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 6화. 사람이 다섯 명이나 모이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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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상인은 될 수 없었다.
저기요. 로빈 씨? 열정 있는 건 좋은데, 단순한 계산조차 못 하는데 웬 상인이에요? 저쪽 여자애는 괜찮은데 로빈 씨는 힘들 거 같아요. 아무리 우리가 초보 상인들을 지원해준다고 하지만 아예 아무것도 몰라서는...
야, 야, 안된다. 가라.
아니, 까막눈인데 상인!? 장님이 검사가 되는 게 더 쉽겠다. 뭐? 자토이치? 하…. 베르톨트! 내쫓아!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이세계에서 문과적 두뇌를 가진 닌자가 직장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30번째 퇴짜를 맞았을 때 먼저 지쳐버린 오르페가 아예 모험가를 하는 게 어떻냐고 물었다.
오르페는 내가 지어준 야쿠자 슬레이어의 가명이다. 야쿠자 슬레이어를 줄여 야스라 부르려고 했지만 왠지 맘에 안 들어 해서 후보생 시절의 숫자 번호인 568을 따서 만들어줬다. 오르피아도 잠시 고민했는데 언젠가 들어본 적 있는 거 같아서 패스했다.
난 굳이 가명을 만들기 귀찮아서 ‘신노빈’ 세 글자로 다니려고 했는데, 오르페가 신노빈이 어떻게 사람 이름이냐고 따져서 그냥 이세계식 어레인지를 가해 로빈이라는 이름으로 정했다. 그러니 대외적인 이름은 이제 로빈이다.
아무튼 들어보니 모험가라는 건 생각보다 편리한 직업이었다. 길드라는 인력사무소에서 일거리를 받아서 몸으로 때우면서 돈을 버는 전형적인 프리랜서 일꾼. 지구의 노가다랑 별로 차이 안 난다. 아침에는 모험가로, 밤에는 탈주 닌자로 활동하면 된다 싶어서 바로 오르페와 함께 길드로 달려갔고, 그대로 견습 모험가가 되었다.
“로빈이라고 하였소?”
“닌?”
이 비실비실한 안경잡이 아저씨의 이름은 새튼, 오늘 같은 퀘스트를 맡은 조별과제 팀원이다. 이 세계에는 5회 이상의 퀘스트를 완료하지 못한 견습 모험가들은 꼭 5명씩 모여 다녀야 한다는 룰이 있다.
“모험가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닌닌.”
그걸 씨발 내가 어떻게 아냐. 원래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닌자인 티를 내면 안 되지만, 오르페에게 들어보니 이 세계엔 닌자라는 개념이 없는 거 같다. 뭐 그러면 닌닌 정도야 써도 되지 않을까? 어차피 들을 놈들은 착한 놈 아니면 죽은 놈뿐이다. 까까시는 죽일 년 후보니까 이미 죽어있는 거로 쳐도 된다.
“...이쪽이 맞는 거 같은데요…? 지도랑 같은 장소니 맞겠죠?”
내비게이션과 원거리 공격을 담당하는 궁수 지나가 조별과제 팀장인 보니타의 눈치를 보며 멈췄다. 얘는 묘하게 자신이 없고 게을러 보인다.
“맞아요. 그래도 길잡이는 좀 더 확신을 가지고 말해야 해요. 다음부터는 자신감 있게 말해주세요.”
가죽갑옷과 할버드로 무장한 친절한 스윗거인녀, 보니타. 우리 견습 모험가 파티의 유일한 길드소속 모험가다.
모험가라고 위험한 일만 하지 않는다. 요양원에서 할머니 발 씻겨주기나 농장 염소 똥 치우기 같은 일도 길드에서 소개해준다. 문제는 크게 한탕 해서 목돈을 만들려는 견습들이 요괴퇴치 퀘스트에 손을 대다 전멸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거다. 그러니 길드에서도 손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해결책은 길드소속(철밥통)의 모험가 하나를 견습 네 명 사이에 끼워 넣어서 트롤링을 방지하고, 첫 퀘스트의 생존율을 늘리는 거였다. 그냥 견습에게 요괴퇴치를 금지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요괴퇴치가 길드에 가져다주는 이익은 꽤 큰 편이다. 어차피 실패해도 죽는 건 알 바 아닌 놈들이고, 성공하면 길드 직원들의 실적이 올라간다. 일개 백성의 목숨 따위 샐러리맨의 한 끼 식사보다 못한 세계다. 오르페에게 들은 정보니, 신빙성이 있다.
길드가 나름의 안전장치를 구축해놓으니 견습들도 그걸 이용했다. 어차피 요괴퇴치만 하러 온 놈들이 다른 일에 관심이 있을 리가 없다. 5인 파티가 필수가 아니게 되는 시점은 6번째 퀘스트부터니 자기들처럼 첫 퀘스트부터 다섯 번째 퀘스트까지 전부 요괴퇴치만 할 사람들을 모아 5인큐를 돌리는 거다.
이렇게 되면 여기 파티 저기 파티 하루마다 막 떠돌면서 속성과외를 할 필요가 없어서 길드 소속의 모험가도 편하고, 길드도 파티 구성을 여러 번 정해주지 않아도 되니 편했다. 흔히 말하는 윈윈 전략이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 만나는 새끼들이 병신일 확률이 상당히 높다는 거다. 어차피 좁밥들끼리 모여서 짜는 거라 시너지 효과가 있을 리는 없고 딜탱힐처럼 전략적으로 짜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그래도 정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내가 삼류닌자였다.
“가세, 전우들.”
새튼 이 오타쿠 새끼는 만화로 검술을 배웠는지 역수로 숏소드를 쥐었고, 지나는 거지였는지 궁수라는 년이 단검 하나 없이 활 하나랑 화살통에 화살 3개만 달랑 가져왔다. 3개 다 쏴 재끼면 적들에게 자비를 구해 화살을 회수할 생각인가? 광인의 상상력이다.
“역시 좀 크네.”
갑옷을 딸깍이며 확인하는 오르페. 본디지를 즐기다 가버린 대머리의 갑옷이다. 그녀는 나에게 따까리 허락을 받자마자 다시 동굴로 들어가 보따리 하나를 챙겨왔는데, 그게 이 갑옷이었다. 아마 상당히 고급품이겠지. 삐쩍 마른 오르페지만 키가 큰 편이라 크기는 대충 맞아 보였다. 딱 맞지 않은 장비는 강적과 싸움에서 불리하지만, 돈이 없으니 이해한다. 난 죽은 교관이 준 퀼티드 아머만 걸치고 있다.
“제가 먼저 정찰하고 오겠습니다.”
국밥처럼 든든한 보니타가 수풀을 헤치고 앞장서서 걸었다. 우리 파티의 첫 번째 퀘스트는 민가까지 내려와 깽판을 치고 간다는 요괴무리 처리다. 물가 근처에 서식하는 요괴, 오큘은 집중호우가 지나가고 난 후를 기회 삼아 인간의 영역까지 침입해서 먹이를 찾는다고 한다. 아마도 이세계의 갓파인 거 같다.
“몬스터 사냥은 처음이라 떨리는군. 로빈 군은 경험이 있는지?”
기다리다가 심심해졌는지 새튼이 말을 걸었다. 아까부터 계속 말을 거는 걸 보니 지금까지 얘기할 친구가 없었나 보다.
“덩치 큰 애벌레는 좀 잡아봤습니다. 내 팔뚝보다 더 큰놈도 많았죠.”
그도 아직은 선량한 백성이니 적당히 말을 맞춰줬다. 그 벌레가 요괴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보기가 불쾌하니 요괴라는 범주에 포함되지 않을까.
“그렇게 큰 애벌레는 천둥충의 유충뿐이네. 책에서 자주 나올 텐데 이름을 몰랐나 보군. 책하니까 말하는 건데, 난 사실 문학도라네. 귀족들에게 인기인 신문 ‘예술가들의 전당’에서 장편소설을 연재할 뻔한 적도 있었지.”
전혀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다. 그래도 신문이 있다는 건 좀 놀랍다. 정보수집도 닌자의 덕목이니 그냥 듣기로 했다.
“난 몬스터와 인간의 이종교배에 관한 낭만소설을 쓰고 있다네. 그렇지만 아무래도 실제로 몬스터를 접한 경험이 없어서 묘사하기 힘들더군. 영감을 얻기 위해 이렇게 직접 뛰기로 한 거지. 혹시라도 이 새튼의 작품이 궁금하다면.”
더 이상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새끼, 요괴박이였다! 물론 요괴 중에서도 인간과 친밀한 관계를 이어나가는 녀석도 있다. 대표적으로 삼장법사에게 조교당한 제천대성이 있다. 하지만 난 요괴 이 십새끼들의 진실을 알고 있다!
인간에게 선악과를 먹여 타락의 빌미를 제공한 것도, 나치를 조종해 ‘인류 육질 개선 정책’을 시행하려 한 것도, 가끔 선량한 농부의 밭에 우주선을 타고 내려와 한 해 농사를 망치는 것도 전부 요괴의 짓이다! 닌자들이 음지에서 맞서지 않았다면 지구의 정육점화는 필연적이었다!
‘베어야 하나?’
요괴박이의 끝은 결국 요괴숭배다. 하지만 불확실한 가능성만으로 판단해 무지한 백성을 죽이는 건 탈주닌자의 도리가 아니다.
부처여,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아직 아무 죄도 저지르지 않은 악의 씨앗을 자르는 게 옳은 일입니까!? 어서 대답하십시오!!!!
“오큘의 서식지가 확인됐습니다. 갑시다.”
보니타가 와서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뭐 언제든지 죽일 수 있긴 하다. 닌자교관 드랍템인 아밍소드를 들고 보니타의 뒤를 따랐다.
“아닛?!”
기이한 광경이 시각을 후벼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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