자의 길을 저버린 완전한 타락­닌자마을의 현실이다.

“어이, 음침녀.”

“...왜.”

내 대련 파트너로 지목되어 어쩔 수 없이 말을 받아주는 568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의 창백한 피부와 어마어마한 다크서클은 꿀잠을 자던 순간 부모를 야쿠자에게 잃어 다시는 편안한 잠자리에 들지 못하는 아이 이야기가 생각나게 한다.

“뜬그림자 연습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이 세계는 마나라고 불리는 미지의 에너지가 존재한다. 마나를 선천적으로 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는 반면 대다수는 후천적인 학습으로 인해 습득한다.

뜬그림자는 이 타락 닌자마을에서 가장 중요히 여기며 오랫동안 가르치는 위장술이다. 대충 닌자 비기 같은 거다.

투명해지는 초능력처럼 주변 사물과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도와주며, 어둑한 밤에 소리를 내지 않고 걸을 수 있게 해준다.

아쉽게도 상태창은 이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혹시나 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 외쳐봤는데 대머리 교관의 철권만 받았다.

사갈의 꼬리에서 주로 애용하는 마나 발현법은 구타와 고문으로, 일정 기간 내에 깨우치지 못하면 죽는 양자택일의 극단적인 방법이다.

운명의 장난인지 567은 마나를 발현하자마자 얼마 되지 않아 나에게 육체를 빼앗긴 거 같다.

“아직 익숙하지가 않아."

고민하다가 말하는 568. 말은 저래도 나의 다음 가는 우등생이다.

슈퍼닌자의 자질을 갖춘 나야 후보생들이 조뺑이치기 한참 전에 뜬그림자를 마스터했지만, 다른 놈들은 아직도 숨소리를 죽이는 것에 그쳐있다.

568은 걷지는 못해도 사물과 조화하는 것에 성공했다.

“정말로 일천한 재능이로다.”

일부러 깔보듯이 크게 말했다. 무심하게 수프만 뒤적이던 568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다.

그렇지만 그녀가 화내는 걸 보려고 한 말은 아니다. 이 여자는 그렇게 고통스러운 훈련을 겪으면서도 아직까지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 감정을 끌어내기 위한 고의적인 트롤링이다.

“하지만 내가 도와준다면 어떨까?”

감정이 죽어버린 닌자는, 쓰레기 닌자다. 다른 후보생들은 수많은 구타와 고문으로 희로애락을 잃었다.

공감 능력이 결여된 기계가 된 닌자는 덜떨어지는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무계획적인 변수에 대처할 수 없게 된다.

사갈의 꼬리가 만들어낸 닌자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계산하지 못하는 삼류 고물일 뿐이다.

희로애락을 간직하면서 사회의 흐름과 사람의 행동을 읽어내고, 결정적인 순간에만 무념(無?) 그 자체가 되는 닌자가 일류다.

그러니 그녀는 여기의 닌자 후보생들과는 다르게 아직 슈퍼닌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혼자서 세상과 고달픈 싸움을 해온 나는 그녀의 가능성을 결코 좌시하지 않는다.

“...그러면 나야 고맙지.”

내 마음을 아는지 음침녀도 바로 수락했다.

“2시간 후에 날 따라오도록.”

멋지게 말한 후 뜸 들이지 않고 바로 돌아섰다. 멋도 멋이지만 이 끔찍한 음식을 더는 먹고 싶지 않았다.

***

대충 훈련하는 척하면서 넋 놓고 있으니 음침녀가 쭈뼛거리면서 다가왔다.

“교관들은 전부 천막 안으로 들어갔어.”

교관, 이 십새끼들은 이제 점심까지만 직접 가르치고 나머지는 개인훈련 시간으로 때워버린다.

그래놓고 자기들끼리 폐광산 입구에 걸쳐있는 편안한 간이숙소에서 시간을 보낸다.

나야 이미 훈련은 의미 없는 단계에 이르렀지만, 닌자스승들은 후보생들을 최선을 다해 가르칠 의무가 있다. 의무와 책임을 상실한 닌자사회.

이 부분에서는 까까시도 솔직히 대머리 교관과 다를 바가 없다.

닌힘숨을 잠시 깨려고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후보생들도 각자 훈련에 매진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잘 봐라.”

최대한 멋지게 네발로 기어서 암석 사이로 들어가 뜬그림자를 펼쳤다. 이렇게 음영이 지기 쉬운 곳이 뜬그림자에 최적화된 장소다.

“닌자 카멜레온 모드.”

그 말을 끝으로 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어, 어떻게?! 교관들보다 잘하잖아...”

놀라는 반응이 뜨거우니까 살맛 난다. 옆에서 감탄사를 연발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재주 부리는 재미가 있는 거다.

그녀가 내 움직임을 쫓으려고 노력하는 사이에 난 슬금슬금 그녀의 뒤로 다가갔다. 손가락으로 볼을 찌르려고 했지만, 너무 뻔한 패턴 같아서 그냥 뒤통수에 딱밤을 갈겼다.

“악!”

힘 조절에 실패했는지 눈에 띄게 아파했다.

“안 보였지? 성능 확실하구먼.”

애써 무시하고 멋지게 자세를 잡으며 그녀 앞에 섰다.

“자, 이제 따라해 봐.”

뭐라 반론할 시간조차 주지 않으려고 바로 실습으로 들어갔다. 하나하나 따지면 인생이 피곤해진다 생각하고 넘어가 줬으면 좋겠다.

“그것만 보고 따라 하라고? 더 자세하게 알려줄 수는 없어?”

그녀가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툴툴거렸다. 더 자세하게? 사실 평소에 남들에게 뭘 가르쳐본 적이 없어서 요령을 모르겠다.

“그냥 한 번 더 보고 느껴.”

나는 이번에는 벽에 붙어서 뜬그림자를 사용하고 기어 올라가서 천장에 매달렸다. 완벽한 닌자박쥐의 자세.

“필요한 만큼은 보여줬다.”

쇼맨십을 위해서 난 그녀의 머리 바로 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 잘하긴 하는데, 다시 봐도 잘 모르겠어.”

“느리구나. 깨닫는 것조차.”

“...설명이 더 필요한 거 아니야?”

“아, 존나 답답하네. 일단 한 번 해보라니까.”

답답녀가 날 한 번 쓱 노려보더니 바위 사이로 가서 뜬그림자를 썼다. 내 눈에는 위치가 잘 보이지만, 이 정도만 해도 교관이 아닌 이상 눈치채기 힘들 거다.

“이제 움직여봐.”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음침녀. 조금의 발소리나 공간의 이질감이 느껴지면 바로 탈락이다.

난 마나로 시각과 청각을 강화해서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갔다.

바위 사이를 부드럽게 오르고 바위 위로, 벽으로 다시 붙은 다음 오른쪽으로, 서툴지만 확실하게 이동중이다.

“그래. 잘하네. 뭐든 느낌이라니까.”

움직임이 느려서 아직은 부족하지만 장족의 발전이다. 난 닌자스승으로서의 재능도 있는 게 아닐까?

“후.”

음침녀가 뜬그림자를 해제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마나량이 부족한 모양이다.

“고마워.”

“이 정도면 충분하니 이만.”

근엄하게 말하고 바로 뒤돌았다. 이제 슬슬 재미없어지니까 잠이나 자야겠다.

소재가 바닥나니 뜬그림자 상태에서 자기위로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슬슬 질린다.

“잠깐만.”

“시간 낭비. 곤란.”

음침녀가 눈알을 굴려서 빠르게 주변을 둘러봤다.

“나도 조언 하나 해줄게. 그렇게 강해졌는데 왜 여기 있는건지 모르겠지만, 나갈 수 있으면 빨리 나가는 게 좋을 거야. 며칠 전부터 밤마다 후보생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어.”

“뭐? 그 거짓말 진짜야?”

인사도 안 받아주는 삼류 고물 후보생들에게 관심을 끊은 지 오래라 몰랐다. 교육생들 수가 대충 5~60명은 되는데 음침녀가 그렇게 말하니 줄어든 거 같기도 하다.

아직 교육과정이 다 끝나지 않았다고 교관들이 말한 거 같은데 애들을 데려간다니?

내가 나설 차례인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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